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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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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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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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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인천 갈산동에 있는 콜트악기 공장을 찾았습니다. 기타를 만드는 공장,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타를 '만들던' 공장입니다. 이곳 콜트와 대전에 있는 자회사 콜텍은 잘나가던 기타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2007년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직장폐쇄를 단행했습니다. 생산라인은 해외로 옮겨졌고, 지금 이곳, 텅 빈 '기타노동자의 집'에서는 콜트와 콜텍의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자"를 외치며 기약 없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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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안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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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러웠을 공장 건물 앞, 저 작은 천막이 농성하는 노동자들의 식당입니다.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예닐곱 남짓. 6년 동안 함께 싸우던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떠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남아 싸우는 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들의 힘으로 아직도 빈 공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몫까지 싸워야 합니다. "잘 먹고 잘 싸우자"는 말, 백번 맞는 말입니다.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안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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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악기 해고 노동자 이동호씨
 콜트악기 해고 노동자 이동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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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한쪽 벽에는 계고장이 붙어 있습니다. 이 공장은 이미 다른 이에게 팔렸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공장을 비워달라고, 비워주지 않으면 수십 억의 배상금을 물리고 강제로 쫓아내겠다고 하는 소립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밖으로 나와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니 콜트악기 노동자 이동호씨가 "모델료도 안 주면서 무슨 사진이냐"고 합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펼침막 앞에 자리를 잡는 모습을 '준비되기 전에' 얼른 찍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웃는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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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한쪽은 이들의 싸움에 함께하는 예술인들의 작업장 겸 전시장이 돼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만들던 기타는 예술 작품이 되어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그 전부터 이미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노동이라는 존엄한 손길을 거친 생산물들은 모두 '작품'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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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문 앞에 멋지게 가지를 뻗치며 자란 희망의 나무. 이 나무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바로 노동자들의 '출입카드'입니다. 이것으로 매일 아침 공장 문을 열고 들어왔겠지요. 졸린 눈을 비비며, 잠이 덜 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기도 했을 겁니다. 출입카드에 쓰인 "퇴사 시 반납해주세요"라는 말을 보며,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요.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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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이라 쓴 머리띠를 두른 자화상. 금속노조 콜트악기지회 방종운 지회장의 솜씨랍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랑'을 알리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들이 만든 기타를 메고 전국을 돌아다닙니다. 이름 하여 '콜밴',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밴드입니다. 기계를 만지던 손으로 저 섬세한 악기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저들이 내는 소리는 무엇보다 따뜻한 '치유의 공명'일 것입니다.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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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앞서 걷던 이동호씨가 걸음을 멈춥니다. 이 자리엔 뭐가 있었고 저 자리엔 뭐가 있었고, 이 보일러는 언제 어떻게 설치했고 저 형광등은 어떻게 만들었고, 한참을 신나게 설명하다 말문을 닫습니다. 잠시 뒤 한숨처럼 한마디를 뱉습니다.

"여기 오면 아직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산재와 해고를 잇따라 겪고, 가늠할 수 없는 절망에 스스로 몸에 불을 당겨 죽음을 택한 적이 있는 그입니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지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고철회 싸움에 앞장섰습니다. 그의 서늘한 한마디에 저도 등 뒤에서 한기가 덮치는 것 같습니다.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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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마당 한 구석에는 이들 노동자들이 잠을 자는 숙소가 있습니다. 원래는 천막이었는데 지난여름 태풍 볼라벤의 위력에 뼈대만 남고 홀랑 날아가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함께 싸우러 온 건설 노동자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판넬을 주워 숙소를 지어주었답니다. 그들이 가진 '노동의 힘'으로 서로 돕고 나누는 연대의 정이 듬뿍 담긴 집입니다.

숙소 앞에 '152'라고 적힌 달력(?)이 있습니다. 벌써 6년째 싸우고 있는데, 왜 숫자가 이것밖에 안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앞에 '2'를 붙이면 된다고 합니다. 2152일. 지난여름 '2001일' 때, 첫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로 '1'이라 써붙였답니다. 2152. 이들에게는 절망을 더해가는 숫자이면서, 희망을 향해 다가가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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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노동자들이 만드는 수제 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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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한쪽에서 분주히 뭔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가가 보니 수제비누였습니다. 하나하나 손수 유기농 천연재료를 섞어 틀에 넣어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세 개들이 한 세트에 1만 원씩 받고 팔아서 투쟁기금을 마련한다고 했습니다. 중년 노동자의 주름진 손에서 예쁘고 매끈한 비누들이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역시 노동자는, 노동을 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인천 갈산동 콜트악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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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과에 실망한 이들 사이에서 '멘붕'이니 '힐링'이니 하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저마다 이래서 졌다, 저래서 졌다 따지느라 바쁘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벌써 그 절망을 이기지 못한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너무 흔들리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벼랑 끝에서 애써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여전히 든든하게 그들을 지켜주겠다는 단단한 마음을 보여줘야겠습니다.  

엊그제 내린 눈 때문에 공장 마당은 온통 하얀 눈밭이 돼 있습니다. 누군가 그 눈밭을 걸어 텅 빈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발짝, 한 발짝, 까맣게 발자국을 찍어가듯, 지난 2152일 동안 매일 한 걸음씩 복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그들이 이 발자국을 따라 공장으로 웃으며 돌아갈 날을 함께 소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카페 http://cafe.daum.net/Cort



태그:#콜트, #콜텍, #콜트콜텍, #콜트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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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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