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숭례문 복구에는 이 시대 최고의 장인들이 참여했다. 대목장 신응수, 석장 이의상, 단청장 홍창원 등 전통 기법을 잘 전수받아 그 명맥이 잘 유지되고 있는 말, 그대로 전통기법에 관한한 최고의 장인이 모여서 복구를 이루어낸 것이다.

'숭례문과 이 시대 장인들의 역할' 세미나
 '숭례문과 이 시대 장인들의 역할' 세미나
ⓒ (주)CPN문화재방송국

관련사진보기


숭례문의 본격적인 복구에 앞서 2009년 9월, 당시 문방위원장이었던 정병국 의원 주최로 '숭례문과 이 시대 장인들의 역할'이라는 세미나가 국회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후일 부실복구로 인한 문제가 대두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시 세미나에서 격렬한 토론 끝에 모든 장인들이 모여서 모두 힘을 합하고 서로의 지혜를 모아서 복구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이는 묵살되었다. 국보 1호를 복구하는 데 손이라도 하나 보태겠다는 장인들의 뜻있는 의견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무형문화재 보유자'라는 규정으로 복원공사에 관하여 사실상 몇몇 장인들에게 특혜를 줬다. 전통기법으로 복원한다던 공사는 크레인이 동원되고, 공사 중 노임문제가 발생하는 등의 잡음이 이어졌다. 이제와 나무 탓을 하고, 건조기간을 탓한다. 또한 짧은 공사기간 때문에 안 좋은 나무를 사용했다고도 말한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공사를 강행했다. 어떠한 변명이 필요한가.

1962년 대목장 조원재가 중심이 되어서 최초 복원된 숭례문은 당시 정대기 이광규 등 내로라하는 전국의 목수들이 참여했다. 설계도면상 왼쪽 하부 부분에 심각한 문제를 발견한 조원재 대목수가 술에 얼근해서 지하 감독관 실로 당시 감독관이었던 임천 선생을 찾아갔고, 문을 걸어 잠근 채 밤새 토론을 했다고 한다. 대목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고건축 공사다. 자칫하다가는 역사의 오점을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지시를 따랐을 뿐 떳떳하다는 식의 대응에 국민들은 심기가 불편하다. 잘못된 지시라면 과감하게 거부하는, 조원재 도편수가 감독관인 임천 선생과 끝까지 설전을 벌여서 숭례문을 제대로 복원하고자 했던 기개가 이 시대 장인에게는 없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방송국(www.icpn.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숭례문
댓글

전통문화, 문화유산 관련 언론사 입니다. www.icpn.co.kr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