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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는 쌍생아와 같다고 분석한 바 있다. 보통 홀로코스트는 문명화와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현대성에 대한 반동으로 일시적으로 일어난 한 사건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바우만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같은 저작에서 홀로코스트는 '현대성의 시금석'으로서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위계질서가 잘 갖추어진 관료제 방식으로 착착 진행되었다고 분석한다.

이 분석의 핵심은 비이성적이고 광기어린 것으로 평가되는 나치즘과 홀로코스트가 실은 대단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논리가 뒷받침되어 당시 피해자들도 합리적 의심 없이 이에 협력하기도 했다는 데 있다. 나치 독일 당시에 통계수치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인종주의를 정당화하고 잔학행위가 이상할 것 없는 행위로 인식되어 행해졌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안네 프랑크와 같이 골방에만 숨은 게 아니라 나치의 잔학행위에 윤리적 동요 없이 휩쓸리기도 하고 전독일도 마찬가지로 이성적 판단의 미명 아래 동조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정치선동이 더해졌을 때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음을 바우만은 경고한다. 현대성이라는 것이 우리가 믿는 것처럼 결코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향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합리성과 이성으로 포장한 비합리와 비이성의 안보교육

현대 대한민국도 이 분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수십 년 세월동안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나 싶었는데 반동의 질서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6·15와 10·4선언으로 남북관계의 평화적 발전과 한반도 냉전질서 해체의 큰 그림을 다 그렸다 싶었는데 그림판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비군 안보특강 현장 모습
 예비군 안보특강 현장 모습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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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군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훈처까지 나서서 안보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해 전국의 청소년과 예비군들에게 냉전의식과 왜곡된 정보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교육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북교류와 협력은 친북이나 종북으로 다 몰아세우고, 굶어 죽으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하는 북한은 그냥 무너뜨려 삼켜야 할 대상이지 상대도 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그럴싸한 통계와 자료를 근거로 청소년과 예비군을 상대로 확산을 시도해온 것이다.

예비역 장성과 원로 안보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객관적인 수치와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의 현실을 비판하고 통일한국의 장밋빛 미래를 역설하면 그 누구도 비판하거나 거부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맞다. 3대 세습왕조나 다름없는 실패국가 북한의 현실은 비판하고 극복되어야 하며 통일한국은 세계사에 우뚝 서는 신흥강국이 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논리이고 우리가 진취적으로 성취해 나가야할 미래다.

하지만 그 미래를 위해서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오늘날 안보교육은 아쉽게도 과거 지향적이고 텅 빈 소리를 하고 있다. 필자가 예비군 안보교육에 참석한 경험은 물론이고 최근에 들춰본 '나라사랑교육자료 PPT'라는 문서정보가 붙은 정부의 안보교육 기본자료를 근거로 봤을 때 안보교육이 오히려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고 미래로 나아가는 발목을 잡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정부 안보교육의 기본자료는 버전이 여러 가지이다. 그리고 전국 예비군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안보강사도 여럿이다. 그 자료와 강사 모두가 문제가 있다고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검토한 정부의 안보교육 기본지침으로 추정되는 자료는 정치적 편향성 면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

정치 편향적인 안보교육 지침?

국가기관의 교육 자료에서 정치적 논쟁의 여지가 있는 야권 정치인의 발언을 여과 없이 실명비판하거나 1998년부터 2007년까지의 특정 정부(김대중·노무현정부)시기의 통계자료만을 비판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적절하지 않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퍼주기'가 '실탄'이 되어 돌아왔다는 논조가 안보교육 기본자료의 주요 기조 중 하나이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하며 북한의 군비지출이 1999년 21억 달러(2조 원)에서 2005년 60억 달러(6조 원)에 달했다고 하면서 남북교역액과 대북송금액이 군비로 연결된 것인 양 논리를 편다. 하지만 이 시기 한국의 군비지출이 약 13조 원(1999년)에서 약 21조 원(2005년)으로 증가하고 노무현 정부 국방예산 증가율이 평균 8.8%인데 비해 MB 정부 국방예산 증가율이 5.3%에 그친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안보교육이라면 우리가 군비지출이 북한에 비해 월등히 높고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굳건한 대북 억제력으로 유사시 한반도 전구(theater)에서 승리하도록 노력하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국가기관 안보교육이 특정 정권 시기를 비판하는데 상당 부분 할애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MB 정부 시기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천안한 폭침과 연평도 도발이 일어났다'는 사회 일각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MB 정부 시절 4년 시점까지의 남북교역액이 약 71억 달러에 달해 김대중 정부 시기의 20억 달러, 노무현 정부 시기의 56억 달러보다 오히려 많다는 주장을 일부러 삽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많이 거래하고 퍼주면서도 천안함과 연평도로 얻어맞았느냐고 말이다.

또 MB 정부 남북교역액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정착된 개성공단 효과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남북교류의 개척기와 조성기에 해당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안보교육을 하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편향성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안보교육 자료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대해서는 남북교류협력과 이에 따른 대북송금 등을 '주었다', '썼다' 등 '퍼주는' 행위의 의미를 담은 술어로 서술하는 반면 MB 정부 시기에 대해서는 남북교역액만을 언급해 주고받기 식의 교류협력만 있었던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안보교육 자료에서 '주었다', '썼다'고 '퍼주기'한 것처럼 묘사한 금강산관광 대금 등 대북송금액이 김대중정부 시절 13억4500만 달러, 노무현정부 시절 14억천만 달러였던 반면 MB 정부 시절 2010년 6월 현재 이미 7억6500만달러를 송금하여 MB 정부가 임기 절반 정도의 시기에 이미 앞선 두 정부를 초과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런 의도적 누락과 외면은 스스로 정치적 편향성이 있음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역효과만 불러일으키는 안보교육은 실패작

이밖에 정부의 안보교육 자료는 '화해·협력=친북·종북',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철수','민족주의··복지·분배·평등·상생·균형=북한식 칸막이 저주', '6·15/10·4선언 지지=북한지원 및 연방제 통일지지'라는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 등식 하에 논리를 전개하기도 한다.

강의 전반부에서는 북한을 무능력한 실패국가로 규정해 놓고는 후반부에서는 북한이 대남적화공세를 펴면 한국이 적화통일되고 말 것이라는 모순적이고 상당히 자기비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기관의 안보교육이 국민 자긍심을 고취하기는커녕 불안과 공포만 조장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대국민 안보교육 자료라고 믿을 수 없으며 이념 편향적 시민단체의 내부 교육자료 정도로밖에 볼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자료의 논지와 내용이 수십 만 청소년과 예비군에게 교육되고 있다. 그것도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포장되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런 편향된 주장을 하는 정치세력에게 국민들 과반수는 동조하고 이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없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자료와 통계를 들이대며 예비역 장성과 원로 안보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데 누가 쉽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한 합리성과 이성에 근거하여 벌어지는 광기와 비이성이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면 너무 예민한 과대망상일까? 하지만 희망은 있다. 전국의 청소년들이나 예비군들이 작금의 안보교육을 안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비군 훈련 기간 중이나 학교특강 과목으로 안보교육 시간이 되면 피교육자들은 일단 잘 준비를 한다. 맨날 들으나마나한 소리 들을 필요가 없다는 태도이다.

예민한 신경증 환자 같은 필자나 눈뜨고 귀 열고 끝까지 안보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지금 이 같은 비판적 리뷰를 남긴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지금의 안보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하여 안보교육 수업종을 울리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글을 쓴 정대진님은 팟캐스트 '남북상열지사' 진행자이며 코리아연구원 협동연구원·북한통일학대학원연구협의회 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태그:#안보교육, #홀로코스트, #예비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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