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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다시 읽기>
 <신채호 다시 읽기>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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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연개소문은 조선역사 4000년 이래 최고의 영웅."

단재 선생은 '민족주의자'인가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이 남긴 이 어록은 그를 '민족주의자'로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특히 <조선상고사> <을지문덕 장군전> <최영 장군전> <이순신 장군전> 따위 저서와 고려시대 묘청이 일으킨 난을 '조선역사상일천년래제일대사건(一天年來日大事件)'라고 말하고,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을 사대주의로 비판한 것을 떠올리면 민족주의자로 단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단재를 민족주의자로만 평가하면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제강점기 국내 아나키스트의 조직과 활동> <신채호의 아나키즘> 등의 논문과 <한국의 아나키스즘-사상편>(지식산업사)을 통해 우리나라 아나키즘을 오랫동안 연구한 이호룡은 <신채호 다시 읽기-민족주의자의에서 아나키스트>(돌배게)에서 "신채호 사상의 진면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자 신채호보다는 아나키스트 신채호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족주의자' 신채호에게 익숙한 우리에게 이 같은 주장은 낯설다. 독자들에게 이 낯설음 해소시키기 위해 지은이는 단재가 <조선혁명선언>에서 주장한 '민중직접혁명론'이 아나키즘에서 주장하는 민중의 직접행동에 의한 사회혁명론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단재는 민족주의자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그는 <이태리 건국 삼걸전>에서 "애국자 없는 나라는 비록 강하나 반드시 약해질 것이며, 비록 번성하나 반드시 쇠퇴할 것이며, 애국자가 있는 나라는 비록 약하나 반드시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대한의 희망>에서는 "금일 한인아, 희망에서 원력이 생기고, 원력에서 얄심이 생기고, 열심에서 사업이 생기고, 사업으로 국가가 생기나니, 힘쓸지어다. 우리 한인아, 희망할지어다. 우리 한인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단재 선생이 "일본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침략주의 맞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제창"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나키스트으로 사상의 변화를 경험한다. 단재 선생이 아나키즘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 건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을 거치면서부터다.

"3·1운동을 통해서 민중의 저력을 확인한 뒤에는 민중을 민족해방의 주체로 보고 아나키즘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민족해방법론을 놓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립하면서 그는 아나키즘을 민족해방 지도이념으로 정립하고, 아나키즘에 입각한 '민중직접혁명론'을 제시하였다. 이후 그가 전개한 민족해방운동은 아나키즘에 입각한 것이다."(본문 6쪽)

"단재, 아나키즘 수용의 선구자"

이런 점에서 단재는 "아나키즘 수용의 선구자이며, 아나키즘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론을 집대성한 인물로 한국의 대표적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단재는 <신대한 창간사>에서 아나키즘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계급 투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빈부의 차이가 없는 평등한 이상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공예의 진보된 결과로 일 기계가 백천 칠공의 직무를 대행함에 노동자는 호구의 벌이가 어렵고, 경제의 조직이 변천하여 연합회사가 중가함에 소자본가는 입족할 여지도 없도다. 우주의 불평이 이에서 더한 것이 어디 있으리오. 고로 우리도 미래의 이상세계는 빈부 평균을 주장하노라."(본문 174쪽) 

단재는 <국제연맹에 대한 감상>에서 "민족자결이 실행되면 '대소가 서로 안정되고 강약이 서로 의지하여'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인바, 이것이 바로 세계 인민이 평화회의에 바라는 바라"고 밝혔다. 민족주의를 넘어 전 세계 인민의 평화를 주창한 것이다.

<조선혁명선언>에서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 조건을 다 박탈하였다"면서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 통치가 우리 조선 민족의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일본을 살벌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했다. 그냥 읽으면 조선 독립만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우리나라 독립이 새로운 정부 수립, 곧 국가 수립은 아니다.

"정부란 민중을 수탈하는 기구"

사실 단재는 민족주의처럼 국가주의를 처음부터 부정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충신이라 함을 의논함>에서 "국가주의를 제창"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와 만나면서 그는 국가주의를 부정한다. 이유는 정부(국가)란 민중을 수탈하는 기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채호가 일본제국주의의 구축(驅逐)을 주장한 것은 한국 민중을 일제의 강압으로부터 해방시켜 한국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것었지, 한국의 독립 즉 민중을 수탈하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신채호에게는 정부란 민중을 수탈하는 기구에 불과하였다."(본문 199쪽)

'아나키스트' 단재 사상을 알 수 있다. 특히 단재는 <조선혁명선언>에서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이상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고 단언한다. 한 마디고 '국가'라는 존재는 계급사회를 지향할 수밖애 없고, 혁명 역시 또 다른 계급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국가주의를 부정한 것이다.

특히 1928년 4월 중국 텐진에서 개최된 재중국 한국인 아나키스트대회가 채택한 <선언>에서는 "정부를 지배계급이 무산민중으로부터 약탈한 '소득을 분배하려는 인육분장소(人肉分臟所·민중의 피와 땀을 착취해 지배층이 나눠먹는 곳)로 묘사하면서, 정부를 파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단재에게 민족해방운동은 조선이라는 국가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곧 민중해방이요, 아나키스트 운동이었던 셈이다. 그럼 민중해방을 이루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재는 <조선혁명선언>에서 '민중폭력혁명'을 주창한다.

"민중의 폭력혁명을 통해 평등사회"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의 제조한 혁명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라' '일본을 구축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본문 215쪽)

이처럼 단재는 "민족해방은 테러나 폭동과 같은 직접행동을 통해 민중을 각성시키고, 그들을 혁명 대열에 참가케 하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며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선은 두 가지의 요소 즉 '민중'과 '폭력'이 결합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단재는 대중 투쟁이 아무리 대규모라도 "폭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그 투쟁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아무리 격력한 투쟁을  전개하더라도 민중이 대규모로 참가하지 않으면 그 투쟁 또한 성공할 수 없다"며 "즉 '혁명의 대본영'인 민중이 전개하는 폭력투쟁만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거듭 민중에 의한 폭력 혁명을 주창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치란 지배계급의 교체일뿐이기 때문이다.

"신채호의 민중직접혁명론은 바로 아나스키들의 '민중들의 직접행동에 의한 사회혁명론'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아나키즘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론이자 사회혁명론이었다. 신채호는 정치와 정치혁명을 부정하였다. 신채호에 의하면, 정치란 지배계급이 민중을 속여 백주애 약탈행위를 조직적으로 행하는 것으로서 민중의 생존을 빼앗는 민중의 적일 뿐이며, 정치혁명이란 지배계급의 교체에 불과하였다."(본문 237쪽)

영원한 자유인 단재, 중요한 본 보여줘

그럼 단재 선생이 민중이 폭력을 통해 이룩하려고 한 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 이호룡은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 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주적 사회의' '민주적 문화'의 한국 사회로서, 빈부의 차별이 없는 평등사회"였다고 말한다. 단재가 꿈꾼 사회는 '대동사회'인 셈이다.

책을 덮으면서 '폭력혁명이 과연 빈부차별이 없는 평등사회, 곧 대동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호룡이 마지막 글을 통해서  "자유로운 인간을 삶을 추구하였으며, 감옥에 있으면서도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영위하였다,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아나키스트운동과 역사 연구에 매진하고자 마지막 한 올의 불꽃까지 태웠다, 그럼으로써 영원한 자유인으로 남았다"고 평가한 단재 신채호의 삶은 2013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본을 보여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부록으로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신대한 창간사> <성토문> <조선혁명선언> <낭객의 신년만필> <선언>이 실려 있어 단재 선생 사상과 철학을 깊게 이해는 데 도움을 준다.

덧붙이는 글 | <신채호 다시 읽기> 이호룡 지음 | 돌베개 | 332쪽 | 1만8000원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신채호 다시 읽기 -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이호룡 지음, 돌베개(2013)


태그:#신채호, #아나키즘, #아나키스트,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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