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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과세세요." 아티스트 미상(1953.).
 제목; "사과세세요." 아티스트 미상(1953.).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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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전화

1973년 8월 16일 저녁, 순희는 서울에 사는 동생 순옥한테 국제전화를 받았다.

"언니, 김준기라는 사람 알아?"
"얜, 생뚱맞게 갑자기 뭔 얘기니."
"오늘 아침 대한신문 사회면 톱에 김준기라는 사람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0년 전에 헤어진 최순희라는 여인을 해마다 빠짐없이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는 기사가 실렸어. 그래서 그 사람이 찾는 최순희가 혹 언니인가 물어보는 거야."
"그 사람 고향은?"
"평안북도 영변이래."
"나이는?"
"서른여덟."
"어디서 만나고 헤어졌대?"
"낙동강전선에서 만나고 추풍령에서 헤어졌대."

순희는 동생이 전하는 정황으로 미루어 그 사람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아니 잊어버리려고 애썼던 김준기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신문에는 사진까지 실렸는데."
"얘, 신문에 난 그 기사 오려 편지에 넣어 보내다오. 그리고 너 그 사람한테 절대로 연락해선 안 돼."
"알았어, 언니. 이 전화 끊고 지금 당장 신문기사 오려 오늘 내로 보낼게."
"그래, 고맙다."

교실이 불타버린 빈 터에서 수업을 받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서울 은평, 1950. 10.).
 교실이 불타버린 빈 터에서 수업을 받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서울 은평, 1950. 10.).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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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지신

순희는 김준기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며, 아직도 자기를 찾는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뭔 사람이 부모도 버린 채 전쟁터에서 헤어진 연인을 바보처럼 20년 동안 기다렸을까. 그 사람 그새 어떻게 된 정신이상자는 아닐까? 순희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렴 2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대한문에 나오다니…. 도무지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보름이 지난 뒤 순옥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순희는 먼저 신문기사부터 읽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여인을 20년간 기다린 순애보 - 현대판 미생지신"
"해마다 8월 15일이면 덕수궁 대한문 앞을 지키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

이 신문기사는 1950년 9월 초순 낙동강 다부동전선에서 인민군 위생병 최순희와 탈출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낙동강을 건넌 이야기, 구미 형곡동 한옥에서 옷을 갈아입은 이야기, 거기서 전쟁이 끝난 뒤 해마다 8월 15일 덕수궁 대한문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이야기, 금오산 계곡 아홉산골짜기에서 살았던 이야기, 추풍령 외딴집에서 헤어진 이야기 등이 담겨 있었다.

순희는 그 기사를 읽자 까마득하게 잊었던 지난 시절이 마치 어제 일처럼 되살아났다. 그런데 20년 동안 한결같이 해마다 8월 15일 날 낮 12시부터 오후 2, 3시까지, 때로는 저물녘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대한문을 지켰다는 이야기에는 감격에 앞서 도무지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이 그토록 우직할까.

'남자는 첫 여자를 평생 못 잊는다고 하더니….'

국군의 동복 차림(신발, 작업복, 모자는 국산, 외투, 소총, 실탄 등은 미제, 1951. 1. 5.). 이 사진의 주인공이 교학사 발간 한국사에 학도병 이우근으로 둔갑하여 부실 논란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우근 학도병은 1950년 8월 순국하였는데 5개월 후 환생하였기 때문이다.
 국군의 동복 차림(신발, 작업복, 모자는 국산, 외투, 소총, 실탄 등은 미제, 1951. 1. 5.). 이 사진의 주인공이 교학사 발간 한국사에 학도병 이우근으로 둔갑하여 부실 논란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우근 학도병은 1950년 8월 순국하였는데 5개월 후 환생하였기 때문이다.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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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좋겠다

이튿날 아침 순희는 한국 저녁시간에 맞춰 순옥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얘, 편지 잘 받았고, 그 기사 잘 읽어봤다. 그 사람이 찾는 사람은 내가 맞다."
"나도 처음부터 언니라는 예감이 들었어. 언니, 어쩔 거야."
"글쎄다. 이제 새삼스럽게 그 사람을 만나기도 그렇고. 좀 더 시일을 두고 생각해보겠다. 너 시간이 나면 그 사람 어떻게 사는지 몰래 한번 알아봐주렴."
"알았어, 언니. 언니는 좋겠다. 일편단심 기다리는 옛 애인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얘, 가로 늦게… 자칫하면 골칫덩어리를 만날 수도 있어. 너 그 사람한테 네가 먼저 절대로 연락해서는 안 된다. 알았니?"
"언니, 내가 뭐 어린앤 줄 알아. 걱정 마세요."

보름이 지난 뒤 순희는 동생 순옥이로부터 국제전화를 받았다.

"그래 좀 알아봤니?"
"응, 김준기씨는 현재 인천 송현동 한 병원에서 사무장 겸 방사선기사로 일하고 있대. 그 사람은 반공 포로로 대한민국에 남은 가장 큰 이유는 최순희라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대. 한 번 결혼했지만 일 년 만에 이혼했다는데, 딸 하나가 있나 봐. 그 부인은 재혼을 하고, 딸은 외가에서 자라는 모양이야."
"네가 뭐 흥신소 직원처럼 아주 자세히도 알아봤구나. 혹 그 사람 낌새채게 한 건 아닐 테지."
"그럼, 세상은 넓은 것 같지만 무척 좁더라고. 그 병원 거래은행 담당이 내 고등학교 동창이었어. 걔가 김준기씨를 잘 알더라고. 키는 자그마하지만 아주 사람이 다부지다고 하더군. 내가 친구 입단속은 단단히 시켰지. 그 점은 걱정 마."
"잘 알았다. 네 친구한테 입단속을 단단히 시킨 게 오히려 화근이 될지도 몰라."
"걘 입이 무거워 괜찮을 거야."

아티스트 'Murry'가 스케치한 '미 해병대 병영'(1953.)
 아티스트 'Murry'가 스케치한 '미 해병대 병영'(1953.)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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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이 가는 남자

"하기는 이제 쏟은 물이라 네 친구가 나발을 불어도 다시 담을 수는 없지. 아무튼 내 마음이 결정되면 다시 연락할게."
"언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지 말고, 한번 연락하여 만나보지 그래. 20년 동안 일편단심 한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는 요즘 세상에 드물잖아. 내 생각에는 부담 없이 한번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니야. 그 사람 부담이 몹시 가는 남자야. 부모까지 버리고 남쪽에 남았거든. 다시 안 만나는 게 피차 더 나을지도 몰라. 그리고 내가 미군하고 결혼한 뒤 이렇게 미국에 사는지도 모를 테고. 평생 한 여인을 아름답게 그리며 사는 게 나을지도…."
"아니, 언니. 무슨 소설 쓰시오. 혼자 쓸쓸히 사는 것보다 느지막이 옛 애인 만나 새콤달콤하게 살면 얼마나 좋소. 게다가 홀아비인데."
"얘, 세상은 그렇게 단순치 않아. 그렇게 쉽게 얻은 행운은 드물어. 또 그런 행운은 자칫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아무튼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언니는 도사가 다 되었네. 하지만 한번 만나보고 결정해도 되잖아?"
"얘, 별 생각 없이 만났다가 찰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으면 어쩔 거니. 솔직히 미국에서는 부담 없이 즐길 남자는 길거리에 널려 있다. 이곳 미국남자들은 매너도 좋고."
"하긴 언니 인생은 언니 몫이니까, 언니가 잘 판단하여 결정해."
"그래, 잘 알았다."

한 소녀가 전란으로 허물어진 집 섬돌에 앉아서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다(전주, 1951. 3. 1.).
 한 소녀가 전란으로 허물어진 집 섬돌에 앉아서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다(전주, 1951. 3. 1.).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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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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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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