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로운 100년> 책표지.
 <새로운 100년> 책표지.
ⓒ 오마이북

관련사진보기

"통일의병요?" (오연호)
"네, 통일도 의병처럼 기여하자는 거죠." (법륜)

통일 바라는가? 그럼 자기 욕심부터 버려라

법륜스님과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지난 2011년 가을과 겨울, 3개월 동안 나눈 심층 대담을 기록해 정리한 대담집 <새로운 100년>(오마이북)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통일+의병' 생경한 단어 조합이다. 법륜스님이 통일의병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통일)에 자기 욕심을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평화재단과 정토회 신입회원을 모을 때 딱 두 마디만 한다고 한다.

"첫째, 내가 뭔가 한자리하겠다고 왔다면 집에 가라. 둘째, 대중이 하라는데 안 하겠다면 역시 집에 가라."

참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또 의병만으로는 통일을 이룰 수가 없다. 법륜스님도 "의병만 가지고는 역사를 못 바꾸잖아요. 관군과 힘을 합해야 역사를 바꿀 수 있다"면서 "그 사람들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만 힘을 보태줍니다. 순수한 사람만 모아서 무언가를 하면 순수할지언정 큰 세력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새로운 판을 짜려면 의병도 필요하지만, 관군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통일을 순수함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은 강조한 말이다.

통일은 밥 먹여준다... 그것도 아주 많이

목사 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씩 듣는 말이 있다. "예수가 밥 먹여주느냐"이 만고불변의 진리, 곧 먹을거리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종교와 이념은 결국 외면받고 만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유 중 하나도 보기에는 모든 인민에게 먹을거리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통일이 밥 먹여주느냐"고 법륜스님은 명확하다.

"통일이 밥 먹여주느냐는 말이 있는데, 앞으로 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통일을 해야 합니다. 통일이 안 되면 잘 먹고 사는 문제에서 더 이상 돌파구가 없다. 굶어 죽고 있는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도 세계 강대국들과의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입니다. 인구나 영토의 기본 크기나 비교가 안 되니까요. 과거에는 우리가 노력하면 계속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미래에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73쪽)

개성공단을 두고 보수세력은 북한 김정은의 '돈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법륜스님 논리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돈줄'이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수출 경제다. 수출이 줄면 경제가 휘청거린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내수를 활성화해도, 5천만 명이다. 중국은 10억이 넘는다.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는 단박에 8천만 명에 가깝다. 인구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지하자원은 우리 경제에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통일이 지금만 밥을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미래세대 밥을 먹여 주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 지배세력 인정해야... 신라도 가야 지배세력 인정

법륜스님 논리 중 가장 눈에 띈 것이 통일 이후 북한 지배 세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이다. 사실 이 논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거의 듣지 못했다. 물론 주장한 이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근거가 아주 구체적이다. 법륜스님은 근거를 신라+가야 통합을 예로 들었다.

"금관가야와 합병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가야를 군사적으로 점령한 것이 아니라 가야와 합의해서 신라와 통합했다. 대신 신라는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받아들인다. 지배세력을 그대로 인정해준 거다. 가야 마지막 왕의 4대손이 김유신이다. 가야 출신이 신리가 삼국을 통일할 때 중심인물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웠다."(116쪽)

김정은 정권 몰락만 아니라 그 뿌리까지 뽑기 바라는 수구 세력에게는 당장 '빨갱이'로 몰릴 수 있다. 나름의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북한 지배세력을 불인정하고 제거 대상으로 삼으려면 무력 점령 의외는 다른 길이 없다. 하지만 무력 점령은 북한 김정은 정권만 파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파멸이다.

법륜 스님은 "우리 역사에서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가장 높았던 경우가 바로 가야와 신라 통합"이라며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4나 5가 되는 상승효과를 가져왔다"고 강조한다. 남북 그 어느 계층도 제거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갈 때만이 우리는 더 큰 통일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통일국가는 민중의 한 풀어내는 공동체여야...

그럼 우리는 어떤 통일로 나아가야 할까? 오연호 대표기자는 "조선 말기의 민중봉기 때부터 약 200년간의 역사를 민중들이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품게 된 거네요. 그 한을 풀려면 우리 시대에 제대로 된 통일을 이뤄내야"한다고 질문한다. 이에 법륜 답은 이렇다.

"우리가 새롭게 세우고자 하는 통일국가는 민중의 한이 풀어지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또한 소수가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 민주사회여야 합니다. 그리고 늘 강대국 옆에 붙어 있던 약소국의 지위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에서 고구려, 발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주 국가여야 합니다."(154쪽)

가슴이 떨린다. 고구려와 발해와 같은 자주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이를 위해서는 민중의 한을 풀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민주사회여야 한다. 공동체와 민주사회라는 말 속에는 통일국가가 지향해야 할 국가체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한반도 분단 후 현재까지 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남한도 10년 민주정부를 제외하고는 독재체제 내지, 권위주의 정권이었다. 민중을 위한 정치보다는 기득권을 위한 정치를 했다. 그들을 통일을 입에 담으면서도 정작 통일을 위한 정책은 내놓지 않는 이유다.

법륜은 한발 더 나아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는 "통일신라와 발해의 남북국시대 이후에 등장한 고려가 신라나 발해가 아니라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면서 "그것은 양국을 모두 계승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이것을 통일주도세력이 염두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의 통일 주도 세력은 남북을 동시에 계승하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남북을 동시에 계승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남한을 중심에 두되 북한을 우리 역사 속에서 포용하는 거죠. 역사를 기록할 때도 저쪽은 괴로 정권이라면서 평양에 있는 열사릉을 파헤칠 것이 아니라 그 역사도 껴안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157쪽)

"열사릉을 껴안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혹시 이적세력으로 잡혀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그래야 "홍경래난 이후 200년간 쌓여온 민중의 한이 풀리고, 길게는 1000년간 쌓여온 민족의 한이 풀린다"는 것이 법륜 스님의 일관된 생각이다.

법륜스님은 지난해 5월 10일 <새로운 100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고조선부터 우리는 동아시아의 중심국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발해 멸망 이후 신라 시대로 오면서 반도에 갇혔다"면서 "주변 강대국의 변방으로 전락해서 약소국으로 치달았다"고 말했다.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우리가 통일국가를 이루면 "프랑스와 영국 정도의 위상이 된다. 발해 멸망 이후 1000년 만에 동북아 중심 국가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가슴 벅차지 않은가.

통일 너무 쉽게 이루어지면 100년은커녕 10년도 못 갈 수 있어

국가 지도자라면 적어도 이런 큰 꿈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장관급회담 대표 직제를 두고 자존심 싸움이나 하고, 날짜를 두고 다투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연호 대표기자는 "왜 통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 민족의 미래 비전이 통일에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너무 버거운 과제가 아닙니까?"라고 질문한다. 법륜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는 이 좋은 일이 노력 없이 너무 쉽게 이뤄져 버리면 안 되잖아요. 형설의 공이 들어가야죠. 통일이 너무 쉽게 되면 100년을 가기는커녕 다시 10년 만에 무너질지도 모르잖아요. 버거운 과제인 만큼 사람도 많이 모아야 하고 연구도 많이 해야 하고 힘도 많이 모아야 하니 할 만한 일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합시다. 통일이라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을 때마침 우리가 잘 만났다고 생각하면 힘이 돋고 기가 살 것 같아요. 우리 함께 해봅시다!"

참 놀라운 탁견이다. 김정일 전 위원장이 살아있을 때 수구세력은 김정일만 죽으면 통일이 금방될 줄 알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통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통일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대안은 없었다. 김정일만 죽으면 하늘에서 통일 보따리가 떨어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지금도 그들은 김정은 정권만 무너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불행이다. 박근혜 대통령 '통일정책 테이블' 위에 <새로운 100년>이 맨 윗자리에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새로운 100년> 법륜,오연호 지음 ㅣ 오마북 펴냄 ㅣ 15000원



새로운 100년 -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 개정증보판

법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8)


태그:#통일, #법륜, #오연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