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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중구 대흥동 460-1번지 (T.010-5421-5954)
▲ 열린 문화주차공간 'Parking' 대전시 중구 대흥동 460-1번지 (T.010-5421-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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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한 살이에 비유를 한다면 지금 대전 지역 문화예술은 이제 막 알을 까고 태동을 시작한 애벌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열악한 지역의 한계를 딛고 문화예술에 대한 결핍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늘어날수록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장소가 바로 '대흥동'이다.

상권이 죽어가고 낙후한 상가와 노후한 주택 비중이 날로 늘어가는 대표적인 구도심 대흥동에는 미국의 그리니치 빌리지와 같은 이유(저렴한 임대료)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있다. 이들이 펼쳐서 보여줄 내일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고무적이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5월 초 오픈을 한 문화공간 'Parking'은 지역문화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될지 기대와 주목을 한꺼번에 받고 있는 곳이다. 방치된 주차장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산뜻하게 단장된 'Parking'에서 10일, 이곳의 공동대표인 화가 박석신씨를 만났다.

이름 속에 숨겨진 역사와 사연을 그리는 '내 이름이 꽃이다' 프로그램에서 직접 찾아온 손님의 이름을 그리고 있는 화가 박석신씨.
▲ 'Parking'의 대표이자 화가 박석신씨 이름 속에 숨겨진 역사와 사연을 그리는 '내 이름이 꽃이다' 프로그램에서 직접 찾아온 손님의 이름을 그리고 있는 화가 박석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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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주차하고 가세요, 여기는 문화주차공간 'PARKing'

- 먼저 '문화주차공간 PARKing'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괜찮은 이름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원래도 이곳이 버려진 주차장이었으니 그 공간의 의미를 살려 보기로 생각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도 와서 주차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PARK'인데, 우연히 영문으로 하니깐 또 내 이름의 'PARK'과 마침 같았다. '박씨 성을 가진 예술가가 이 공간에서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더라. 예술가도 뭔가 사람들과 같이 소통하고 늘 진행 중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갤러리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성취에 머물러 있기 쉬운데, 이곳에서만큼은 예술가가 스스로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많은 공간이 있는데, 하필 폐주차장을 이용하게 된 이유가 있나?
"우연히 지나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그때 이 건물 앞에는 쓰레기가 수북하게 놓여 있고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여기 골목 자체도 대흥동에서도 훨씬 더 죽어 있던 공간이었다. 어두침침했다. 도시에서 건물이 새로 지어진다는 것보다 이제는 재생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던 차에 이 공간이 눈에 띄었다. 주위의 만류가 있었지만 이곳을 선택했다. 공동대표인 목공예가 이일섭씨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새롭게 탄생했다. 덕분에 골목도 밝아졌다."

- 공간의 이름에 담긴 의미와 폐주차장을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창조한 사연이 재미있다. 이곳이 다른 공간들과 차별화된 것이 있다면 말해 달라.
"이곳은 전시대관이 중심인 기존 갤러리들과는 다르다. 전시가 중심이 아니라 공연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문화공간' 혹은 '놀이방' 또는 '사랑방'의 개념으로 출발했다. 이곳에 오면 언제나 예술가를 만날 수 있고 직접 참여할 거리가 있으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좋아해주는 것 같다."

찾아온 손님들에게 대화를 나누며 각자에게 맞는 이름을 그리고 있는 화가 박석신씨
▲ 내 이름이 꽃이다 찾아온 손님들에게 대화를 나누며 각자에게 맞는 이름을 그리고 있는 화가 박석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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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움을 벗어던진 주차장, 시민에게 손을 내밀다

- 대표적으로 어떤 행사가 열리나?
"지금 이곳에는 '내 이름이 꽃이다'에 참여한 시민들의 500여 점 넘는 작품이 걸려 있다. 오픈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이름과 사연만 모아놓은 게 700명이 넘어가고 있다. 액자 안에는 모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들어 있다. 보통은 '이름을 쓴다'고 하지만, 여기에서는 '이름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이름 안에는 그 사람의 역사가 들어 있다. 기억들, 추억들, 아픔도 들어 있을 수 있고, 기쁨도 들어 있다. 그 이름 안에 모든 게 내재해 있다고 느껴진다. 실제로 와서 이름 속에 담긴 사연들이 덧붙여진다. 이름마다 독특한 뉘앙스가 있어서 그 사람의 성향과 인생을 담을 수 있다. 예술가인 나는 그 한 사람의 이야기와 역사를 그림으로 그리고 낙관 옆에 짧은 시구로 글을 쓴다. 현장에서 예술가와의 만남을 통해서가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업에서는 한글이 가진 장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글의 모양이나 어감에는 한 사람의 인생 스토리와 연관시킬 수 있는 시각적인 요소가 많다. 관객과 예술가가 직접 만나서 소통을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림으로 정리해서 그려준다. 그랬더니 너무들 행복해 한다, 정말!"

노후한 공간들을 재생시키기 위한 프로젝트. 나무로 만들어진 새 모형에 지나가는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꿈과 희망을 색칠해 넣는 작업이다. 단조롭고 평면적이었던 공간들이 살아나고 직접 참여한 시민들이 공간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한다.
▲ 'Parking'에서 진행중인 '파랑새 프로젝트' 작품 노후한 공간들을 재생시키기 위한 프로젝트. 나무로 만들어진 새 모형에 지나가는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꿈과 희망을 색칠해 넣는 작업이다. 단조롭고 평면적이었던 공간들이 살아나고 직접 참여한 시민들이 공간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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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한 시민들이 이름에 담긴 자신의 역사를 그림으로 마주하면 무척 감동하고 뭉클할 것 같다. 그밖에 진행 중이거나 진행했던 행사는 없나?
"이 공간 밖에서는 '파랑새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새 모형에 지나가는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꿈과 희망을 색칠해 넣는 작업이다. 단조롭고 평면적이었던 공간들이 살아나고 직접 참여한 시민들이 공간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어 반응이 좋다. 이밖에는 '동명 중학교'에서는 전교생의 이름과 꿈을 그려서 복도에 걸어주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졸업할 때 졸업장과 함께 졸업선물로 갈 것이다."

-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고 싶다. 소개해 달라.
"현재 준비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에는 '드로잉 콘서트'가 있다. 공간 안에서 독주가 가능한 연주자 1인을 초빙을 해서 마이크나 장비를 쓰지 않고 직접 관객과 마주 앉아서 연주를 하면 화가는 관객과 연주자 사이에서는 그들의 모습을 그린다. 크로키나 드로잉을 할 수도 있다. 그날의 개런티는 그림으로 전달한다. 연주자들은 디자인 요소가 필요할 때가 있다. 자기를 그린 그림이 포스터에 들어간다든가 실사 출력으로 해서 무대 배경이나 티켓, 리플릿에 활용한다든가. 그런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일종의 '협업'인 셈이다. 그날 나온 작품 일부는 현장 경매를 해서 그날의 뒤풀이 경비로 쓰인다. 그 행사를 주기적, 정기적으로 할 계획에 있다. 이것 외에도 '엿장수의 가위'라는 프로그램도 계획 중에 있다. 어느 그림의 부위를 관객 스스로가 선택해서 마음대로 잘라보는 것이다."

공간 밖에서는 구도심 재생프로젝트인 '파랑새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공간 밖에서는 구도심 재생프로젝트인 '파랑새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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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아이디어 뱅크, 손으로 생각하다

- 미술이라는 한 가지 장르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끊임없는 교류하는 모습이 흥미롭고 활기 차 보인다. 이런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무언가 진행되고 있는 이 자체가 전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은 강의실에서 좋은 강의의 소재가 되어준다. 늘 이 공간에 오면 끊임없이 뭔가가 돌아가고 있고 움직이고 있다. 실제로 타 도시에서 아름아름 찾아서 왔는데 참여하고 나서 반응이 좋으니 나 역시도 고맙고 기쁘다.

참여해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이 공간은 사실 의미가 없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다보면 애써 찾지 않아도 좋은 아이디어들이 생겨난다. 나의 슬로건이 있다. 바로 '손으로 생각하자'이다. 화가는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손발이 움직여야 생각도 움직인다. 생각을 하고 나서 손이 움직이게 하지 말고, 늘 움직이다 보면 또 다른 생각들이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찾아온 손님들은 화가가 자리를 비우면 이 인물 모형에게 인사를 건네고 간다고 한다.
 찾아온 손님들은 화가가 자리를 비우면 이 인물 모형에게 인사를 건네고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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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간에 대한 포부가 엿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이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예술도 사회적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종합병원에 가서 환자와 보호자 또, 병원 내부 구성원들과 같이 서로 평상시 가지고 있으나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화가인 내가 그림을 통해 연결시켜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평소 서로에게 고맙거나 미안한 마음을 표현 못하니까 예술가가 중간에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연결해주는 것인데 기대 이상으로 감동을 받고 펑펑 울더라. 바로 그런 것처럼 예술이 참여와 소통을 통해 단절되어 있던 마음들을 소통 시켜주고 묵혀 있던 응어리들을 해소 시켜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바로 이 공간에서 시작이 되면 좋겠다. 이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다."

자립을 꿈꾸는 여기는 '유료 주차장'입니다

-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갖고 시작했더라도 현실적으로 공간을 유지하는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공간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리라 본다.
"시에서도 원도심과 관련하여 지원 사업이 많이 있긴 한데, 개인적인 욕심은 '자립'해 보자는 것이다. 외부에서 지원 받고 하는 것보다 내부 순환 구조를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긴 '무료 주차장'이 아니라 '유료 주차장'이다. 함께 참여했던 시민이나 관람객들이 자신이 행복했고 감동 받은 만큼 기부를 하는 것이다.

참여자들이 예술 기부를 하면, 그 금액은 또 환원되니까 자생력을 지닌다. 예술가 지망생들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망생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하여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다져가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현재 관이나 단체에서 지망생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단편적이다. 레지던스 사업이 있다고는 해도 소수 일부에게만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작업을 유지해 가는 것이 대다수 지망생들에겐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관이나 단체에서 기획해서 내려오는 지원만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가능성과 용기, 혹은 희망을 발견했으면 한다."

지금 이곳에는 '내 이름이 꽃이다'에 참여한 시민들의 500여 점 넘는 작품이 걸려 있다. 오픈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지금 이곳에는 '내 이름이 꽃이다'에 참여한 시민들의 500여 점 넘는 작품이 걸려 있다. 오픈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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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주차장, 대흥동의 내일을 이야기하다

- 공간이 자리한 '대흥동'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지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대전은 자랑할 만한 이렇다 할 유산이 없다. 유흥문화 위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도시가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함이 있다. "대흥동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예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점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 것 같다. 각양각색의 예술가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도시가 생각보다 없다. '그리니치 빌리지'는 기획해서 모여들게 만든 측면이 강하다. 대흥동에선 근처 막걸리집에만 가도 온갖 장르의 예술가들을 다 만난다. 그게 이곳만의 매력이다."

- 대흥동의 매력이자 자산인 '예술가'들이 굳이 대흥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집세가 싸다. 아이러니하게도 관에서 투자한다고 하면 집세가 올라갈 것이고 세를 빼야 할 위기에 처하는 예술가들이 당장 생길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예술가들이 있다. 이러한 강점을 충분히 활용을 해야 한다. 이것은 누가 억지로 모이려고 해도 모일 수 없다. 관이라는 곳은 묘하게 시각적으로 보이는 사업이 아니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원금을 줘봤자 표시가 안 나거나 정산도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은 없나?
"관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지원을 했으면 좋겠다. 돈을 주되, 명분 있는 자금을 권장할 만한 사업에 지원하는 것이다. 독특한 카페라든가, 특색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매칭을 지원하면 예술가는 예술가대로 사업장은 사업장대로 서로 '윈윈'할 수 있다. 그런 협력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실질적인 지원이다. 간판만이라도 독특하게, 대문이라도, 담장 하나만이라도 독특하게 해놓으면 죽은 거리가 살 수 있다. '문화가 미래다'라고 말만 하지 말고, 실제로 현장에 필요한 것을 지원했으면 한다.

오픈 행사를 할 때 뿌듯한 게 있다. 대부분 전시를 하면 집안사람이나, 그림 그리는 선후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기 오픈할 때는 기업인, 공무원, 일반 자영업자들, 예술가들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수백 명이 모였었다. 그게 너무너무 자랑스러웠다. 예술가들도 말로만 '융복합'이라고 하지 말고 실제로 현장에서 모이고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정기적인 방송 출연과 대학 강의, 거기에 개인 작업과 이런 공간까지 운영하려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보통의 사람은 감당하지 못 할 것 같다.
"바쁜 게 너무 좋다. 오히려 에너지가 너무 넘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웃음)"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어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게 될 시민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애벌레 그림을 많이 그렸다. 애벌레를 하찮은 미물로 생각하기 쉽다. 사람들은 애벌레을 보면서 징그러워하거나 혐오스럽게 바라보지만 그런데 사실은 저 안에 어마어마한 것들이 들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잘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애벌레 같은 존재감! 이 공간은 누군가 와야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아라! 그것이 곧 예술이 될 수 있다."

(문화공간 'PARKing'은 일주일 내내 운영한다.)

덧붙이는 글 | 문화공간 PARKking

찾아오시는 길: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460-1(수라면옥 뒷길) T. 010-5421-5954



태그:#문화공간 ‘PARKING’, #박석신, #대흥동 열린문화공간, #지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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