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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8일 새벽 안전보장이사회 전체회의를 열어 북한 핵실험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유엔은 8일 새벽 안전보장이사회 전체회의를 열어 북한 핵실험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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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에 대해 '선제핵타격권리'를 행사하겠다고 하자, 한국 국방부는 그럴 경우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이라고 받아쳤다. 국방부가 북한이 도발하면 '지휘세력'까지 응징하겠다고 하자, 북한은 "그 순간에 가증스러운 대결과 반역의 소굴인 청와대가 산산이 박살나고 불바다 천지가 될 것"이라며 맞섰다.

3월 11일 시작하는 '키 리졸브' 군사훈련이 고비

이 정도면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평화외교는 사라지고 전쟁위협만 난무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런 극렬한 발언의 교환은 긴장의 최고점이 아니다. 당분간 남북한은 더 거친 말 공방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말로만 끝나지 않을 수가 있어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오는 3월 11일부터 21일까지 실시되는 '키 리졸브'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북한은 '노골적인 군사도발 행위'라고 했다. 한미양국은 이 기간에 북한이 도발하면 "사정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력 경고했다. 말로만 그칠 거 같지 않다. '키 리졸브' 훈련기간에는 미국의 핵잠수함까지 참여하여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예정이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시위로 맞설 것이다. 긴장의 최정점을 향해 한반도 정세가 치닫고 있다. 성냥불 하나에도 삽시간에 불기둥이 생길 것 같은 조짐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무기는 인류에게 다모클레스의 검"이라고 말했다. 왕의 의자 위쪽에 한 올의 머리카락에 매달려 있는 한자루의 검, 그 검은 왕권에 대한 위협이다. 긴장이 고조되는 현재의 한반도 정세가 국민들의 행복과 번영을 위협하는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다모클레스의 검'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결의안은 더욱 강력해졌다. 한국시간으로 8일 새벽 채택된 '유엔 안보리결의안 2094'는 회원국들에게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의무화했다. 지금까지 결의안들은 권고 수준이었다. 

북한의 반발도 더 강도가 세졌다. 북한은 '핵선제타격권리 행사',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불가침 합의 전면 무효화', '제2의 조선전쟁'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의 주장을 살펴보면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국민행복 위협하는 극렬한 언어의 교환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는 수많은 위기를 겪었으나 지금처럼 극렬한 언어의 교환은 처음이다. 전쟁을 부르는 발언들이다. "대포가 쌓이면 터진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말의 위협에 의한 긴장고조도 마찬가지이다. 우발적 충돌이라도 발생하면 평상시보다도 전쟁의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최근 조성된 정세는 북핵갈등 20년이 역사속에서 반복되어왔던 '위기-대화-합의-파탄-위기'의 패턴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소지가 있다. '위기' 이후 대화를 복원할 수 있는 '신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만 상할 대로 상해 있다.

또 6자회담 참가국가들의 리더십이 변화한 상황이다. 위기 후에 대화를 복원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아직까지 국가안보관련 주요 관계자의 인선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공식 소집할 수도 없다.

미국은 이 정도는 아니지만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 대북정책을 담당할 주요 실무책임자들이 교체기에 있다.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팔을 겉어붙이고 나설 사람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불신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김정일-김정은 체제에 항상 뒤통수만 맞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의회가 북한에 대해 가지는 인식은 민주-공화 가릴 것 없이 극우파에 버금간다.  

핵과 미사일 능력강화하고 정전체제 흔드는 북한

북한의 위협이 '다종화',  '고강도'로 변화한 것도 상황을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다종화란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와 '정전체제 흔들기' 등 다양한 위협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강도란 '핵선제공격', '제2의 조선전쟁' 등 과거보다 훨씬 더 섬뜩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과거 한반도에서 있었던 어떤 위기상황보다도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에서 김정은 시대에는 당군관계가 정상화되고 있다. 당 중심의 구조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 상황은 이 과정에서 밀린 북한 군부를 다시 전면에 불러내고 있다. 전면에 나선 북한군이 다종화된 고강도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면 추측하건대 그들은 숨도 못 내쉬는 지경일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내달리고 있는 이유이다.    

1990년대에도 북한이 '정전체제 흔들기'를 시도한 적이 있다. 정전협정을 차근차근 무력화시키는 전술을 구사했던 것이다. 정전협정은 △기구 △선과 구역 △규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기구'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회이다. '선'과 '구역'이란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이다. '규칙'이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정전협정에서 명시하고 있는 각종 조항들이다.

정전협정 60주년에 전시상태로 복귀

1990년대에 북한의 정전협정 흔들기는 먼저 '기구'를 무력화하는데서부터 시작했다. 먼저 군사정전위원회를 부정하고 1994년 5월에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했다. 1995년까지 중립국감독위원회를 철수시키는 등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전협력을 무력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다음단계로 '선'과 '구역'을 부정했다. 1996년 4월 4일에는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담화를 통해 "정전협정에 의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 및 관리와 관련한 임무를 포기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비무장지대(DMZ)를 출입하는 인원과 차량의 식별표지를 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DMZ 불인정'을 선언했다.

이후 1996년 4월 5일부터 7일 사이에는 무장병력 총 470여명을 판문점 지역에 투입하여 무력 시위를 했다. 정전협정의 '규칙'을 무시한 것이다. 

지난 7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10년 11월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던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를 시찰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지난 7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10년 11월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던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를 시찰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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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한 최초의 선제핵공격 선언

북한이 최근 정전체제 백지화를 선언한 것은 이러한 90년대 정전체제 흔들기의 재판이다. 북한은 이미 그들이 만든 판문점 대표부의 기능을 중지시켰다. 90년대처럼 먼저 '기구'를 무시한 것이다. 앞으로 북한은 정전을 유지하는 '선'(군사분계선)과 '영역'(비무장지대)를 부정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을 무시하는 도발을 시도할 것이다.

정전협정은 한국전쟁이 종료되지 않는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장치이다. 정전협정을 백지화한다는 것은 안전핀을 뽑아내고 규칙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전협정의 백지화는 전시상태로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이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을 투하한 이후 미국에 대해 핵선제공격을 선언한 나라는 이제까지 없었다. 전쟁반대, 비핵화, 정전협정 준수, 불가침 선언 등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화세력들이 줄기차게 주장한 것들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런 모든 주장들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선제 핵타격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북한의 의도는 평화체제 협상을 위한 대미 압박용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 미지수이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더 많다.

대개 핵무기를 보유하는 나라들은 핵무기를 가지고 상대방의 공격을 억제하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이 핵공격을 할 경우 반격을 가해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상대가 공격을 하지 못하게 미리부터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에 대해 선제핵공격을 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북한이 선제핵공격을 할 경우 미국의 핵보복공격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공격 위협은 선제공격용이라기 보다는 '최소핵억제'(minimum deterrence)이라고 할 수 있다. 소량의 핵무기를 가지고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에 대해 절대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즉 선제공격이 가능하지는 않지만 선제공격을 공언함으로써 핵억제를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북한은 핵무기 사용을 협박하고 공갈해서 한국과 미국의 외교전략과 목표를 북한이 이익에 맞게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세차례의 핵실험으로 이런 강압 외교를 본격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과시할 속셈일 것이다.

발등에 불을 끄고 '더 큰 외교'를 준비해야

전쟁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전쟁은 정치와 외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위협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된다. 마치 이솝우화에서 양치소년이 한 거짓말처럼 사람들의 위기감각을 무디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한반도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당국자들이 긴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금 당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달성하기 위한 거대한 전략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급하다. 한미 양국에서 관련부처 담당자 인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없는 '이'를 대신해서 '잇몸'이라도 나서야 한다. 더 이상 거친 언사를 남발해서는 안된다.  관련국가들의 최고위급들의 의사를 담은 물밑 접촉을 시작해서 냉각기를 만들어야 한다. 직접 나서기 어려우면 EU 국가들을 중재자로라도 내세워야 한다.

발등의 불을 끈 후에 다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을 수립하자.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는 '더 큰 채찍'을 준비한다면 반드시 '더 큰 당근'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를 전쟁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는 '더 큰 외교'가 될 것이다. 종국적으로 북미대화, 남북대화,  4자회담(남북미중 4개국 참가),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채널을 용도에 맞게 가동하여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이루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창수 기자는 통일맞이 정책실장을 역임하면서 '한반도평화포럼'과 '코리아연구원'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선제핵타격권리, #정전협정 백지화, #최소핵억제, #키 리졸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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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서로 어울리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어울릴 때 우리는 평화를 발견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이 평화이고 통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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