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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고 최강서씨의 빈소가 마련된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고요했다. 최씨의 빈소는 노조원들이 '단결의 광장'이라 부르는 회사 내 넓은 공간의 한켠에 자리해있다.
 1일 고 최강서씨의 빈소가 마련된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고요했다. 최씨의 빈소는 노조원들이 '단결의 광장'이라 부르는 회사 내 넓은 공간의 한켠에 자리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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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가 목을 맸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노조 대회의실로 뛰어 들어갔어요. 119를 누르는데 다이얼이 안 눌러집디다. 병원으로 옮기고 심폐소생술을 했는데도 못 일어나데요.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나데예. 회사로 돌아오는데 '최강서 열사'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이는 겁니다. 그때부터 왈칵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뭔가 치솟아 오르는 것 같이…."

이용대(56)씨에게 지난해 12월 21일은 인생에서 잊지 못하는 날이 됐다. 1985년 한진중공업에 재취업해서 지금까지 그가 본 동료의 죽음만 네 번째다. 1991년 박창수, 2003년 김주익과 곽재규, 지난해 최강서까지, 친했던 형과 친구, 동생을 그는 떠나보냈다.

"한 공장에서 네 명이나 죽는다는 거 이거 모두 악랄한 노동탄압 때문입니다. 철저한 노동탄압이 계속 쌓이다 쌓여 지난 9년 동안만 3명이 죽은 겁니다. 근데요,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압니까?"

1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에는 30일 임시로 설치한 빈소가 천막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비바람이 불면 천막은 뽑힐 듯 흔들렸다.
 1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에는 30일 임시로 설치한 빈소가 천막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비바람이 불면 천막은 뽑힐 듯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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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안경을 벗어 눈을 한번 후비적거렸다. 복직이 되는 날을 하나씩 꼽아가며 기다렸던 손이었다. 이제는 모든게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란 기대를 했지만 회사는 일손이 필요 없다며 몇 시간만에 복직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30여 년 크레인을 운전했던 노동자의 손에는 크레인 손잡이 대신 동생의 외올베(관을 묶을 때 쓰는 마)가 쥐어졌다. 거칠고 주름진 손으로 눈을 슬쩍 닦은 이씨가 말을 이어나갔다.

"강서로 끝나야 하는데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거 같습니다. 지금 애들이 정상적 생각이 아닙니다. 너무 졸지에 많은 일이 일어났잖아요. 지금 진압 들어오면 용산 참사 버금가는 참사납니다. 판단 잘 해야 합니다. 조남호 회장님, 더 이상 죽이지 말아주세요. 호소드립니다."

적막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일부 직원들은 정상출근

1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부는 몇몇 직원들만 정상 출근해서 작업 중이었다. 사측은 대부분의 직원들에게 출근을 하지 말라고 해놓은 상태다. '최강서열사대책위'는 이점을 들어 노조가 회사 내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있다는 주장을 비판했다.
 1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부는 몇몇 직원들만 정상 출근해서 작업 중이었다. 사측은 대부분의 직원들에게 출근을 하지 말라고 해놓은 상태다. '최강서열사대책위'는 이점을 들어 노조가 회사 내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있다는 주장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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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바다 바람이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광장에 세워놓은 천막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회사 노동자들은 빈소가 쳐진 회사 안 광장을 '단결의 광장'이라 불렀다. 그동안 수많은 투쟁가가 울려 퍼지던 광장에는 이날 빗소리가 가득했다. 1일 부산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와 '최강서열사대책위'가 이곳에 빈소를 차리자 직원들의 출근을 자제시켰다. 몇몇 관리직과 협력업체 직원들만이 한산한 공장 안을 걸어다녔다. 그들은 마치 물길이 섬이라도 만난 듯 빈소 주변을 돌아서 지나갔다.

따라붙어서 말이라도 붙여볼라치면 "저는 잘 몰라서요" 내지는 "말 할 수 없습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그나마 한 직원이 걸어가면서 말을 해줬다. 빈소를 보면 드는 기분을 묻는 질문에 지금은 복수노조에 속해 있다는 이 직원은 "마음이 안 좋죠"라고 답했다.

"회사 안에 빈소를 차리면 선박 수주가 안 될 것 같아 그렇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것보다도 한 때 같이 일하던 직원 아닙니까. 죽어서 저렇게 있는데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라고 말한 그는 주변 동료들과 최씨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했다. 그는 "저마다 생각은 다르지만 사태가 빨리 해결되야 한다는 데는 같은 마음"이라 말하고 빗속으로 걸어나갔다.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 보안요원의 경호 받으며 퇴근

1일 오후 1시 30분께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빠져나가던 이재용 사장은 취재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카메라 촬영에는 우산을 펴서 막았다.
 1일 오후 1시 30분께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빠져나가던 이재용 사장은 취재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카메라 촬영에는 우산을 펴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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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를 뚫고 걸어나간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이었다. 오후 1시 30분께 그는 건장한 보안요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기자의 카메라가 따라붙었고, 보안요원들은 우산을 펼쳐 카메라를 막는데 사용했다. 그에게는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가 나간 후 회사 경비직원들은 정문을 다시 쇠사슬로 휘어 감았다. 노동자들에게는 식량과 생필품을 넣어 줄 때나 열리는 문이었다. 고인을 안치할 드라이아이스도 거듭된 요구 끝에 반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측은 유족과 대책위가 요구하고 있는 냉동탑차의 반입에는 부정적이다. 

40대 조합원 A씨는 이런 회사를 향해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A씨는 "회사는 우리가 시신을 볼모로 싸우고 있고 관리직 직원들이 갇혀 있다는데 우리는 정상출퇴근을 하라고 말했다"며 "회사야말로 직원들을 볼모로 하지 말라, 왜 말 못하는 협력업체 직원들과 하급 관리직만 못살게 구나"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반면 회사 임원의 신변보호를 위해 임시로 고용된 보안업체 직원은 이들이 위협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공장 안에서 만난 한 보안업체 직원은 "우리는 아무 대응도 안 하는데 노조에서 항상 위협을 가한다"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거듭되는 실랑이... "풀 수 있는 사람은 조남호 회장뿐"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비업체 직원들. 이들은 회사 임원들을 금속노조원들로 지키는 임무를 수행중이다. 이들은 '용역'이란 표현을 극도로 경계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비업체 직원들. 이들은 회사 임원들을 금속노조원들로 지키는 임무를 수행중이다. 이들은 '용역'이란 표현을 극도로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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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밤에도 보안업체 직원과 노조원들 사이에는 마찰이 생겼다. 한 노조원이 보안업체 직원이 던진 먹다 남은 음료를 맞았다고 하자 격분한 노조원들이 돌을 던져 경비실 2층 유리창을 깨부쉈다. 하루 전날 밤에 대해 옆에 보안업체 직원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노조사람들은 거짓말쟁이다"고 말했고 다른 직원은 흥분을 가라앉히라는 듯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양측의 대립이 격해지면서 사이에 놓인 보안업체 직원들과 노조원들간의 감정싸움만 반복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사측은 "빈소를 밖으로 빼야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대책위는 "운구행렬을 막아서 이번 사태를 만든 것은 회사"라며 나갈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차해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은 "이 일은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남호 회장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차 지회장과 노조원들은 책임 있는 사람이 교섭에 나와야 한다고 보고 있고 그 사람이 결국 조 회장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회사는 장례절차와 유족보상 등만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왜 강서가 죽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현재까지 양쪽에게 좋지 못한 채로 흘러가고 있다. 경찰의 진압작전이나 용역들이 투입된다는 소리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돌고 있던 터였다. 차 지회장은 "조선소 안에는 온통 유류나 페인트, 신나가 널려있다"며 "정말 진압이 들어오면 지회장이 뜯어말려도 돌발상황은 짐작할 수 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한 신중하게 대응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조 회장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30일 고 최강서씨의 주검이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으로 들어온 후 사측은 정문을 쇠사슬로 감았다. 이 문은 내부 노조원들이 식량을 건내받을 때나 임원 혹은 관리직 직원들이 드나들때 열린다.
 30일 고 최강서씨의 주검이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으로 들어온 후 사측은 정문을 쇠사슬로 감았다. 이 문은 내부 노조원들이 식량을 건내받을 때나 임원 혹은 관리직 직원들이 드나들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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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진중공업, #최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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