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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이 낙하된 중심지에 설치된 추모비다.
▲ 원폭순난자명봉안 원폭이 낙하된 중심지에 설치된 추모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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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長崎)는 지구상의 어디에도 없는 슬픈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도시다. 나가사키의 풍성한 여행지를 차분히 답사한 나와 아내는 늦은 오후 시간에 나가사키의 원폭낙하중심지공원(原爆落下中心地公園)으로 들어섰다. 낙하 중심지! 이 땅 위의 439m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원폭 당시의 충격들은 모두 사라진 것 같이 보였다. 공원은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고 하늘에서 내려온 바람은 시원하기만 하다. 원폭이 투하되었다는 이 공원의 땅 위에 '원폭순난자명봉안(原爆殉難者名奉安)'이라고 적힌 검은 화강암 비가 서 있었다. 1961년에 세워진 이 추모비의 상자형 검은색 단 안에는 원폭희생자들의 명단이 들어 있다고 한다. 화강암 비의 새까만 색이 마치 까맣게 잿더미만 남았던 당시의 참혹상을 다시 보여주는 것 같다.

이 땅 위에 이 비가 세워진 것은 아마도 당시 미군 폭격기에서 폭탄을 투하하면서 남긴 기록을 참고했을 것이다. 나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았다. 원자폭탄은 땅 위에 떨어져 폭발하지 않고 이곳 상공에서 폭발했다. 지금 이 순간 하늘에서 원자폭탄이 터지는 상상을 해보니 소름이 돋는다.

우리는 추모비를 둘러싼 공원의 바닥에 섰다. 공원의 보도블록은 마치 여러 개의 동심원이 겹쳐서 퍼져나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원폭의 진앙에서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폭탄의 후폭풍처럼 공원 바닥의 동그라미는 사람들의 마음을 향해 울리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공원의 바닥은 말 없이 서 있는 간결한 추모비와 함께 공원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원폭으로 사라진 사찰에서 이 석등만이 남았다.
▲ 쇼토쿠지 석등 원폭으로 사라진 사찰에서 이 석등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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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에는 후대에 지어진 추모비와 추모상 외에도 원폭 당시 무너져 내린 건축물의 잔해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원폭순난자명봉안비 옆에 쓸쓸히 서 있는 석등은 원자폭탄이 폭발한 곳에서 남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있던 쇼토쿠지(聖德寺)의 석등이다. 쇼토쿠지는 원자폭탄의 폭발로 사찰의 모든 건물들이 무너졌지만 이 석등만이 남아서 1949년에 이 공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사찰에서 불교의 진리를 밝히던 석등은 원자폭탄의 비극을 되새기기 위한 기념물로 바뀌어 있었다.

파괴된 성당의 잔해 중 일부 기둥만이 옮겨 세워졌다.
▲ 우라카미텐슈도 잔해 파괴된 성당의 잔해 중 일부 기둥만이 옮겨 세워졌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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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낙하중심지 추모비의 왼편을 동양의 불교 사찰이 호위하고 있다면 추모비의 오른편은 서양의 천주교 성당의 잔해가 보호하고 있다. 원폭낙하중심지 추모비의 오른쪽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잔해는 원폭으로 인해 무너진 성당, 우라카미텐슈도(浦上天主堂)의 로마네스크 양식 기둥이다. 우라카미텐슈도는 일본 나가사키 대교구의 주교좌가 있었던 성당으로 1914년 완공 당시에는 동양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과 성당은 꽤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도 성당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깡그리 파괴된 성당의 잔해 중 기둥 하나만 이곳에 옮겨 전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이곳을 찾는 서양의 천주교인들에게 서양인들이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성당과 천주교인들도 큰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일부러 보여주는 것 같다. 서양인들에게 일본인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최대한 슬퍼 보이게 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원폭의 후유증으로 숨진 소녀를 기리며 접은 종이학이다.
▲ 종이학 원폭의 후유증으로 숨진 소녀를 기리며 접은 종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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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자료관으로 향하는 계단 옆에는 종이학을 품은 백색의 소녀상이 평화를 빌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10년 후에 방사능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다코(禎子)라는 소녀의 상이다. 방사능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린 사다코는 죽음을 앞두고 종이학을 접었다. 사다코는 천 마리의 학을 모두 접으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소망으로 종이학을 접었지만 결국 종이학 600마리 정도를 접다가 생을 마감했다.

종이학 접기는 일본에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전설에서 비롯된다. 누군가 병이 들어 아플 때 종이학을 접으며 병이 낫기를 기원하면 천 마리 학이 모두 완성됨과 동시에 병이 낫는다는 믿음이 일본에 전해지고 있다. 사다코의 사망 소식을 들은 일본 국민들이 소녀를 가엽게 생각하여 소녀가 미처 다 접지 못한 학을 접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들이 접은 종이학을 원폭 투하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전해주는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종이학을 접는 안타까움 속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종이학을 품에 안은 소녀상이다. 지금도 소녀상의 기단 아래에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울긋불긋한 종이학들이 걸려 있다. 이 슬픈 종이학들은 철봉에 함께 매듭같이 묶여서 아픔을 같이하고 있다.

피폭 당시 지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피폭 지층 피폭 당시 지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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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낙하중심지공원의 동쪽에는 작은 개천이 하나 흐르고 그 개천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피폭 당시의 지층이 작은 유리 전시관으로 보존되어 있고, 그 옆에는 원자폭탄 폭발 당시 이 지층의 상황을 설명하는 설명문이 당시 사진과 함께 붙어 있다.

원폭의 지층 속에는 마치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놓은 선사시대의 패총같이 여러 물건들이 흙 속에 박혀 있다. 땅이 무너져 내린 듯한 지층 속에서는 당시 실생활에서 쓰던 컵이나 그릇, 열쇠 등의 생활용품들이 찌그러지고 깨진 채로 흙 속에 파묻혀 있다. 자세히 보니 원폭에 의해 파괴된 집의 벽돌과 기와도 휩쓸려 들어와 있고 고열에 녹아내린 유리도 흙 속에 매몰되어 있다. 생활용품이 박혀 있는 흙도 원자폭탄 폭발로 인해 그을린 검은 색이다. 이들은 이 적나라한 피해의 현장을 잊지 말자며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두었을 것이다.

유리 전시관 안에 온갖 생필품과 건물 잔해가 휩쓸린 채 남아 있다.
▲ 원폭 당시 지층 유리 전시관 안에 온갖 생필품과 건물 잔해가 휩쓸린 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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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 유리 전시관 옆으로 흐르는 조그마한 개천은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당시 물이 흐르지 못할 정도로 피해자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를 보여주는 설명문의 사진을 보니 현재 내가 서 있는 개천 주변은 모든 건물이 쓰러지고 처참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진 듯한 지옥의 땅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이 원폭낙하중심지공원에는 당시를 기리는 추모비들이 곳곳에 들어선 채 적막할 뿐이다.  

피폭 후 나가사키 시대는 모든 건물이 쓰러져서 황량하기만 하다.
▲ 피폭 당시 사진 피폭 후 나가사키 시대는 모든 건물이 쓰러져서 황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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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공원에서 가장 큰 정성을 쏟아 만들었을 인상적인 조형물 앞에 섰다. 원자폭탄 피폭 50주년을 기리며 만들어진 이 모자상은 이 공원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다. 모자상의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안고 있다. 아기는 어머니 품에 제대로 안기지 못하고 팔 한쪽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조각상의 아기는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일본을 나타내고 어머니는 일본을 도와주었던 다른 국가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려니 섬뜩함이 느껴진다. 이 모자상은 공원 내의 다른 조형물들과 달리 계속 보고 있으면 묘하게 슬퍼지는 조각상이다. 이 모자상은 원폭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일본을 불쌍하게만 상징하고 있어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슬픈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곳이다. 모자상은 국가의 잘못된 선택으로 죽어간 나가사키 시민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죽어갔는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어야 할 것이다.

모자상 기단의 동판에는 핵이 투하된 시간인 '1945년 8월 9일 11:02'이 새겨져 있다. 원폭이 투하된 그 시간, 그 순간에 나가사키의 모든 것은 정지되었을 것이다. 그 처참했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은 그 시간을 분, 초까지 적어두었을 것이다. 이 시간은 한국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다. 1945년 8월 9일의 이 시간으로 인하여 우리는 8월 15일이라는 시간에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죽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볼수록 섬뜩하다.
▲ 모자상 죽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볼수록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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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을 설명하는 안내문을 읽다보니 일본이 국제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현재 아시아 각국과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일본을 보면 실로 웃기는 이야기다. 진정성은 행동에서 느껴지는 것이고 이런 설명문의 문구로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원폭낙하중심지공원에서 원폭자료관으로 가는 길에는 곳곳에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비들이 서 있다. 추모상들은 한결같이 평화를 갈구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을 향해 폭탄을 퍼부은 미국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고 자신들은 대국적으로 미국을 용서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설명문이 대부분이다.

지금, 이 원폭낙하 중심지 주변은 약 500개에 달하는 초록빛 벚꽃나무의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원자폭탄 투하 당시 원자폭탄의 후폭풍으로 원폭낙하 중심지 주변의 나무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당시 일본에는 원자폭탄이 터진 곳에선 70년 동안 초목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70년 불모설'이 생겨났다. 그러나 불과 1개월 후에 나가사키에는 약 30종류의 초목이 싹을 틔웠다고 한다. 나가사키의 나무들은 숲 속에서 원폭의 참상을 잊고 강한 의지로 다시 일어섰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이제 나가사키 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이 되어 있다.

당시 비극 속 사람들의 비명 소리는 간 데 없고, 원폭낙하중심지 공원은 더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오후 늦은 시간, 찾는 이 별로 없는 공원에는 적막만이 감돌 뿐이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10월 15일~18일의 일본 여행 기록입니다. 제 블로그(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나가사키, #원폭낙하중심지, #원자폭탄, #원폭순난자명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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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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