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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28일 오후 4시 50분]

지금도 생생하다. 아내가 글리벡을 처음 먹던 날, 그 모습이. 제사장이 성스러운 물건을 처음 만질 때처럼 아내는 글리벡 6알을 두 손에 꼭 쥐고 신에게 '이 약 먹고 꼭 살게 해 주세요'라고 한참을 기도한 뒤 먹었다.

2001년 11월 26일, 아내는 10개월 된 아들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장난치며 놀다가 우연히 왼쪽 아랫배에서 국그릇만한 혹 같은 것을 발견했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동네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찍었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백혈병 같다'며 빨리 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해서 혈액검사을 받았을 때만 해도 만성골수성백혈병 중에서도 경과가 좋은 만성기 같다고 했는데, 골수검사 결과는 이미 만성기를 지나 가속기로 접어든 상태였다. 만성기와 달리 가속기는 골수이식을 하지 않으면 3~6개월 안에 사망하고 골수이식을 해도 성공률이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듣고 아내와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꿈의 신약'이라고 불리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미국 FDA 승인이 났고 한국의 가속기, 급속기 환자는 무상으로 복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아내는 2001년 12월 5일부터 글리벡 6알을 매일 복용하게 되었고 10개월 뒤 골수이식까지 받아 건강을 되찾았다. '글리벡'은 아내와 우리 가족에 생명을 선물했다.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 안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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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27일 한국에서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던 '글리벡'이 출시되면서 골수이식을 받지 않으면 5~6년 이내 대부분 사망했던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생존기간이 획기적으로 연장됐다. 암세포만 골라서 죽이는 표적항암제인 '글리벡'만 먹어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90% 이상이 5년 이상 장기생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리벡 앞에 '기적의 항암제'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글리벡 10% 환자 지원 프로그램' 중단

2005년 8월 31일까지는 글리벡 처방을 받으면 약값의 20%를 지불하고 나중에 노바티스로부터 10%를 환급받았다. 그러다가 2005년 9월 1일부터 백혈병을 포함한 암환자의 본인부담금이 기존 20%에서 10%로 인하되면서 글리벡 약값의 10%를 지불하고 나중에 노바티스로부터 10%를 환급받았다. 결과적으로 무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혜택은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제조사인 '노바티스'가 2003년 2월 1일부터 글리벡 약제비 중에서 환자 본인부담금 10%를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지원하는 제도(이하,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를 시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바티스 지원 끊기면 무슨 일이?

백혈병 환자는 1알이 100mg인 글리벡을 하루 4알에서 8알 복용한다. 글리벡 한알 가격은 21,281원이니까 하루 약값은 85,124원에서 170,248원이다. 한달이면 2,553,720원에서 5,107,440원이다. 이 중에서 백혈병환자는 5%(건강보험공단은 95%)를 부담하니까 한달 127,696원에서 255,372원을 지불하게 된다. 이 금액은 노바티스로부터 받아왔다. 그런데 올해 6월 3일 글리벡 특허기간이 만료되어 '환자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되면 백혈병 환자들은 매달 127,696원에서 255,372원을 고스란히 지불하게 된다.

연간 천억원에 육박하는 블록버스터 항암제 '글리벡'의 특허가 만료되었으니 30여개의 복제약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그러나 오리지널 약인 글리벡과 복제약의 약값차이가 24.44%에 불과하고, 우리나라는 복제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고, 생명과 직결된 백혈병 치료 항암제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그동안 글리벡을 복용해왔던 환자 중에서 복제약으로 바꾸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2013년 6월 3일이 되면 글리벡의 특허기간이 만료되어 30여개의 복제약이 출시된다. 지금까지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가 글리벡 하나뿐이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복제약이 출시되면 노바티스만 약제비를 지원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가 된다. 앞으로는 불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노바티스는 지난 5월 13일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실을 방문해 7월부터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된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백혈병환우회는 공정거래법상 환자에게 직접 약값을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노바티스가 재단법인을 설립하거나 다른 공익재단을 통해 저소득층 백혈병 환자를 지원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이 없는지 문의했다. 이에 대해 노바티스는 특허기간 만료시 글리벡 약가가 30% 인하되어 수익이 크게 감소하고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글리벡 가격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사회에 환원할 여력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번에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부분은 2013년 6월 3일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만성골수성백혈병, 급성림프구성백혈병, 만성호산구성백혈병, 과호산구성증후군, 만성골수단핵구성백혈병, 만성골수성질환, 융기성피부섬유육종 총 7개 질환(3000여명)이고 2021년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위장관기질종양(GIST, 1500여명)은 계속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바티스의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은 백혈병 환자들이 2001년 5월부터 2003년 2월까지 1년 6개월간의 목숨을 건 약가 인하 싸움을 벌이던 중에 만들어졌다. 

노바티스는 백혈병을 포함한 암 환자의 본인부담율이 10%에서 5%로 인하된 2009년 12월 1일부터 특허가 종료되는 2013년 6월 3일까지 매년 글리벡 총 매출액의 5%를 추가수익으로 얻고 있으며 2013년 6월 3일부터 특허기간 만료로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하면 또 매년 글리벡 총 매출액의 5%를 추가수익으로 얻게 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매년 약 60억 원~100억 원으로 추정된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됨에 따라 환자 본인부담율(10%→5%)이 줄었거나 특허 종료로 공정거래법상 환자에게 지원이 불가능하게 되었더라도 노바티스는 글리벡 10% 지원금을 수익으로 가져가면 안 되고 건강보험공단에 돌려주어야 한다.

이 말 뜻을 이해하려면 10년 전으로 돌아가 1년 6개월간 진행된 글리벡 약가싸움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1년 6개월 간의 '글리벡' 약가싸움

글리벡은 탁월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한 달에 300~600만 원이나 하는 약가였다. 일 년이면 3600만 원~7200만 원이다. 글리벡은 평생 죽을 때까지 복용해야 한다. 글리벡은 '기적의 항암제'였지만 돈이 없는 환자에게는 '절망의 항암제'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백혈병 환자들은 온라인으로 보건복지부, 청와대, 건강보험공단, 심평원 등에 글리벡을 먹게 해달라고 탄원했고, 오프라인으로 '한국만성백혈병환우회'를 조직해 적극적인 약가싸움을 시작했다.

2002년 1월 29일에는 특허청에 글리벡 강제실시를 청구했고, 2002년 3월 19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다. 2002년 3월 26일에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2002년 8월 5일에는 글리벡 복제약 '비낫' 수입을 위해 인도 제약회사를 방문했다. 이어 2003년 1월 23일부터는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를 시작해 2월 10일까지 총 18일 동안 생명을 건 농성을 했다. 이외에도 1년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기자회견, 집회, 1인시위, 기고, 간담회, 토론회 등 글리벡 약가인하를 위해 환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대부분 했다.

백혈병 환자들은 1년 6개월 동안 글리벡 약가인하 및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하는 싸움을 했다.
 백혈병 환자들은 1년 6개월 동안 글리벡 약가인하 및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하는 싸움을 했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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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년 6개월 동안 약가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글리벡을 복용하지 못해 사망하는 백혈병 환자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회적 여론도 악화되었다. 그러자 2003년 1월 20일 노바티스는 글리벡 100mg 한 정당 약가를 2만3045원으로 인정해주면 글리벡 약가의 10%를 기금 방식으로 환자들에게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했다.

약값을 높이 받으려는 노바티스의 욕심과 약값을 인하할 자신이 없는 보건복지부의 무능력이 원래부터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것이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백혈병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기존 30%에서 20%로 인하하였고, 노바티스는 환자 본인부담률 20% 중에서 10%를 기금으로 지원하고, 환자는 나머지 10%를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했고, 2003년 2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때부터 환자는 글리벡 약값의 20%를 먼저 지불하고 영수증 등의 서류를 한국희귀의약품센터에 제출하면 노바티스로부터 10%의 글리벡 지원금을 환급받게 되었다. 그 후 2005년 9월 1월부터 백혈병을 포함한 암환자의 본인부담률이 기존 20%에서 10%로 인하되면서 사실상 무상으로 복용하게 되었다.

그 후 2009년 12월 1일부터 또다시 암환자의 본인부담률이 기존 10%에서 5%로 인하되면서 노바티스는 매년 글리벡 매출액의 5%를 추가수익으로 얻게 되었다(노바티스지원금이 10%에서 5%로 줄어들었으므로 그만큼의 추가수익 발생). 마찬가지로 오는 6월 3일 글리벡 특허가 종료되면 공정거래법상 5% 글리벡 지원금도 지급할 수 없게 되므로 노바티스 입장에서는 또 다시 매년 글리벡 매출액의 5%를 추가수익으로 얻게 된다(노바티스지원금이 5%에서 0%로 줄어들므로 역시 그만큼의 추가수익 발생).

글리벡 환자 부담금과 노바티스 환자 지원금의 변경사유
 글리벡 환자 부담금과 노바티스 환자 지원금의 변경사유
ⓒ 안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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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을 낳은 '글리벡'

글리벡은 2003년 172억 4400만 원, 2004년 290억 8800만 원, 2005년 377억 3600만 원, 2006년 483억 500만 원, 2007년 561억 7800만 원, 2008년 624억 800만 원, 2009년 681억 7200만 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매년 두 자릿 수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약 1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블록버스터 항암제다. 기존에는 사망했던 백혈병 환자들이 장기생존을 하면서 매년 매출액이 급성장했다.

이뿐 아니라 2008년 10월 1일부터는 만성호산구성백혈병, 과호산구성증후군, 만성골수단핵구성백혈병, 만성골수성질환, 융기성피부섬유육종 5개 질환이, 2010년 3월 1일부터는 종양제거 수술을 받은 뒤 재발방지 목적으로 글리벡을 1년 동안 사용하는 위장관기질종양(GIST) 환자까지 건강보험 적응증이 확대되었다. 또한 2006년 9월 1월부터 한국과 스위스 간에 FTA가 체결 발효됨에 따라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글리벡에 대한 관세율이 8%까지 점진적으로 인하되었다.

사정변경으로 노바티스의 추가수익 발생 현황
 사정변경으로 노바티스의 추가수익 발생 현황
ⓒ 안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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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노바티스는 글리벡 복용 환자의 장기생존 효과로 인해 엄청난 매출신장이 있었고, 6개 질환이 추가로 적응증이 확대되었고, 관세율도 8% 인하되었고, 10%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까지 중단됨으로 인해 막대한 이윤을 얻었다.

글리벡 10% 지원금은 건강보험공단에 반환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대선기간 동안 4대 중증질환(암, 희귀난치성질환,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의 표적항암제 등 필수의료서비스 비용을 100%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일명, 4대 중증질환 의료비 국가책임제)을 발표했다. 이 공약은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취임 후 약속대로 '국민행복의료추진본부'를 구성해 현재 추진 중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인 '4대 중증질환 의료비 국가책임제'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행복의료추진본부'를 구성했지만 재정부족이 가장 큰 숙제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인 '4대 중증질환 의료비 국가책임제'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행복의료추진본부'를 구성했지만 재정부족이 가장 큰 숙제이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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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정이다.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확충방안이 최대 숙제다. 현재 소아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치료제 '에볼트라(EVOLTRA)'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REVLIMID)'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잴코리(XALKORI)' 결장직장암 치료제 '아바스틴(AVASTIN)' 대장암 치료제 '얼비툭스(ERBITUX)' 등 많은 표적항암제가 몇 년째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제약사의 높은 약가 요구와 건강보험 재정 부족 때문이다.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됨에 따라 노바티스가 얻게 되는 수익은 연간 60억 원~1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 규모의 재정이면 표적항암제 몇 개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고, 수천 명의 암환자들의 생존을 연장시킬 수도 있다. 

노바티스는 2003년 1월 20일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에서 한국 내에 글리벡을 수입 판매하는 한 글리벡 10% 무상지원 프로그램은 중단없이 지속한다고 분명 약속했다.

2003년 1월 20일 한국노타비스는 보건복지부장관에게 한국 내에 글리벡을 수입판매하는 한 중단없이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을 지속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2003년 1월 20일 한국노타비스는 보건복지부장관에게 한국 내에 글리벡을 수입판매하는 한 중단없이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을 지속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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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됨에 따라 환자 본인부담율이 줄어들었거나 특허 종료로 공정거래법상 환자에게 지원이 불가능하게 되었더라도 글리벡 10% 지원금을 노바티스가 수익으로 가져가는 것은 옳지 않다.

노바티스가 글리벡 약값을 10% 높게 받기 위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을 제안했다면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 중단 시 당연히 글리벡 약값을 10% 인하하거나 그것이 싫으면 건강보험공단에 기부해 다른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보건복지부장관은 2003년 1월 20일 당시 노바티스가 제안했던 '글리벡 지원 프로그램' 관련 공문을 꼼꼼히 검토해 '글리벡 약제상한가격' 또는 '환급이 중단된 글리벡 10% 지원금'에 대해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기종 기자는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입니다.



태그:#글리벡, #노바티스, #만성골수성백혈병, #백혈병, #안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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