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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생이신 노모의 생신을 맞아 찾은 한 콘도
▲ 서해안 변산반도에 있는 한 리조트 1930년생이신 노모의 생신을 맞아 찾은 한 콘도
ⓒ 이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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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오래 사니까 이런 곳을 다 와 봐야."

팔순이 넘은 노모(老母)가 지난 11일 생신을 맞아 서해안 변산반도내에 있는 OO콘도에 들어서자 하시는 말씀이다. 사실 콘도라는 것이 젊은 사람들이야 대수롭지 않을지 몰라도 시골에서 살고 계시는 노모에게는 큰 기쁨이었나 보다.

자식들이 생각하기에는 평생을 그곳에서 사셨고 집에서 불과 1km 근처에 있는 콘도이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었다. 기왕 비싼 돈을 들여 갈 바에야 다른 지역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삶을 핑계로 그리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변산반도는 크고 작은 해수욕장과 관광지가 많은 곳이다. 과거 변산반도의 대표적 관광지였던 변산해수욕장은 예전에 비해 그 명성을 많이 잃었지만 반면 주위 관광지들이 두루 발전했다. 격포는 오랫동안 유명했던 채석강을 비롯 영상테마파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 바다를 끼고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해변도로와 국내 유명 리조트가 들어서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이 찾는다.

전망좋은 해변 근처에는 펜션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우리는 그런 곳을 이용할 일이 없다. 오히려 펜션을 짓는 것을 목표로 살아간다. 사실 이번 노모의 생신 콘도여행은 비용을 지불하고 간 것이 아니다.

"변산 OO리조트에 동서가 일을 하고 있어서 일년에 몇 번 평일에만 방을 쓸 수 있단다. 어머니 생신 때 예약할테니 같이 갈 수 있으면 갔다 오렴."

지난 주말 서울에 사는 누나한테서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누나의 동서가 OO리조트 직원인데 직원에 한해 일 년에 몇 번 평일 날 콘도를 무료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시골집 근처긴 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성남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는 평일이라서 간다고 확답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생신 때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콘도에 갈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아 주말에 일을 대신하기로 하고 시골에 내려갔다. 시골에 도착하자 형과 어머니는 집에서 기르고 있는 강아지 4마리의 밥과 물을 이미 다 챙겨주고 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두 분을 모시고 저녁을 먹으러 격포에서는 꽤 유명한 한정식 집을 찾았다. 전라도만의 다양하고 맛깔스런 반찬들이 한상 멋들어지게 차려졌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집에서 먹는 음식보다 외식을 선호하신다. 돈을 내고 먹는 만큼 이 반찬 저 반찬 꼼꼼히도 챙겨 드신다. 밥 한 공기를 다 드시고 후식으로 커피 한 잔까지 마시고서야 일어서셨다.

콘도에 가기 전 저녁을 먹으러 찾은 한정식 집의 상차림
 콘도에 가기 전 저녁을 먹으러 찾은 한정식 집의 상차림
ⓒ 이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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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콘도의 베란다에 않아 사색에 잠기신 어머니
 바다가 보이는 콘도의 베란다에 않아 사색에 잠기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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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의 욕조가 신기하신 어머니를 자식들이 설명을 해주고 있다.
 샤워실의 욕조가 신기하신 어머니를 자식들이 설명을 해주고 있다.
ⓒ 이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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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인데도 꽉 차 있는 주차장을 지나 객실에 들어서니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객실은 넓은 거실에 방이 2개, 화장실이 2개였다. 객실 구석구석 뭐가 있나 신기하게 탐색에 들어간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욕조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조금 있다가 목욕을 하신단다. 따뜻하게 물을 받아 놓고서는 이내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에 가서 담배 한 대를 부치시고는 "오메, 오래 사니까 이런곳을 다 와 봐야"라고 하신다.

한마디의 지나가는 말씀이었지만 그동안의 자식들의 무심함을 깨우쳐 주는 순간이다. 콘도니 펜션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거라는 자식들만의 생각은 큰 착각이었고 그 무심함은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생일 케이크와 여러 먹거리를 사가지고 들어오니 노모는 깨끗하게 씻으시고는 거실 소파에 앉아 "목욕물이 참 좋아야. 이런 데는 물도 좋은 물을 쓰는가벼" 하신다. 사실 콘도 물이나 집에서 쓰는 물이나 같은 부안댐 물이다. 하지만 좋은 곳에 오니 뭐든 더 좋아 보이셨나 보다.

케익에 촛불을 꽂으려니 긴초가 유난히 많게 느껴졌다. 촛불의 수만큼이나 어머니도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며왔다. 일제시대와 6·25를 다 거치면서 힘든 세월을 살아오신 부모님, 아버지는 일제시대 징용까지 끌려갔다 오셨다. 그런 세월을 보내고 좋은 세월이 왔건만 남들처럼 좋은 구경과 큰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식의 마음은 그날따라 더 아파왔다.

팔순을 맞은 우리 노모
 팔순을 맞은 우리 노모
ⓒ 이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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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끄고 축하의 폭죽도 터트렸다. 그 순간 벨소리가 울렸다. 어찌 그렇게 시간도 잘 맞추는지 우리도 몰랐던 방문 축하 과일바구니 서비스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들고 온 바구니를 보신 어머니는 그마저도 "요즘 과일값이 비싼데 돈을 내는 거 아니냐"며 물으셨다. 공짜로 주는 서비스라는 말을 듣고서야 흐뭇한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처음으로 콘도에서 보내는 노모의 생신밤은 깊어갔다. 주무실 때가 되자 처음에는 침대방이 싫으시다던 어머니는 웬일인지 침대방으로 몸을 옮기셨다. 작은 온돌방보다는 넓고 큰 방에 화장실과 욕실이 딸려있는 침대방이 더 맘에 드셨나보다. 비록 집 근처지만 바다를 배경삼아 처음 콘도에서 보내는 팔순이 넘으신 노모의 생신은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고 보니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일박이일의 여행마저도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좀 더 경제적으로 나아지면"이라는 핑계로 모시지 못한 지난 날들이 더욱 죄송해지는 하루였다. 어느 순간 자식은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는 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면서 그렇게 팔순이 넘은 노모의 생신은 자식들에게 아픈 교훈을 주고 지나갔다.


태그:#생신, #변산반도, #격포, #채석강, #대명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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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가야할 곳을 현실이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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