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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국민과 함께하는 새 정치 추진위원회' 출범을 밝힘으로서 추측만 무성하던 안철수당의 실체가 조금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회견에서 안의원은 링컨의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 내용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자신이 표방하는 정치가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치를 추구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사실 지난 2011년 갑작스런 서울시장 사퇴와 재보궐선거 그리고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정치권 밖에 머물던 안철수는 자신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다른 모든 유력한 정치인을 압도할 만큼 대단한 파괴력을 과시했었다. 그가 현실 정치에 투신하면서 파괴력은 조금씩 차감되었지만 아직도 세력화되지 않은 안철수당에 대한 잠재적 지지율이 전통의 제1야당인 민주당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여전히 새 리더십에 굶주려 있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철수 대안정치에 대해 기대가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여전히 거품이 존재한다는 회의적 시각을 거둘 수 없다. 대중이 기존 정치에 극도의 피로감과 혐오를 느껴 대안 정치의 한계효용치가 극에 달한 시점에 마침 그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일 뿐 여전히 안철수 정치는 드러난 것 보다 감추어진 것이 훨씬 많아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냉정한 평가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011년 서울시장재보선부터 대선까지의 기간은 그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영광과 좌절의 시간이었다. 그가 주장하는 '상식이 통하는 정치'는 대중의 폭발적 지지를 받았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기존 정치권의 벽에 막혀 좌절했다. 그는 현실 정치의 벽이라는 좌절을 안고 미국으로 갔고 몇 달 뒤 링컨을 가슴에 안고 귀국했다. 그는 귀국길에서 수정헌법 13조의 하원의결에 관한 대통령 리더십을 주제로 만든 영화 '링컨'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영화 속 링컨의 리더십

링컨은 노예제 폐지 관철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 영화 링컨의 라스트신 링컨은 노예제 폐지 관철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 20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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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폐지 문제를 놓고 남과 북이 격돌한 전쟁에서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고, 재선에서도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정점에 달하고 있었음에도 영화 속의 그는 여전히 불안하다. 전쟁에서 60만 이상이 사망하는 비싼 대가를 치루고 도 여전히 노예제 폐지 문제가 미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남북 전쟁을 촉발시킨 그의 노예제폐지령은 각 주의 주법을 우선으로 하는 주법에 밀려 법적 효력의 한계가 있다. 비록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노예제 존속을 주장하는 남부의 주법이 노예제를 허용한다면 폐지령이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링컨의 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나기 전 노예제 폐지 문제를 헌법으로 명문화해야할 숙제를 안고 있었고, 이를 위해 수정 헌법 13조를 의회에 상정했으나 하원은 이미 이를 부결시킨 바 있다.

영화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된다. 상원을 통과한 수정안이 하원에서 가결되려면 재적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당인 공화당이 모두 찬성표를 던지더라도 수정안 가결에는 여전히 20표가 부족하게 된다. 링컨은 이 20표를 어떻게 확보했을까? 영화는 안철수가 "링컨이 어떻게 여야를 설득하고 어떻게 전략적으로 사고해 일을 완수해냈는가. 결국 정치는 어떤 결과를 내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감명 깊게 봤다."고 언급했던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목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재선에 당선한 그에게 수정안의 하원 통과와 관련하여 "시궁창 싸움을 벌여야만 하는 데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느냐?"며 그의 아내나 측근은 충고했지만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영화에서 노예제 폐지 문제는 그의 과정이 아닌 절대적 가치를 지닌 목표였기 때문이다.

<복잡한 내부 사정>

노예제 폐지를 지지하는 북부연방이 전쟁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하원은 수정안 13조를 부결시켰다. 왜 그랬을까? 그 이면은 매우 복잡하다. 서민들에게 있어서는 값싼 노동력이 대거 유입됨으로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우려를 가졌고, 노예 해방이 나중에는 참정권 부여 등으로 이어져 흑인이 미국 사회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섣부른 우려도 있었다.

따라서 일반 대중은 4년에 걸친 전쟁을 끝내기 위한 조건이라면 노예제 폐지에 찬성하지만 전쟁이 종식된 후라면 굳이 적극적으로 노예제 폐지에 적극 찬성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시점의 중요성>

링컨은 영화에서의 시점 즉, 재선으로 의회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이 극대화 되어 있고, 비록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확실히 종전이 되지 않았고, 선거에서 낙선한 의원들의 마지막 회기인 시점을 노예제 폐지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절호의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다.

<방법론>

수정안 가결을 위해 그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여당 의원을 설득하기 위한 물밑 거래는 물론, 임기가 끝나면 실업자가 되는 민주당 낙선 의원들에게는 차기 정부에서의 일자리를 약속하는 사실상의 득표 매수도 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정치인이라는 그가 의회를 상대로 거짓말도 해야 했다.

안철수 리더십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대안정치에 대한 갈증의 반영이란 점에서 정치세력화를 선언한 지금 시점은 안철수 정치가 비로소 베일을 벗은 상태로 대중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 정치 추진위원회>가 어떤 모습의 새 정치를 목표로 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 목표에 도달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할 시점이 온 것이다.

대중은 그가 표방하는 새 정치가 과연 시대의 목표와 부합되는 것인지, 또한 새 정치의 현실구현 가능성 여부에 따라서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은 장차 민주당을 제치고 대안 세력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예상 외로 빠르게 찻잔 속의 태풍으로 군소 정치세력으로 명맥만 유지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1012년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의 영광과 좌절의 과정을 잘 복기해야만 한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극에 달했다. 가상 대선 투표에서 어떤 상대와 대결하더라도 압도적 당선이 예견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대선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현실 정치의 모순을 극복하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표방하여 대중의 환호와 지지를 받았지만 그의 도전은 현실 정치의 개혁은 고사하고 고작 민주당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장벽도 넘지 못한 실망스런 결과물을 내어 놓았다.

실패(굳이 실패라고 한다면)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첫째 이유는 역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너무 무시했다는 점이다. '상식이 통하는 정치'는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당연한 목표이지만 그걸 현실화 하기위한 주변 여건은 결코 호락호학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부조리한 부분을 청산하려면 그 동안 부당한 기득권을 누리던 집권 여당과 야당이 누리던 상당수의 부당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결코 말로 설득당해 내어놓을 수 있는 하찮은 기득권이 아님에도 이 문제를 감상적으로 접근했다. 결과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조차도 설득하지 못하고 눈물의 기자회견을 해야만 했다.

두 번째 요인은 타이밍 선택의 실패이다. 세간은 안철수를 타이밍의 정치인이라고 했지만 안철수야 말로 타이밍 정치에서 가장 실패를 맛 본 정치인이다. 물론 준비가 덜 된 탓도 있었겠지만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 즉, 야권의 모든 가상 후보 지지율을 합쳐도 두 자리 수치를 유지하지 못할 때 모든 정치인을 통틀어 50%이상의 압도적 지지율을 달리고 있을 때 만약 대선출마 의지를 밝혔다면 상황은 어떠했을까?

또한 늦었지만 대선출마의사를 밝힌 시점에서 야권후보단일화 의지를 충분한 협의시한을 남겨두고 밝혔다면 어떠했을까? 과거사를 가정법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그는 대통령이 되어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있거나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으로 또 다른 정치개혁의 핵심으로 활약하고 있었을 것이다.

안철수의 수차례에 걸친 실기는 남북전쟁에서 항복협상이 진행되고, 선거에서 패한 의원들의 마지막 회기를 수정안 가결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강하게 드라이브하여 결국 노예제를 영구히 폐지시킨 링컨 리더십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세 번째는 설득의 리더십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상식이 통하는 정치' 참 꿀맛 나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상식이 통하는 길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유일한 길이 부당한 기득권 폐지의 길이다. 부당한 기득권이 누리는 체제에서는 상대는 절대 말로 설득당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수정안에 반대하던 민주당 의원이 "노예제 폐지라는 숭고한 이념에는 찬성하지만 장차 흑인들이 투표권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라며 법안에 반대한 것은 이상과 현실 정치의 차이점을 잘 드러낸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을 잘 파악한 링컨은 설득이 가능한 상대는 설득을 거래가 필요할 땐 거래를, 거짓말이 필요할 때는 거짓말까지 해야만 이 일이 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문제는 절실함의 결여다. 지난 실패 과정에서 그는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을 구현하려는 절실함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많은 지지자들은 이제까지의 삶에서 좌절을 맛보지 못한 그가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며 더러운 흙탕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 샌님처럼 깨끗한 정치를 하려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런 안철수의 자세가 절실함의 결여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된다. 2012년 야권의 대선 패배는 엄청난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결과를 몰고 왔다. 정치발전이란 목적 달성을 위해 정계에 투신했지만 현실은 그의 이상과 반대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대선은 바로 이런 퇴행의 전환점(turning point)이었다. 그 결과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개입이라는 사상초유의 스캔들이 터졌음에도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야권은 집권세력의 부정을 밝혀내거나 부정에 대한 심판할 어떤 합법적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 야권은 특검을 주장하지만 여대야소 상황에서 공정한 인사가 특검에 임명된다는 보장이 없고, 설사 특검이 제대로 수사해서 실체를 밝혀낸다고 하더라도 이제까지의 예로 비추어 볼 때 기소를 담당한 검찰 측이 보강수사란 명목으로 결과를 뒤집을 것이 명확하다. 부정선거에 대한 국정조사나 특검이 자칫 부정을 자행한 집단에게 면죄부로 작용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큰 것이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2012년 대선은 단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발전하느냐 퇴행하느냐의 터닝 포인트였고 따라서 야권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승리했어야만 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안철수는 공히 <정권교체>의 절대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절실함의 결여로 사소한 줄다리기에만 몰두하다 정치퇴행에 간접적으로 공헌한 방관자가 되고 만 것이다.

안철수가 불행해져도 국민은 행복해야 하는 게 바른 정치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철수. 문재인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지만 내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 좋은 세상으로 가기위한 수단일 뿐 목적지는 아니다. 정치에 투신한 안철수가 부디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그 스스로도 행복한 정치인이 되기를 바라지만, 설사 정치로 인해 안철수가 지극히 불행해지더라도 국민만은 반드시 행복해져야만 한다.

영화 링컨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안철수에게 지지자의 한 사람으로서 밝히는 바람은 당신이 무엇을 하던 그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라는 것이다. 절실함이 없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니다.


태그:#안철수,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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