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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자치단체장들은 정당인, 행정관료, 사업가,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차성수(57) 금천구청장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이라는 점에서 매우 드문 사례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시민사회 비서관을 거쳐, 2007년 7월부터 노 전 대통령 퇴임 때까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며 국정을 논하던 그가 보는 서울시, 그리고 서울 25개 자치구 중 면적, 인구수 등에서 작은 규모인 금천구의 현재와 미래는 어떨까.  

자기 공간 줄여 회의실로 개방하다

차성수 서울 금천구청장.
 차성수 서울 금천구청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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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금천구청에서 그를 만났다. 책상과 책장, 원형 테이블, 의자가 놓인 것은 다른 구청장들 방과 같았지만, 다른 곳과 달리 턱없이 좁았다. 원래 접견실 자리를 청장실로 쓰고, 청장집무실은 회의실로 만들어 주민과 구청직원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청장실 개방은 그의 구정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그는 지난 3년 4개월 동안 가장 큰 변화로 주민 자치 역량이 커졌다는 점을 꼽았다. 그랜드마크 조성, 지역 개발이 아닌 자치 역량 증진이라는 답이었다. 때려 부수고 짓는 개발 패러다임을 지양했다는 것이다. 그 노력을 보여주는 게 청장실 개방이 아닐까? 행정에 대한 주민 불신을 줄이고 주민이 구청도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는 주민 참여의 변화된 모습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한 중학교 이전 문제가 걸려 있었다. 그건 구청장 권한 밖의 일이어서 학부모들에게 '구청장은 여기까지 밖에 안 됩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주민들이 대책위 만들어서 교육청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했다."

주민 참여 핵심 중 하나가 마을공동체다. 금천구는 지난 4월 서울에서 두 번째로 마을만들기 지원센터를 열었다. 암탉이 우는 마을, 새재미 마을, 박미사랑 마을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인 그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연구했었다. 이제는 사업을 집행하는 구청장이 됐다. 그는 마을공동체가 한계 용량에 도달한 서울 시민들의 개발 욕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계 용량에 도달한 서울시가 대규모 개발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작은 단위의 마을 개발이 필요하다. 남문시장, 새재미마을, 암탉이 우는 마을 등에서 주민 역량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시대적 분기점에 왔다고 보았다. 시민들도 부동산 경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시민들의 기대가 마을이라는 공간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서울의 새로운 균형추, 서남권 개발에 있다"

그의 머리 속에는 경부선 지하화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금천구를 동서로 가르는 경부선은 골칫덩이다. 인적, 물적 교류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시흥초등학교와 영등포중학교를 졸업한 금천의 토박이로서도 시급한 현안이다.

차 청장은 경부선 지하화는 서울의 도시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하화를 통해 새로운 녹지와 문화·예술 공간으로 개발하면 강남 중심의 1극 체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은 강남 중심의 1극 도시다. 해외에서 사람들이 와도 다 강남으로 간다. 실제로 공항과 철도는 서남권이 가장 가깝다. 강남 중심 개발이 서울의 균형 발전을 망치고 있다. 지하화로 남은 자리에 녹지와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자. 서울의 새로운 균형추, 서남권 개발에 있다."

1극 체제는 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2년 수능 성적 결과, 강남·서초·송파·노원·양천구가 상위 1, 2등급의 59%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20개구가 41%를 차지하는 심각한 교육 격차를 보였다. 금천도 교육 환경이 열악했다.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가  1년에 서울대학교를 보내는 숫자가 금천구 전체보다 많았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식이면 '다른 구에서는 살지 마, 이사 가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만큼 서울시 교육 편중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안 나설 수 없었다. 취임한 뒤로 수능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2010년과 2013년을 비교할 때, 1, 2등급 학생수 증가율이 높은 곳 1위가 강남구, 다음으로 금천구가 2위였다."

그는 입시전문업체 하늘교육이 2010학년도와 2013학년도 수능성적을 비교한 자료를 인용하기도 했다. 강남지역 중심의 교육 양극화 심화속에서도, 최상위권(1·2등급) 비율 증가 순위에서 금천구가 0.56%포인트 상승해 1위를 차지한 강남구(0.59%포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금천구는 최하위권 감소율에서는 1.16%포인트를 기록해 강남구(0.71%포인트 하락)를 제치고 1위였다. 한 일간지는 이를 "2010년부터 교육사업에 집중 투자한 금천구의 노력이 한몫했다"며 <'만년 수능 꼴찌' 금천구의 반란>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음은 차성수 금천구청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내가 사는 동네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과 신뢰가 싹텄다. 적어도 정치인에 대한 불신, 행정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과 신뢰가 싹텄다. 적어도 정치인에 대한 불신, 행정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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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선 5기 금천구청장으로 취임한 지 3년 4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금천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주민 자치의 역량이 커졌다. 옛날에는 행정이 주민을 동원하기도 했다. 1987년 이후에 지방자치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이래저래 민관의 접점이 만들어지긴 했다. 하지만 기획에서 평가까지 주민들이 다 같이 하지 않았다. 집행 과정에 주민이 낀 정도였다. 이제는 달라졌다. 예를 들어 한 중학교 이전 문제가 걸려 있었다. 구청장 권한 밖의 일이었다. 학부모들에게 '구청장은 여기까지 밖에 안 됩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주민들이 나서서 대책위 만들고 교육청에 직접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동네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과 신뢰가 싹텄다. 적어도 정치인에 대한 불신, 행정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있다. 예전에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애들한테 아무 말이라도 해봐라고 하면 '우리 동네 열악하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이제는 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 청장 머리를 무겁게 하는 지역 현안이 있다면?
"경부선 지하화는 길게 내다보고 있다. 지하화는 서울 전체의 문제와 연결된다. 서울은 강남 중심의 1극 도시다. 해외에서 사람들이 와도 다 강남으로 간다. 공항과 철도는 서남권이 가장 가깝다. 강남 중심 개발이 서울의 균형 발전을 망치고 있다. 지하화로 남은 자리에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자. 서울의 새로운 균형추, 서남권 개발에 있다. 정부가 6조 5천억 원만 투입하면 서울시의 지도 자체가 달라진다.

서울의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녹지 부족이다. 경부선 지하화로 철로 위에 공원을 조성하면 서울을 관통하는 '녹지벨트'가 생긴다. 서울에는 지하철 9개를 뚫어놓고 지하화만 환경 때문에 못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외에도 신안산선의 조기 개통도 중요하다."

- 다른 구청장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교육의 목표는 학생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학교가 못하면 구청이라도 해야한다. 그래서 금천구는 '마을이 학교다' 프로그램 600여 개를 했다. 그렇지만 강남의 1개 고등학교가 서울대학교 보내는 숫자가 금천구 전체 고등학교보다 많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은 자존심 문제다. 그렇다고 특목고가 온다고 답이 되는 게 아니다.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게 교육을 살리는 길이다.

25개 자치구의 지난 3년 동안 수능성적 비교해보자. 상위 성적 1, 2등급이 지난 3년동안 증가한 구는 5개구 밖에 없다. 2010년 수능 결과 강남·서초·송파·노원·양천구가 상위 1, 2등급의 56%를 차지했다. 2012년에는 5개구가 59%였다. 이런 식이면 '다른 구에서는 살지마, 이사 가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만큼 서울시 교육 편중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안 나설 수 없었다. 취임한 뒤로 수능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2010년과 2013년을 비교할 때, 1, 2등급 학생수 증가율이 높은 곳 1위가 강남구, 그 다음이 금천구다."

"마을 씨앗, 한 세대를 이어서도 자랄 수 있다"

지난 1일 차성수 금천구청장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모습. 금천구는 '세계 차 없는 날'을 맞이해 지난 6일까지 전직원을 대상으로 '녹색교통 실천운동'을 전개했다.
 지난 1일 차성수 금천구청장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모습. 금천구는 '세계 차 없는 날'을 맞이해 지난 6일까지 전직원을 대상으로 '녹색교통 실천운동'을 전개했다.
ⓒ 금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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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 금천구청 앞 옛 대한전선 이전부지에 마련된 주말농장에서 '금천한내텃밭' 개장식이 열렸다.
 지난 4월 서울 금천구청 앞 옛 대한전선 이전부지에 마련된 주말농장에서 '금천한내텃밭' 개장식이 열렸다.
ⓒ 금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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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교수로서 부산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했었다. 구청장으로 직접 해보니까 어떤가?
"희망이 충분히 보인다.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구청이 마을리더, '퍼실리테이터(조력자)' 교육을 진행하면서 마을의 새로운 일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자원봉사로 유지되던 마을이 교육이면 교육, 복지면 복지, 문화면 문화의 역량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의 핵심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을 찾아내고 그들의 능력을 네트워크로 조직하면서 희망을 만들고 있다."

- 성북구는 사회적 경제와 마을공동체 사업을 결합하더라. 금천구만의 마을공동체 사업의 특징이 있다면?
"금천구에는 다문화 가정이 많다. 그래서 다문화 주부들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시켜 카페 개업을 돕고 있다. 또 20~30대 젊은 친구들이 6천만 원을 모아서 만든 '오렌지드림스'라는 마을기업을 만들어 청소년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오렌지드림스'의 멤버 한 명이 내가 대학생 때 다녔던 헌책방, '씨앗글방'의 아들이더라. 씨앗글방은 당시 동네의 사랑방이었다. 이걸 보면서 마을 씨앗이 뿌려지면 한 세대를 거쳐서도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금천에 자랑할 만한 마을공동체를 소개해달라.
"시흥 5동에 암탉광장이 있다. 뉴타운 개발 구역이지만 개발이 지지부진했다. 두 사람 지나가기 힘든 골목에 할머니들이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채소를 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 암탉이 우는 마을이 시작했다가 옆골목으로 확장됐다. 인근 동일여고 미술반 학생들이 벽화도 그려줬다. 마을이 커져 대로변으로 나오고 골목이 2~3개 늘어나면서 암탉광장이 됐다.

시흥 4동에 새재미 마을도 있다. 서울시가 에너지 자립마을로 선정된 곳이다. 12가구가 태양광을 설치해 월 7~10만 원 나오던 전기료를 만 5000원으로 줄였다."

- 최근에 만난 한 자치단체장은 마을만들기 사업이 표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하더라. 눈에 띄는 효과도 나타나야 할 것 같다.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대규모의 개발 계획은 일부 필요하다. 우리 구청사 부지 앞뒤로 3만평이 7년째 묶여 있었다. 하지만 올해 11월부터는 아파트 분양이 시작되고 큰 공원이 들어선다. 과거 개발은 강남이나 종로 등 도심 중심이었지만 금천구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문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계 용량에 도달한 서울시, 대규모 개발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이제는 작은 단위의 마을 개발이 필요하다. 남문시장, 새재미마을, 암탉이 우는 마을 등에서 주민 역량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시대적 분기점에 왔다고 보았다. 시민들도 부동산 경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시민들의 기대가 마을이라는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다.

물론 시민들은 개발에 대한 욕구와 마을공동체 같은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 욕구가 맞서 있다. 아직도 개발을 통해서 부동산 이익을 보고 싶은 기대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기대감이 꺾이면서 새로운 공동체로 마을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선거가 다가오면 이 두 기대감이 팽팽하게 맞설 것이다."

회의록 실종 논란에 "마음이 무겁다...삭제 지시 없었을 것"

집무실 책장에 있는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의 사진을 보는 차성수 구청장.
 집무실 책장에 있는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의 사진을 보는 차성수 구청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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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청장은 당시 시민사회수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행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민주당 대응을 포함해 어떻게 보고 있나.
"정말 괴롭고 마음이 무겁다. 비밀기록물로 지정해 다음 대통령에게 안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다음 대통령이 참고하라고 국정원에 넘길 것인지는 노 전 대통령 결단의 문제였다. 차기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할지 모르니까 (회의록) 줘야한다는 마음이 노 전 대통령에 왜 없었겠나.

정상회담 전 회의를 할 때는 선물 하나라도 투명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지시사항이었다. 노 전 대통령 스타일로 봤을 때 비밀로 삭제하거나 없애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회의록 논란이 벌어졌을 때) 초기에 다 불러 모아서 대응을 잘했어야 했다. 초기 대응에 미숙한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 지방 선거가 약 8개월 남았다. '안철수 신당'이 금천에도 후보를 낼 수도 있는데, 내년 선거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금천구는 안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리당략적으로 생각하면 후보를 내는 게 맞다. 하지만 새 정치를 하려면 내가 어떤 구정을 하는지, 이 사람하고 같이 가면 좋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한 정당에 모일 수는 없어도 같은 편이 될 수 있다."

- 내년 지방 선거를 전망 한다면?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수도권에는 어쨌든 문재인 의원을 찍은 표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70%까지 올라갔다 50%로 떨어졌다. 정치에서 지지율은 허망한 것이다. 그 파도는 누구도 예측 못한다. 2010년 선거에서 저희가 지방선거를 휩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선거 6개월 남겨놓고 출마 선언했는데 그때는 민주당이 서울 자치구에서 5개 이긴다고 했다. 실제는 21개구에서 이겼다. 국민 눈높이에서 정치를 해나가면 선택될 수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국민과 금천구민 여러분이 정치에 대한 희망, 행정에 대한 신뢰를 쌓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 주민들이 4년에 한 번 치르는 선거로 끝내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 우리가 어려운 것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서가 아니다. 절망하고 낙담해서다. 희망이 있고 희망을 함께 만들어갈 신뢰할 만한 사람 있으면 우리 사회는 밝아 질 것이다."


태그:#차성수 금천구청장, #마을공동체, #경부선 지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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