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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벌이면 어느 쪽이 이길 것으로 보느냐?"(김민기 민주당 의원)
"한미동맹이 싸우면 우리가 월등히 이기지만 미군을 제외하고 남북한이 1대1로 붙으면 우리가 진다."(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

지난 5일 열린 국방정보본부 국정감사에서 나온 발언이다. 누리꾼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진다는 말부터 하는 군인에게 과연 우리가 세금을 내야 되나", "북한의 44배에 달하는 국방비를 쓰고도 진다고 하니 그동안 어떻게 군을 운영했는지 조사해야 한다"며 분노했다. 이러한 파문을 의식했는지 김관진 국방장관은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질의에 출석해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의 "우리가 단독으로 전쟁하면 북한을 충분히 응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전쟁을 하면 북한은 결국 멸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작권 없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대한민국 보수세력

조보근 정보본부장 말이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지만, 어쩌면 맞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보수 세력은 아직도 대한민국 군대가 전시작전 통제권을 갖는 것을 마다한다. 전작권 환수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2012년 4월 17일부로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를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를 연기 해준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도 2년 앞으로 다가온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려는 분위기다.

외교부 이원우 국장(2급)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전작권 환수를 두고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하여 결국 북한이 다시 남침하여 적화통일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 정지작업"이라고도 했다(참고 2013년 9월 8일자 <한겨레> '외교부 국장이 "전작권 환수는 적화통일 사전 작업" 주장'). 참 어처구니가 없다. 보수 정권 중 전작권을 거부하는 나라는 아마 대한민국 보수세력 밖에 없을 것이다.

전작권 환수를 추진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강연에서 "한국군이 작전 통제권이 있을 때 북한과 우리가 대화하는 관계, 중국과 우리가 외교상 대화할 때, 동북아시아 안보문제를 놓고 대화를 할 때, 그래도 한국이 말발이 좀 있지 않겠느냐"며 "작전 통제권도 없는 사람이, 민간 시설에 폭격을 할 건지 말 건지 그것도 맘대로 결정을 못하고 어느 시설에 폭격을 할 건지 그것도 자기 맘대로 결정을 못하는 사람이 그 판에 가서 중국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북한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외교상의 실리에 매우 중요한 문제 아니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 발언은 자기 나라는 자기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단순히 군사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고 통수권자와 지배 세력이 고도의 외교 역량을 가질 때 가능하다. 우리 역사에서 최고 통치권자가 주변국의 변화를 읽지 못하다가 외적 침략으로 처참한 패배와 피해를 경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조선 선조는 일본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정확하게 보지 못했고, 광해군을 무너뜨리고 반정한 인조 역시 명나라는 '지는 해'이고, 청나라는 '뜨는 해'임을 알지 못했다.

만약 광해군이 조선을 계속 통치했다면

최고 통치권자는 역사를 읽는 눈과 정세를 읽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만약 광해군이 조선을 계속 통치했다면,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인조는 지는 해, 아니 이미 진 해(이미 망한)인 명나라를 숭배하는 친명사대주의자였다. 2013년 한반도 주변 정세 역시, 병자호란 당시 조선과 별 다르지 않다. 미국과 중국은 'G2'로 불리고, 일본은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전력하고 있다. 2013년 최고 통치권자와 집권 세력은 1636년 조선 인조와 집권 세력처럼 시대를 읽는 눈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기존의 제국'이 쇠퇴하고 '새로운 제국'이 떠오르는 전환기마다 한반도는 늘 위기를 맞았다. 'G2(주요 2개국) 시대'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병자호란 무렵처럼 국제질서의 판이 바뀌던 시기 우리 선조들이 보였던 대응의 실상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강대국들의 파워 게임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나아가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성찰하기 위해서 말이다."(9쪽)

한명기 명지대 교수(사학과)가 <역사평설 병자호란 1,2권(푸른역사 펴냄) 서문에 적은 글이다. 국제질서의 판이 바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할 때다. 친명사대주의에 빠져 '오랑캐 추장'에게 무릎 꿇은 인조 같은 지도자, 수많은 백성을 죽음에 이르게 한 당시 지배 세력 같은 기득권 세력에게 나라를 맡기는 비극은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평설 병자호란>
 <역사평설 병자호란>
ⓒ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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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읽지 못한 친명사대주의자들은 수 만 백성을 포로로 잡혀가게 했고, 잡혀 죽게 했으며, 굶어 죽게 했다. <병자호란>은 독자에게 "병자호란은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현실'일 수 있으며, 결코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반추해야 할 'G2시대의 비망록'"임을 보여준다.

인조는 광해군이 지배한 조선을 "'금수의 땅'"이라며 반정을 일으켰다. 반정에서 성공하자 "다시 사람의 세상의 되었다"고 말했다. 조선이 금수의 땅인 된 것은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한 것이다. 특히 "부모와 같은 중국 조정을 배신하고, 후금과 화친한 것" 따위였다. 당연히 '숭명배금'(崇明排金)" 정책으로 이어진다.

인목대비 명의로 올린 주문이 명나라 <희종실록> 1623년 4월 29일자에는 "'우리 선왕들은 천조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해 감히 태만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광해군은 배은망덕하여 천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서 "광해군은 도의를 잃고 패덕하여 나라와 백성을 맡길 수 없었다"고 했다. 즉 인조정권은 명에 충성하고, 후금(청나라)과 싸우겠다고 아뢴 것이다.

명을 높이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명이 강성할 때지,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는 나라이면 달라야 한다.

"서로 싸우던 강국 사이에 끼인 채  자위 능력마저 없던 조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정과 외교 양면에서 극히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했어야 했다. 하지만 인조 정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집권 직후에는 논공행상의 난맥상에서 비롯된 이괄의 난 때문에, 반란 진압 뒤에는 오로지 '정권 보위'에 급급하다가 정묘호란을 만났다."(7쪽)

정묘호란으로 형제의 나라가 되었지만, 인조는 '왕권 보위'에만 집중하고 준비하지 않았다. 결과는 비참했다. 인조가 이러니 집권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청 태종 즉위식에 참석한 이확과 나덕헌은 "오랑캐가 황제를 참칭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가 죽도록 맞았다. 명분도 실력이 있을 때 세울 수 있다. 실력 없는 약소국이 명분만 앞세다 비극을 맞은 것이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직전 조선 모습, 377년 지난 지금과 비슷

인조는 병자호란 직전 '오랑캐와 일전을 불사하자'는 명분론자들 손을 들어준다. 반정공신들 사병이나 다름없는 정예병을 원수에게 배속시키고, 압록강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부제학 정온의 직언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 전쟁 직전 "점심은 평양, 저녁은 압록강"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이승만이 전쟁이 발발하자, 시민들 몰래 한강다라를 폭파하고 도망간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최명길이 '주화론(主和論)'을 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명길은 무조건 주화론을 주장하지 않았다. 척화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명길의 주장은, 척화하여 청과 싸우겠다는 결심을 굳혔으면, '공세적'으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말로만 '척화'를 외치며 미적거릴 경우, 청군의 철기를 조선 영토 깊숙이 불러들이게 되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 것을 우려한 계책이었다."(2권 67쪽)

하지만 인조는 입을 다물고 답하지 않았다. 정예병 육성과 압록강 방어선 구축을 주장했던 정온도 "조선의 사수(射手)와 화포병(火砲兵)을 천하무적이라고 평가하고 그들을 활용하면 후금군 기병의 돌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 있었지만, 막상 청군이 앞에 도달하자 "지레 겁을 먹고 '천하무적'인 궁수와 포수들을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했다.

병자호란 직전 조선 모습이, 377년이 지난 지금과 비슷하다. 국방비 40배 이상을 쓰면서도 아직도 북한과 싸우면 진다는 주장까지 한다. 자기 나라를 스스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 자칭 애국세력이다.

한명기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을 '복배수적(腹背受敵)'이라 했다"면서 "'배(腹)와 등(背) 양쪽에서 적이 몰려오는 형국'이란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면의 중국 대륙과 배후의 일본 열도 사이에 '끼인 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반도가 '끼인 자'다. 아니 '미일중러'가 둘러싸여있다. 그래도 조선 인조 정권은 한반도 전체가 한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두 동강 났다. 병자호란때보다 내부와 외부 모두 열악하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희망이 있다. 병자호란을 직접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는 말로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변 정세를 읽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한명기는 절박한 마음으로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활로를 찾으려 애쓰되 우리의 자체 역량을 키워야 한다"면서 "경제적 실력, 군사적 역량, 문화적 매력 등에서 주변 열강이 무시할 수 없는 '근사한 민주국가'가 되도록 노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맹자>에 보면 '7년 된 병에 3년 된 쑥을 구한다(七年之病  求三年之艾)'는 이야기가 있다. 한 달 묵은 쑥조차 없어 당장 죽어 가는 환자의 절박한 처지에서 보면 '3년 묵은 쑥'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쑥을 뜯어 놓아야만 그것이 '한 달 묵은 쑥', '1년 묵은 쑥', 그리고 '3년 묵은 쑥'이 될 수 있다. 비록 우리 세대는 그것을 먹지 못하고 죽더라도 후손들을 위해 '쑥을 뜯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2권 367쪽)

덧붙이는 글 | ,역사평설-병자호란 1,2> 한명기 지음 ㅣ 푸른역사 펴냄 ㅣ 각 15900원



[세트] 병자호란 1~2 세트 - 전2권 - 역사평설

한명기 지음, 푸른역사(2013)


태그:#병자호란, #한명기, #한반도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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