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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함팔이가 시작되었습니다.
 함팔이가 시작되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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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이 결혼하는데, 우리 집에 와서 함 좀 받아줘."

지인은 몇 주 전 모임에서 우리에게 함을 받아주길 부탁했습니다. 흔쾌히 허락했는데, 지난 토요일(26일) 함 들어오는 날이 닥쳤습니다. 조금 늦었더니 "왜 아직 안 오느냐"며 "함 팔이가 열두 명이나 온다"고 빨리 오길 재촉했습니다. 결혼식 전초전이었습니다.

"하암~, 사세요~"

저녁 7시가 가까이 오자 함을 사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함 받기에 앞서 추위를 녹일 소주 한 잔씩 돌리던 지인들이 밖에서 떨 생각에 중무장하며 마지막 농담을 한 마디씩 던졌습니다.

"저거, 그냥 사지 말고 내버려 둘까?"
"이 추운 날씨에 버티면 얼마나 버티겠어. 금방 들어오겠지?"
"프랑스에서 가장 술을 잘 먹는 사람은? '드숑'."
"함 사란다. 얼른 밖으로 나가자."

함 팔이 들은 100여 미터 떨어진 가게 앞에 자리를 깔고 있었습니다. 완도에서 여수까지 함 팔러 온 그들은 이깟 추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한판 대결을 다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함을 파는 것은 밀도 당기기가 적당해야 재미있지요. 하지만 너무 길면 짜증 나고, 너무 짧으면 서운한 법.

"저것들이 빨리 들어오지, 왜 저리 버티지."

오징어를 쓴 함진아비가 바닥에 들어 누웠습니다.
 오징어를 쓴 함진아비가 바닥에 들어 누웠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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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기들에게 빨리 끝내자고 술상으로 꼬셔 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함지기들에게 빨리 끝내자고 술상으로 꼬셔 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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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신랑신부입니다.
 예비 신랑신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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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뒤에서 빨리 밀어."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야, 밀리지 마. 버텨."

초반부터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오징어를 얼굴에 쓴 함진아비, 버티는 힘이 여간 아닙니다. 국내 전복 생산의 60%를 차지한다는 완도 젊은이들이라 전복 먹은 기력이 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함 받는데 장고, 꽹과리, 북까지 동원되었습니다. 역시 분위기 띄우는 건 사물이 제일입니다.

"예쁜 여자 우인들이 저기 있으니 여기까지만 와?"
"여자가 아니라 먹이가 좋아야 말이 움직이죠."

말 먹이로 소주, 맥주, 막걸리, 양주, 홍어 삼합까지 동원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어디 먹이로만 되던가요. 흥정엔 액수가 문제지. 추위에 언 몸을 녹이러 잠시 집에 들어갔더니, 예비 신랑 신부가 창을 통해 실랑이를 내려보고 있었습니다.

"저것들이 빨리 들어오지, 왜 저리 버티지."

예비 신랑·신부가 속이 타나 봅니다. 그렇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잠시도 떠나지 않습니다. 여하튼 젊은 사랑은 그 자체로 곱고 아름답습니다. 이때가 제일 좋은 시기 아니겠어요.

함 파는 이유는? '과정'이란 부부 삶의 자양분

예비부부가 창을 통해 함팔이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비부부가 창을 통해 함팔이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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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팔이, 흥정이 한창입니다.
 함팔이, 흥정이 한창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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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이 빨리 들어오지, 왜 저리 버티지.” 함팔기가 쉽냐?
 “저것들이 빨리 들어오지, 왜 저리 버티지.” 함팔기가 쉽냐?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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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남·조기순 부부의 장남 서원일, 장정학·류영숙 부부의 차녀 장유순 예비부부는 오는 2월 2일 12시 여수 선원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입니다. 참, 장유순씨는 영화 <김종욱 찾기>의 장유정 감독 동생입니다. '어쭈구리~, 축의금과 화환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합니다. 잘 살기만을 빌어주길 바란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짚신도 짝이 있잖아."

그동안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빨리 짝을 찾아 가정 꾸려 행복하게 살면 좋겠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장정학·류영숙 부부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다행히 지난해 여름, 중매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결혼한다니 예비 장인 장모로서 시원섭섭하답니다. 우리 나이로 35세 동갑의 인연은 어디에서 왔을까? 예비 신랑과 신부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예비 신부 :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듬직하게 보였다."
예비 신랑 : "웃는 모습에 반했어요."

보고만 있어도 좋나 봅니다. 얼굴에는 웃음이 연신 피어납니다. 온 몸으로 행복을 발산하는 중입니다. 바가지가 깨지고 한 시간 반의 실랑이 끝에 함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들어올 것을 뭐 하러 애를 태웠는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켜켜이 쌓여 예비부부의 삶에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원일·장유순 예비부부 알콩달콩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렇게 좋을까? 서원일ㆍ장유순 예비부부 행복하길...
 이렇게 좋을까? 서원일ㆍ장유순 예비부부 행복하길...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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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바가지가 깨지고 함이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바가지가 깨지고 함이 들어왔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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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 온 함입니다.
 집에 들어 온 함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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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함팔이, #신랑신부, #서원일, #장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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