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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법무부 장관, 통합진보당 해산안 발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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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진보당의 민중주권을 정당해산의 근거로 제시하고, 정홍원 총리는 국회에서 '민중'이 사회주의적 개념이라고 답변하였다. 이들이 반공보수주의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민중주권을 주장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국회의장 자격으로 1848년 5월 대한국민 국회 개회사에서 "민주정체에서는 민중이 주권자이므로 주권자가 잠자코 있으면 나라는 다시 위험한 자리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1956년 10월 4일 '민중의 지지를 받도록 하라'는 제목의 연설문에서 "자유당은 민중이 믿고 바라는 정당이 되도록 조처해야 되며, 우리는 다 자유당이 민중이 믿는 당이 되도록 힘써야 될 것"고 강조하였다. 정부논리대로만 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사회주의혁명론을 주창한 것이고, 자유당은 사회주의정당이 되고자 한 것이다.

민중이라는 단어와 역대 대통령의 관계는 밀접하다. 윤보선 대통령은 1946년 민중일보사 사장을 역임하였고, 김영삼 대통령은 1964년 민정당과 민주당이 통합된 민중당의 원내총무를 지냈다. 역대 대통령들은 민중이라는 단어를 주권, 민주주의, 항쟁, 반외세와 제국주의 반대 등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하였다. 진보당이 민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전두환-노태우의 민정당도 "민중의 편에 서겠다"

윤보선 대통령은 1980년 3·1절 연설문에서 3·1운동을 민중운동이라고 규정하고, "10·26 사태는 부마사태 등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민중운동의 연장선 위에서 일어났다"고 밝힌 후 "민중의 참여와 창의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강조하였다. 이는 민중의 민주주의와 이를 실현하려는 민중항쟁의 정당성을 언급한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79년 7얼 23일 신민당 총재 자격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내 말은 참으로 무서운 민중의 소리 가운데 가장 순한 말"이라며 박정희 정권을 비판했으며, 1985년 8월 미주방문 중에는 '역사와 정의는 언제나 민중의 편'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였다. 또한 1987년 5월1일 통일민주당 창당식에서 총재취임 연설을 통해 '광주민중항쟁'을 언급하며 그 정당성을 강조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3월 26일 YWCA 초청연설 '민족혼과 더불어'에서 "민족혼은 민족의 실체인 민중의 소리다"라고 규정한 후 "동학혁명은 민중의 직접 통치, 반제국주의, 반외세, 그리고 근대화와 민주주의의 문을 열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3·1절 기념식 연설문에서 "3·1운동은 민중이 자발적으로 궐기한 민중의 운동"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1월 9일 동학농민혁명 기념대회 축하메시지에서 "동학농민혁명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민중들이 일어선 위대한 궐기이며, 세계 민중운동사에 유례가 없는 반봉건, 반제국주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창당한 민주정의당은 1980년 12월 2일 발기인선언문에서 "우리는 국민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며 민중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민중의 편에서 쉬지 않고 나아갈 것"고 선언하였다. 국민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확산시키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조차 1970년 10월 21일 경찰의 날 연설에서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라고 치하했으며, 파출소나 경찰서 정문에 '민중의 지팡이'라는 현판을 걸도록 하였다.

국가를 전제로 하는 국민은 논리상 자연권주체나 국가창설자 될 수 없어

국가나 민족 등 총칭을 의미하는 추상적인 국민(nation)과 자연인을 의미하는 인민(people)의 차이는 영어 표현에서 쉽게 확인된다. 기본권의 주체에서 말하는 국민은 남녀노소의 사람들 즉 'people'이다. 국민(nation)은 집단을 의미하고 개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권의 주체로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사회계약설에 의하면 사람들은 국가 성립 이전에 천부인권을 지니고 있다. 국가는 이러한 천부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람들의 집단계약으로 탄생하였다. 따라서 국가권력, 즉 주권의 근원은 바로 이 사람들이다. 그런데 국민주권이라고 하면 국가의 주권은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있다는 순환논리가 되고, 마치 국가가 먼저 있고, 그에 따라 국민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 논리대로 하면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사람들의 천부인권이 애매모호해진다. 실제로 독일의 나치, 일본의 군국주의, 박정희의 유신정권에서 국익이라는 명목으로 천부인권이 무시되었다. 그래서 유진오 박사와 같은 보수적인 학자들조차 국민이라는 말보다 인민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링컨의 게츠버그의 연설문은 보통 "인민(people)에 의한 인민(people)을 위한 인민(people)의 정부"로 표현하지 이를 국민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 문제는 'people'을 한자어 혹은 한글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이다. 국민, 인민, 민중과 같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각각의 단어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유진오 박사는 제헌헌법 초안에 '국민'이 아닌 '인민'을 제안

유진오 박사가 마련한 제헌헌법초안에는 인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인민은 국민으로 수정되었다. 유진오 박사는 이를 두고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을 뜻하여 국가라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 사람을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못하다"라고 지적하며 인민이라는 단어가 공산주의적 색채로 인식되어 쓰이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였다

인민주권론(popular sovereignty)에 따르면 모든 국민이 아니라 국민 중에서 성인으로 구성된 유권자 총집단을 의미한다. 유권자 총집단은 최고의 국가권력기관이고 개개인은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국가의사를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즉 유권자는 주권의 주체이자 주권의 행사자인 셈이다.

반면 근대초기의 국민주권론(national sovereignty)에 따르면 주권은 분할될 수 없는 관념적인 국민전체(nation)에 속한다. 이러한 형식적 국민주권론에 따르면 구체적인 주권의 행사는 주로 대의기관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개의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실질적인 주권자로서 지위가 유명무실해진다.

오늘날의 국민주권은 형식적 국민주권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반영한 실질적 국민주권이다. 추상적인 국민(nation)이 개개의 국민, 즉 사람들을 뜻하는 'people'의 의미로 발전해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나 지방자치 차원에서 국민소환, 국민투표, 국민발의 등 직접민주주의와 같이 국민 개개인이 구체적인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보완을 하고 있다.

이념대립 이전까지는 '인민'을 '국민'보다 보편적으로 사용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청구한 가운데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주주의와 통합진보당을 지키기 위한 '72시간 릴레이 108배 철야정진'에 참여하고 있다.
▲ "진보당을 지켜주세요" 이정희 대표 108배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청구한 가운데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주주의와 통합진보당을 지키기 위한 '72시간 릴레이 108배 철야정진'에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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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원학회에 따르면 국민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 <좌씨전>이라는 책에 처음 나오는 말로 "나라의 통치권 아래에 있는 인민"이라는 뜻이다. 박명규 교수가 쓴 <국민 인민 시민: 개념사로 본 한국의 정치주체>라는 책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인민은 2504회, 백성은 1718회, 시민은 395회, 국민은 163회가 나온다. 중국의 역사책인 이십오사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는 304회 나오고, 국민은 13회 나온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1941년 임시정부 강령과 한국광복군의 강령 등 해방 전후의 문서는 주로 '인민'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남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눠지고 이념대립이 격화됨에 따라 인민이라는 단어는 점차 사회주의권의 단어로 인식되었다. 특히 중국의 국호가 중화인민공화국이고, 북의 국호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일부 사회주의 이론은 인민과 국민을 구별하기도 한다. 주은래에 따르면 사회주의혁명 직후 인민민주주의 단계에서는 자본가계급과 지주계급이 잔존하고 있는데, 이들은 인민민주주의 체제에 복종해야 하는 국민이지만, 정치적 기본권을 가지는 인민은 아니다. 즉 의무만 있고 참정권과 일부 기본권을 제한당한다. 물론 사회주의 단계에서는 자본가와 지주가 없어지고 모든 국민이 노동자, 농민 등 근로인민이기 때문에 참정권과 기본권을 제한당하는 특정한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민'과 '국민'의 의미상 한계 때문에 '민중'을 사용

전직 대통령들은 국민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왜 민중이라는 단어를 굳이 썼을까? 민중은 원래 '인민대중'의 약자였으나, 인민이 갖고 있는 공산주의적 뉘앙스나 국민이 갖고 있는 국가주의적 뉘앙스로 인해 이 두 단어를 피하고자 하는 의도로 자주 쓰였다.

더구나 민중이라는 단어는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 농민 등 서민을 지칭하는 말이라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통상적으로 쓰는 민중약국, 민중서관, 민중의 지팡이 등이 이런 의미이다. 또한 1980년 민주화운동시기 이후 민주인사들에 의해 역사의 소극적인 주체가 아니라 적극적인 주체로서 대중의 의미로 애용되었다.

민중이 기본권 주체로서 지위 강화, 역동적인 저항성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독재정권에 맞서는 민주진영에서 민중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승만 정권 후반기에 조봉암 선생과 진보당이 민중이라는 단어를 강령에 사용하였고,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은 박정희 시대에 민중이라는 단어를 저항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였다.

민중주권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사회주의로 인식될 수 있는 인민주권과 형식적인 국민주권의 한계를 극복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진보당 역시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박정희, 저항의식을 마비시키고자 국가주의적인 '국민'을 남용

독재로 치달았던 말년의 이승만 대통령이나, 군사쿠데타와 독재로 일관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민중이란 단어를 싫어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특히 박정희 정부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확산시켰고, 민중은 반정부인사들의 단어로 취급되었다. 문제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역사적으로 독일이나 일본의 전체주의가 국가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독일의 나치정부는 Folks Schule(폴크스 슐레, 국민학교)를 만들어 전체주의 독재와 독일 국수주의를 정당화하는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하였다. 일제가 명치 시대에 "국권에 복종하는 지위를 국민이라 하고, 국정에 참여하는 지위를 공민 또는 시민이라고 하였다.

일제는 황국신민의 약자로서 국민을 선호하였다. 1941년 일제가 전시총동원령을 내린 후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바꿨다. 1943년 일제의 조선교육령 개정에 의해 국민과 역사라는 과목이 생겼다. 일본은 1947년 다시 소학교로 되돌렸으나 1995년 일제의 잔재 청산을 위해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개명하였다.

1968년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1890년에 선포된 일본의 교육칙어와 비슷하다. 유신정권 직후 국민의례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일제 강점기 때 황국신민의 맹세와 비슷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71년 박정희 정부는 국민윤리를 대학에까지 필수교양과목으로 설정하여 획일적인 국가주의적 교육내용을 강요하였다. 이 또한 일제의 국민과 역사라는 과목의 강제설정에서 본 따 온 것이다. 국민을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국가차원의 국민계몽운동도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민중주권은 국민의 다수인 서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

실질적 국민주권의 개념이 발전하면서 민중주권은 실질적 국민주권과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진보당의 민중주권과 오늘날 실질적 국민주권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즉 추상적인 국민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개 국민을 주권자로 본다. 그런데 개개 국민의 다수는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 일하는 사람들, 즉 서민들이다. 민주주의 원리인 다수결 제도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정치는 국민의 다수인 서민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제도는 국민의 다수인 일하는 사람들, 서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민중주권은 잘못된 정치제도를 바꿔 국민 다수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정치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득표율이 의석점유율과 불일치하는 소선거구제를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바꾸고, 엘리트 중심의 정당을 진성당원이 중심이 되는 민주적인 대중정당으로 전환하고,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여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소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진보당이 당헌에서 "모든 국민이 참여하고 주인 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선언하듯이 진보적 민주주의와 민중주권은 특정 계층의 주권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진보당은 강령에서 "행정부가 입법부와 사법부를 능가하는 왜곡된 3분권립이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가 행정부와 동등해지는 진정한 3권분립"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주의 국가가 내세우고 있는 인민주권과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우리 헌법에도 반하지 않는다.


태그:#진보당, #정당해산, #민중주권, #진보적 민주주의,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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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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