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페달에 오른발을 올렸다. 발에 힘을 줄 때마다 곧장 답이 온다. 당초 예상과 기대가 무색해졌다. 르노삼성차가 내놓은 새로운 에스엠5(SM5)다. 겉만 봐선 시중에 돌아다니는 SM5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차다. 자동차의 심장이라 불리는 엔진을 바꿨다. 이를 받쳐주는 변속기도 옛것을 버렸다.
이름도 'SM5 티씨이(TCE, Turbo Charged Efficiency)'다. '터보엔진을 단 효율성' 정도로 읽힌다. 실제 차를 직접 타 보면 느낌은 더욱 다르다. 일종의 '실험'이다. 2.0리터급 중형차 모양에 1.6리터급 심장을 달고 뛴다. 그만큼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 지난 24일 만난 자동차 기자들의 평가도 엇갈렸다.
기존 SM5를 버린 엔진다운사이징의 실험SM5 실험은 엔진의 배기량을 줄이는 이른바 '엔진 다운사이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자동차업계에 불고 있는 바람이다. 날로 높아지는 환경규제에 맞추면서도 고연비라는 경제성과 운전의 즐거움까지 원하는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선 기술이 필요하다. 유럽 독일차들처럼 디젤 엔진을 쓰거나, 일본 토요타처럼 아예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SM5 TCE에 적용된 엔진은 일본 닛산의 1.6리터급 가솔린직분사(GDI) 터보엔진이다. 회사쪽에선 "엔진에 적용된 터보차져와 듀얼가변 타이밍 제어시스템으로 연료 효율성 뿐 아니라 엔진의 힘은 기존보다 36%나 향상시켰다"고 했다. 우호광 개발총괄이사는 "이번에 적용된 것은 닛산의 최신기술이 녹아든 다운사이징 엔진"이라며 "이미 닛산의 대표적인 자동차 등에 실리면서 효율성과 파워 등이 검증됐다"고 말했다.
엔진과 함께 핵심부품인 변속기도 바꿨다. 독일의 변속기 전문업체인 게트락(GETRAG)의 6단 듀얼클러치변속기(DCT)가 들어갔다. 닛산 엔진과 게트락사의 변속기를 함께 적용한 사례는 르노닛산그룹에서도 처음이다. 이 역시 '실험'이다.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난 르노삼성차 기술진은 뿌듯해 했다.
우 이사는 "1.6터보엔진과 게트락사의 트랜스미션의 조합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도 최초"라고 했다. 이어 "자동차 개발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라며 "SM5에 처음으로 적용해 국내시장에 시의적절하게 만들어 내놓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주행성능과 디자인] 시속 100km 넘어도 흔들리지 않는 달리기 성능지난 24일 오후 기자와 마주선 SM5의 첫인상은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찬찬히 뜯어보면 약간씩 변화를 찾을수 있다. 뒤쪽 배기구가 두개다. 고성능 모델의 차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 앞쪽엔 SM5 'TCE' 로고가, 뒤쪽 트렁크엔 'XE' 로고가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다. 실내 디자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신 앞뒤쪽 문 손잡이 부분과 중앙 대쉬보드 등에 흰색을 넣어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버튼을 누르자 조용한 엔진음이 들려온다. 서울과 춘천 사이의 고속도로와 시내 등 150km 구간을 달려봤다. 서울시내에선 시속 50~60km로 달리다, 서다를 반복했다. SM5 특유의 정숙성은 여전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터보엔진의 참 모습이 드러났다.
솔직히 터보엔진은 다루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인 자연흡기 엔진과 반응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가속페달을 부드럽게 밟지만 어느순간 터보의 개입으로 속도가 확 올라간다. 운전자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차가 춤을 춘다'는 말도 나오는 이유다.
기자가 탄 SM5에선 딱히 이 정도까지 느껴지진 않았다. 대신 초반 가속에서 한 박자씩 약간 늦게 속도가 붙는 현상(터보렉)은 있었다. 이는 대다수 터보엔진을 단 자동차에서도 나타난다.
시속 100km까지 금세 오른다. 엔진 회전속도는 2000 알피엠(RPM)근처에 머물렀다. 일부 구간에선 시속 180km까지도 무리없이 올라갔다. 고속에서 달리기 성능이나 자체 안정감도 만족할 만하다. 기존 SM5와는 분명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경제성] 리터당 연비 13.6km, 실제도 비슷이 차의 공식 평균연비는 1리터당 13.6km다. 1.6리터급으로만 따지면 높지 않지만 터보엔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연료효율이다. 기자가 이날 150km 구간을 몰아본 평균 연비는 리터당 10.6km였다. 시속 150km 내외의 고속주행을 비롯해 급제동 등을 실험하면서 올린 연비치고는 꽤나 괜찮은 성적이다.
회사쪽에선 이 차의 주요 소비계층을 30대 이상 나름 운전의 즐거움을 찾는 젊은 직장인에 맞췄다. 또 1.6리터급이다 보니 자동차 세금 등에서도 2.0리터급보다 나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르노삼성쪽에선 기대하고 있다. 조영욱 팀장은 "자동차세에서 연간으로 따지면 (2.0리터 중형차와) 10만 원정도 차이가 난다"면서 "여기에 연비도 상대적으로 우수해 경제성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 차의 값은 2710만 원이다. 기존 SM5의 최상위 모델인 알이(RE) 2810만 원과 엘이(LE) 2660만 원 사이에 놓였다. 회사쪽에선 엔진과 변속기 등이 크게 좋아진 것을 감안하면 가격인상폭을 최소화했다고 했다. 또 경쟁모델인 현대차와 기아차 2.0 터보가 각각 2890만 원, 2850만 원부터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SM5 TCE가 150만 원 이상 싸다.
물론 1.6리터 터보 GDI를 장착한 현대차의 벨로스터 중 제일 비싼 모델은 2310만 원이다. SM5가 벨로스터 터보보다 400만 원 이상 비싼 셈이다. 따라서 일부에선 과연 국내 소비자들이 1.6리터급 중형차를 2700만 원씩 내면서까지 살 것인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반면에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기존 SM5의 장점을 그대로 흡수하면서도 연비나 출력, 힘 등에선 2.0리터급 쏘나타 등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이라도 중형차를 살 마음이 있다면, 꼭 비교해서 타보시고 결정하시길 바란다. 몇 십 만 원짜리 신발하나를 사더라도 신고, 걸어보고 사지 않는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첫선을 보인 '1.6리터급 터보 중형차'가 과연 성공할것인지, 기자도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