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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서 왜곡, 축소, 은폐한 혐의로 민주당이 고발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 5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취재기자들의 "수사결과 발표에 직권남용한 것 아니냐", "새누리당 입당을 고려하고 있나" 등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자리를 나서고 있다.
▲ '묵묵부답'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서 왜곡, 축소, 은폐한 혐의로 민주당이 고발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 5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취재기자들의 "수사결과 발표에 직권남용한 것 아니냐", "새누리당 입당을 고려하고 있나" 등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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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7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 언론의 시선이 집중됐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자신의 책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출판기념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김 전 청장이 퇴임한 지 한달여 만에 연 행사였다.

수십여 명의 기자들이 김 전 청장 주변에 몰려들어 "서울경찰청이 수서경찰서에 압력을 행사했느냐?", "12월 16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지시했느냐?", "새누리당에 수사 상황을 보고했나?" 등의 질문을 퍼부었다. 이에 김 전 청장은 "내 원칙은 투명과 공정"이라며 "그런 흐름에서 원칙을 지켰다고 자신있게 말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초부터 진행된 경찰의 감찰 결과는 김 전 청장에게 원칙도, 공정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대선 국면의 분수령 가운데 하나였던 지난해 12월 16일 하루 동안 수차례 회의(최소 3회)를 주재하며 축소·은폐·부실수사 발표를 주도했다. 특히 그는 디지털증거분석 결과가 나오기 수시간 전부터 '한밤중 발표'를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12월 16일 오후 9시 회의에서 '한밤중 수사결과 발표' 최종 결정

지난 12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경찰의 감찰 결과에 따르면, 먼저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수서경찰서에 '12월 16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요구했다. 김 서울청장은 12월 16일 오후 늦게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에게 경비전화(경찰내부에서만 연결되는 행정전화망)로 전화를 걸어 "(중간수사 결과) 발표 가능한가?"라고 물었고, 이 서장은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김 청장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맞지 않아?"라고 다시 물었고, 이 서장도 "맞다, 안하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김 청장이 이 서장에게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종용한 것이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6시 30분에는 김 청장이 주재하고 정보부장·1과장, 수사부장·과장·2계장 등이 참석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후 오후 7시 40분께 김용판 서울청장은 권아무개 홍보담당관을 청장실로 불렀다. 당시 청장실에는 최현락 수사부장과 이아무개 수사과장도 있었다. 서울청 수사 분야 핵심간부들이 모인 셈이다. 회의 주제는 역시 중간수사 결과 발표였다.

권 홍보담당관이 경찰 감찰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김용판 서울청장이 "디지털증거분석이 거의 끝나가는데 언제 언론 보도가 가능할 것 같은가?"라고 물었고, 권 홍보담당관은 "21시까지 보도자료를 작성해 배포할 수 있다면 (오늘 언론 보도가) 가능하고, 그 이후이면 내일 9시 이후에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이 과정에서 이아무개 수사과장이 "(보도자료 작성·배포는) 23시경이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고 하자, 김용판 서울청장은 "그럼 23시에 배포하고 브리핑은 익일 9시경에 하자"고 말했다. 디지털증거분석 결과가 나오기 수시간 전에 '한밤중 발표'가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 

핵심 간부 회의가 끝난 뒤 이날 오후 9시께 김용판 서울청장과 최현락 수사부장, 권아무개 홍보담당관, 이아무개 수사과장, 장아무개 사이버범죄수사대장 등이 참석하는 회의가 다시 열렸다. 여기에서도 중간수사 결과 발표가 중요한 현안으로 논의됐다.

김아무개 서울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은 경찰 감찰에서 "이날 회의 과정에서 분석이 곧 마무리되면 가능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브리핑 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합의에 도달했다"며 "이런 합의에 따라 저녁 11시경 수서서에서 브리핑 자료를 배포하고, 정식 브리핑은 다음날(12월 17일) 오전 9시경 수서서장이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진술했다.

김용판 서울청장 "김기용 경찰청장에게도 보고했다"

지난 2012년 12월 17일 오전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17일 오전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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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의에서 '12월 16일 오후 11시 중간수사 결과 브리핑 자료 배포, 12월 17일 오전 9시 수서경찰서장의 브리핑'이 최종 결정되자 김용판 서울청장은 경비전화로 다시 이 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청장은 "브리핑은 시간상 어려우니까 12월 16일 23시에 자료를 배포하고, 브리핑은 내일 오전 9시에 하도록 준비하라"라며 "본청장께도 보고했다"고 말했다.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에게도 '12월 16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보고했다는 것이다. 다음날(12월 17일) 김정석 경찰청 차장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김용판 서울청장이 김기용 경찰청장에게 16일 오후 9시쯤 수사결과를 보고했고 김기용 청장이 '원칙대로 발표하라'고 말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관련기사 : 국정원女 수사 심야발표 "김기용청장 '원칙대로' 지시").

김기용 경찰청장-김용판 서울청장으로 이어지는 경찰 핵심 지휘부에서 '12월 16일 한밤중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주도하고 승인한 것이다.
 
다만 중간수사 결과 발표 시기를 두고 서울청과 수서경찰서 사이에 약간의 온도차가 있었다. 이날 이아무개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이 "23시 (대면) 브리핑이 가능한가?"라고 물어서 이광석 서장이 "시간이 늦다, 내일 아침에 (대면 브리핑을) 하면 안되는가?"라고 답변했다. 이후 김용판 서울청장이 이 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면) 브리핑은 시간상 어려우니까 23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대면) 브리핑은 내일 9시에 하자"고 말했다. 이는 이미 7시 40분 전후 서울청장실에서 열렸던 핵심 간부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었다.

서울청에서 디지털증거분석을 완료한 시각은 이날 오후 9시 15분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오후 10시 30분에 수서경찰서에 전달됐고, 30분 뒤인 오후 11시 중간수사 결과가 담긴 보도자료가 언론사에 배포됐다(관련기사 :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일지 : 2012년 12월부터 2013년 5월까지). 결국 디지털증거분석 결과가 나오기 수시간 전에 김용판 청장이 수차례 회의를 주재하며 속전속결로 '한밤중 발표'를 강행한 것이다.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경찰 감찰에서 "분석결과물을 받아 보고는 수사의 필요성이 상당히 높아 보였고, 중간수사 발표가 무리였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검찰 "김용판이 직접 챙겨"... 경찰은 김용판-최현락 감찰 안해 

검찰도 김용판 서울청장이 '축소·은폐·부실 수사' 결과 발표를 주도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국정원 관련 의혹 사건 수사결과 발표문(6월 14일)에서 "김용판 서울청장은 디지털증거분석이 진행된 12월 14일부터 16일 사이 주말에도 출근해 보고받으며 직접 상황을 챙겼다"고 적시했다.

서울경찰청장은 보고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컴퓨터가 아닌 수기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는 등 직접 보고상황을 챙기며 수시로 보고받아, 노트북에서 복구된 메모장 문서파일 내용 및 인터넷 접속 현황 등 중요 상황을 파악함.

검찰은 "김용판 서울청장이 민주통합당 고발장을 가져다가 직접 검토했고, (직접 보고받는) 과정에서 수사팀에 증거분석 상황을 알리지 말라고 (서울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수사팀을 철저하게 배제시킨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감찰 과정에서 김용판 서울청장을 조사하지 않았다. 감찰결과 문서 맨끝에 있는 '참고사항' 항목에는 이렇게 간단하게 적혀 있다.

중간수사 발표 시기 등 의혹 관련, 前 서울청장(김용판)은 旣 검찰에 고발되어 수사중인 사안으로 관련자 및 사실관계 확인치 않음

경찰은 감찰 과정에서 김용판 서울청장이 '한밤중 발표'를 주도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정작 그에게 이를 확인하는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또다른 핵심인물인 최현락 수사부장도 감찰하지 않았다. 김 서울청장의 핵심측근이었던 최 부장은 이후 경찰청 수사국장으로 승진했다.


태그:#김용판,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경찰 감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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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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