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역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미역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꽃보다 할배>가 인기라죠? 카리스마 있을 것 같았던 이순재 선생님도 아내 앞에선 꼼짝 못한다고 난리더군요. 그렇습니다. 아내에게 꼼짝할 남편이 어디 있겠어요.

"엄마…. 임 서방은 자…. 내가 미역국 끓여 먹어야지."

어젯밤(7일)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중 아련히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내와 장모님의 전화였습니다. 내용을 짐작하건데, '딸이 생일날 미역국 못 얻어먹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장모님이 전화를 건 거였습니다. 이는 남편인 제게 미역국 끓이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습니다.

"우리 남편 지금 잔다니까…, 엄마."

그 뒤로도 한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든 부모에게 최고는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더니 역시 장모님도 딸이 최고였습니다. 아내의 생일날 무얼 선물할지 은근 걱정되더군요.

아이들에게도 "엄마 생일 선물 각자 알아서 챙겨" 하고 의중을 전했습니다. 녀석들, 뭘 하지 걱정하면서도 "아빤, 뭘 할 건데…"라고 견제하더군요. 그러게 선물할 때마다 뭘 할지 난감합니다. 물론 아내가 요구한 생일 선물이 있습니다.

"생일 선물로 케이크도, 꽃도 다 필요 없고, 선물로 받고 싶은 건 단 하나. 그건 집 청소다."

차라리 케이크에 꽃 선물이 편했습니다. 근데 아들과 딸, 남편이 함께 집을 깨끗이 청소해주면 만족이라는 겁니다. 평상시 우리는 집 청소 전혀 안 하는 사람 취급입니다. 한다고 하는데도.

새벽에 아내의 생일국을 끓이기 위해 미역을 물에 불렸습니다.
 새벽에 아내의 생일국을 끓이기 위해 미역을 물에 불렸습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어쨌든 어제 오후(7일) 딸, 아들, 남편은 아내의 생일 선물을 하루 당겨 마련했습니다. 집 청소를 말끔하게 한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청소 한 번 시키려면 잔소리 엄청 해야 하는데 역시나 목소리 꽤나 높였습니다. 그랬는데 어제 밤에 장모님 전화가 온 것입니다.

잠결에 생각했습니다. 오늘(8일) 저녁은 아내의 권유로 하게 된, 아이들 중학교에서 진행하는 '아빠랑 캠프' 첫날이라 귀가가 늦어질 터. 9시 이후에나 케이크 촛불을 켜야 하는데, 어쩌지 싶었습니다.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내일 아침 5시30분 기상. 미역국 끓여야지.'

이렇게 마음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오늘 새벽, 미역을 찾느라 시간 꽤 소비했습니다. 미역을 어디에 뒀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렇다고 자는 각시 깨워 물어볼 수도 없고. 어렵사리 찾아 미역을 물에 불렸습니다. 그리고 쌀도 씻었습니다. 그러면서 반성되는 게 있었습니다.

결혼 15년 차, 아내와 살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해준 게 없습니다. 부부로 15년을 살았으니 서로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동안 사고만 쳤고, 실망도 많이 시켰습니다. 그래도 아내에게 꼭 해주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리고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아내에게 꼭 인정받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이런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내 남편이 최고다!'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여보, 생일 축하 해!!!'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아내, #생일, #미역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