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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지출 삭감에 대한 백악관과 하원의 회동에 진전이 없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1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지출 삭감에 대한 백악관과 하원의 회동에 진전이 없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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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돼."
"그게 압류(시퀘스터sequester : 일명 '예산 자동 삭감')의 미학이죠. 너무 말도 안되서 아무도 압류가 발생하길 원치 않을 겁니다. 아무도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폭탄이죠. 그래서 강제성을 갖는 겁니다."   <정치의 대가> p325

'압류'라는 발상을 미쳤다고 생각했던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대표가 2011년 7월, 당시 백악관 예산처장(현 재무부 장관)이었던 잭 류와 당시 백악관 입법 담당 국장이었던 롭 네이버스(현 비서실 정책 담당 차장)와 나눴던 대화 내용이다. 1985년 그램-러드맨-홀링스 적자 축소 법안에서 나왔던 '압류'라는 용어가 4반세기가 지난 2011년 여름에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압류는 예산통제법에 따라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 지출을 법률에 따라 한도를 미리 정해 놓고 일정액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절차를 의미한다.

워터게이트를 폭로한 밥 우드워드가 쓴 <정치의 대가(The Price of Politics)> (2012년 9월 11일 출간)에 따르면, 2012년 재선 당시 오바마의 주장과는 달리 '압류'라는 발상을 처음 꺼낸 것은 백악관이었다. 백악관은 공화당이 '압류'로 인해 매년 425억 달러(한화로 약 46조)의 방위비가 자동삭감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라 믿고, '압류'라는 시한폭탄을 2011년의 예산 조절안(Budget Control Act)에 심어놓았다. 물론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 의장도 이 발상에 동의했다.

그러나 2013년 3월 1일(미국현지시각), "아무도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폭탄", 리드 민주당 상원 대표가 '미쳤다'고 생각했던 압류, 즉 예산 자동 삭감이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백악관과 민주당, 그리고 공화당 의원들은 이 '폭탄'이 터지는 것을 방관했다. 이로써 올 9월까지 미 연방정부 예산 850억 달러 (약 92조원)가 점차적으로 자동 삭감된다.

폭탄이 터졌지만....

언론에 따르면 '압류'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1일(법적으로는 오바마가 3월 2일 자정 전까지 '압류'안에 서명해야하고 실제 효력은 그 이후에 발생한다.: 기자 주), 워싱턴 정가는 고요했다. 이미 예정됐던 양당 대표와 대통령과의 회동은 이날 오전,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금세 끝났다. 어떤 위기감도 협상도 없었다. 의원들 대부분은 각자의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전날 28일에 워싱턴을 떠났다.

사실 미 언론은 백악관이 마련한 1일의 회동 자체가 '압류'의 해결 시점이 지난 날인데다, 그간 공화당과 백악관의 대치 상황이 심각했던 탓에 '압류 시한 폭탄'이 터지는 것을 기정사실화 해왔다.

백악관 회동 직전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대표는 "오늘 회동을 통해 워싱턴의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여러 의견들을 토론하게 돼 기쁘다. 그러나 증세에 합의하기 위한 어떠한 막판, 뒷방 합의도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같은 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회동 직후 "확실히 하자. 대통령은 1월 1일에 그가 원했던 증세(연소득 45만불 이상 납세자가 대상: 기자 주)를 얻어냈다. 세수에 대한 어떠한 토론도 끝났다는 것이 내 견해다. 워싱턴의 지출 문제에 대한 얘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그는 지출 삭감을 상쇄하려는 어떠한 세수 확대도 앞으로 계속 반대할 것이라 천명한 셈이다.

1일자 <허핑턴 포스트> 기사는 "고통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오바마의 말을 제목으로 적었다
 1일자 <허핑턴 포스트> 기사는 "고통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오바마의 말을 제목으로 적었다
ⓒ 허핑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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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같은 시각 오바마는 "예산 자동 삭감이 실행되는 것은 어떤 협상도 막으려는 공화당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고통이 현실화 될 것"이며 "수개월 내 경제지표들이 그 결과를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자신이 '제다이(영화 스타워즈의 전사들)'가 아닌 이상,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오바마는 "나는 독재자가 아니다. 대통령이다. 미치 매코널이나 존 베이너가 '비행기 타러 가야 한다'는데 내가 대통령 경호원을 보내 가는 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그는 "이 어려움을 뚫고 갈 것이다.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일로)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다. 단지 어리석은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처럼 세상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끝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재정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상황이 때문에 암울하기만 하다. '압류' 폭탄으로 인한 피해를 실감하기도 전에 더 큰 '재정 폭탄'이 3월 27일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번 압류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왜 2011년에 의도했던 것처럼 압류라는 극약 처방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일까?

극약 처방, 왜 효과를 거두지 못했나

2010년 중간 선거에서 티파티 운동의 바람을 타고 공화당 하원들이 대거 당선됐다.(참고로 현재 총 232명의 공화당 하원 의원들 중 116명은 2010년 선거로 의회에 입성했다.)이들은 정부 재정 규모 축소를 제1과제로 내세우며, 만약 정부 부채 상한선을 올려야 한다면 딱 그만큼의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2011년 여름, 백악관과 공화당 하원이 향후 10년간 1조2000억 달러의 적자를 줄인다는 큰 줄기에는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액수를 어디에서 줄일지는 결정하지 못한 채 엄청난 갈등 중이었다. 그 결과 같은 해 8월 5일,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는 미국 정부의 신용 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시키기도 했다.

당시 오바마의 재선 이전에 부채 상한선 인상으로 정치적 갈등이 재발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백악관은 '압류'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즉, 양당이 예산 자동 삭감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지 못할 경우, '압류' 시한이 되면, 향후 10년간 방위비 분야에서 6천억 달러, 비 방위비 분야에서 6천억 달러를 무작위적으로 삭감한다는 계획이었다. 다시 말해 방위비 삭감을 반대하는 공화당과 비 방위비 분야(교육, 복지 등의 분야)의 삭감을 반대하는 민주당이 어떻게서든 합의를 이룰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물인 셈이다.

참고로 백악관과 베이너 하원 의장 및 에릭 켄터 공화당 하원 대표가 '압류'에 찬성한 것은 양자가 모두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크게 작용했다. 2월 <뉴요커>의 크리스 리자에 따르면, 켄터는 공화당 대통령이 당선되면 공화당에게 유리한 예산안이 만들어 질 것이기 때문에 대선 전에 미리 민주당과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방위비 삭감을 반드시 반대할 것이라 생각한 백악관의 계산은 결국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공화당 상원의 경우 존 메케인이나 린지 그램, 베이너 하원 의장 등은 방위비 삭감을 반대하지만, 많은 수의 공화당 의원들은 예산 삭감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압류라는 '시한폭탄'을 해체하는데 백악관과 양당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들은 압류 문제를 대선을 통해서 미국 유권자들 손에 맡겼고, 2012년 부시 감세안 종료와 재정 절벽 위기 일때도 이 문제를 뒤로 미루기만 했다. (애초에 '압류'의 작동 시한은 2013년 1월 1일이었으나, 당시 부시 감세안 종료 처리 과정에서 양당은 그 시한을 3월 1일로 연기했다.) 더욱이 앞으로도 '압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오바마는 '압류'를 대체하기 위해서 정부 예산 삭감과 세수 증대를 함께 주장해왔다. 2011년 '압류' 조항이 포함된 예산통제법(Budget Control Act of 2011)에 서명할 때 "양당이 적자를 줄이기 위한 더 큰 계획안을 함께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며, "오로지 예산 삭감만으로는 정부 재정을 메꿀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다 논의한다는 균형된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증세를 염두에 둔 오바마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은 말그대로 어떤 종류의 증세도 반대하고 있다. (즉, 세제 개혁을 통한 세수 확대도 증세로 간주한다.) 게다가 이미 부시 감세안이 종료할 때와 올 1월 말 정부 부채 상한선을 올릴 때, 공화당은 두 번 다 오바마에게 양보했다고 믿기 때문에 더더욱 오바마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협상의 주역들인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대표와 존 코닌 의원 등은 당장 내년부터 선거전에 돌입한다. 이들은 각각 켄터키와 텍사스 주를 대표하는 의원들로 이 주에서는 티파티를 대표하는 랜드 폴과 테드 크루즈를 역시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한 바 있다.

무엇보다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은 지난 두 차례 다 오바마와 타협을 봤다는 이유로 하원 의장 재선에서 낙선될 수도 있다는 위기에 놓였다. 또 같은 달 허리케인 샌디의 희생자들을 돕는 법안과 부채 상한선을 올리는 법안 처리시 공화당 하원의 다수는 베이너 하원 의장의 명령에 불복,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후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일대일로 만나 어떤 정치적 타협을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공언을 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 직원들 월급도 못주나

<미국진보센터>에서 만든 인포그래픽, '부자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어야 하나, 아니면 가장 도움이 필요한 미국인들을 위해 프로그램들을 보존해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압류'에 의해 예산이 삭감되는 복지 정책의 내용과 삭감 액수를 그림으로 나타냈다.
 <미국진보센터>에서 만든 인포그래픽, '부자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어야 하나, 아니면 가장 도움이 필요한 미국인들을 위해 프로그램들을 보존해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압류'에 의해 예산이 삭감되는 복지 정책의 내용과 삭감 액수를 그림으로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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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작년 말 '재정절벽'위기를 다룰 때부터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니 절벽들(mini cliffs)'이 줄줄이 기다리고 경고를 던진 바 있다.

관련기사 : 31일 극적 합의... 미국 '재정절벽' 위기 타결될 듯

1월 말의 부채 상한선 인상과 2월 말의 '압류'같은 '미니 절벽들'에 이어, 3월 27일은 미국 정부 전반에 대한 운영비 공급이 끝나는 날이다. 이 때까지 백악관과 의회가 타협을 보지 못하면 미국 정부는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가장 최근에 있던 '정부 폐쇄(government shutdown)'의 위기는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때 있었다. 현재 '압류'의 문제도 3월 27일까지 함께 논의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또 다른 '미니 절벽' 위기는 5월 중순에 예고되고 있는데, 올 1월 말의 정부 부채 상한선 인상 문제가 5월 중순으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정부 부채 상한선을 인상하는 일이나 정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의회가 예산을 승인하는 문제는 미국에선 관행적인 일로, 소위 '절벽'이라 일컫는 위기를 낳은 적이 거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의 보수화가 극심해지고 민주-공화 양당의 이념 갈등이 심화되면서 '절벽'같은 위기가 전례없이 빈번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가령 1일자 <뉴욕타임스>의 존 하드우드는 이번 '압류' 문제와 관련, "결국 정부의 권한을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공화당과 시장의 영향력을 정부로 완충하고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민주당 간의 아주 오래된 이념 대결"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나 2009년 초에 시작된 대침체(Great Recession)와 월가에 대한 정부 구제금융, 그리고 미국 정부의 적자 문제가 2010년에 티파티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 의원들을 대거 의회로 보냈고, 이들의 이념적 경직성이 민주당 및 백악관과의 타협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시각이 우세하다.

한편 타협하지 않는 미국 정치인들에 대해 미국인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2월 25일 NBC와 월스트리트 저널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에 대한 선호도는 49%, 민주당은 41%, 공화당은 29%로 나타났다. 재선 이후 50%를 웃돌던 오바마의 선호도가 재정 위기를 겪으면서 조금씩 빠지고 있는 셈이다.  또한 미국 의회에 대한 미국인의 호감도는 최악을 치닫고 있다. 올 1월 퍼블릭 폴리시 폴링(PPP)은 재정 절벽 타결 직후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의회의 호감도가 바퀴벌레, 머리에 끼는 이 등보다 낮다고 발표한 바 있다.


태그:#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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