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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베를린 북동부 지역 헬러스도르프(Hellersdorf)의 쇼핑광장인 엘리스-살로몬 광장(Alice-Salomon Platz)에서 극우주의 정당 및 단체인 독일 민족민주당(NPD: Nation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이하 NPD)와 친독일 시민운동(Bürgerbewegung pro Deutschland)이 새 난민보금자리(Flüchtlingsheim) 유치와 관련 반대시위를 열었다. 이들은 "난민들을 고향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독일인들의 경제문제부터 먼저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같은 장소에서 난민보금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진보주의 정당 당원 및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시위도 진행됐다. 이들은 난민들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 같은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 측에서는 시위대 간의 물리적 충돌을 예상하고 400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21일에도 이들 간의 대치상황이 계속돼 베를린 의회에서 난민보금자리 주변을 시위금지구역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난민과 관련된 뉴스는 필자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란 난민 친구들과 적어도 교회에서 매주 한 번씩 만나고 어울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해 중세 시대 페르시아와 신라 및 고려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주 토론하곤 한다. 이들과 같이 옛 역사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배우는 것이 무척 많다. 이러한 개인적인 사연으로 인해 도대체 헬러스도르프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왜 난민시설이 이곳에 들어와야 하는데?"  

반인종주의 운동가들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난민들을 보호하고 독일의 난민실태를 알리기 위해 친 천막이다. 플래카드에 적힌 "인종주의는 죽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반인종주의 운동가들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난민들을 보호하고 독일의 난민실태를 알리기 위해 친 천막이다. 플래카드에 적힌 "인종주의는 죽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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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찾았을 때, 다행히 극우주의자 시위대는 철수한 상황이었다. 대신 난민보금자리 주변에 반인종주의 진보운동가들이 입주한 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있었다. 그들이 내건 플래카드에 적힌 "인종주의는 죽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에게 왜 텐트를 쳤는지 물어봤다.

"난민들을 위한 보금자리는 현재 폐교된 학교인 막스-라인하르트 중고등학교(Max-Reinhardt Oberschule)를 활용하고 있답니다. 난민들의 입주는 이번 주 월요일(19일)부터 시작했어요. 200여명이 입주할 예정인데, 현재 10여 명 정도가 입주한 상태고요. 하지만 주민들에게 이를 통보하지 않아 행정적 절차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극우주의자들의 시위가 시작되었고, 일부 헬러스도르프 시민들도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습니다.  극우주의자들로 인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리고 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저희들은 월요일 저녁부터 텐트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독일의 경우 시리아 내전, 아프간 전쟁 그리고 아프리카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난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2012년의 경우 6만 4539명이 난민으로 등록되어 있고, 이 중 6000여명이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저렴한 물가로 인해 베를린은 다른 지역보다 거주자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텐트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학교를 둘러보기 위해 움직이는 데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 일부 주민들과 진보운동가들의 언쟁이 오가고 있었다. 

"왜 우리가 사는 지역에 난민수용시설이 들어서야 하는데?"
"어르신, 난민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들도 우리처럼 이웃으로 받아들여야지요."
"그런데 난 이것을 이해할 수 없어. 지금 독일을 봐봐. 거리에 가면 실업자들과 노숙자들이 천지잖아. 이들에 대한 투자가 우선이어야지, 왜 하필 난민들을 위해 투자하는데?"
"우리도 사실 (유대인을 박해했던) 나치를 위시한 파시즘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 너희들 사회주의자지? 사회주의자들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야?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 동독의 사실상 마지막 수장이었다)와 같은 독재자들이 나라를 망쳐놓고 시민들을 고통 받게 하지 않았냐고? 너희들 혹시 호네커와 같은 시대로 되돌려놓으려고 하는 거 아니야?"

언쟁은 계속 됐지만, 취재를 하고 있던 RTL기자가 이들을 잘 중재해 물리적인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또한 뒤에 경찰차가 한 대 있었던 것도 큰 몫을 했다. 한편 옛 학교 근처에서는 난민들에 대해 호기심을 나타내는 주민들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난민들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게 되리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낙후된 동베를린 지역에 NPD 지지가 높은 이유

요즘 독일은 선거철이다. 인종차별적인 NPD 선거벽보는 서베를린과 베를린 중앙지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지만, 동쪽 지역으로 오면 쉽게 접할 수 있다.
▲ NPD 선거벽보 요즘 독일은 선거철이다. 인종차별적인 NPD 선거벽보는 서베를린과 베를린 중앙지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지만, 동쪽 지역으로 오면 쉽게 접할 수 있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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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러스도르프 지역은 베를린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과거 동독 지역이었다. 실업률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아서 장기실업자 공적부조인 하르츠 IV(Hartz IV)의 인구대비 수령율도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더 높은 편이다. 특히 서베를린 지역과 비교하면 이는 더 두드러진다. 특히 실업률의 경우 구 동독지역은 10%에 육박하지만, 서독지역은 6%에 불과해 주민들의 이주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곳은 서베를린 및 중앙지역과 달리 외국인을 찾기가 힘든 지역 중 하나이다.

사회주의 독재정권이 남긴 어두운 유산(遺産)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헬러스도르프 지역에, 신나치 극우주의 정당인 NPD의 선거전략이 먹혀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현재 독일은 총선 시즌이다.) 참고로 필자가 살고 있는 집은 베를린의 중심지역인데, 집 주변에서 NPD포스터는 눈을 씻고 찾기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베를린 동쪽가면 상황은 달라진다.동독의 작은 시골로 향할 수록 NPD 포스터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이날 오후 10시 베를린 지역민방인 rbb에서 베를린 난민 전문가 및 진보운동가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떻게 이들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 중 엘리스-살로몬 대학에서 이민정책 및 보건복지정책에 대해 강의하시는 테다 보오데(Prof. Dr. Theda Borde) 교수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저도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하고, 난민들을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하는 사람이지요. 여기 있는 난민보금자리를 자주 찾아와서 시설을 어떻게 개선해야할지 그리고 이들과 소통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모을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10월 개강부터 이 거리로 나와 학생들과 주민들을 위해 난민 및 이민정책에 대해 세미나를 열 예정입니다. 저와 학생들이 경찰을 대신해 주민들에게 난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야 할 의무가 있어요."

또한 일부 시민들 중에서는 새로운 난민시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다가 텐트의 시민운동가들과 대화를 한 후 생각이 바뀐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난민보금자리 주변 안전문제를 강조했던 시민운동가도 있었다.

난민을 위해 밤을 새우는 독일 청년들

"저는 거주권을 사랑해요", "베를린은 나치를 반대합니다".
 "저는 거주권을 사랑해요", "베를린은 나치를 반대합니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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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나고 텐트로 다시 갔는데, 주민들과 언쟁을 했던 야네(Janne)라는 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그는 진보정당 당원이 아니라 브레멘 대학에서 이민정책에 대해 연구하는 평범한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왜 여기를 왔느냐고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1992년에 독일의 로스톡(Rostock)의 리히텐하겐(Lichtenhagen)에서는 끔찍한 일이 있었어요. 바로 극우주의자들이 난민들이 살고 있던 주택 해바라기집(Sonnenblumenhaus)에 화염병을 무더기로 던진 사건이었죠. 당시 난민들을 보호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지요.(이민자들을 보호하려는 경찰도 전무했던 상황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라 독일 내에 난민이 40만 명에 육박했다.) 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텐트로 나왔습니다. 물론 조금 전에 언쟁이 있었긴 했지만, 주민들간의 소통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고요. 오늘도 난민들을 위해서 밤을 세워야 될 것 같네요."

야네 뿐만 아니라 텐트에 주변에 모인 50여 명의 독일 청년들도 난민들을 위해 밤을 새우는 분위기였다.

이날 현장에서 빠져나오면서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떠올랐다. 물론 난민과는 다른 사안이지만, 일베의 왜곡된 역사의식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주의는 극우주의와 묘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시민운동가들과 해당분야 전문가들이 쉽지 않더라도 이들과 반드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보오데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태그:#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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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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