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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se 1

고스톱을 치기도 다반사였다. 오른쪽에 화투를 내려치고 있는 작자가 나다.
▲ 예전엔 피서를 가면 사진에서처럼 고스톱을 치기도 다반사였다. 오른쪽에 화투를 내려치고 있는 작자가 나다.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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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고 자란 고향 천안(天安)은 그 지명이 말해주듯 하늘 아래 가장 살기가 편한 고을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충남 제일의 도시인 천안은 언제 먹어도 맛있는 호두과자 외 유관순 열사와 병천순대 그리고 요즘 같은 한여름엔 더욱 각광을 받는 광덕산 계곡이 또한 유명하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모두 장성하여 타관객지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녀석들이 어렸을 적엔 나 또한 피서라고 하면 그야말로 한가락 하던 몸이었다. 지금이야 계곡에선 밥도 못 짓고 불도 못 피우게 강력 단속하지만 과거엔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따라서 광덕산 계곡에 죽마고우들과 놀러 가면 그 맑은 물에서 뛰노는 물고기들을 그물과 어항 따위로 잡아 어죽을 끓여먹기도 다반사였다. 어느 해 여름에도 그 같이 광덕산 계곡을 찾아 아이들과 어울려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또한 어죽을 잘 끓이기로 소문난 친구 덕분에 참 맛난 어죽과 술로 배를 든든히 채운 다음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하천변(河川邊)에 호박잎들이 무성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자 한 친구가 그만 현혹되어 그 호박잎을 따기 시작했다.

"이 호박잎을 삶아서 강된장에 싸먹으면 그 맛이 죽인다고~!"
"그야 그렇지만 남의 호박잎을 따면 되냐?"

그래도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이렇게나 많고 많은 호박잎이 달렸는데 내가 한 끼 먹을 호박잎을 딴다면 이건 고작 한강에 배 지나가서 흔적도 남지 않는 거야."

그러나 '비극'은 곧이어 벌어졌다. 어느새 쫓아온 그 호박잎의 주인이라는 50대 아줌마는 호박잎을 딴 친구의 뺨을 다짜고짜로 올려붙였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한 경거망동이니 한 번만 봐 달래도 소용없었다.

"그동안 따간 호박잎 값 다 물어냇!"

급기야 언성까지 높아지자 그 아줌마의 아들까지 쫓아왔다.

"엄마, 그만 하세요! 그리고 아저씨들~ 미안합니다. 광덕산과 계곡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툭하면 호박잎을 따가는 바람에 호박이 아예 열리질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뿔이 나서 그러신 거니까 이해하시고 얼른 가세요."

그 젊은이 덕분에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긴 했지만 우리 모두의 기분이 꿀꿀하기는 어쩔 수 없었다. 뺨을 맞은 호박잎 절취범(?) 친구는 시장에 들러 호박잎을 3000원 어치나 샀다. 당시 식당을 했던 그 친구는 자신의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친구의 아내에게 냉큼 삶아오라고 일렀다.

우리 친구들은 그런 친구의 모습에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그냥 바라만 보았다. 이윽고 삷은 호박잎과 걸쭉한 재래식 된장찌개가 밥과 함께 상에 올랐다. 친구는 그러자 마치 걸신 들린 사람처럼 와락와락 입에 처넣기 시작했다.

우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곤 그 친구만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윽고 그 친구의 말문이 열렸다. "니들은 이 맛난 걸 안 먹냐?" 우린 그제야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 # case 2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다.
▲ 술꾼은 어딜 가더라도 반드시(?)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다.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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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나처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로 인한 해프닝과 에피소드까지 덩달아 많기 마련이다. 너무도 더워서 도무지 견딜 재간이 없던 어느 해 한여름의 실화이다.

아들은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에 갔지만 둘째인 딸은 아직 학생이 아니어서 만날 집에서 '놀고먹는' 신분이었다. "우리 금강유원지로 놀러 가자~" 입이 크게 벌어진 딸과 아내를 차에 태우고 가던 도중 슈퍼에 들러 소주와 맥주에 수박도 한 덩어리 샀다.

이윽고 도착한 금강유원지의 그 차가운 물에 수박과 술을 담가놓고 본격적으로 물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물놀이를 하노라면 금세 몸이 차가워지고 배까지 고파지는 법이다. 따라서 마치 입구를 지키는 개미가 무시로 구멍을 드나들 듯 그렇게 물 밖으로 나와 시원해진 술과 수박을 연신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나브로 술기운이 만연할 수밖에 없었다. 물가라곤 하지만 엄연히 무더운 염천더위에 술을 잔뜩 먹어대자 아내의 잔소리가 속사포로 날아왔다.

"이 웬수야, 그만 먹어! 집엔 어떻게 가려고 그렇게나 술을 많이 마시는 겨?"

그러거나 말거나 이 어리석은 주당은 연신 술을 가까이 했다. "이번 한 번만 더 물에 들어갔다 나와선 낮잠이나 자야지. 그럼 술도 깰 거고…" 그리곤 다시 들어간 물속에선 아예 개헤엄을 쳐 더 깊숙한 곳까지 갔다.

한데 그 순간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엄습했다. 그 정체는 바로 소용돌이 물살이었다. 흡사 지독한 물귀신인 양 그렇게 내 전신을 돌돌 만 소용돌이는 사정없이 나를 끌고 금강유원지의 하류로 마구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래서 물놀이를 하다가 사람이 죽는구나!'라는 불안에 연신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어푸어푸~" 물이 목구멍과 귓속으로까지 마구 들이닥쳤지만 살자면 더욱 높이 울부짖어야만 했다.

아내가 대경실색하여 근처에서 놀던 젊은이들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어떤 젊은이가 서둘러 구명줄을 던져주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 생명줄을 가까스로 붙잡을 수 있었다. 겨우 물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거친 물살과의 사투 끝이었는지라 기진맥진하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양보한 돗자리에 누워 아까 마시고 빈 맥주병을 베개 삼아 한참을 꿍꿍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깜깜한디 안 갈겨??" 아내의 지청구에 눈을 뜨니 어느새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겨?"

잠을 넉넉히 잔 덕분에 술은 깼고 속도 비교적 멀쩡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내의 꾸지람은 계속되었다.

"내가 다시 당신이랑 물놀이 오면 성을 간다!"

나가며...
여기 <오마이뉴스 공모 - 野한 이야기>에 응모하고자 지나간 시절의 자료 사진을 찾았다. 그러자 아이들이 어렸을 적 함께 전국각지의 피서지를 찾아 헤맸던(?) 추억들이 다시금 커다란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이제 이틀 후면 중복(中伏)이자 대서(大暑)이다. 따라서 아직도 한 달 정도는 이 지독한 무더위와 더 싸워야 한다. 날씨가 워낙에 덥다보니 요즘엔 뭘 해도 의욕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을 안 할 순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보양식이 됐든 얼음 동동의 냉국수라도 먹어가며 이 여름이 순순히 물러가길 기다라고 볼 일이다. 지나간 사진에도 나오지만 과거의 나는 해마다 여름만 되면 '野한 스타일'의 아빠였다. 물가에 텐트도 잘 쳤고 숙박은 그 텐트 내지 민박을 선호했다.

나의 어떤 파란만장 피서 수난기는 이뿐만 아니라 책으로 써도 한 권은 족히 쓸 정도로 많다. 그러나 지면 상 이쯤에서 마치고자 한다. 끝으로 아이들이 예전처럼 우리부부와 같이 어디로든 피서를 갔으면 좋겠다. 비싼 호텔 말고 과거와 같이 살가운 정이 듬뿍한 민박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일정이라면 더욱 금상첨화겠고.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공모 野한 이야기 응모작입니다



태그:#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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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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