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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무서웠다. 그래서 '안 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내게 들이댔다."

그가 말했다.
"강제성이 전혀 없었다. 서로 합의 하에 한 것이다. 나는 상대가 싫다고 하면 안 한다."

귀에 익은 남녀의 진술이다. 이 대화는 지금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박시후 성폭행 사건'의 당사자인 '그'와 '그녀'의 진술이 아니다. 1년 전 발생한 미국판 박시후 사건인 '쿼터백(풋볼 공격수) 사건'에 등장하는 '그'와 '그녀'의 진술이다. 남자는 키 185cm , 몸무게 91kg의 훤칠한 스타 쿼터백이고, 여자는 남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급생 대학생이다.

미국 언론은 이렇게 서로 다르게 진술하는 '스타 쿼터백 강간사건'에 대해 오래된 영화 제목을 따 'He said, She said'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기자 주: 1991년에 나온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 'He said, She said (그가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는 우리나라에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대>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그 영화에서는 낙태, 성희롱, 동성애자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르게 느끼는지, 남녀간의 뚜렷한 시각 차이를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졌나

강간은 중죄에 해당하는 범죄로 최고 100년형까지 선고 받을 수 있다고 보도한 ABC.
 강간은 중죄에 해당하는 범죄로 최고 100년형까지 선고 받을 수 있다고 보도한 ABC.
ⓒ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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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로 '산악 지대'라는 뜻을 가진 몬태나는 캐나다와 접경을 이룬 미국 북서부에 있는 주다. 바로 이 몬태나주의 미술라에 있는 몬태나 대학(University of Montana)에 한 여성의 강간 사건이 접수되었다. 지난해 벌어진 일이다.

2012년 2월 4일, 몬태나 대학에 재학 중인 이 여대생(21)은 같은 대학에 다니는 풋볼 선수인 조단 존슨(20)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던 이 여성은 존슨과 같은 2학년으로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존슨은 몬태나 대학의 주전 쿼터백으로 2011년에 몬태나 대학 풋불팀에 11승 3패라는 좋은 성적을 이끌어 낸 스타 플레이어였다.

존슨은 이 여성과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봤다. 그런 다음 젊은 두 남녀 사이에 '사건'이 발생했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바로 두 남녀가 성관계를 가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은 사건 발생 한 달 반이 지난 뒤에야 존슨을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 존슨이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약 이 여성의 말대로 존슨이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면 존슨에게는 최고 100년 형의 선고가 내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소 사건이 발생하자 존슨은 그 여성과의 성관계가 강제가 아닌 상호 동의 하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즉, 두 사람이 분위기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성관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 여성은 존슨을 고소했고, 존슨은 몬태나 대학 학장으로부터 지난해 7월 자신이 강간혐의로 피소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 곧 바로 검찰 측의 조사가 이어졌다.

존슨은 자신에게 불리한 고소가 접수된 뒤 주전으로 뛰었던 풋볼팀에서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난 뒤에는 합의 없이 성관계를 가진 '강간'이라는 중죄로 기소되어 풋볼팀에서 아예 쫓겨났다. 몬태나 대학의 '운동선수 행동 수칙'을 위반한 혐의가 적용된 것이다.

한편, 이 사건이 발생한 뒤 법무부는 작년 5월에 미술라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 수를 조사하여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미술라에서는 모두 80건의 성폭행 사건이 보도되었는데 그 가운데 11건이 대학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법무부가 성폭행 사건을 조사한 것은 대학 측과 경찰 당국이 여성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적절하고 공정한 조치를 제대로 취했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또한, 대학스포츠협회(NCAA)도 나서서 학원스포츠 프로그램을 조사했고 교육부도 캠퍼스 내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이나 폭행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가 말했다" vs. "그가 말했다"... 증언대에 선 남녀

그녀가 말했다: "그가 내 옷을 벗긴 뒤 강제로 침대로 데려갔다. 나는 겁이 나서 "섹스는 안 돼"라고 반항하며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몸을 내게 계속 들이대며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정말 아팠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여자 측 증언: "그날 밤 그녀는 창백했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존슨을 집에 데려다 주고 온 뒤 몹시 울었다.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가 말했다: "그날 밤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영화를 봤다. 그러다 서로 흥분이 되어... 그녀는 섹스를 하기 전 콘돔이 있냐고 내게 물었다. 없다고 하자 그녀는 "됐어(That's ok)"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콘돔 없이 섹스를 해도 괜찮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녀가 좋아했던 것 같다. 그녀는 내게 "안 돼(No)"라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그만 두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그런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상대의 뜻을 존중한다.

그녀는 섹스가 끝난 뒤 내게 언제 집에 갈거냐고 물었다. 자신이 '포레스터스 볼(Foresters' Ball: 장학금 펀드레이징 파티)에 간 친구들을 자기 차로 집까지 데려다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집에 갈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갈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지금'이라고 대답했고 그녀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가 그녀의 집을 나설 때 그녀의 룸메이트는 거실 소파에 앉아 비디오 게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원고 측 여성은 대학에 있는 '학생폭력 지원센터'를 찾아가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찰 측은 의료진의 검사 결과를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그녀는 머리와 쇄골, 가슴과 음부에 상처를 입었고 이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신적 충격 때문에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생겨 정신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검찰 측은 법정 진술에서 고소인의 몸에 멍이 든 자국이 있음을 밝히면서 존슨과 밤을 보낸 뒤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기도 틀었다. "그는 계속해서 내게 들이댔다. 정말 아팠다"고 하는 내용이 녹음기에서 흘러 나왔다.

그러나 피고 측에서는 이를 즉각 반박했다. 만약 그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강간을 당했다면 도와달라고 친구들에게 비명을 지르는 등의 행동을 취했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겁이 나고 충격을 받아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피고 측 변호인단은 섹스가 끝난 뒤 그 여성이 존슨을 자신의 차로 데려다 준 점도 강간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피고 측에서는 존슨의 고등학교 풋볼 감독과 교회 주일학교 목사도 증언대에 세워 존슨에게 유리한 증거를 하도록 했다. 이들에 따르면 존슨은 스타 플레이어이지만 특권의식도 없고,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라고 했다. 존슨은 2010년에 멕시코로 청소년 선교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자원봉사 활동으로 건축 프로젝트에도 참여했고 현지 아이들을 자신의 어깨에 태운 사진도 법정에서 공개했다. 이들은 존슨이 늘 친절하고, 점잖고, 다정하고, 예의바르고, 자기 절제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이번 사건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것은 여자가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이번 사건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것은 여자가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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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녀가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그녀는 성관계가 끝난 후 자신의 룸메이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오마이갓. 내가 방금 강간을 당했다고 생각해. 나는 No라고 말했지만 그가 듣지 않았어.(OMG I think I might have just gotten raped. I did say no, but he wouldn't lisen.)"

피고 측에서는 여성이 보낸 "강간을 당했다고 생각해"라는 문자 메시지에 나온 동사 '생각하다(think)'를 문제 삼았다. 즉, 실제로 강간 당한 사람이라면 그런 불분명한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가 페이스북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 내용도 강간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피고 측은 주장했다. 그녀는 "나는 그(존슨)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마 내가 원했는지도 모르겠어"라는 대화를 친구와 나눴다.

피고 측은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을 들어 그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들은 그녀가 묵시적으로 존슨과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지만 변심하게 된 데 대해 다음과 같은 추측을 내놓았다.

- 이 여성은 존슨과 관계 후 존슨이 포옹도 안 해주고 존슨 집 앞에서 헤어질 때 "고마워"라는 말만 해서 화가 난 것이다.
- 존슨이 새 여성을 만나자 질투심에서 그런 것이다.
- 그녀는 스타 쿼터백과 사귀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런 남녀관계로 진전될 것 같지 않자 돌변하여 존슨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존슨에게 '퇴짜맞은' 것에 대해 복수하려고 작정한 것이다. 존슨이 그녀에게 그렇게 대했다고 해서 그날 벌어진 일이 '범죄'가 되는 건 아니다.

(기자 주: 풋볼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특히 공격팀을 주도하는 쿼터백은 팀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팀 공헌도도 높고 연봉도 다른 선수에 비해 월등하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지난해 9월 보도한 NFL 고소득자 25명의 명단을 보면 쿼터백이 7명으로 가장 많다. 덴버 브롱코스의 쿼터백인 페이튼 매닝은 연봉이 1800만 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200억 정도 된다. NFL 챔피언전인 슈퍼볼에서도 최우수선수(MVP)상을 독차지 하는 것은 쿼터백이다. 올해 벌어진 47회 슈퍼볼 대회에서도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쿼터백이 MVP를 차지했고 지금까지 벌어진 슈퍼볼에서도 절반이 넘는 26명의 쿼터백이 MVP에 뽑혔다.

이런 까닭에 쿼터백 주변에는 항상 여성이 많고, 특히 미인이 많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대학 풋볼 최강자를 가리는 BCS 챔피언십 경기인 노틀담과 앨라배마 경기를 중계하던 ESPN의 아나운서 브렌트 머스버거는 중계방송 도중 앨라배마의 쿼터백 여자친구의 미모를 극찬하는 발언과 "쿼터백들이 모든 미인들을 다 차지한다"는 농담을 던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강간 아니다"... 존슨 무죄 판결

변호인단과 함께 선 존슨이 무죄가 선고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몬태나 대학의 학생 자치 신문인 '몬태나 카이민'이 보도했다.
 변호인단과 함께 선 존슨이 무죄가 선고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몬태나 대학의 학생 자치 신문인 '몬태나 카이민'이 보도했다.
ⓒ Montana Kai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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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양측이 팽팽히 맞서면서 1년 가까이 끌었던 강간 혐의에 대한 치열한 공방전은
마침내 종결되었다. 지난 3월 1일에 배심원의 최종 평결이 나온 것이다. 배심원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긴 숙의 끝에 결국 존슨의 손을 들어주었다

"무죄(Not guilty)!"

무죄가 선언되자 존슨은 곁에 선 두 명의 변호인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존슨의 지지자들인 대학 풋볼팀 감독과 동료선수들, 가족 친지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냈다. 존슨의 강간 혐의를 입증하려고 했던 검찰 측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배심원은 존슨이 그 여성을 강간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배심원의 무죄 평결이 내려진 뒤 존슨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즉, 자신이 사랑하는 풋볼팀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몬태나 대학 당국도 "스포츠 행동 위원회가 그의 탄원을 들은 뒤 절차를 밟아 풋볼팀에 복귀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이런 조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스타 쿼터백 강간사건'은 결국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한 여성의 패소로 끝이 났다. 현재 그 여성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배심원의 판결대로 피고소인이 무죄라면 무고한 사람을 강간범, 성범죄자로 몰아 한 인생을 망치게 할 뻔 했던 고소인에 대해 그 신원을 공개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태그:#쿼터백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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