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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 2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회담을 마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샤를 드 골 대통령.
 1961년 6월 2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회담을 마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샤를 드 골 대통령.
ⓒ John Fitzgerald Kennedy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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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임시정부 수반인 드골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지시한 것은 1945년 10월이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원자력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60년 2월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핵실험에 성공한다. 프랑스는 미국, 소련, 영국에 이어 네 번째 핵보유국으로 등장했다. 물론 미국은 처음부터 프랑스의 핵개발을 반대했다. 드골은 미국 같은 나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프랑스 과학자들은 미국이 프랑스의 앞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여겼다.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라고 따졌다. 국제정치에서는 이를 '드골의 의심'이라고 부른다. 1961년에 있었던 일이다. 

'드골의 의심'을 흉내낸 한국의 핵무장론자들 

한국의 핵무장론자들은 "핵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위험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를 해왔다. '한국판 드골의 의심'이다. CNN도 이를 소개했다(CNN 2023.1.21.). '한국의 의심'이 국제사회에도 알려지는 기회(?)였다.

'한국의 의심' 때문에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그나마 '핵협의그룹(NCG)'이라도 얻어냈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계속 밀어붙이면 다음엔 더 큰 성과를 얻을 것이고, 결국 우리도 핵무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여당 인사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의심'은 핵무장론자들의 염원을 꺾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드골의 의심'이 케네디에게 표출된 것은 프랑스가 이미 핵실험을 마친 이후이다. 비밀리에 핵개발을 지시한 뒤 16년이 지난 후였다. '드골의 의심'은 의심으로 그친 게 아니라, 먼저 핵실험을 한 이후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후 조치였다. 드골은 핵개발을 철저하게 비밀리에 추진했기 때문에 의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진 않았다. 미국이 눈치를 챘어도 공공연하게 떠들진 않았던 것이다.  

'드골의 의심'을 모방한 '한국의 의심'은 프랑스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조짐이다. 자칫하면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이나 '미국의 의심'으로 입장이 뒤바뀌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워싱턴 선언은 한국의 우려를 달래는 내용이 담겼지만, 다른 한편 '국제사회의 의심'을 반영해 한국의 핵개발을 원천봉쇄하는 문구들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한미 양국의 쌍불신 
 
윤석열 한국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3년 4월 26일 워싱턴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국빈 도착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3년 4월 26일 워싱턴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국빈 도착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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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하며 한국의 미국 핵억제에 대한 지속적 의존의 중요성, 필요성 및 이점을 인식한다." 

워싱턴 선언을 읽다보면 이런 구절을 만난다. 숨이 헉 막히는 순간이다. 굳이 없어도 될 이런 구절은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를 불신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라는 쌍불신의 결과다.  

또 워싱턴 선언은 NPT(핵확산금지조약) 준수를 명기했다. 아울러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한미양국 공동의 목표로 설정했다. 

우리나라가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체 핵무장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미국과 나토식 핵공유 등 세 가지다. NPT를 준수한다면 이 셋 중 어느 하나도 실현가능하지 않다. 한반도 비핵평화를 추구하는 차원에서는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에 의해 강제된 조치라는 한계가 있다. 한국이 NPT를 준수하고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을 평화국가로 평가해줄 나라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핵개발 의심국가라는 딱지는 주홍글씨처럼 대한민국 브랜드에 새겨져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핵무장이 초래할 끔찍한 상황 

자체 핵무장을 할 경우 우리는 NPT에서 탈퇴해야 하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경제위기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핵무기 비확산을 추구하는 미국과도 갈등이 생겨서 한미동맹이 불안해질 것이다. 국제사회로부터 연료와 부품을 공급받지 못해서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멈춰야 할 것이고, 핵실험을 강행하다가 국내 여론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미국의 전술핵배치도 불가능하다. 미국은 한국에 배치할 전술핵무기도 없을 뿐 아니라, 의지는 더욱 없다. 1957년부터 미국이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했던 것은 NPT가 발효된 1970년 이전 상황이다. 1991년에 철수한 전술핵무기를 다시 배치한다면 이것은 NPT 위반이다. 

핵공유도 마찬가지다. 핵공유의 대전제는 미국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이다. 이를 한국이 관리하고 미국이 통제하는 것이 핵공유의 기본 개념이다. 미국은 핵공유의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핵공유를 한다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하므로 이 또한 명백하게 NPT 위반이 된다. 나토의 핵공유는 1966년이고, 이때는 1970년 발효한 NPT 이전이다. 미국이 NPT를 위반한다면 국제핵질서는 붕괴될 것이고, 이것은 치명적인 미국의 안보위협으로 부상할 것이다. 

▲자체 핵무장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미국과 나토식 핵공유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게다가 워싱턴 선언에서는 다시 NPT 준수를 다시 못박아 버렸다. 

워싱턴 선언에서는 한미원자력협정 준수도 재확인하고 있다. 한국의 핵개발 시도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워싱턴의 꼼꼼한 조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핵무장론자들이 한미원자력 협정을 개정해서 한국이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핵무기 개발과 무관하게 한국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주권 확대 차원에서 재처리와 농축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핵보유론자들의 어설픈 주장으로 그조차 물 건너갔다. 한국의 국가브랜드에는 자발적 비핵평화국가가 아니라 강제적 핵불능국가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다. 어쩌면 무모한 핵개발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국제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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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 흉내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일본에서도 자체 핵무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960년대에는 극우세력이 주장했지만, 21세기에는 아베 전 총리가 이에 대한 논의를 묵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드골 흉내를 냈다가는 나라가 거덜난다는 것을 알았다. 1967년부터 비핵3원칙을 세우고, 항상 비핵3원칙 준수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1970년에 NPT가 발효하자 일본은 NPT의 모범생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돼온 자체 핵무장론은 한국의 핵무장론과는 달리 NPT 모범생이라는 배경이 작용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일본과도 원자력협정을 체결했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갖고 있다. 해외에 재처리를 위탁해서 일본에 반입한 플루토늄은 50톤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폭탄 약 600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핵무장론자들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차별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차이의 본질은 드골을 모방한 '한국의 의심'에서 비롯한다.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한 것은 1978년부터다. 핵우산이란 동맹국을 미국의 핵억지력으로 보호한다는 개념이다.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여 동맹국을 안심시키는 대신에 핵확산을 막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 핵우산 제공의 목적이다. 

2006년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자 새롭게 논의되던 확장억제라는 개념을 한국에 적용했다. 당시 확장억제 제공은 '핵무장+α(알파)'를 뜻했다. 핵우산에 추가적인 억제조치를 더했기 때문에 '확장'이라는 용어를 붙인 것이다.  

확장억제 수단이 구체화된 것은 2006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이다. 미국은 ▲핵우산 ▲재래식 타격 능력 ▲미사일 방어 능력을 확장억제의 3대 수단으로 구체적으로 명문화했다. 

한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하고도 의심 받는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4월 26일 워싱턴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윤석열 한국 대통령 국빈 방문 환영식에 참석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4월 26일 워싱턴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윤석열 한국 대통령 국빈 방문 환영식에 참석해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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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확장억제 능력을 끊임없이 향상해왔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ICBM)뿐만 아니라 수시로 한반도에 전개되는 B-52, B-2 같은 전략폭격기는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나토에서 미국과 핵공유를 하고 있는 독일·네덜란드·벨기에 같은 나라들은 역외에서 핵억지를 제공하는 한반도 모델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2010년 이후부터 유럽 역내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보다는 역외에 배치한 전략자산으로 핵억제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는 이렇게 진행돼왔는데, 한국에서 확장억제에 대한 의심이 생긴 것이다. 미국은 강온 양면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핵개발을 원천봉쇄하는 조치를 워싱턴 선언에 녹여 넣은 것이 강경책, 다른 말로 '징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온건대응으로는 한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추가적인 조치를 하는 것, 즉 당근이다. '핵협의그룹(NCG)' 신설이 그것이다. 

한국 정부는 핵협의그룹 설치를 최대성과로 꼽는다. 하지만 한미 핵협의그룹은 '한국의 늪'이 될 수도 있다. 한미일 핵협의그룹으로 발전하는 것이 그 경우다. 미국에서는 한미 핵협의그룹을 만들고 이를 '아시아 핵협의그룹'으로 발전시키자는 논의가 진행돼왔다. 이러한 논의대로 진행된다면 사실상 아시아판 나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은 핵국가인 중국, 러시아와 대치전선의 최일선에 서게 된다. 

한국은 190개가 넘는 지구촌의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한국의 매력에 대해 전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공공연하게 한국을 위협하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30년만에 처음 맞이하는 새로운 안보 위협이다. 글로벌 안보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어설프게 '드골의 의심'을 따라하면서 대책없이 전술핵재배치나 핵공유를 비롯한 핵개발을 주장한 대가다. 확장억제와 튼튼한 국방 그리고 대화와 외교를 융복합하는 국가전략이 북핵 위협에 대한 대책이다. 현재 정부의 모습엔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한 인식도 없고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창수씨는 코리아연구원 전 원장이고, 민주평통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태그:#워싱턴선언, #핵공유, #핵협의그룹, #드골의 의심, #한국 핵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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