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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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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의도하지 않은 출발이었다.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비로서 언젠가는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닥쳐올 거라곤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캠핑 체험은 무방비 상태인 추석 연휴 때 그렇게 찾아왔다.

"다 준비해 놨으니, 몸만 오게…. 이서방."

캠핑 중의 최고는 단연 입만 달고 가는 캠핑이리라. 캠핑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곁눈질하기 시작하던 나에게, 이 얼마나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인가?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캠핑용품을 모으기 시작한 처형의 남편인 형님께서 이번 추석 연휴가 뒤로 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 캠핑을 추진하였다. 캠핑 경험이 두 번째인 형님의 인솔 하에, 세간살이 절반에 가까운 캠핑용 장비를 싣고 오토캠핑장으로 향했다.

약간의 설렘으로 시작한 오토캠핑

서울 근교의 이름 있는 오토캠핑장 경우는 이미 한 달 전에 예약이 끝났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가 선택한 목적지는 경기도 양주시 일영 유원지에 있는 선착순 오토캠핑장이었다. 캠핑 장비를 싣고 떠나는 발걸음은 누구보다 가벼웠으며, 고등학교 수련회 이후로는 야외취침 기억이 별로 없었으므로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거기다 이제 뛰어다니기 시작한 두 아들 녀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바람직한 아버지가 된 것 같은 뿌듯함까지 더해졌다.

오토캠핑.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 중에 야영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땅덩어리가 드넓은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이용한 자동차 캠핑을 뜻하는 용어였으나 이웃 나라 일본의 세미오토캠핑(캠핑 장비를 차에 싣고 가서 하는 야영)의 개념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불과 5년여 만에 캠핑 인구가 50만에서 300만(혹은 500만 명까지도 추산)으로 늘어났고, 캠핑 장비 시장 규모도 4조 원대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산과 들에 캠퍼들이 넘쳐나는 바야흐로 캠핑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오토캠핑이니 알파인 캠핑이니 백팩 캠핑이니 따위의 분류들에 대해서는 후에 공부해서 알게 된 분류고, 나 같은 생초보들에게 캠핑은 그저 야외에 텐트치고 고기 구워 먹는 여가의 활용, 딱 거기까지였다.

한 시간 남짓 차로 달려 목적지에 드디어 도착. 그런데 이건 내 머릿속 캠핑장의 모습이 아니다. 자그마한 운동장 주변으로 나무 그늘이 좀 있고, 그 아래 대강 그어둔 구획 표시가 보이고, 선과 선 사이의 지형은 주변보다 약간 편평할 흙일 뿐이었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잔디밭 위로 나비가 날고, 그 뒤를 쫓는 두 아이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져 갔고, 그 환영을 애써 지우며, 묵묵히 '타프'라는 이름의 거대 천막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초보 아니 최초 캠핑 경험자에게 있어서 타프 아래, 모기장집(타프 스크린) 그리고 텐트까지 3개를 설치하는 과정은 그냥,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론은 해박하지만, 실제 캠핑 경험은 두 번째인 형님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세 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야 겨우 두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 짓고 나니 나도 전문 캠퍼가 된 것 같은 기분이고, 아이들은 동굴집이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거기다 저녁때 고기 구워 먹을 생각까지 하고 나니… 처음 느낀 실망감이 점차 수그러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열악한 화장실과 수도 시설 등은 아내와의 배드민턴, 아이들과 곤충채집 흉내 같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잊혀졌다.

그에 따라 캠핑에 대한 호기심이 호감으로 차츰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야외에서 진행된 저녁 만찬. 그릴 위에서 참숯에 익어가는 삼겹살의 향연은 그 자체가 캠핑에 대한 환상과 중독의 주범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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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히 붙어 있는 텐트... 옆집 가정사 실시간 생중계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크게 할 일이 없던 우리는 피곤한 아이들도 재울겸 9시쯤 되어 자려고 누웠다. 하지만 눕는다고 잘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공동주택보다 촘촘히 나누어 놓은 텐트 사이트(텐트 칠 땅) 때문에 옆집 사람들의 대화가 실시간 생중계되는 게 아닌가?

추석에 있던 가족 간의 불화에서부터 시작하여 요즘 사는 근황까지. 그렇게 한 시간쯤 듣고 있다 보니, 문득 말참견 내지는 훈수를 두고 싶은 충동이 생기고 더 듣고 있다가는 옆집 가족의 일원으로 대화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많은 사생활 정보들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연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느끼며, 힐링을 바라던 나의 바람이 옆 텐트 사람들의 대화와 고기 굽는 냄새에 무참히 버려지는 순간이었다. 귀뚜라미 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목소리들. 그렇지만 그 소리의 톤은 결코 과장되지 않은 평범한 대화의 수준이었기에 뭐라 태클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피곤한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나서 도저히 멀쩡한 정신으로는 잠들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맥주나 한 캔 마실까 하고 나왔더니 어딘가에서 들리는 탱고의 선율. 그래, 낮부터 무언가 불안하고 찜찜했던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었다.

살사 동호회 분위기의 열 명 남짓한 청춘 남녀! 그들이 춤사위를 시작한 것이다. 낮에 떠들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점점 더 불안감과 당혹감에 물들어 갔고, 그들의 행태는 나의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새벽 1시가 다 되도록, "베수킨 라빈스 떨이원! 귀엽고 섹시하게 떨이원! 둘이 왔어요, 셋이 왔어요! 쭉~쭉쭉쭉 술이 들어간다" 등의 다양한 구호를 외쳐댔고, 박장대소에 고함, 박수소리까지 주변의 모든 이들은 텐트에 누워 그 소리를 안으로 삭혀야만 했다.

참다못해 한 시경이 되어 그네들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청춘이 부럽기만 한 꼰대, 딱 그것이었을 뿐…. 그렇게 새벽닭이 울 때까지 그들은 떠들고,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악몽 같은 시간이 지속되었다.

터진 실핏줄과 다크 서클만 남긴 내 생애 첫 캠핑

지난 15일 방영한 MBC <일밤-아빠 어디가> 한 장면
 지난 15일 방영한 MBC <일밤-아빠 어디가>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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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캠핑의 첫날밤은 터져 나간 실핏줄과 눈두덩 아래 쌓인 다크 서클로 끝맺었다. 그 다음날, 아침을 지어 먹고는 바로 철수했다. 그리고는 돌아와 앉아 분노 혹은 회한에 찬 후기를 쓴다. 과연 이 광적인 캠핑 열기의 실체는 무엇이며, 폭발적인 증가의 이면에 자리 잡은 에티켓의 상실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하소연할 것인가?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 등의 야영 방송 이후로 캠핑에 대한 관심도 및 캠핑 장비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2013년 기준으로 전국의 캠핑장 수는 1000여개를 넘었다고 한다. 그만큼 캠핑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 5일제로 시간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 떠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여행을 떠나고 그러다 야영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어 가는 것이 제대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지금의 오토캠핑 문화는 방송에서 띄워주고, 광고에 쏟아 붓고, 지자체에서는 경쟁적으로 캠핑장을 만들어 대는 일종의 세뇌에 따른 집단행동의 결과처럼 보인다.

내가 꿈꾸던 캠핑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태그:#캠핑후기, #오토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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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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