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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아니 이미 많이 바뀌었다. 관광버스나 렌터카 일변도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 걷기여행이나 자전거 여행 등으로 매우 다양해졌다.

걷기여행 열풍의 중심에는 단연 올레길이 있다. 2007년 9월 올레길1코스가 문을 열어 젖힌 이후 2012년 11월 21코스가 개장되면서 제주를 한바퀴 도는 풀라인업이 완성되었다. 올레길에서 촉발된 걷기여행은 그동안 생소했던 제주의 숲길과 오름 등으로 확대되어, 걷기를 통한 제주의 속살탐험이라는 하나의 여행콘셉트로서 완전히 자리잡은 듯하다. 가히 제주의 재발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올레길6코스
 올레길6코스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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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1월 어느 겨울날 올레걷기 모임에서 올레6코스를 다녀왔다(인터넷에 올레걷기 모임이 많이 있으니 함께 걸을 동행인이 필요하다면 가입하여 구해보는 것도 좋겠다. 단 낯선 사람의 개인적인 접근은 조심하자). 6코스 출발점인 쇠소깍으로 가보니 따사로운 날씨와 촉촉한 공기가 맴돌고 있다. 1월 하순인데도 완전히 봄날씨(그것도 4월쯤 되는) 같다. 기온은 15도를 넘는 듯하다.

날씨로 볼 때 겨울의 올레길 여행은 제주의 남쪽 코스가 더 낫다. 서귀포 쪽이 기온이 더 높고 겨울에는 바람도 덜 분다. 4코스부터 10코스까지가 제주의 남쪽 (표선부터 모슬포까지)에 위치해 있으니 마음에 드는 코스로 골라잡으면 된다.

출발점 옆 정자 앞에 오늘 올레탐방을 같이 할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출발하기 전 쇠소깍을 잠시 둘러 보았다. 겨울철의 쇠소깍은 물빛도 흐리고 뭔가 쓸쓸한 느낌이 많이 나는데 오늘은 봄여름의 그것처럼 환하고 수려하다.

쇠소깍 - 바다와 만나는 곳
 쇠소깍 - 바다와 만나는 곳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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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은 계곡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인데 그냥 강물의 모양새가 아니고 범상치 않은 깊은 계곡이 바닷물과 어우러져 꽤 환상적인 자태를 자랑하는 곳이다. 쇠소깍에는 물에서 배를 타는 일종의 놀이기구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투명카약(2인)과 줄을 당겨 왔다갔다하는 땟목인 태우(다수)가 있다.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 덕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발한다. 6코스는 대부분 바당올레(해안길)인데 바닷길만의 단조로운 코스가 아니고 매우 다양한 조합들이 섞인 곳이다. 초반에 재지기오름이라는 작은 오름도 오르고 서귀포 시 쪽으로 접근하며 소정방폭포(폭포는 잘 보이지 않는다)와 정방폭포 등 이색적인 해안 풍경들도 많다. 또한 서귀포 시내도 통과하는데 이중섭미술관과 살던집, 이중섭거리,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등등 바다와 오름 그리고 서귀포시가 포함되어 매우 다양한 코스라 할 수 있다.

올레길 26개 코스 중 육지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어디일까. 7코스가 가장 인기가 좋다. 서귀포 외돌개에서 시작해 돔베낭골, 법환포구를 거쳐 강정마을과 월평포구로 이어진 7코스는 남국의 맛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예쁜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10코스이다. 화순비치에서 시작하여 산방산 밑을 지나 용머리 해안을 거쳐 사계해안 도로를 지나고, 10코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송악산을 돌아나와 모슬포까지 이어진 코스이다. 해안, 오름, 들판 등등 멋진 풍광이 가득하다. 물론 이상의 올레 선호도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 참고만 하시라.

6코스의 시작은 보목포구 방향의 해안길이다. 30분 정도만에 '게우지코지'라는 예쁜 해안풍경을 만난다(코지는 제주방언으로 '반도'를 뜻한다). 맑은 날이라 한라산이 보일까 하여 고개를 돌려보니 정상 쪽만 구름에 가린 한라산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게우지코지
 게우지코지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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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따뜻한 날씨라 초반부터 입고 온 옷이 부담되기 시작한다. 저마다 방한점퍼를 벗고 가벼운 바람막이나 셔츠차림으로 복장을 바꾼다. 반소매만 걸치고 걷는 회원도 있다. 사진으로만 보면 누가 한겨울이라 생각하겠는가.

보목포구 앞에 있는 무인도를 보고 가다가 오른쪽으로 틀어 작은 오름을 오른다. 재지기오름은 크진 않으나 계단으로 된 오르막이 가파른 편이라 금방 숨이 가쁘다. 하지만 오르는 거리가 짧아 10여분만 헐떡이다보면 금방 정상이다. 우리는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고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싸한 느낌이 지친 세포를 다시 깨우는 것 같다.

재지기오름에서 본 보목포구
 재지기오름에서 본 보목포구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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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바다에 보다 근접하게 꺾어 들어가니 해안경치가 변하며 더욱 생생해진다. 소정방폭포 가는 길인데 절벽을 타고 걷는 길이 훨씬 역동적이고 재미있다. 날씨가 좋은 탓인지 경치가 기가 막히다.

정방폭포를 지나 서귀포 시내에 접어들기 전 올레사무국이 있다. 올레사무국에서 본 바다경치는 6코스 중에서도 정말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어쩜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지었는지 경탄이 절로 나온다.

일단 우리는 올레사무국 옥상에 올라가 점심부터 먹는다. 6코스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출발점인 쇠소깎과 한시간 후 거리인 보목포구 그리고 종점 가까이 있는 서귀포시내 정도인데, 인원이 많고 시간이 애매한 우리는 김밥을 조달해 올레사무국 옥상에서 먹기로 했단다. 비록 김밥과 음료수 뿐인 단촐한 식사지만 너무나 훌륭한 경치를 벗삼아 먹으니 상당한 만족감이 들었다. 이렇게 올레사무국 옥상에는 환상적인 경치가 있으니 6코스는 지나는 분들은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올레 사무국 옥상을 꼭 올라가 보기 바란다.

올레사무국에서 본 바다풍경
 올레사무국에서 본 바다풍경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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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사무국은 지나는 올레꾼들을 위한 안내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올레탐방에 도움이 되는 각종 자료가 비치되어 있고 올레여행 기념품들도 팔고 있다. 그리고 '간새다리'공방도 있어 직접 간새다리 인형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간새다리'는 '느릿느릿 걷는 게으른 제주 조랑말'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놀멍쉬멍 걷는 제주 올레길의 마스코트이자 상징이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베낭에 간새다리 인형을 메달고 다니는 이들이 많은데 간새다리를 달고 다니는 건 말하자면 '나 올레길 좀 걸었거든!'이라고 말하는 무언의 힘찬 주장처럼 느껴진다.

간새다리인형
 간새다리인형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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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오늘 모임에 참가한 회원들끼리 '간새다리 만들기 미니경연대회(?)'가 있고, 이어서 남은 6코스 걷기로 계속될 예정이다. 올레 사무국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간새다리 인형을 보니 나도 가방에 간새다리를 메달아 올레꾼임을 뽐내고 싶은 생각과 예쁜 간새다리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픈 욕심에 살짝 흥분되기도 한다.

사무국 1층의 공방 앞에 앉아 간새다리 만들기에 도전한다. 간새다리 만들기는 처음부터 다 만드는게 아니고(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걸릴 듯) 초벌로 만들어진 간새에 스티치로 바느질 작업을 하고 꼬리와 눈을 달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티치 작업이 간단한 게 아니고 매우 꼼꼼하고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한다. 몇 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서 나와 한동안 유행했던 남자배우의 멘트처럼 '장인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정성껏 해야 한다. 그리고 1등 상품으로 돌고래인형도 걸려 있다.

오래전 군대에서 바느질 해보고 처음이다. 생각보다 처음엔 어렵고 진도도 안 나간다. 그냥 빨리 대충 해버리고픈 마음이 자꾸 든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예쁜 간새다리를 갖고 싶은 욕심에 마음을 고쳐 먹고 천천히 정성껏 바느질을 한다. 이렇게 힘들게 만든 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지 못할 거 같다.

간새다리인형 만들기
 간새다리인형 만들기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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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반 가량 뚫어져라 집중한 끝에 완성했다. 꼬리와 눈을 달아주신 공방의 아주머니 직원이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신다.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힘들게 완성하고 보니 엄청 뿌듯해진다.

올레길을 걷는 동안 웃고 떠들던 회원들이 오직 침묵 속에서 저마다 열심히 만들고 있다. 잠시 후 공방의 직원 아주머니들의 엄중한 심사가 시작되고 오늘의 1등 작품을 뽑는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내가 1등으로 선정되었다. 아마도 남자 아저씨가 열심히 기특하게 만든 점을 많이 고려해 주셨나보다.

간새다리 만들기 공방 - 올레사무국
 간새다리 만들기 공방 - 올레사무국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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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간새다리 만들기가 끝나고 우린 다시 길을 떠난다. 서두에 얘기한대로 6코스는 서귀포시에 있는 이중섭박물관과 매일올레시장을 등을 거치는 다양하고 볼거리 많은 코스이다. 오늘 보니 6코스도 7코스, 10코스 못지 않게 빛나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이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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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제주를 여행한다면 올레길 한 코스쯤은 걸어보자. 언제 어디서 고개를 들어도 어김없이 훌륭한 경치가 눈을 즐겁게 해준다. 매일을 바쁘게 지내왔다면 게으른 간새다리처럼 하루쯤은 느릿느릿 걷는 여행을 해도 좋을 것이다. 만일 내가 선택한 올레길이 6코스라면 간새다리도 한번 만들어보자. 가족여행이어도 연인끼리의 여행이어도 좋다. 혹은 혼자라도.

간새다리를 손수 만들어 베낭에 매달다 보면 소소하고 색다른 즐거움에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태그:#제주올레길6코스, #올레6코스, #간새다리, #간새다리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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