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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2일 경찰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1층 문을 열기 위해 장비를 든 소방대원을 투입해 유리문을 깬 뒤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유리깨고 진입하는 경찰병력 22일 경찰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1층 문을 열기 위해 장비를 든 소방대원을 투입해 유리문을 깬 뒤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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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2일 일요일. 온가족이 TV 앞에 둘러앉아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민주노총 사무실을 주시했다. 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을 5000여 명의 경찰들이 겹겹이 둘러쌌다. 경찰이 경향신문사 입구 유리창을 망치로 부수는 순간, 박근혜 정부의 블록버스터는 그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애초 각본은 이랬을 것이다. 장기간 이어진 철도파업으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엄정한 정부, 불법시위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정의에 찬 공권력, 한국사회 최대 진보조직이라도 정부의 말에 순응하지 않으면 철퇴를 내리는 결단력을 가진 박근혜 정부라는 이미지는 민주노총에 숨어 있는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함으로써 만방에 과시될 것이었다.

각본은 착착 들어맞았다. 경찰은 건물 로비에서 저항하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노조원들을 한 명 한 명 끌어내 연행했다. 경찰이 비상계단을 따라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연행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이 장면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거침없는 공권력의 저돌성과 속절없이 끌려가는 저항세력의 무력감이라는 대비는 "팥죽 드셨냐?"(민주노총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한 말)고 집요하게 물어보던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웃음 속에서 이미 대박 행진을 예약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블록버스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반전을 선사했다. 마치 최대 반전이라 꼽히는, 영화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는 유령이었다"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거침없이 치고 올라가, 그토록 원하던 곳에 도착한 경찰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소설 제목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됐음에도, 체포영장 하나 달랑 들고 50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난리법석을 떤 박근혜 정부의 블록버스터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이들이 온데 간데 사라져 버린 마술쇼로 바뀌었다. 1999년 합법화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라는 민주노총에 대한 정부의 정면 공격은 결국 실패로 막을 내렸다. 엄정한 공권력의 이미지가 공황권력의 이미지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정권 퇴진 전면화 불러온 박근혜 정부의 '악수'

22일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 1층 입구에서 경찰이 진입을 시도하며 양성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정 중앙)을 끌어내고 있다.
 22일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 1층 입구에서 경찰이 진입을 시도하며 양성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정 중앙)을 끌어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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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단호하게 결정했다. 아직 철도노조 지도부가 민주노총 건물에 없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 민주노총은 비상중집회의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돌입할 것을 결정했다. 당장 오늘(23일)부터 확대간부 파업이 시작되며, 오는 28일 총파업을 조직하고 100만 시민행동의 날을 개최할 것을 약속했다. 꺼질 듯 말 듯하던 불씨에 정부가 나서서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다.

정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과 대선불복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고가는 시점에서, 민주노총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결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맞서 공식적으로 '정권 퇴진' 구호를 들었고, 그 이후 처음으로 '정권 퇴진'을 결정했다. 물론 아직 대의원대회 등 공식적인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합법화 이후 처음으로 중앙 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된 마당에 별다른 선택이 있을 리 없다. 민주노총으로서는 전략적인 선택이라기보다 불가피한 결정이다.

한국사회 최대 진보조직인 민주노총의 정권 퇴진 운동은 정국을 뒤흔들 태풍의 눈이다. 그동안의 퇴진 구호가 여전히 개별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조직된 사회적 목소리'로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권력 투입은 박근혜 정부로서는 최대의 악수다.

때문에 민주노총이 대규모 시위를 약속한 오는 28일까지의 일주일은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 기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정국은 22일을 기점으로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질적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박근혜 정부는 물론 민주노총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원외로 이동한 정국 주도권

가장 큰 변화는 정국을 움직이는 중심축이 원내에서 원외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촉발된 대규모 촛불시위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히면서, 정국의 주도권은 급격하게 원내로 이동했다.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비제도적 항의가 제도정당으로 수렴되고, 결국 정당들의 선거연합과 선거 승리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형국이었다.

이 경향성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지속됐다. 그러나 각 정당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문제나 대선불복 논란에 지나치게 신중했다. 해법 역시 원내 중심성이 유지될 수 있는 특검 관철이라는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민주노총에 경찰이 진입하던 시점에 민주당과 안철수, 정의당이 공동으로 진행한 '특검법안 발의 기자회견'은 그 성사 가능성과 무관하게 원내 주도성을 지속시키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이 내년 지방선거를 고려한 포석이라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다. 선거의 덫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에 대한 공권력 투입과 민주노총의 '정권 퇴진 결정'으로 인해, 정국의 주도권이 원내에서 원외로 이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또한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와 올해 내란예비음모 사건 이후 원내 야권의 통합력은 급격히 약화되었음에 반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대정부 투쟁은 원외 세력의 공동행동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중앙의제보다 지역 네트워크에 더 크게 영향 받는 지방선거의 특성상, 민주당으로서는 이런 구도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원외의 저항에 지금처럼 일정하게 거리를 두든지, 새로운 지방선거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의 수라도 끌고 가야 하는 것은 민주노총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과연 민주노총은 원내의 판단과 무관하게, 원외의 저항을 이끌 수 있을 것인가? 한국 노동운동의 역량이 중요한 검증대에 올라 있다. 

새로운 레퍼토리와 문제 해결의 리더십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22일 경찰이 투입된 가운데 노동자, 학생, 시민들이 항의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 민주노총 경찰투입 규탄하는 촛불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22일 경찰이 투입된 가운데 노동자, 학생, 시민들이 항의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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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질적인 변화는 원내에서 원외로의 주도권 이동이라는 흐름이 요청하는 저항 방식의 변화다. 2008년 촛불시위의 특이성은 '지도 없는 저항'이었다. 이런 식의 저항은 문제의 확산과 대중 참여에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문제의 해결에는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2008년 6월 10일, 6월항쟁 이후 최대의 인원이 참여한 광화문 시위에서 '명박산성'을 넘지 못한 리더십 없는 운동의 한계는, 이후 주도권을 원내로 넘길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를 제공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012년 대선에서 국가기관의 노골적인 개입이 하루가 멀게 드러나도 촛불시위에는 이전처럼 많은 대중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단지 의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저항방식이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8년과 동일한 레퍼토리로는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중 참여가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기해 보라. 2008년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던 것은 많은 대중의 참여 자체만으로도 정권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 아니었던가? 그런 기대가 애초부터 없었다면, 과연 그토록 엄청난 수의 대중이 촛불을 들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런 기대가 물거품이 된 경험을 가진 지금, 단지 촛불을 드는 것만으로 정권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확산 역시 새로운 레퍼토리에 대한 요구의 표출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이라는 한국사회 최대 진보조직의 정권 퇴진과 실질적인 행동 선언은 2008년과는 또 다른 저항 방식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보다 조직적인 행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민주노총은 마지막 카드였다. 그나마 남아 있는 대중운동 역량 중 민주노총마저 실패한다면, 더 이상의 대안은 없다.

민주노총의 리더십이 과연 2008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역시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주사위는 던져 졌다.

명운을 건 일주일, 민주노총에 힘 실어야

박근혜 정부나 민주노총이나 오늘부터 명운을 건 일주일이 시작됐다. 민주노총으로서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2008년처럼 압도적인 지지여론을 등에 업은 것도 아니며, 언론환경 역시 당시에 비해 매우 천박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저항세력과의 불통을 자랑으로 여기는 정부가 아니던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있다. 당분간 이 정국은 민주노총이 주도할 것이다. 평소 민주노총에 비판적이었든, 불만이 많았든, 미덥지 않았든 간에 그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책임이 부과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들 앞에 놓은 두 가지 과제는 돌파 외엔 답이 없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역할도 명백하다. 퇴행을 저지하라. 우리의 역할도 분명하다. 민주노총을 지지하자. 선택은 없다. 단지 강요되었을 뿐이다.


태그:#민주노총, #강경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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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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