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게 캠핑은 '불장난'과 함께 다가왔다.
 내게 캠핑은 '불장난'과 함께 다가왔다.
ⓒ sxc

관련사진보기


첫 시작은 간단했었다. 장비도 없고, 유행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저 특이하게 한 번 놀러 가볼까 하는 심정으로 간 곳은 'OO강 오토캠핑장'이었다. 장비가 없으니 당연히 텐트는 칠 수 없고, 캠핑카를 대여해 하룻밤 자고 오는 걸로 정했다.

음식만 준비하면 되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역시 좋았다. 공기 좋고 애들도 캠핑카에서 잔다는 것에 설레며 기뻐했다. 모터카도 타고 애들하고 놀다가 저녁 먹고 경치 구경도 하고….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저녁 후 산책 중 관리사무실 옆 매점에 붙어있는 '화로대 대여'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근데 화로대가 뭐야?"

아내는 나름 '최초 완벽주의자'(시작은 완벽을 대비해 준비하나 끝에는 흐지부지하는 타입)이라 친절히 설명해줬다.

"응. 모닥불 피우는 거."

나는 나름 불장난을 좋아하는 터라 화로대를 빌리고 장작도 한 더미 샀다. 신문지에 불을 붙여 장작을 지피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남들은 숯불에 고기도 구워 먹고, 불 주위에 둘러앉아 맥주 마시며 도란도란 대화도 나누고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으니 그런게 될 리 만무했다.

바로 이거야! 마음 놓고 불장난을 할 수 있다니...

가족들은 이제 그만 들어가자며 지친 내색을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졸립다고 차로 들어간 뒤에도 나는 '잔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며 완전히 재가 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우겼다. 장작 한 더미를 혼자 다 태우며 놀았다.

장비가 없으니 의자도 당연히 없었다. 서 있다가 쭈그리고 앉았다가 하며 새벽이 올 때까지 불장난을 하며 밖에 있었다.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지금 현실을 잘 살고 있는가 고민도 해보고, 미래도 그려봤다. 나름대로 경건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홀로 낭만에 젖었다. 그때 생각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마음 놓고 불장난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 캠핑~!'

그래서 시작했다. 자동 텐트를 하나 사고, 자동 텐트는 공간이 없어서 그늘막이 필수라고 하니 그늘막도 샀다. '불장난을 하려면 의자는 있어야지'라며 의자 몇 개를 샀다. 의자가 있으니 당연히 테이블도 필요했다. 어디 그뿐인가. 집에서 이불을 가져가기 번거로우니 침낭도 샀다. 내게 불장난의 기쁨을 알려준 화로대는? 이건 구매의 핵심이었다. 의외로 살 게 많았다.

아내가 옆에서 각종 가격 비교 누리집을 뒤져 최저가나 중고 물품을 구입했다. 철저한 준비를 원하는 아내와, 뭐든지 대충대충인 남평은 뭐가 뭔지 모르는 아들 둘을 데리고 캠핑족에 끼게 됐다.

"다른 집 남편들은 예습도 하던데..."

바야흐로 첫 캠핑. 그런데 텐트와 그늘막 치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자동이라고 해놓고 도대체 뭐가 자동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늘막은 아무리 해도 평평하게 펴지지 않았다. 덥지도 않은 날씨에 땀은 비오듯 흐를 수밖에.

먼저들 와서 텐트 치고 한가롭게 앉아있는 선배(?) 캠핑족들이 왜 그리도 부러운지…. 아내의 강요로 하는 수 없이 몇 번 들어가본 블로그에 보면 초보들이 오면 다른 캠핑족들이 나서서 도와준다고들 하던데, 현실은 달랐다.

텐트 치고 그늘막 치는 데 소요된 시간은 어언 네 시간. 중간에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자는 말이 입 안에 맴돈 게 몇 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캠핑장 안에 놀이터가 있어서 아들 녀석들이 정신 없이 뛰어다니며 잘 논 것.

점심 때 도착한 캠핑장에서 '이제 얼추 됐나' 하며 의자 펴고 앉으니 어느덧 저녁때가 다 됐다. 옆에서 아내가 중얼거린다.

"다른 집은 남편들이 이런 거 알아서 하던데. 모르면 동영상 보고 예습도 하고…."

"내 성격 모르냐! 같이 산 게 몇 년인데…. 이만큼 한 것도 다행인 줄 알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말도 역시 입 안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시작된 첫 캠핑의 불장난은 고생한 만큼의 만족을 줬다. 모든 게 서툴지만 원래 초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고생고생한 덕분에 회를 거듭할수록 나의 장비 설치 능력은 일취월장했다. 물론 타고난 어설픔과 저주 받은 손재주, 게다가 대충주의까지 뒤섞여 남들에 비하면 실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부부가 야영지를 고르는 방법

우리 부부는 미리 자리를 예약해야 하는 캠핑장에선 무조건 끝자리를 택했다. 혹시나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곳에서는 슬금슬금 돌아다니며 이미 도착한 사람들의 성향을 나름대로 분석한 뒤 자리를 잡았다.
 우리 부부는 미리 자리를 예약해야 하는 캠핑장에선 무조건 끝자리를 택했다. 혹시나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곳에서는 슬금슬금 돌아다니며 이미 도착한 사람들의 성향을 나름대로 분석한 뒤 자리를 잡았다.
ⓒ sxc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캠핑을 다니다 보니 고민거리 혹은 난처한 상황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고르고 고른 자리가 비가 오면 물바다에 진흙탕이 된다든가, 방향을 잘못 잡아 그늘막이 손바닥만한 그늘만 제공한다든가…. 사실 이런 문제들은 내 실수고, 이를 악물며 장비를 다시 설치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미도착 이웃'이었다. 아내나 나나 원래 붙임성도 없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데다가 자연을 즐기며 한적하게 하루를 쉬고 싶어 캠핑을 하는데, 회사 등 단체나 몇 가족이 어울려 오는 집 혹은 술 마시고 늦게까지 소리 지르는 집 등이 문제였다.

그래서 미리 자리를 예약해야 하는 캠핑장은 무조건 끝자리로 골랐다(양 쪽에 끼어버리는 위험을 그나마 피하고자).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는 캠핑장에서는 슬금슬금 돌아다니며 이미 도착한 사람들의 성향을 나름대로 분석한 뒤 자리를 잡았다.

내가 너무 까다롭다고 여기지 마시라. 재미있게 놀자고 오는 사람들의 목적이 있듯이 우리도 이왕 온 거 목적을 이뤄야 하지 않겠는가. 애들이 너무 어리지는 않은지, 성인 남성의 비율이 높지는 않은지, 아이스박스 옆에 소주나 맥주가 박스째 놓여 있진 않은지 등이 내 선택의 바로미터가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캠핑장. 중년의 부부와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자녀들이 있는 일행이 보였다. 아들은 아빠를 도와 바닥에 돌멩이를 고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 우리 부부는 그 가족 옆 자리를 골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은 그날 저녁식사 도중이었다. 조용히 밥을 먹던 그 가족. 그때까지는 옆집 아저씨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었는데, 반주가 곁들여지자 그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 듯. 아저씨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조금 특이했다.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거나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는 게 아니라 말투 자체가 거슬렸다. 같은 단어의 반복, 독특한 언어습관이었다.

"쥐포 먹을까? 쥐포. 내가 쥐포 가져왔거든. OO야~, 쥐포 먹자. 쥐포. 차에 가면 쥐포 있어. 조수석에 빨간 비닐 있거든. 거기 쥐포 있어. 그 쥐포 든 봉지 가져와. 그 쥐포 가져오면 내가 쥐포 구워줄게. 쥐포 가져와라. 우리 쥐포 먹자."

같은 단어가 몇 번이나 반복되던지….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일종의 주문에 가까웠다. 그 아저씨의 이야기는 대상만 바뀔 뿐, 같은 패턴으로 늦은 시각까지 반복됐다. 쥐포에서 맥주로, 맥주에서 장작으로, 장작에서 라면으로 대체됐다.

우리 부부의 성격이 캠핑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요새도 우리는 캠핑장을 누빈다. 고성방가나 심야 음주, 불꽃놀이 등은 캠핑장에서 해서는 안 될 것들이다. 그 피해는 같은 공간을 쓰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퍼진다. 캠핑장 선후배님들에게 고한다. 그저 지킬 것만 지켜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야(野)한 이야기' 응모글입니다.



태그:#초보캠핑, #쥐포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