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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날씨는 매우 변화무쌍하다. 그지없이 화창하다가도 어느새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사위를 가득 덮는다. 제주도는 육지처럼 비나 눈이 조용히 내리는 법이 없고 거의 바람을 동반한다. 그래서 도보여행을 계획했다면 더더욱 비옷이 필수이다. 하지만 횡으로 들이치는 비바람(눈보라)에는 비옷도 유명무실하기가 십상이다.

제주로 여행 왔을 때 좋은 날씨를 만날 확률은? 정확한 기상청 통계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계절을 세 번 넘긴 내 경험으로 판단해보면 1/3 정도 될 것이다. 바람도 없고 햇살 가득한 좋은 날씨일 확률이 30% 정도이고 비바람이 심하진 않지만 오락가락하는 이슬비에 우중충한 흐린 날씨일 가능성이 역시 30%, 세찬 비바람이나 눈보라에 망연자실할 날도 30% 정도이다.

제주도 여행처럼 사전예약이 필수인 여행지는 날씨를 고려하여 여행 일정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보통은 우울한 날씨를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결행을 해야만 한다. 불행히도 비바람(눈보라)의 날씨를 만나면 사실상 야외활동은 거의 힘들다고 봐야 한다. 기껏 할 수 있는 건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거나 실내에 있는 테마공원을 순례하는 것 정도다.

도보여행자의 경우는 비옷으로 무장하고 올레길 여행을 강행하기도 하는데, 20km 가까이 되는 여정을 악천후 속에서 완주하긴 힘든 점이 많다. 물론 그런 여행도 좋은 추억이 될 수는 있으나 제주여행은 비용이 많이 들고 쉽게 오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악천후 때 제주에서 가볼 만한 여행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제주 어머니'들의 역사, 해녀박물관

구좌읍 하도리 소재 해녀박물관
 구좌읍 하도리 소재 해녀박물관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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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의 동쪽을 해안선을 타고 가보면 좋은 해안도로를 만날 수 있다. 삼양해수욕장을 지나는 조천-함덕 해안도로나 김녕해수욕장을 지나는 월정-평대 해안도로도 풍광이 환상적이다.

제주의 동북쪽 해안도로는 남쪽과는 달리 절벽이 거의 없고 도로와 해안이 나란히 이어져 있다. 그래서 압도적인 느낌이 아닌 부드럽고 친근한 느낌의 해안도로가 많다. 그렇게 세화해수욕장이 있는 세화리까지 가보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동일주행 버스를 이용해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제주에는 곳곳에 좋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많은데 세화리에는 '해녀박물관'이 있다. 제주의 해녀는 기원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무명옷 쪼가리만 입고 물질을 쉬지 않았던 '해녀'는 가히 제주의 어머니라고 해도 될 텐데, 그러한 해녀의 역사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해녀박물관이다.

이곳은 또한 가장 최근에 생긴 올레길21 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영상실과 3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나름 볼거리도 있고 지식여행의 측면 그리고 교육적인 면에서도 좋은 곳이다.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데 사진배경으로 무척 훌륭하다.

해녀박물관 전시실
 해녀박물관 전시실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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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 느낌의 '요정의 숲', 비자림

해녀박물관 가까운 곳에 비자림이 있다. 비자림은 일종의 숲길인데 2800여 그루의 비자나무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단일종 숲이다. 평대리에서 비자림로(1112도로)를 타고 5km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장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다.

8자 모양으로 생긴 탐방 코스를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 가량 걸린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다. 그리고 오르막이 없고 탐방로가 편안하다. '화산송이'라고 하는 몽글몽글하고 자잘한 돌가루로 되어 있어 걷기에 좋다.

여름엔 나무 이파리가 강한 햇빛을 막아주고 겨울엔 숲이 바람을 막아주어 계절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평대리에서 비자림까지 순환버스를 타고 와도 되지만, 비자림로의 주변 풍경이 좋다보니 그냥 걸어오는 이들도 많이 있다.

비자림 입구
 비자림 입구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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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에 깔린 붉은색으로 보이는 것이 '화산송이'인데 화산 폭발 시 나온 용암 부산물이라고 보면 된다. 몽글몽글하게 부서지는 돌가루이다. 비자림이 마음에 드는 점 중 하나는 너무 인공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편할 정도로 거친 자연 그대로도 아니라는 점이다. 딱 걷기 알맞게 가꿔 놓았다. 깔끔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의 조화가 좋다. 눈이 부슬부슬 내리니 숲이 더욱 운치 있다.

비자림의 설경
 비자림의 설경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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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비자림을 소개한 이유는 바람이 심한 날에도 숲이 바람을 막아준다는 점이다. 비바람이 심한 날에도 우산만 쓰고도 얼마든지 탐방을 할 수 있으며, 오히려 비나 눈이 오거나 안개가 자욱한 날 몽환적이며 특별한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비자림의 고사리 군락지
 비자림의 고사리 군락지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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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잘 안오는 분들은 그냥 숲길 걷는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제주의 숲길은 육지의 그것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곳은 남방식물계와 북방식물계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하는데, 수종이 특이하고 덩굴과 바위가 얽혀 있어 원시림의 느낌이 강하다.

제주의 숲에는 고사리 군락지가 많은데 이런 고사리와 담쟁이, 이끼 그리고 특이한 나무들이 섞여 있어서, 그동안 동행한 이들의 표현을 빌면 '요정의 숲'이나 '아바타의 숲' 같은 느낌이라 한다. 비자림의 뒷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돛오름이 근처에 있는데 이 비자림과 돛오름을 묶어서 여행하면 매우 좋은 코스가 될 것이다.

비자림 탐방로 출구 방향
 비자림 탐방로 출구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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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정서를 맛보고 싶다면, 김영갑갤러리

비자림을 보고 나왔다면 다시 평대리로 나가자. 성산방향 동일주 순환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서 삼달2리에서 내린다. 거기서 내지(성읍방향)으로 1.4km 걸어가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 나온다. 승용차로는 15분이면 갈 수 있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말이 있다.

"김영갑갤러리에 데리고 가봐서 그곳을 마음에 들어하면 그 사람은 제주에 살아도 좋을 만큼 제주가 맞는 사람이고, 별로라고 하면 제주에 사는 것이 잘 안 맞는 사람이다."

근거가 있는 말도 아니고 출처도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사진작가인 김영갑 선생은 1957년에 태어나 1982년에 제주에 와서 사진 작업을 하던 중 제주에 매료되어 1985년부터 눌러 앉아 살았다.

제주의 바다와 오름, 노인과 해녀 들판과 구름 등 제주의 자연과 혼에 대한 수많은 사진작업을 하였고 1999년 루게릭병을 앓아 6년 투병 후 2005년에 요절하였다. 삼달리의 폐교를 구입하여 사진작업실로 쓰다가 2002년에 두모악이라는 갤러리를 열었다(출처 : 김영갑갤러리 홈페이지).

김영갑갤러리 정원
 김영갑갤러리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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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갤러리는 외진 곳이긴 하나 올레길 3코스 중간지점에 있어 도보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주변에 관광지나 식당도 별로 없어 버스 등의 단체관광객들은 오지 않는 곳이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정원풍경을 느끼고 제주의 자연이 처연하게 담겨 있는 곳에서 정서를 풍부하게 하고 싶다면 가보기 좋은 곳이다. 한겨울 눈이 내렸을 때 찾았는데, 다른 계절에 방문했을 때와 사뭇 다른 맛이 있었다.

김영갑갤러리 입구
 김영갑갤러리 입구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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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갤러리 전시실
 김영갑갤러리 전시실
ⓒ 임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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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갤러리에 또 하나 좋은 곳이 있는데, 정원 뒤에 있는 무인찻집이다. 그냥 들어와서 셀프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나무통에 2000~3000원 정도 넣으면 되는데, 고즈넉한 분위기가 그만이다.

제주에는 이런 무인찻집들이 군데군데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두모악 무인찻집이 가장 마음에 든다. 친구랑 둘이 왔다면 창가에 커피 한 잔씩 놓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맛도 좋을 것이고, 혼자 왔다면 방문자일기에 제주여행의 소회를 적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바쁘게 걷고 돌아다녔다면 분주한 여정을 멈추고 나를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두모악 무인찻집
 두모악 무인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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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갤러리 방문 이후 시간이 남는다면 가까운 표선해수욕장엘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제주는 악천후에도 갈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비가 온다고 비싼 요금 내고 제주도와 상관없는 테마공원에서 시간 보내지 말자. 제주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제주의 자연을 느끼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데 귀한 시간 내서 여행 온 이들은 말해 무엇하리.


태그:#제주여행, #비오는날제주여행, #해녀박물관, #비자림, #두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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