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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성적으로 비활동적인 사람이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면 태생적 습성은 더욱 강화되기 마련이어서, 따뜻한 이불 안에서 군고구마 먹으며 책을 읽거나, 구운 오징어 뜯어가며 DVD로 영화 한 편 보는 것을 최고의 낙으로 삼는 종족이다. 아이들과 눈밭을 뒹굴며 눈사람을 만들던 옛사진들은 다분히 연출된 상황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정적인 인간도 아내와 아이들의 등쌀은 버텨내기 어렵다. 야외에서 숯불에 구워먹는 삼겹살의 맛에 눈 뜨기 시작한 아내와 핵분열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가지고 주말이면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날뛰는 두 사내 녀석들은 거부하기 어려운 압박이다. 그 어렵다는 카라반 캠핑장을 예약하고, 달력에 날짜가 안 보일 정도로 빨간 색칠을 해둔 아내의 성의와 발음도 잘 안 되는 '캠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의 갈구하는 눈망울은 고래도 뭍으로 뛰어오르게 만들 것이다.

발음도 잘 안 되는 '캠핑'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

물론 첫 캠핑의 씁쓸한 기억들이 마지막까지 갈등하게 만들었으나(관련 기사 : 옆집 가정사까지 실시간 생중계... 아빠 어디가?), 카라반 캠핑이라는 색다른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요즘 들어 부쩍 지친 영혼의 치유라는 타이틀에 결국 짐을 꾸리고 말았다.

석양이 지는 카라반 캠핑장
 석양이 지는 카라반 캠핑장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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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카라반 캠핑장. 무엇보다 짐 싣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던 지난 캠핑과 달리 먹거리만 대충 챙겨서 훌훌 떠나는 가벼움이 좋다.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는 아내의 오전 근무가 끝나고, 직장 동료 부부 한 팀을 태워 떠나는 초겨울 캠핑길. 마른 하늘에 구름 따윈 사양하고, 우리는 바람이 불어 오는 그곳으로 간다. 고속도로 인근에 위치한 캠핑장은 일단 찾기가 쉬워서 좋았다. 해가 뉘엿거리며 지기 시작하는 네시 반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언덕을 깎아 만든 벌판에 서 있는 카라반들과 나무 몇 그루를 앞에 두고 지기 시작하는 노을의 조화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라반 캠핑은 대만족이었다. 따라서 카라반 캠핑장에서 보낸 하룻밤의 여정에 대한 만족감을 '카라반 예찬론'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글에 앞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면, 일단 나는 카라반을 사서 임대하고 수익을 얻을 생각은 티끌만치도 없는 사람이다. 수익률 몇 프로의 카라반 임대 사업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재테크 잼병'의 소시민임을 미리 밝혀둔다.

또 한 가지, 카라반 캠핑은 나처럼 움지럭거리기 싫어하고 천성이 게으르지만 가족들을 위해 캠핑이라는 체험을 시도해야만 하는 이 땅의 '부동형 가장'들에게 추천하고자 한다. 텐트치는 것이 취미이고, 캠핑 장비 사 모으는 게 삶의 원동력인 수많은 캠핑 애호가들에게 딴지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신의 적성과 취향에 맞는 캠핑 방법을 선택해서 캠핑이 주는 행복감을 얻으면 그만이다. 다만, 나는 카라반 캠핑이 딱 내 스타일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400~500만 원 들여서 장비 구입? 카라반 캠핑을 가라

카라반의 외부 모습
▲ 카라반 캠핑장 카라반의 외부 모습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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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카라반 캠핑의 장점들에 대해 적어보겠다. 우선 카라반이라는 단어가 생소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카라반이 무엇인지부터 알고 가자. 카라반(caravan)의 사전적 의미는 사막이나 초원 등지에서, 낙타나 말에 상품을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으로 다니면서 장사하는 상인이나 그 무리를 뜻한다. 하지만 요즘은 캠핑카의 일종인 이동식 주택을 의미하는 단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땅덩어리가 크고 휴가 기간이 긴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차에 매달고 장기간 이동할 수 있는 캠핑용 카로 개발한 것이 바로 카라반이다.

카라반 캠핑의 첫 번째 장점은 시간의 절약이다. 초보 캠핑자들은 백배 공감하겠지만,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와 그늘막 설치하고 캠핑장비 세팅하는 데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 다음날 철거하는 데 두 시간, 집에 와서 텐트 닦고, 장비 청소하는 데 반나절 가량 걸린다치면, 지었다 부수고 수습하는 데만 거의 한 나절이 소요되는 것이다. 카라반은 그럴 필요가 없다. 도착해서 짐 풀고 식사 때까지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거나 밀린 책을 읽으면 된다.

처음 캠핑장에서 옆에 텐트 치던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줄 좀 똑바로 잡으라고!" 고함치는 아버지와 '여기 왜 온 거야'라고 되묻는 듯한 표정의 불만스러운 아들의 얼굴 그리고 두 시간 낑낑 거려 텐트를 치고는 둘 다 지쳐 침묵으로 일관하던 부자의 모습. 그나마 아이가 커서 도와주면 다행이지만, 나처럼 꼬맹이들 둘만 데리고 가서 혼자 텐트를 쳐야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른다. 하지만 카라반 캠핑장에서는 텐트 설치하면서 언성을 높일 이유가 전혀 없다.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떠나는 캠핑인데, 몸은 몸대로 힘들고 기분까지 상해서야 되겠는가?

추운 겨울에도 카라반 안에서 각종 요리와 식사가 가능하다
▲ 카라반 내부의 모습 추운 겨울에도 카라반 안에서 각종 요리와 식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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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반 캠핑의 두 번째 장점은 비용의 절약이다. 캠핑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간 곳은 1박에 12만 원. 훨씬 비싼 카라반도 있지만 대부분은 10만 원대면 충분히 깨끗하고 아늑하다. 기본적인 텐트와 그늘막, 캠핑장비 구입하는 데 평균 400~500만 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물론 더 낮은 비용으로 실용적인 장비들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다). 거의 주말마다 캠핑을 떠나는 캠핑홀릭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처럼 일 년에 두세 번 갈지 말지한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일 년에 세 번 정도 간다고 치면 40만 원 소요. 캠핑 장비 살 돈으로 그냥 10년 카라반 캠핑 가고 만다. 10년쯤 지나면 두 아들 녀석들, 같이 가자고 해도 튕길 가능성이 농후하니까.

전자렌지와 오븐까지 구비된 카라반 내부 조리 시설
▲ 카라반 내부 시설 전자렌지와 오븐까지 구비된 카라반 내부 조리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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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반 캠핑의 세 번째 장점은 새로운 경험이다. 서민들이 캠핑카를 구입해서 캠핑을 떠난 다는 건 로또가 되기 전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고가의 캠핑카를 하룻밤에 12만원으로 경험해 본다는 것은 이국적인 기분과 함께 신선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겉에서 보는 카라반보다 속에 들어가서 내부 시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깔끔하고 세련된 내부 구조는 또 하나의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난방 시설을 갖추고 양변기에 작은 욕실, 모텔(?)급 침실, 오븐까지 장착된 조리 시설을 보다보면, '이 작은 공간에?' 하는 생각에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릴 위에서 굽는 삼겹살은 단연 캠핑의 백미이다
▲ 삼겹살 숯불구이 그릴 위에서 굽는 삼겹살은 단연 캠핑의 백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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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석양을 배경으로 바비큐 그릴에 고기를 구으며, 늘어선 카라반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아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아리조나를 가보지 않아서 정확한 느낌인지는 사실 모르겠다). 더구나 12월 초순의 추운 날씨에도 안락한 카라반 실내에서 따뜻한 잠을 청하다 보니 여기가 집인지 야외인지 뺨을 꼬집어 보게 된다. 9월 하순에 미라처럼 침낭 안에서 잠을 청하던 첫 경험에 비한다면 카라반은 천국, 그 자체다.

마지막 카라반 캠핑의 장점은 바로 개인 사생활의 보호다. 첫 캠핑에서 나를 실망케 했던 옆집 가정사의 청취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된다. 옆집에서 술 마시기 게임을 하다가 인디언 밥 벌칙에 늑골이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도 모를 완벽한 방음, 이것이 카라반 캠핑의 고갱이라 할 것이다. 분위기 있는 실내등 아래에서 와인을 곁들여가며 나누는 친지들간의 대화가 '쭈욱 쭉 술이 들어간다'라는 절규와 같은 함성에 묻힐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이다. 흡사 장터를 방불케하는 캠핑장의 왁자지껄함에 영원한 안녕을 고할 수 있다.

이상으로 카라반 캠핑의 장점들을 열거해 보았다. 물론 모든 카라반 캠핑장이 위와 같은 환경과 시설을 갖추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몇 군데는 다녀보고 이런 글을 써야 하는 거 아냐?라고 반문하는 독자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서두에 밝혔듯이 게으른 본인이 몇 군데의 카라반 캠핑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몇 년이 지날 것이고, 그때 이러한 기사가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첫 캠핑의 안 좋은 기억 씻을 수 있어서... 고마워, 여보

카라반 캠핑장의 아침 전경
 카라반 캠핑장의 아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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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의 후기들과 주변 지인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카라반 캠핑에 대해서는 대체로 우호적인 평가를 내린다. 좀 낡은 카라반이어서 침대나 소파 등이 깔끔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으나, 처음 카라반을 이용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신기함과 편안함에 만족감을 표시한다.

한편으로, 예약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한 달 전에 예약이 가능한데, 홈페이지에 오픈하자마자 서버가 다운 될 정도로 예약이 폭주하므로 부지런히 손품을 팔아야만 한다. 약간의 노력으로 가족들이 행복해한다면 기꺼이 감수할 부분이긴 하지만, 어려운 건 역시 어렵다. 요즘들어 카라반 캠핑장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고, 웹서핑을 열심히 하다보면 잘 안 알려진 캠핑장이 분명히 존재하니 일말의 희망을 가져볼 수밖에.

나의 두 번째 캠핑인 카라반 캠핑.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함께 바라 본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박혀 있다.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오리온과 카시오페아, 북두칠성 등의 별자리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며, 캠핑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을 씻어주고,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으나, 차마 하지 못했다. 언젠가 다른 캠핑의 경험이 주어진다면 그때는 꼭 전해야겠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고 한다. 그 누군가는 집을 여러 채 두지 말라는 공유의 진리를 가지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카라반을 만들었을 거다. 아마도.

덧붙이는 글 | 인터넷 검색창에서 카라반 캠핑장을 검색하거나 여러 캠핑 사이트에 접속하여 카라반을 검색하면 전국 각지에 있는 카라반 캠핑장을 확인할 수 있으며, 예약도 가능하다.



태그:#카라반 캠핑, #삼겹살 그릴 구이,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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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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