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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연기가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검은 연기가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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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헌이 빨리 깨워!"

5일 일요일 새벽 요란한 불자동차 소리가 귓가를 때렸습니다. 창문을 열었습니다. 불자동차는 급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 한 치 앞도 보지 못할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문을 바로 닫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빨리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큰아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인헌이를 깨우라고.

"숨 쉬면 안 돼!"
"왜요?"
"숨 쉬면 연기 마실 수 있어. 밖으로 나가는 데 얼마 걸리지 않으니까. 몇 초만 참으면 되니까?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엄마를 따라 나간다. 알겠어?"
"예."
"빨리 나가!"

아내와 아이들을 내보낸 후 밖으로 나가려다가 갑자기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찾으러 방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불은 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시민기자 정신도 중요하지만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밖에 나왔는데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아빠 연기가 우리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엄마가 창문을 다 닫지 않은 것 같다."
"저 연기를 마시면 큰일 나죠?"
"큰일 나지. 불보다 연기가 사람에게 더 위험할 수 있어."
"우리 가족이 조금만 늦게 나왔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렇지. 조금만 늦게 나왔으면 우리 가족들이 많이 다쳤을 거야."

아래층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아래층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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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아내가 급하게 나오면서 창문을 닫지 않아 연기가 집 안으로 계속 들어갔습니다. 늦었다면 연기에 질식될 수도 있었습니다. 119대원들은 발화지점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생명을 걸고,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화재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불은 우리 집 바로 아래 집에서 났습니다. 아이들은 불안감을 드러냈습니다. 우리 집 아래 집에서 불이 났으니 얼마나 겁이 나겠습니까?

"아빠 빨리 불 끌 수 있어요?"
"응 119대원 아저씨들이 빨리 끌 거야."
"아빠 무서워요."

"무서워할 것 없어. 아빠와 엄마 그리고 119대원 아저씨들이 있잖아."

119대원들은 신속하게 불을 진압했습니다.
 119대원들은 신속하게 불을 진압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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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 7대가 출동했습니다.
 소방차 7대가 출동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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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쌓아둔 박스에서 났습니다. 전기누전이었다면 더 큰 불이 났을 것인데, 박스에서 나 더 크게 확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없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화재는 진압되었지만 연기가 가득 차 집에 바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 언제쯤 집에 들어갈 수 있어요."
"연기가 다 빠져 나가야 해."

"추워요. 빨리 들어가고 싶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연기를 마시면 안 돼."

연기가 많이 나는 바람에 화재 진압이 다 된 후도 한 동안 집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연기가 많이 나는 바람에 화재 진압이 다 된 후도 한 동안 집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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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어느 정도 빠지자 집에 들어가니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이내 목이 아팠습니다. 집에 더 있으면 아이들이 힘들 것 같아, 처음으로 일요일 아침에 목욕을 갔습니다. 두 시간 동안 목욕을 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아직도 매캐한 냄새는 남아 있었습니다.

"여보 여기 보세요. 시커먼 그을음 보세요."
"집 안이 온통 그을음이에요."
"다시 청소를 해야겠어요."
"이런 상태로 예배를 드릴 수 없지."
"불 정말 무섭다. 걸레를 한 번만 훔쳤는 데도 그을음이!"
"이런 것을 마시면 큰일 날 수밖에 없겠네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걸레로 한 번만 훔쳤는데 그을음이 묻어나왔습니다.
 걸레로 한 번만 훔쳤는데 그을음이 묻어나왔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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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 청소를 했는데 불과 열두 시간만에 다시 청소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도 함께 했습니다. 청소하라고 시키면 하지 않았는데 자신들 눈앞에 펼쳐진 화재 현장을 보면서 청소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인헌이와 체헌이는 의자 올리고. 서헌이는 걸레질 좀 해라."
"아빠는?"
"아빠도 걸레질 해야지. 아빠는 교회하고 서재를 청소할 거다. 엄마는 방하고, 주방. 그릇에 그을음이 앉아 시커멓다."

"우리도 도울게요. 다시는 불이 나면 안 돼요."
"당연하지 우리 집만 아니라 모든 집에 불이 나면 안 되지."

큰 아이와 막둥이도 교회 청소에 동참했습니다.
 큰 아이와 막둥이도 교회 청소에 동참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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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가 걸레질을 하고 있습니다.
 딸 아이가 걸레질을 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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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불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에서도 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불조심! 언제나 불조심! 자나 깨나 불조심!"
"알았어요. 불조심!"
"아빠 오늘 정말 무서웠어요."
"막둥이 무서웠어?"
"응."
"오늘부터 불조심이다."
"예."


모두들 불조심하세요. 불은 한 순간이지만, 그 상처는 깊고, 큽니다. 내 작은 실수가 다른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주는 것이 불입니다. 불씨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습니다. 불은 인간에게 커다란 축복을 안겨주었지만, 실수하면,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가족들은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불조심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태그:#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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