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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20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서울광장 수놓은 수만개 촛불 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20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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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9시 뉴스를 집중해서 열심히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작년, 지난 대선 전이다. 살면서 9시 뉴스를 일부러 열심히 보지 않게 됐다. 바로 지난 대선 후부터 지금까지다. 작년 12월엔 만삭의 배를 이끌고 남편과 아직 어린 두 아이들과 함께 정권교체를 희망하며 광화문에 나가 희망을 꿈꾸었다. 바라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그날부터 우리집에서 뉴스는 가끔 EBS뉴스나 선택되는 정도다. 스마트폰으로 SNS를 보며 각계각층의 생각들을 주워 담기라도 했는데 올해 2월 초 셋째 출산 후엔 더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흘러 아줌마의 유일한 낙인 드라마도 거의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다시 번지는 촛불, 몰랐다

바쁜 와중에도 뉴스를 본다한들 정직한 소식을 들을 수 있겠냐만은 뉴스도 신문도 보지 않고 세 아이들에게만 매달려 지내다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았다. 셋째 출산 전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들었는데 퇴근한 남편도 나를 도와 세 아이들과 씨름하다보면 지쳐 쓰려져 잠들어버려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사는 날들의 연속이다.

놀이터에 나가 아이들을 보며 엄마들끼리 수다를 떨기도 하지만 눈으로 아이들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는 두어마디 연결하기도 힘들다. 그 두어마디도 거의 서로의 아이들 이야기로 채워지고 가끔 등장하는 뉴스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아동범죄, 성범죄, 살인사건 등, 내 아이를 위협하는 뉴스 몇 줄이 전부다. 결혼해 애 딸린 아줌마가 되고 보니 연예인들의 스캔들도 그리 큰 수다감이 되지 못했다.

남편에게  다시 촛불이 켜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다. 연일 국정원 불법선거개입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촉구하는 범국민 촛불시위가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뉴스를 보지 않아서, 뉴스에서 보여주지 않아서, 애들 키우느라 바빠서 몰랐다는 변명을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운 이 현실이 참담하기까지 하다.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과 함께 했던 5년 전 연애시절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과 함께 했던 5년 전 연애시절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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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여름, 남편과 연애시절 우리의 연애장소는 대부분 광화문이었다. 참 열심히 광장으로,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며 권리를 요구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육아에 파묻혀 촛불이 켜지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니. 아이를 셋이나 키우면서, 세아이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부모로서 아이들의 미래가 퇴행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바꾸려 애쓰지도 않고 있는 내가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럽다. 이렇게 정치에서 멀어져가고, 조작된 언론에 눈이 먼 아줌마로 늙어가겠구나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처럼 아이들이 일찍 잠든 밤,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 일을 뒤로 하고 책상 앞에 앉아 흘려보낸 뉴스들을 훑어본다. 국정원 불법선거개입에서 시작한 뉴스는 'NLL 포기발언'으로 흘러가더니 2007 남북정상회담 녹취록의 공개여부로 공이 넘어가고, 녹취록의 진위여부라는 네트에 걸려 경기가 이상해지더니 이젠 국정조사를 앞두고 주전인 야당 의원이 국정조사위원에서 상대방의 얼토당토하지 않은 요구로 빠지는 상황에 처했다. 이 사이사이 연예면은 연일 스타들의 파파라치 사진들과 함께 열애설로 수놓아지고 있었다.

내가 낳은 애 셋 이름도 마구 바꿔 부르는 깜빡깜빡하는 아줌마에겐 필기를 하며 시험공부 하듯 봐야 이해가 겨우 되는 뉴스들이었다. 류현진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길래 TV에 내내 야구중계만 나오냐는 바보같은 질문을 하는 아줌마이지만 지난 뉴스를 보면서 국민이 알고자 하는 진실은 하나인데 그 뉴스보다 다른 뉴스들이 연일 더 비중 있기 취급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도 '진실'도 사라진 뉴스

세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줄 수 있을까?
▲ "거꾸로 가는 역사는 싫어요!" 세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줄 수 있을까?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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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고자 찾아본 뉴스에는 '사실'조차 제대로 담겨있지 않았다. 권력에 장악당한 공중파 방송에선 촛불은 볼 수 없고, 1980년대 외신에서 광주항쟁 뉴스를 보던 것처럼 CNN에 보도된 광화문의 촛불을 봐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첫째가 내년이면 여섯 살이라,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낼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2년 반 후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잘 먹고 싸고 놀고 자는 걸 돌봐주던 1차원적인 육아에서 교육이라는 육아로 한 단계 올라서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어린이집에도 다니지 않고 그저 집에서 동생들과 뒤엉켜 놀기만 하던 첫째가 국가가 만든 교육기관에 들어가 국가의 영향 속에 교육을 받고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육아에 지쳐 바쁘다는 핑계로 정치에서 멀어져 지낼 수만은 없는 때가 되었다.

아직 막내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다섯 살, 세 살, 한 살인 세 아이 끌고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드는 건 물리적으로 힘들지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되새기며 집에서라도 촛불을 켜고 아이들에게 설명해줘야겠다. 애들이 뭘 알겠나 싶어도 알건 다 아는 게 아이들이다. 비록 일련의 사건들이 민주주의 역사를 퇴행시키고 있지만 촛불은 5년 전 촛불에서 분명 성장했다. 5년 전 촛불을 들고 연애하던 남편과 내가 5년이란 시간 동안 세 아이를 낳은 부모가 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집만 해도 촛불 두 개에서 다섯 개로 자라지 않았나!

지지하던 대통령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우리의 5년을 책임져야할 대통령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 '사실'을 명확하게 조사해 국민이 알고자 하는 '진실'을 알려주시고, 그 '사실'과 '진실'을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바로잡아 나갈지 '진심'을 다해 말씀해주시길! '진실'을 말하는 것 보다 '진심'을 말하는 것이 더 어렵고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라고 애 셋 키우는 아줌마가 감히 대통령께 조언을 드린다. 이 조언은 비단 대통령만이 아닌 국민을 대변하는 모든 정치인들을 수신인으로 보내는 바이다.

6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 긴급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2차 촛불문화제'에 가족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촛불 가족 구호 "바꾼 애들 구속! 바뀐 애는 방빼!" 6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 긴급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2차 촛불문화제'에 가족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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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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