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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의 수리영역이 진행 중이던 11월 7일 오전 11시, 청계광장에서 7명의 고등학생 등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했다.
▲ 오늘부터 우리는 투명가방끈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수리영역이 진행 중이던 11월 7일 오전 11시, 청계광장에서 7명의 고등학생 등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했다.
ⓒ 구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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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같은 날 오전 11시에는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대학·입시거부 선언' 기자회견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고사장에서 수리영역을 풀고 있어야 할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등 7명이 고사장 바깥에서 카메라 셔터 세례를 받고 있었다.

이날 츠베(별명)씨는 "내가 대학에 안 가는 게 왜 이상하죠?"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통해,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 모른다. 혹여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꼭 대학이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지금은 내게 대학은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대학에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사실 대학·입시거부 선언이라는 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것이 올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2009년에는 박두헌(별명 슴두)씨와 이강산(별명 강산)씨 등이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수능 폐지, 대학 평준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수능시험을 거부했다. 2010년에는 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씨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고 선언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또 2011년 11월 10일에는 13명의 수험생이 청계광장 앞에서 대학·입시거부 선언을 했다. 당시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외에도 2011년에 있었던 유윤종(별명 공현)씨의 대학거부 등 여러 대학·입시거부 선언들이 있어왔다.

그렇다면 지난 수 년 동안 대학·입시거부 선언이라는 '기이한' 일이 왜 생겼으며,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학·입시거부 선언에 대해 이야기를 듣기 위해 2011년 대학·입시거부 선언에 참여했던 피비(Pibi, 별명, 21세)씨와, 대학을 휴학 중이지만 더 이상 대학에 다닐 생각이 없는 권오선(21세)씨를 지난 24일 오후,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에서 만나보았다.

"사람들은 대학·입시거부를 너무 특별하게 본다"

- 소개부터 부탁드린다.
권오선 : "아르바이트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기계를 다루는 일로 돈을 벌어 먹고살고 있다. 대학 휴학 중이고 다음 학기에 복학하지 않으면 제적되지만, 복학하지 않을 생각이다."
피비 : "청소년 운동을 하고 있고 2011년부터 대학입시거부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활동이 뜸한 상태다."

- 피비씨는 처음부터 대학을 다니지 않은 것인가?
피비 : "처음부터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예대에 지원했다가 낙방하기도 했다. 또 다른 대학에 지원했다가 취소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결국엔 대학거부운동을 하게 되었다. 글쓰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이 일을 하는 데 과연 대학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대학거부를 하게 됐다."

- 서울예대에 지원했을 때는 대학거부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인가?
피비 :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대학에 대한 문제의식,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체제에 대한 승복이나, 예술대학에 대한 낭만이나 환상이 있었다. 그런데 수시모집으로 지원했던 서울예대에 낙방하고, 이후에 대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니까 대학거부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에 대학입시거부 선언을 한 피비씨(왼쪽)와 기자
 2011년에 대학입시거부 선언을 한 피비씨(왼쪽)와 기자
ⓒ 윤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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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선씨는 입학 전에 대학거부를 할 생각이 없었나?
권오선 : "나는 기계나 자동차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다. 만약 내가 배우고 싶은 게 대학에 없었더라면, 처음부터 대학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다. 대학에 다니면 등록금, 밥값, 교통비로 돈이 많이 드는데 굳이 대학에 다닐 이유가 없다. 대학에 다닌다고 생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니까 아마 안 갔을 것이다."

-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학·입시거부를 한 사람에 대해 "특이하다"라거나 "용기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정말 그런 사람들인가? 
피비 : "사람들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대학거부라는 게 신선해보이긴 했다. 대학·입시거부는 교육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의 한 방법일 뿐인데 사람들이 대학·입시거부와 그것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특별하게 보는 부분들이 있긴 하다."

- 단순히 고교 졸업 이후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 것 또한 하나의 길이기 때문에 대학에 가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다.
피비 : "사실 나의 경우는 대학·입시거부로 기존의 교육체제에 변화를 주려고 했다기보다는 하나의 선택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교육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 다만 그것을 '변혁 의지'라는 거창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진 않다. 기존의 교육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결국 대학에 가지 않는 것 역시 대학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학벌을 가지면 편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

- 올해 대학·입시거부 선언을 한 츠베씨의 선언문을 보면, 그도 대학을 선택의 문제로만 본 것 같다. 반면 많은 사람이 대학을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피비 : "사회에 의해 선택이 강요된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길 강요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 또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권오선 : "한 예로 독일은 19세 때 일을 시작해서 26~28세에 경력이 쌓이면 대졸자 초봉과 맞먹는 임금을 받는다. 계속 경력이 쌓이니까 삶도 안정적이다. 반면에 한국은 저임금과 학력 차별, 심지어 고용불안에 비정규직·계약직·하청 문제가 있다. 고졸들은 고교 졸업 직후 일을 시작해서 한 달에 100~110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그 100~110만 원이 서른 살이 되어도,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다. 그래서 안정적인 삶을 찾기에 조금이나마 희망이 보이는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대학에 가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환경이 있다는 말인데, 그러면 대학에 가면 불안하지 않은가?
권오선 : "'학벌이라는 걸 갖게 되면 편해질 것이다',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생기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을 다니며 안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빚도 계속 쌓이고. 대학에 가는 건 가능성 때문인 것 같다. 고교를 졸업해서 안정적인정규직 직장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아니다. 근데 대학에 가면 그런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보인다. 실제로 대학을 나와서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소수이지만 있는데, 그소수에 자신이 포함될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피비 : "강요된 교육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정해진 루트를 밟으면 편해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하지만 두려움은 대학에 가서도 결국 생긴다. 사실 대학에 간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졸업 후 임금을 고졸보다 조금 더 받을 수 있을진 몰라도, 대학에 돈을 들인 만큼의 효율성을 찾았다고 보지 않는다. 심지어 토익부터 해서 온갖 경쟁의 또 다른 시작이다."

- 대학에 가는 것을 선택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를 깨뜨리는 데, 대학거부선언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피비 : "대학거부선언만으로는 크게 기대를 못할 것 같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실천적인 행동까지 이어져야 한다. 단순히 물음만 던져주고 멈춰서는 변화시키기 힘들다. 실천적인 행동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심지어 대학거부선언의 의미까지도 퇴색돼버릴 것이다."
권오선 : "대학입시 같은 소수만의 선언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단순히 그냥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다. 대학에 가는 게 당연한 분위기를 바꾸려면,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이 난무하는 것과 같은 노동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

- 한국의 노동문제에 대한 논의는 대학·입시거부를 한 사람들 사이에서 없었나?
피비 : "대학·입시거부 운동을 할 당시에 한진 희망버스와 같은 일도 있었다. 그 행동에 같이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그것보단 대학거부에 초점을 맞추자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나는 노동 쪽 집회에도 참석하는 등 다른 부문과 연대하고, 그것을 대학거부와 연결시켜서 같이 고민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대학·입시거부에만 머물면 힘들다. 그런데 당시에는 대학·입시거부에만 머물렀던 게 아쉽다."

"성실성? 회사가 부려 먹기 쉬운 성실한 인재라는 뜻"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던 11월 7일, 수험생이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에서 '내려'가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던 11월 7일, 수험생이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에서 '내려'가고 있다.
ⓒ 윤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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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당일에 고등학교 몇 곳과 한 대학교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인터뷰를 했다. 그때 나온 말 중에 하나가 "대학교에 다니는 게 성실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대학·입시거부를 한 사람들에 대해 "게을러서 대학에 가지 않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피비 : "성실성을 요구하는 사회다. 좋은 의미의 성실성이 아니라 순응적인 것을 뜻하는 성실성. 많은 빚을 져가면서까지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삐뚤어진 것 없이 잘 따라간다면, 역으로 회사 입장에서 부려 먹기 쉬운 성실한 인재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뭐, 내가 대학을 거부하고 놀았다고 하면 놀았다고 할 수도 있다. 대학을 안 가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또 그 공부가 재밌었으니까 놀았다고 할 수도 있다."
권오선 : "지배층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게 성실한 것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빠진 것 같다. 대학에 안 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은 땅 파먹고 사나? 일을 할 거 아닌가?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는 사람한테 게으르다고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 대학·입시거부에 대해서 언론은 어떻게 다루고 있는 것 같나? 대학·입시거부 선언을 한 사람들의 생각들이 과연 언론에 그대로 비추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언론이 대학·입시거부 선언을 자극적으로 재생산해서, 쓰고 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피비 : "유명 진보 주간지의 인터뷰 기사를 떠올려 보면 그런 점들이 있다. 내가 한두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떠들었지만 나중에 나온 기사에서 주가 된 내용은 자극적인 것,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것만 반영됐다. 내가 생각하는 대학·입시거부에 대한 본래의 생각은 잘 안 담겼다. 기자가 나한테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서 내가 '노동운동도 하고 싶고 글도 좀 쓰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 걸 썼다. '한국의 노동환경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 '교육체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 하는 이야기가 중요한 것인데도 이보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내가 내고 있는 목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독특한 사람'이 중요했던 거다."

- 피비씨는 사전에 보내준 질문 중 "입시거부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라는 물음에 "딱히 영향을 끼친 건 없다"고 답했다. 어떤 의미인가? 
피비 : "사실 대학을 거부하면 삶이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강요하는 루트대로 대학에 가게 되면, 고교에 다니면서 그래왔던 것처럼 대학에 가서도 누군가의 강요에 따라야 하고, 한편으로는 성실성이라는 게 강요되고 취업을 위한 여러 공부도 해야 한다. 반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나는 내 공부나 다른 활동들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었고, 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안 간 친구들은 삶에 대한 고민이 현실적으로 더 빨리 다가온다.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놀고먹지 않는 이상,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노는 게 아니다.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영향 끼친 건 없다'고 했던 이유는 결국 나중에 봤을 때 삶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거다. 대학을 간 사람은 그 나름의 삶이 있을 거고 대학을 안 간 사람은 또 그것대로 삶이 있는 거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대학입시거부, #대학거부, #투명가방끈, #수능, #학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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