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입니다.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우리에게 시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연재 '전통시장 고군분투기'는 기자를 지망하는 청년들이 시장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점들을 다룰 것입니다. 장소는 서울의 전통시장 30곳입니다. 취재 원칙은 하나 입니다. '시장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 기자 말

잠을 설쳐 정신이 멍했다. 학창시절 공사장 잡부, 백화점 판매원 등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지만, 시장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약속한 정육점의 유니폼인 빨간색 상의를 입고 봉천제일시장이 있는 봉천역으로 향했다. 서울 관악구 청룡동 위치한 봉천제일종합시장은 38년의 세월을 주민들과 함께 했다.

시장에 도착하니 직원들은 아직 출근하기 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채소가게는 장사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고, 물건을 진열하는 상인들은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다른 가게들도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할 무렵, 오늘 같이 일하게 될 정육점 직원들이 도착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정육점의 철문을 들어 올렸다. 내가 하루 동안 일을 하게 된 가게 '한우리 축산물도매센터'다. 사장 김무성(40)씨와 그의 부인 김훈자(39)씨, 직원 김창현(32)씨와 최삼영(28)씨 등 총 직원은 네 명이다. 오늘 하루 나까지 포함하면 총 5명이 된다.

# 오전 9시 : 정육점 개장준비

빨간 조명의 정육점에 빨간 옷을 입고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 이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눈에 띈다. 물건을 정리하랴. 지나가는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랴. 분주한 하루다.
 빨간 조명의 정육점에 빨간 옷을 입고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 이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눈에 띈다. 물건을 정리하랴. 지나가는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랴. 분주한 하루다.
ⓒ 김진석 사진작가

관련사진보기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장사를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김 사장은 고기를 썰고 직원들은 전날 냉동고에 보관한 고기를 진열대로 나르기를 반복한다.

한참 준비를 마치고 살펴보니 정육점에는 가게 내부에 외부와 통하는 문이 없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열 때 들어 올린 철문 외엔 외부와 칸막이가 없다. 문이 없다 보니 햇볕만 피할 뿐 무더위가 그대로 느껴졌다.

"문이 있으면 손님들이 쉽게 들어오질 못해요. 그래서 없앴죠. 여름, 겨울에 장사는 힘들지만, 손님하고 가까워져서 좋습니다."

문이 없어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문을 없애니 손님들이나 주변 상인들과 훨씬 가까워지게 됐다. 고기를 사러 온 손님에게는 문을 여닫을 불편함을 없앴고, 주변 상인들에게는 얼굴을 보며 모든 직원들이 인사를 건네니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김 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께 "손님을 빈손으로 보내면 안 된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듯 들어서인지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꼭 음료수를 대접한다. 그래서인지 한우리 정육점은 길을 가다 물을 마시며 쉬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분주하던 장사 준비가 끝났다. 휑하던 진열대에 고기가 가득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 뿌듯해진다. 하지만 여유 부릴 틈도 잠깐이다. 공휴일 아침에 단체로 놀러 가는 손님들이 왔다. 김 사장은 먼저 삼겹살을 보여주며 손님들에게 직접 육질을 확인시켜 준다. 굽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고 덤으로 파채와 고기 소스까지 서너 개 챙겨준다. 넉넉한 인심 덕에 고기를 사러온 손님 얼굴에는 웃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오전 손님이 가고 한참 동안 정육점은 한산해졌다. 보통 점심시간을 앞두고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진다고 한다. 이 시간은 이곳의 운동시간이다. 오전 내 숙였던 허리와 무릎 등을 각자의 위치에서 말없이 스트레칭을 한다.

"왜 돈 받으러 안와" 옆집에서 음식점을 하는 아주머니가 너스레 웃으며 김사장에게 윽박지른다. 멋쩍은 표정을 보이는 김사장. 농담조로 "그냥 주고 싶으면 주세요." 라며 대답을 한다.
 "왜 돈 받으러 안와" 옆집에서 음식점을 하는 아주머니가 너스레 웃으며 김사장에게 윽박지른다. 멋쩍은 표정을 보이는 김사장. 농담조로 "그냥 주고 싶으면 주세요." 라며 대답을 한다.
ⓒ 사진작가 김진석

관련사진보기


# 낮 12 : 시장에서 느끼는 희로애락

"오늘 아들이 집에 와서 고기 먹여야 해. 결혼 날 받았거든."

단골로 보이는 한 손님이 아들의 결혼 소식을 밝히며 고기를 주문하자 김 사장 부부는 자기 일인 것마냥 기뻐하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신부에 대한 이야기부터 결혼식 준비 이야기까지 물건을 사고파는 건지 이야기를 나누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주로 오는 손님들과 마치 자기 일인 듯 기뻐하고 슬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탓에 한우리 정육점은 단골들이 많다.

김 사장은 봉천제일종합시장에서 4년째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처음 1년이 힘들었다"고 한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친하지 않으면 속내를 쉽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1년간 묵묵히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고부갈등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김 사장 부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사를 하면 일이 고되지 않고 재미있다"고 한다.

김 사장이 정육 관련 일을 시작한 지 16년째다. 10년은 경기도 안산에서 마트에서 일했다. 손님이 원하는 양 만큼 고기를 주는 게 그의 일이었다. 손님과 교감을 할 틈도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인 마트 일을 그만두고 개인 가게를 차렸다. 처음에는 마트와 다른 분위기에 어색했지만 "사람 사는 맛이 난다"라고 말한다.

시장에서 일한다고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손님들의 고기에 대한 불신과 과도한 에누리 요구로 힘이 들 때도 있다. 단골들은 믿고 구매하지만 처음 본 손님들은 고기 질을 쉽게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고기를 건네기 전에 반드시 육질을 확인시켜주는 습관이 생겼다. 또한, 과도한 에누리를 당연한 것처럼 요구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시장에는 에누리가 있어야죠. 하지만 손님에게 속이지 않고 양질의 고기를 드리는데 무조건 에누리를 요구하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깎아 달라는 말보다 좋은 고기를 달라고 하면 더욱 챙겨 드리고 싶어요."

# 오후 3시 : 등목 한 번 할까요?

시장에서의 등목. 혹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 될까 골목 안에서 시원한 등목을 한다.
 시장에서의 등목. 혹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 될까 골목 안에서 시원한 등목을 한다.
ⓒ 안형준

관련사진보기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가게 앞에 트럭 한 대가 서 있다. 하루에 한 번 고기가 들어오는 시간이다. 반으로 잘린 돼지를 가게에 걸어 놓고 발골작업에 들어간다. 각자 맡은 일이 있어 빠르고 정확하게 돼지가 해체된다.

등뼈를 가르고 부위들을 정확히 나눈다. 모두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지만, 좋은 고기가 들어온 까닭에 표정이 좋다. 두 시간이 흐르고 세 마리의 돼지가 모두 해체됐다. 빨간 유니폼이 땀에 젖어 색이 더욱 진해졌다.

"우리 더운데 등목 한 번 할까요?"

창현씨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다. 시장 한복판에서 옷을 벗고 등목을 하자니 부끄러웠다. 가게 옆 조그마한 골목에 호스를 연결해 서로의 등을 문질러준다. 옆 건어물 가게 사장님이 부러웠는지 "나도 해야겠다"며 웃통을 벗는다.

등목을 마치고 상인들이 모여 물 한 잔 씩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의 주제는 시장이다. 건너편에서 오징어 횟집을 운영하는 강해용(51)씨도 합세했다. 봉천제일종합시장 상인회 준비위원장인 강씨는 아쉬운 점을 토로했다.

"시장에 사람들이 모일 장소가 필요해. 예전처럼 이야기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노점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들도 무조건 배척할 게 아니라 자리를 내주고 같이 장사하면 얼마나 좋아."

장소뿐만 아니라 시장에 상인회가 없어 구청에 요구하는 것도 힘들다. 봉천제일종합시장의 길은 쌍방통행인 탓에 차와 보행자들이 뒤엉켜 안전과 교통체증 문제가 있다. 일방통행을 구청에 건의하기 위해선 상인회 조직이 우선이다. 그래서 강씨가 팔을 걷고 나섰다. 상인회 구성준비는 현재 상인들의 99% 참여로 9월 20일 이후 구성된다.

불편함을 이야기하다 자연스레 '재래시장 카드 사용'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민감한 주제라 쉽게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상인들의 생각은 분명했다.

"시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고 관행적인 장사를 하시다 보니 카드를 받지 않으세요. 카드 손님 받지 않는 것보단 한 명이라도 손님에게 물건 파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세상이 변한 만큼 시장 상인 의식도 변해야 해요. 하지만 채소가게 같은 돈이 조금 오가는 곳은 일정금액 이상은 카드를 사용하는 현실적인 절충점은 찾아야죠."

# 오후 6시 : "내일은 잘 될 겁니다"

저녁을 먹고 오니 김 사장이 퇴근 준비를 한다. 집에 일이 있어 일찍 들어간다고 한다. 하루 매출을 기록하고 돈을 세는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다른 날에 비해 장사가 안됐다. 공휴일과 무더운 날씨로 인해 시장에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괜스레 미안해져 괜찮은지 묻자 김 사장이 웃는다.

"오늘 하루 장사 안 됐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어차피 동네 단골손님들만 오시니 장사는 꾸준합니다. 내일은 잘 될 겁니다. 오늘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직원들에게 간단한 지시를 하고 김 사장은 가게 근처 집으로 향했다. 김 사장이 퇴근해도 바뀐 건 없다. 직원들은 밤이 깊었어도 활기찬 모습으로 행인들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 오후 10시 :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터

퇴근길 손님. 하루 중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퇴근길 손님. 하루 중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 안형준

관련사진보기


어느덧 오후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일곱 명의 손님이 퇴근하는 길에 고기를 사간다. 오후보다 장사가 잘 되어 '혹시 나 때문에 장사가 되지 않나?'하는 찜찜했던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마감준비는 개장준비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진열대의 고기를 다시 냉동고에 보관하고 바닥과 주변을 청소한다. 특히 도마를 닦고 또 닦는다. 세균의 번식을 막기 위해 신경을 써서 닦는다고 한다. 마감준비가 끝나자 시장의 불빛들도 하나 둘 꺼지고 있다. 분주했던 시장의 하루는 상인들의 "수고 했어, 내일 봐"라는 인사로 마무리 된다.

온종일 서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길 직원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남들 놀 때 일하고 제대로 쉬지 못해 힘들지 않나?"라고 묻자 창현씨는 "힘들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 재밌다"며 집으로 향했다.

꼭 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장과 직원이 아닌 같이 일하는 가족들인것이다.
 꼭 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장과 직원이 아닌 같이 일하는 가족들인것이다.
ⓒ 안형준

관련사진보기


봉천제일종합시장 상인이 추천하는 맛 집
시장하면 떠오르는 것은 음식이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 가면 '뭘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바쁘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맛집이 많이 나오지만, 홍보성 글에 속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시장 상인에게 물어봤다.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재선(59)씨가 자주 가는 음식점은 '싸리골'이다. 간판과 내부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가게 내부는 크진 않지만, 공간이 나뉘어져 소규모로 모이기 좋다. 오리와 닭백숙을 주로 판매한다. 한 마리에 4인 기준이고 가격은 4만 원이다. 시골집 같은 반찬과 백숙은 외갓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연중무휴이고 영업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7시 까지다. 봉천역 1번 출구에서 봉천제일종합시장 골목으로 들어서 200m정도 직진하면 간판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연재는 김진석 사진작가가 기획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 중인 안형준(29), 임경호(29), 박기석(27) 3명이 취재를 진행합니다.



태그:#서울, #재래시장, #봉천, #정육점, #고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