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6일(토)엔 사단법인 대전충남민예총에서 주관해 온 마을소생 프로젝트 ‘목척시장에 부는 바람’이 그동안 함께 참여해온 예술가들과 마을의 주민들이 함께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마을잔치)을 마련했다.
▲ 목척 시장에 부는 바람 16일(토)엔 사단법인 대전충남민예총에서 주관해 온 마을소생 프로젝트 ‘목척시장에 부는 바람’이 그동안 함께 참여해온 예술가들과 마을의 주민들이 함께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마을잔치)을 마련했다.
ⓒ 국은정

관련사진보기


외부인과 주민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잔칫상에는 뜨끈한 육개장과 밥, 그리고 할머니들의 손맛이 가득 담긴 겉절이와 막걸리, 음료수가 단출하게 차려졌으나 서로에 대한 거리감이나 서먹함은 느낄 수 없었다.
▲ 목척시장 '마을잔치' 외부인과 주민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잔칫상에는 뜨끈한 육개장과 밥, 그리고 할머니들의 손맛이 가득 담긴 겉절이와 막걸리, 음료수가 단출하게 차려졌으나 서로에 대한 거리감이나 서먹함은 느낄 수 없었다.
ⓒ (사)대전충남민예총

관련사진보기


몇 달 전부터 대전 원도심 활성화의 일환으로 퇴화된 마을 살리기에 우리 지역 예술가들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구도심이 노후되어 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싶은 마음으로 목척시장(대전시 중구 선화동 일대) 골목을 처음 찾았던 나는 섣부른 예상과 판단을 서둘러 폐기해야만 했다.

지금 이곳은 어딘가, 나는 왜 이곳에 서 있는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이 일상에 찌들어 있던 내게는 전혀 필요치 않았던 질문들을 자꾸만 걸어왔다. 그 질문들은 가슴 한편 얌전히 가라앉아 있던 앙금들을 흩어놓았다. 잠들어 있던 추억과 감성을 깨우는 그곳의 기운에 압도당한 것이다.

퇴락한 도시의 쓸쓸함과 조용히 사라져 가는 것들의 무게가 먹먹하게 가슴을 짓눌렀다.
▲ 목척 시장 일대의 마을 건물 퇴락한 도시의 쓸쓸함과 조용히 사라져 가는 것들의 무게가 먹먹하게 가슴을 짓눌렀다.
ⓒ 국은정

관련사진보기


흑백사진 속에서나 맞닥뜨릴 것만 같은 낡고 헤진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주 오래 전 존재하다 몰락해 버린 유년의 유적 같기도 했다.
▲ 목척 시장 일대의 마을 풍경 흑백사진 속에서나 맞닥뜨릴 것만 같은 낡고 헤진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주 오래 전 존재하다 몰락해 버린 유년의 유적 같기도 했다.
ⓒ 국은정

관련사진보기


분주한 일상에 쫓겨 스치듯이 지나치던 도시의 흔한 풍경들과 이곳은 분명 많은 것들이 달랐다. 흑백사진 속에서나 맞닥뜨릴 것만 같은 낡고 헤진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주 오래 전 존재하다 몰락해 버린 유년의 유적 같기도 했다. 퇴락한 도시의 쓸쓸함과 조용히 사라져 가는 것들의 무게가 먹먹하게 가슴을 짓눌렀다. 입김을 불면 금세 먼지처럼 흩어져 버릴 것만 같은 풍경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더 애틋하고 간절하게 만들어버리는 오묘한 마력을 지녔다.

유적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의 발길처럼 조심스럽게 마을 골목 곳곳을 둘러보다가 '과연 이런 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싶던 그 순간,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눈이 번뜩 뜨였다. 따스한 햇살이 머무는 곳에서 할머니 세 분이 다정하게 앉아 도토리를 까고 계셨다. 차갑던 골목이 일순간 환해지는 느낌! 낯선 외부인의 방문에도 의심의 눈초리나 적개심은 보이지 않으셨기에 나는 슬그머니 할머니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마치 오래 알던 사이처럼 도토리 까기를 거들며.

"도토리 까세요?"
"이, 이것들 다람쥐 겨울 식량인데 우리가 얻어왔네. 종일 까봐야 얼마나 나올까 싶어."

이 마을 최고령인 김 할머니(95)와 이 할머니, 박 할머니께서는 이곳에서 30~40년을 세 들어 사셨다고 한다. 수십 년이 넘도록 이 마을에 떠돌았던 개발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전설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개발이 되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데 개발이 싫지 않으시냐고 물었지만 역시나 의외의 대답이 날아왔다.

"여기 죄 빈 집이야. 우리야 어딜 가 살아도 똑같아. 개발을 반대할 권리나 있나? 개발되면 그 핑계로 다른 동네에도 가서 살아보는 거지."

할머니들의 솔직한 발언에 뜨끔해진 나는 다시 요즘 마을에 찾아든 변화에 대해서 넌지시 여쭈어 보았다. 조용하던 마을에 낯선 발길들이 성가시진 않을까 싶었다.

"봐봐, 우리 사는 건 보이는 게 다야. 뭐 자랑할 게 있간디? 사진도 찍어가고 이것저것 물어싸도 덧댈 것도 없지 뭐야. 그래도 젊은이들이 와서 뭘 자꾸 벌여 놓으니깐 한 번씩 가서 들여다봐도 영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살 만한 것도 없고, 그 뭣이냐,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없으니깐 어째 심심하대."

이런 변화들이 싫지만은 않은 눈치셨다. 오히려 그 말씀들에서 행사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해 보고 싶은 할머니들의 속내가 읽혔다. 젊은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서 쉽게 흉내낼 수 없는 할머니들의 손맛 말이다! 다정한 다람쥐처럼 붙어 앉아 도토리를 까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짧지만 헛되지만은 않았던 것일까. 세 할머니 중 한 분이 마침 동향이셨다. 이내 마음 한 구석을 내어 주셨다.

"이왕 왔으니께 우리 집서 자고 가. 밥도 줄 테니까 먹고, 응? 이걸로 낼 묵 만들면 그것까지 먹고서 가."

빈 소리가 아닌 진심이라는 게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마음 꼬투리가 뭉클하고도 아릿했다. 조만간 또 찾을 것을 약속드리고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사)대전충남민예총에서 주관한 마을 소생 프로젝트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골목 극장'은 총 6회에 걸쳐 전문가의 해설이 곁들어진 가운데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여 상영하였다.
▲ '골목 극장' 상영 중 (사)대전충남민예총에서 주관한 마을 소생 프로젝트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골목 극장'은 총 6회에 걸쳐 전문가의 해설이 곁들어진 가운데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여 상영하였다.
ⓒ (사)대전충남민예총

관련사진보기


매월 격주 토요일마다 총 12회에 걸쳐 열리는 프리마켓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 아트프리마켓(벼룩시장) 매월 격주 토요일마다 총 12회에 걸쳐 열리는 프리마켓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 (사)대전충남민예총

관련사진보기


화가가 마을 주민들의 이름을 예술로 승화시켜 주는 작업을 진행했다. 마을 주민들의 진지하고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 살아있다.
▲ 목척 시장 '마을잔치' 전경 화가가 마을 주민들의 이름을 예술로 승화시켜 주는 작업을 진행했다. 마을 주민들의 진지하고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 살아있다.
ⓒ (사)대전충남민예총

관련사진보기


그 후로 두어 번 더 마을을 찾았고, 마침 지난 16일엔 대전광역시가 후원하고 사단법인 대전충남민예총에서 주관해 온 마을소생 프로젝트 '목척시장에 부는 바람'이 그동안 함께 참여해온 예술가들과 마을 주민들을 모아 마을 잔치를 마련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가벼운 걸음으로 마을을 찾았다.

처음으로 이 마을을 찾았다는 어느 초등학생은 "지금 여기가 2013년 맞아요? 옛날 도시보단 1960년대의 시골마을에 더 가까운 거 같아요!"면서 눈빛을 빛냈다.

사진, 영화,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투입되어 골목 영화제 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프리마켓 등 다양한 행사와 공연들을 이어왔다.
▲ 목척 시장 '마을잔치'에 참여한 예술가들 사진, 영화,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투입되어 골목 영화제 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프리마켓 등 다양한 행사와 공연들을 이어왔다.
ⓒ (사)대전충남민예총

관련사진보기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훨씬 더 친밀해지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더 편안해 보였다.
▲ 마을잔치에 참여한 마을주민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훨씬 더 친밀해지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더 편안해 보였다.
ⓒ (사)대전충남민예총

관련사진보기


마을 골목 어귀에는 전에는 보이지 않던 바람개비들이 매달려 있었고 밋밋하고 흉물스럽던 건물 외벽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어른에서 아이까지 골목은 전보다 다양한 연령층이 섞여 북적거렸다. 이 마을 터줏대감인 세 할머니도 그 손맛을 발휘하여 잔칫상에 나눌 겉절이를 무치고 계셨다. 분명 마을은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처럼 황량하지만은 않았다. 아직은 미풍이겠지만 이 골목에 부는 바람이 조금은 더 훈훈해진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외부인과 주민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잔칫상에는 뜨끈한 육개장과 밥, 그리고 할머니들의 손맛이 가득 담긴 겉절이와 막걸리, 음료수가 단출하게 차려졌으나 서로에 대한 거리감이나 서먹함은 느낄 수 없었다. 처음엔 낯선 얼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만남이 잦아지고 깊어지면서 서로는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나보다. 어린왕자와 여우의 그것처럼.

이번 행사를 주관하고 진행했던 (사)대전충남민예총의 조성칠 사무국장을 만나 그간 행사를 주관하면서 느낀 소감을 들어 보았다.

"이 행사를 진행하면서 제일 큰 성과는 마을 주민들과 마음을 열게 된 것이죠. 처음에 얘기할 땐 불편해하고 경계하시던 게 지금은 거꾸로 우리한테 무슨 요구를 해오고 이런 것, 저런 것도 같이 해보자고 하세요. 오늘도 손수 육개장도 끓여주시고 밥도 준비해주시고, 겉절이 담가 주셨잖아요. 지난 5월부터 시작해서 이제껏 우리가 해온 작업의 가장 큰 결실은 바로 이거에요.

마을 주민끼리도 데면데면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전보다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어울리게 되었다는 건데, 일종의 커뮤니티가 형성된 거죠. 문화예술을 통해 공동의 재미를 느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친구들이 문화를 제공하니까 이젠 그걸 고맙게 여기게 되었어요. 참여한 예술가 중에서도 이제는 프로젝트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번 행사와는 상관없이도 자발적으로 와서 주민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작업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약속한 예술인들이 늘고 있어요. 우린 이곳에서 가능성을 충분히 발견했고, 우리가 나아갈 장기적인 활동의 모티브를 획득했다고 봐요!"

마을 주민과의 점심 식사가 끝나고 밴드공연, 클래식 연주, 화가가 직접 이름 그려주기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 목척 시장 '마을잔치'에서 공연중인 예술가들 마을 주민과의 점심 식사가 끝나고 밴드공연, 클래식 연주, 화가가 직접 이름 그려주기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 (사)대전충남민예총

관련사진보기


그간 마을에는 사진, 영화,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투입되어 골목 영화제 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프리마켓 등 다양한 행사와 공연들을 이어왔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서 발견되는 크고 작은 변화들은 낙후한 마을의 공간을 보다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바꿔나가려는 안팎의 꾸준한 노력에서 빚어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과의 점심 식사가 끝나고 밴드공연, 클래식 연주, 화가가 직접 이름 그려주기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훨씬 더 친밀해지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더 편안해 보였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음악을 공유하고, 화가가 붓으로 그려준 이름을 매개로 소통은 훨씬 더 풍성해진다.

'대전에 이런 곳이 있었네!'라고 의아해했던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주변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곳'에 대한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곳은 비록 번화하던 옛 명성을 완전히 잃고 퇴락해 버렸지만, 지금은 아무 곳에서나 만나보지 못할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번 마을잔치는 7개월 동안의 결과물을 알리는 날이라기보다는 앞으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어 즐거운 변화를 만들어가려는 마을 주민들과 예술가들의 약속이자 첫걸음, 조촐한 결연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제 다시 목척 시장을 찾아도 어떤 먹먹함에 가슴이 짓눌리지 않을 것 같다.

문화와 예술이 가진 힘은 비록 한 순간에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할지라도, 피 흘리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잔잔하고 따뜻한 혁명이라는 것을 보다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끊어진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줄 문화예술의 아름다운 혁명을 바로 이곳, 목척 시장에서 앞으로도 계속 목격하고 싶을 뿐이다.


태그:#목척시장, #(사)대전충남민예총, #마을살리기프로젝트, #원도심 활성화, #대전프리마켓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