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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에서 바라본 묘향산 멧부리들(2005. 7.)
 보현사에서 바라본 묘향산 멧부리들(2005. 7.)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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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그날 오전 11시가 조금 넘을 무렵, 준기 부부를 태운 승용차는 묘향산 들머리에 닿았다. 리 선생은 곧장 향산호텔로 들지 않고 묘향산 어귀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계 각국 지도자와 유명인사에게 받은 선물을 전시한 곳이었다. 준기 부부가 승용차에서 내리자 거기서는 국제친선전람관 전속 여성 안내원이 김준기 부부를 맡았다. 안내원은 자기가 김일성대학 역사학부 출신의 오은미라고 소개했다. 그는 빼어난 미인으로 언행이 매우 곰살갑고 해설이 유창했다.

국제친선전람관 정문 앞에는 군인들이 착검한 채 경비를 서고 있었다. 오은미 안내원이 열어준 육중한 문을 들어서자 내부는 온통 고급대리석에 샹들리에로 장식된 전람관이었다. 안내원은 물품보관소에 관람객 카메라도, 모자도 맡기게 하고, 신발에는 덧신을 신게 하였다.

이 전람관은 1978년에 개관하였다는데, 조선식 합각지붕에 청기와를 올렸다. 오윤미 안내원은 일 년 내내 빛과 온도,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최신의 전람관이라고 한껏 자랑했다. 이곳에는 20만여 점의 선물이 전시되었다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준기 부부는 '수박겉핥기'로 훑었다. 오 안내원은 준기 부부의 눈길이 머무는 선물을 정확히 집어내고는 그것을 보내준 인사들의 이름과 선물 내용을 유창하게 설명한 뒤 마지막으로 한껏 힘주어 말했다.

"우리 공화국 김일성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이 모든 걸 기꺼이 인민에게 바치시었습네다. 그리구 인민들은 수령님과 장군님께 모든 충성을 바칩네다."

두 시간 가량 국제친선전람관 관람을 마쳤다. 준기 부부는 오 안내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약간의 돈을 팁으로 건넸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오라바니(오라버니), 조국통일이 된 다음에 주시라요."

묘향산 향산호텔(2005. 7.)
 묘향산 향산호텔(2005. 7.)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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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호텔

준기 부부가 물품보관소에서 카메라와 모자를 찾은 뒤 오 안내원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주차장으로 나오자 북녘 두 선생이 대기하고 있었다.

"갑세다. 이제쯤이면 아마 향산호텔에서 김 선생 오마니가 기다리고 있을 겁네다."

리 선생은 싱긋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빨리 상봉시켜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이 담겨 있는 듯했다.

"감사합네다."
"고맙습니다."

준기 부부는 짧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준기 부부는 그때까지도 마치 어려운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마냥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줄곧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준기는 때때로 이를 악물곤 했다. 국제친선전람관에서 향산호텔까지는 엎어지면 무릎이 닿을 거리인데도 먼 길로 느껴졌다. 향산호텔이 나타나자 준기는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다.

'오마니를 어떻게 대할까?'

준기는 다시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흐르는 대로 어머니를 맞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자간 만남에 무슨 격식이 필요하겠는가. 그새 승용차는 향산호텔 주차장에 들어섰다.

향산호텔은 15층으로 겉모양은 산모양의 삼각형으로 산뜻하고 날렵한 현대식 건물이었다. 리 선생이 앞장서고 홍 선생이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 끌며 따랐다. 리 선생이 향산호텔 2층 소연회장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와 장년의 부부가 출입구를 향해 서서 준기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기는 금세 어머니를 알아보았다. 그 순간 준기는 잽싸게 어머니에게 달려가 껴안았다.

"오마니!"
"준기라구?"

순간 준기 어머니도 아들을 껴안았다.

"예, 오마니 아들 준기야요."
"먼 길 오느라구 애썼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건 오로디 어버이 수령님과 장군님 덕분이시다."

압록강 국경지대인 혜산진, 국군과 유엔군은 이곳까지 북진했으나 곧 중국군의 참전으로 후퇴하였다(1950. 11. 21.)..
 압록강 국경지대인 혜산진, 국군과 유엔군은 이곳까지 북진했으나 곧 중국군의 참전으로 후퇴하였다(1950. 11. 21.)..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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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상봉

그 극적인 순간에도 준기 어머니는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준기 어머니 강말순은 의외로 담담이 아들을 맞았다. 하지만 곧 그동안 꽉 막혔던 모자의 눈물샘이 뻥 터졌다.

"진짜로 내 아들 준기 맞니?"
"네, 오마니 아들 준기야요."

준기는 어머니와 작별한 지 꼭 45년 만에 품에 안겼다. 어머니 품은 옛날 그대로였다. 준기 모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샘물처럼 솟아올랐다. 준기는 45년간 목구멍에 걸린 가시가 한순간에 쑥 내려가는 듯했다. 준기 어머니 강말순은 아들을 안고 오른 손으로는 어깨를 도닥거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

"내 아들 장하다. 장해. 그리구 이 늙은 오마니를 찾아줘서 고맙다. 이게 다 오로디 수령님과 장군님 덕분이시다."

준기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자 곧장 순희가 어머니 품에 안겼다. 준기가 흐느끼며 말했다.

"오마니 메누리야요."
"기래? 메누리라구. 내레 이제까지 산 보람이 있구만."
"어머니 며느리 최순희예요."
"서울 메누리군."

준기 어머니는 순희의 첫 마디에 서울 말씨를 알아보고는 처음 보는 며느리를 다시 보듬어 안았다.

"어머니 절 받으세요."

준기 부부는 그 자리에서 큰절을 드렸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서울, 1953. 6. 5.)..
 초등학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서울, 1953. 6. 5.)..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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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형님 철기입네다. 기러구 내레 안해(아내)이구요."
"아주바님 내외분,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셌습네다."

동생 철기 내외가 큰절을 했다. 준기 부부도 맞절로 답례했다.

"너들(너희들)한테 볼 낯이 없다야. 큰아들인 내레 오마니를 모시지 못하구."
"기런 말씀 마시라요. 기게 어디 형님 탓인가요. 이러케 먼 길을 찾아오신 것만도 고맙습네다."
"아무튼 그동안 애썼다."
"아바지가 살아계셋으믄(살아계셨으면) 더욱 도왓(좋았)을 텐데…."
"기래, 아바지는 어디에 모셋디(모셨지)?"
"동네 뒷산에요."
"아주바님과 형님, 요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았디요?"

처음 보는 제수씨가 훌쩍이며 고개 숙였다.

"제수가 아바지 오마니 모시느라 수고 많이 하셋구만요."
"아니야요. 아주바님 내외분이 객디에서 더 고생 하셋디요(하셨지요)."

어머니가 준기 부부를 사랑스럽게 지켜보며 말했다.

"여기 식구들은 수령님과 장군님 덕분에 이밥에다 고기국 먹고 잘 살앗디."
"그러믄요. 오늘 점심은 눈물이 반찬이겠수다. 자, 이데(이제) 더기(저기)로 갑세다."

리 선생이 향산호텔 구내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에는 준기 가족을 위한 점심상이 이미 차려져 있었다. 조촐한 음식들이 깨끔하게 밥상 위에 놓였다. 평양에서도 그랬지만 북한 음식은 맛이 담백하고 산뜻하며 뒤 입맛이 향기롭고 개운했다.

이날 점심 주 메뉴는 산나물이었다. 그런데 나물국 맛이 어찌나 좋은지 준기 부부는 그 열띤 분위기에서도 또 여성복무원에게 그 조리법을 꼼꼼하게 물었다. 복무원은 산나물국 원재료는 고비, 고사리, 곰취, 두릅, 버섯 등 다섯 가지로 그 나물들을 살짝 볶은 다음에 쌀뜨물을 넣어 끓였다고 조리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산나물국은 약간 씁쓸한 데도 깊은 맛이 있었다. 준기는 밥상에 있는 묘향산 특산물이라는 향어튀김도 맛보면서 밥그릇을 다 비웠다. 순희는 맛난 고기반찬을 찢어 시어머니 밥 위에 연신 놓아드리면서 자기 밥그릇도 비웠다.

피난민 행렬(마산, 1950. 9.).
 피난민 행렬(마산, 1950. 9.).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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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준기 가족은 점심밥을 먹은 뒤 다시 소회의실에서 북녘 두 선생과 다음 일정을 조정했다. 애초에 북녘 해외동포위원회가 마련한 세부 일정은 준기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향산호텔에서 하룻밤을 잔 뒤 다음날 아침 곧장 평양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선상님, 우리 아들 메누리 고향집에서 밥 한 끼 해 멕이고 싶소."

준기 어머니 강말순이 북녘 두 선생에게 부탁했다. 리 선생은 다소 난처해하더니 홍 선생과 귀엣말을 나누고는 말했다.

"좋습네다. 하지만 늦어도 내일 다섯 시까지는 평양에 도착해야 합네다."
"고맙습네다."

준기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두 선생에게 인사했다. 준기와 기철 부부도, 자리에서 일어나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바라본 조국강산의 아침(2005. 7.)
 백두산 장군봉에서 바라본 조국강산의 아침(2005. 7.)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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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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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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