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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개월 동안 남편(미국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 가트에서 낮잠 자는 개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 가트에서 낮잠 자는 개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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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는 가트(ghat)라 불리는, 성스러운 갠지스 강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상징된다. 수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진 100여 개의 가트를 따라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면, 이내 갠지스 강의 풍경, 바라나시의 공기가 내 세계를 가득 채운다.

그 풍경 속에는, 주황색 꽃이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꽃을 파는 어린아이, 12월의 뜨거운 인도 날씨에 지쳐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곤히 잠을 자는 개들, 그 옆에 지쳐 잠든 한 남자가 담겨 있다.

강변 계단 한구석에는 작은 움집을 내고, 주전자에 짜이(chai)티를 끓여 파는 짜이왈라(wallah, 상인)가 있다. 점토로 야무지게 빚은 작은 컵에 담아주는 5루피(한화 약 100원)짜리 짜이를 받아들었다. 딱 네 모금 남짓. 후후 불어 잔에 담긴 뜨거운 짜이를 다 마시고 나니, 사우나를 한 양 몸이 나른해진다. 노곤해진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짜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아련하다.

짜이의 연기가 잦아들자, 먼 곳에서 올라오는 더 큰 연기가 눈에 어린다. 화장터가 있는 가트이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로 추앙받는 곳이다. 이곳에서 화장을 하면, 고통스러운 삶의 윤회를 이 생에서 끝낼 수 있다고 한다. 죽음과 윤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많은 인도인들의 소망이다. 생이 고통이라는 걸 받아들인 사람들의 소망이, 조금은 쓸쓸하다.

"더 가지 말자."

갠지스 강가를 술렁술렁 걷다가, 화장터가 있는 마니까르니까 가트(Manikarnika Ghat) 근처에 닿았다. 더스틴은 누군가의 죽음을 구경거리 삼고 싶지 않다며 너무 가까이 가지 말자고 했다. 시큼한 냄새를 한번 빨아들이고 발걸음을 뒤로했다. 하얗게 감싼 시신이 내 시선에 스쳤다. 모든 삶에는 끝이 있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 머리를 싸하게 스친다.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에 세워진 나무 보트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에 세워진 나무 보트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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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갠지스 강변에서 배회하는 소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에서 배회하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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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부터 쉴새 없이 반복된 이동에 지쳤는지, 더스틴은 가트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숙소로 돌아오는 느린 시간을 반복하는 것만도 힘들어한다.

"오늘은 꿈쩍도 안 하고 숙소에 있을 거야."

바라나시에서 3일째 되는 날. 느지막이 일어난 더스틴이 나에게 선언했다. 나는 아무래도 엉덩이가 들썩하다. 바라나시 구석구석의 공기를 맛보고 싶다.

"그럼 넌 여기 있어. 나는 쇼핑갈게."
"혼자? 안 돼. 여자 혼자 다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들었잖아."
"날도 환한데 뭘. 멀리 안 가고 주위만 돌아다닐 거야. 어차피 넌 쇼핑도 싫어하잖아."
 

쇼핑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더스틴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제안을 한다.

"그럼 이 근처만 돌다가 와. 딱 한 시간 안으로 돌아와야 해. 한 시간 지나면 찾으러 간다. 대신…. 스니커즈바를 하나 사오도록."

까짓 스니커즈바, 사다 준다. 짧은 모험을 즐기는 대가다. 무려 30루피(한화 약 600원)나 하는 스니커즈바는 언젠가부터 내기를 할 때 거는 상이라든지, 한쪽이 불리한 협상을 할 때 다른 한쪽에게 지불하는 대가용으로 쓰이고 있다. 나는 그러고마 하고 눈을 반짝이며 숙소 문을 나섰다. 사실, 일자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어도 길을 잃는 나인데, 이 구불구불한 바라나시의 골목길을 헤매지 않고 되짚어올 자신이 없긴 하다.

나는 헨젤과 그레텔이 된 마냥, 골목 구석구석의 특징을 기억에 새기며 바라나시의 어두침침한 골목을 짚어 나갔다. 개미굴처럼 이리저리 뻗친 좁다란 길. 갓 튀긴 사모사(야채와 감자를 넣고 삼각형으로 빚어 기름에 튀긴 인도식 만두)의 기름진 냄새와 비누같이 하얀 인도식 스위츠(단것)가 계단처럼 쌓여있는 상점을 지나니, 먼지가 잔뜩 낀 유리 진열대에 금반지라도 되는 양 초콜렛 바를 진열해 놓은 스낵샵에 보였다. 나는 상인이 건네주는 스니커즈바를 소중히 받아들고,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주머니에 조심스레 챙겨 넣었다.

짧은 모험의 대가는 '스니커즈바'... 까짓것!

바라나시 골목길에서 맛본 라씨 (인도 요거트 음료)
 바라나시 골목길에서 맛본 라씨 (인도 요거트 음료)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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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낵샵이 있는 골목을 돌아 다른 길로 들어서니, 장총을 든 군인들이 철조망 난 단단한 쇠문을 지키고 있는 뜻밖의 장면이 펼쳐진다. 군사시설처럼 삼엄한 경계가 지켜지는 이곳은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 중 하나로 여겨지는 카쉬 비슈와나뜨(Kashi Vishwanath) 사원이다. 좁은 골목길은 사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힌두교도들과 그 주위를 둘러싼 군인들 덕분에 끼어들어 갈 틈이 없다. 다행히 저 행렬에 낄 일은 없다. 카쉬 비슈와나뜨 사원은, 힌두교도를 제외하고는 출입이 금지된다.   

'카쉬 비슈와나뜨'는 시바 신을 모시는 바라나시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카쉬'는 바라나시의 옛 이름이며 '비슈와나뜨'는 사원에서 모시는 '우주의 지배자'인 '시바(Shiva) 신'의 다른 이름이다. 이 사원은 힌두교도들이 일생에 한 번은 순례를 와야 한다는 바라나시에서, 갠지스 강과 함께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으로 여겨진다.

수천 년 전에 최초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카쉬 비슈와나뜨 사원은 여러 번 파괴되었다가 재건되기를 반복하다, 1669년 무굴제국의 아우랑제브(Aurangzēb) 황제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파괴된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인 기얀바피 모스크(Gyanvapi Mosque)가 건립되었고, 1776년, 인도르(Indore)의 왕비 아할리아 바이(Ahalya Bai)가 기얀바피 모스크 바로 옆에 카쉬 비슈와나뜨 사원을 재건했다.

1839년 시크교의 지도자 란지트 싱(Ranjit Singh)이 800kg의 금을 기부하여 지붕을 금박으로 덮었으며, 그 후 사원은 황금 사원(Golden Temple)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파괴되었다 다시 건립되기를 반복하다, 결국 무슬림 사원에 원래의 자리를 뺏긴 힌두 사원. 나란히 자리한 두 사원 간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이렇게 많은 군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도, 힌두교도를 제외한 방문객의 출입을 막는 것도, 두 종교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함이다. 실제로 바라나시는 종교 갈등으로 유명한데, 2000년대에만 해도 수차례의 테러 공격으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난 기록이 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바라나시 카쉬 비슈나와뜨 사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바라나시 카쉬 비슈나와뜨 사원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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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다. 성스러운 도시 바라나시는, 그 성스러움을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갈등으로 장총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성스럽다는 게 뭔가. 성스럽다는 말에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와 본성에서 외면하고 싶어하는 추함을 배제한 무언가가 내포되어 있다. 성욕, 배설물, 도둑질, 질투, 욕심과 같은 음습한 어떤 것.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아이들에게는 감추는 것. 추함과 악을 배제한 것. 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만 모아 놓은 착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

그런 기준으로 따지자면 바라나시는 전혀 성스럽지 않다. 강가 주변에는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때가 탄' 어린아이들이 서성거린다. 신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매일 행해진다는 신성한 푸자(puja) 의식 주변에는, 의식을 더 잘 보려면 보트를 타야 한다고 꼬시는 보트맨들과, 꽃이며 음료수를 파는 장사꾼들이 사람들 틈 사이를 기웃거린다.  

바라나시는, 성스러움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순수하고, 깨끗하고, 숭고한 그런 이미지들과는 전혀 다른, 세속적이고 구질구질하고 불편한 인간의 모습들이 감추어지지 않고 날것으로 드러난 곳이다. 성스러운 갠지스 강은 이 모든 사람들이 내뱉는 배설물과 욕심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총으로 지켜지는 성스러움... '아이러니'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의 힌두교 푸자(puja)의식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의 힌두교 푸자(puja)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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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갠지스 강의 힌두교 푸자의식
 바라나시 갠지스 강의 힌두교 푸자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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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위가 상했다. 실망스러운 기분에 착잡해하며 숙소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3살쯤 되어 보이는 너무나 예쁜 눈을 가진 어린 인도 아기가 나를 따라왔다. 아기는 떨어질 듯한 그 큰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이 세속적인 곳에 성스러움이 남아 있다면 아마 이 아이의 눈망울 같은 거겠지. 나는 아이의 손에 이끌려 계단을 함께 올랐다. 내가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내 손을 꼬옥 잡고 자기 키만 한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던 아기는 계단 꼭대기에 오르자 나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초콜렛?"

아이는 나머지 한 손을 내밀더니 초콜렛(초콜릿)을 요구했다. 내가 작고 귀여운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고 계단 위까지 올라왔으니, 이 정도의 대가는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당황한 나는 미안한 얼굴을 하고 "노 초콜렛. 쏘리" 하고 대답했다. 아이는 실망한 눈초리다. 아이는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고개를 획 돌려 계단을 타고 초콜릿을 줄 다른 누군가를 찾아 내려가 버렸다.

몸집으로 봐서는 세 살도 안 돼 보이는 아이가, 어디서 저런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를 배웠을까. 세상의 다른 것을 보기도 전에 생존의 법칙부터 알아버린 작은 아가. 다시 한 번 갠지스 강의 비린내가 시큰하게 코를 스쳤다.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에서 낮잠을 자는 개들과 한 남자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에서 낮잠을 자는 개들과 한 남자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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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에서 얻어온 달디 단 스니커즈바를 깨물며, 숙소 테라스에 앉아 강가를 바라봤다. 낮에는 축 처져 낮잠을 자던 개들이 모두 깨어 거리를 활보하며 짖어댄다. 낮에는 죄를 씻기 위해 비누칠을 하던 사람들로 가득하던 강가는, 해가 지자 마약을 파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낮이 있어야 밤이 있듯이, 어두운 밤이 있고 죄가 있어야 죄의 씻음도 있는 거겠지.

신의 성스러움과 인간의 추함이 자명하게 대조되는 곳. 삶의 고통과 추함과 더러움이 감추어지지 않은 채로 드러나 혼재되어 있는 곳. 어쩌면 이것이 성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죄악을 선함으로 속이고, 더러움을 깨끗함으로 감추는 가식이 아닌, 삶의 진실을 정면으로 대하는 이 도시의 이 모습이 내가 모르던 성스러움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정전이 되었다. 전기가 풍족하지 않은 바라나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정전이 된다. 우리 방과 숙소 일부만 뺀 바라나시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 잠시 활기가 넘치던 거리도 이내 잠잠해졌다. 영악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퇴장한 거리는, 이내 신과 자연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나는 내일이면 다시 차오를 삶의 성스러운 풍경을 기대하며, 검고 어두운 암흑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바라나시
 바라나시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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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바라나시, #힌두교, #인도, #갠지스강, #카쉬 비슈와나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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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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