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공자 조양배씨는 33년 전 자신이 끌려간 상무대 옛터를 찾아 전시된 밀랍인형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 잊고 싶었던 기억을 되살리다 유공자 조양배씨는 33년 전 자신이 끌려간 상무대 옛터를 찾아 전시된 밀랍인형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 광주트라우마센터

관련사진보기


다시 현장을 찾기까지 33년이 걸렸다.

"바로 여그여! 여그 전일빌딩 후문자리 계단에서 내가 붙잡힌거여. 27일 새벽 4시쯤 됐을랑가. 통태를 살필라고 고등학생 하나랑 살짝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는디 저만치서 '손들어!'하고 계엄군 일고여덟이 총을 겨누더랑께. 뭐 어떻허겄어. 두 팔을 번쩍 들었더니 그대로 날라와 군화발로 걷어차더라고. 포승줄에 묶여서 머리 박고 계속 얻어 맞았지. 이대로 죽는구나 싶더랑께."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광주를 짓이겼다. 이후로 황의수(61)씨는 자신이 '머리 박고서 계속 얻어맞았던 전일빌딩 후문자리 계단'을 33년 동안 찾지 않았다. 그 사이 국가는 제 잘못을 인정했고, 역사는 그날을 '5·18민주화운동'이라고 기록했지만, 황씨에게 '80년 5월'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러던 황씨가 다시 광주 동구 전일빌딩을 찾았다. 5월 2일부터 지난 4일까지 일주일에 한 번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진행된 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다. 그는 자신이 계엄군에게 끌려갔던 '전일빌딩 후문자리 계단'을 찾아 그곳을 사진에 담았다. 황씨는 "사진을 통해 상처와 마주하고자 하는 마음의 힘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9명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의 사진전을 10일 개최했다. 유공자 황의수씨는 33년 전 자신이 계엄군에게 붙잡혀 구타를 당한 '전일빌딩 후문자리 계단'을 사진에 담았다. '80년 5월' 이후 황씨는 이곳을 찾지 않았다.
▲ "계엄군에게 얻어 맞았던 그곳" 광주트라우마센터가 9명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의 사진전을 10일 개최했다. 유공자 황의수씨는 33년 전 자신이 계엄군에게 붙잡혀 구타를 당한 '전일빌딩 후문자리 계단'을 사진에 담았다. '80년 5월' 이후 황씨는 이곳을 찾지 않았다.
ⓒ 광주트라우마센터

관련사진보기


"어디 가서 말도 못했지만... 사진치유 후 여유 찾아"

광주트라우마센터가 황씨를 포함해 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9명의 사진전을 10일 개최했다. 세계인권선언 65주년을 기념해 '오월 광주, 빛을 들이다'는 주제로 2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사진전엔 9명의 유공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날 오전 11시에 열린 개최행사에는 김광수·황의수·박시영·김중현·정홍섭·정철·최용식·이종우·조양배씨 등 9명의 유공자와 함께 강운태 광주시장,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오재일 5·18기념재단 이사장, 조비오 신부,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 등이 참석했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사진치유는 사진을 매개로 끊임없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느끼면서 결국 자기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만든다"며 "전시된 사진들을 함께 보면서 우리 모두와 광주 공동체가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나눠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5·18 유공자 사진전' 주인공들, 테이프 커팅.
 '5·18 유공자 사진전' 주인공들, 테이프 커팅.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행사에 참석한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유공자들은 자신이 찍은 사진 앞에서 33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신분을) 묻(지)도 않애. 무조건 젊은 사람만 보믄 끄꼬(끌고) 가서 밟고 그랬어. 그거 보고 있으믄 전라도 말로 배(부아)가 나제. 그래갖고 도청으로 집회를 하러 간디 18일 오후 4시엔가? 양동 천교에서 잡혀 갖고 3박 4일 동안 상무대 영창에 잡혀 있었어. 트럭에 실려서 영창에 들어가고, 조사 받고, 낮에는 얼차려랑 고문 받고…. 기냥 살아서만 나가고 싶더랑께." 

당시 스물여섯이었던 조양배(59)씨는 "그때는 꿈도 많고 그랬는디"라며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꿈 많던 청년은 '80년 5월' 이후 "성격이 급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다니던 직장도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 "이태까(이제껏) 어따 말도 못하고, 팔자려니 하믄서 살았"던 조씨는 광주트라우마센터 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점차적으로 나를 찾게 되고 마음의 평정이 오드만"이라고 말했다.

유고자 조양배씨는 33년 전 자신이 끌려간 상무대 옛터를 찾아 전시된 밀랍인형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 잊고 싶었던 기억을 되살리다 유고자 조양배씨는 33년 전 자신이 끌려간 상무대 옛터를 찾아 전시된 밀랍인형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 광주트라우마센터

관련사진보기


조씨는 33년 전 자신이 끌려간 상무대 영창을 사진에 담았다. 그는 광주 서구의 상무대 옛터를 찾아 전시된 밀랍인형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인형의 얼굴이 땅에 처박혀 질수록 조씨의 카메라도 땅을 향했다.

"전에 같으믄 이런 사진 못 찍제. 인형 표정을 봐바. 비겁하고, 비굴한 표정.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순간을 참말로 떠올리기 싫었는디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사진도 찍고고 하믄서 여유를 찾았제."

광주트라우마센터가 9명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의 사진전을 10일 개최했다. 세계인권선언 65주년을 기념해 '오월 광주, 빛을 들이다'는 주제로 2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사진전엔 9명의 유공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날 오전 11시에 열린 개최행사에는 김광수·황의수·박시영·김중현·정홍섭·정철·최용식·이종우·조양배씨 등 9명의 유공자와 함께 강운태 광주시장,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오재일 5·18기념재단 이사장, 조비오 신부,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 등이 참석했다. 유공자 조양배씨가 사진전에 전시된 자신의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치유 후 여유 찾았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9명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의 사진전을 10일 개최했다. 세계인권선언 65주년을 기념해 '오월 광주, 빛을 들이다'는 주제로 2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사진전엔 9명의 유공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날 오전 11시에 열린 개최행사에는 김광수·황의수·박시영·김중현·정홍섭·정철·최용식·이종우·조양배씨 등 9명의 유공자와 함께 강운태 광주시장,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오재일 5·18기념재단 이사장, 조비오 신부,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 등이 참석했다. 유공자 조양배씨가 사진전에 전시된 자신의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상처 앞에 선다는 것, 많은 용기가 필요"

'80년 5월' 당시 "맹장염이라도 걸려 고문을 피해 볼까 상무대 연병장 모래를 파 먹었다"는 정홍섭(61)씨는 이날 사진전에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자리했다. "새신랑 같아요"라는 지인의 칭찬에 정씨는 머쓱한 웃음을 내보였다. 그 역시 33년 동안 기억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옛 전남도청은 정씨에게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정씨는 이번 사진치유 프로그램 중에 옛 전남도청을 찾았다. 그가 찍은 사진엔 도청 입구에 내걸린 태극기가 선명히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정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우리의 행동은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유공자 정홍섭씨는 33년 동안 피하고 싶었던 옛 전남도청을 찾아 그곳에 꽂힌 태극기를 사진에 담았다. 그는 "우리의 행동은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 옛 전남도청의 태극기 유공자 정홍섭씨는 33년 동안 피하고 싶었던 옛 전남도청을 찾아 그곳에 꽂힌 태극기를 사진에 담았다. 그는 "우리의 행동은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 광주트라우마센터

관련사진보기


이번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는 "자신의 내면에 드리워진 또 다른 형상과 마주하면서 사진은 치유의 역량을 자신 스스로 구현해 낼 수 있다"며 "진정한 치유와 위로는 외부의 힘이 아닌 바로 자신 스스로 기운을 통해 이루어내는 것이 가장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아래 사진을 매개로 하는 치유행위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억 속 상처 앞에 스스로 선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고 그것이 사진 치유 행위의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다"며 "33년 전 그해 5월의 거리를 선택한 이들은 무한한 용기를 가진 분들이었다. 여기 이 아홉 분의 유공자들은 다시 한 번 큰 용기를 세워 걸으며 자신의 기억과 당당하게 마주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가 강운태 광주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에게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 '5·18 유공자 사진' 설명하는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이번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가 강운태 광주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에게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행사에 참석한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가 행사 도중 9명의 유공자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다.
▲ '5·18 유공자 사진전' 찾은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 행사에 참석한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가 행사 도중 9명의 유공자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사진전의 작품은 '5·18기억'과 '자가치유'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조씨는 자가치유 부분에 너른 갯벌 사진을 전시했다. 그는 "(갯벌이) 겉보기엔 척박하지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가"라며 "내 삶이 척박했어도 이제 갯벌같이 의미있는, 알맹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를 통해 도움을 받은 조씨는 지난 9월부터 '광주시교통약자이동주민센터'에 들어가 남을 도우며 살고 있다.

사진전은 20일까지 계속된다.

5월 2일부터 지난 4일까지 일주일에 한 번 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공자들이 '80년 5월'을 상징하는 옛 전남도청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있다
▲ 33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 5월 2일부터 지난 4일까지 일주일에 한 번 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공자들이 '80년 5월'을 상징하는 옛 전남도청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있다
ⓒ 광주트라우마센터

관련사진보기




태그:#광주트라우마센터, #5·18 유공자, #사진전, #세계인권선언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