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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남사당패 첫 여성 꼭두쇠 박우덕이가 투사처럼 살았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바우덕이전>(푸른사상)을 펴낸 작가 유시연
▲ 작가 유시연 우리나라 남사당패 첫 여성 꼭두쇠 박우덕이가 투사처럼 살았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바우덕이전>(푸른사상)을 펴낸 작가 유시연
ⓒ 유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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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나비 한 마리가 살랑거리며 꽃을 찾아 날아다닌다. 대웅전 마당에는 해당화가 피어 봄볕을 가득 받고 있다. 어린 계집아이가 까치발을 하고 해당화 꽃무더기를 올려다본다. 노랑나비 한 쌍이 짝을 이뤄 꽃잎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계집애는 두 팔을 벌려 꽃나무 주위를 돈다. 소녀의 몸짓이 가볍다. 빙글빙글 돌아설 때 남빛 무명치맛단이 들리며 바람을 집어넣은 듯 둥그렇게 부풀어 올라 돌고 있다." -29쪽 '하월선사' 몇 토막

"바람 찬 강원도 정선 골짜기, 태중에서부터 바람소리를 들으며 자랐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여성 작가가 있다. 그는 아스라한 뼝때(낭떠러지 혹은 절벽) 바위벽에 핀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이 지닌 서러움을 몸과 마음에 꼭꼭 새겼다. 교복을 처음 입었을 때는 김소월 시들을 읊으며 시오리 길을 걸어 중학교에 다녔다.

그 꼬맹이 여학생은 저 혼자 사랑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집안에 굴러다니던 옛 소설을 읽는 재미에 포옥 빠진다. 그렇게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기며 자란 여학생은 뭔가 모르지만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불안에 떤다. 삶이 대체 무엇인가 머리를 싸매던 그 여학생은 마침내 어른이 되어 수도자로 살고 싶어 수녀원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다.

그가 우리나라 남사당패 첫 여성 꼭두쇠 박우덕이가 투사처럼 살았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바우덕이전>(푸른사상)을 펴낸 작가 유시연이다. 작가는 이 장편소설에서 바우덕이가 겪었던 사랑과 예술혼, 농민군을 토벌하려는 관군에게 한바탕 놀이로 훼방을 놓는 모습 등을 통해 우리시대 물질자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곳곳에 드리운 양극화를 비춘다. 

이 장편소설은 모두 13꼭지에 우리나라 남사당패에서 바우덕이가 첫 여자 꼭두쇠가 되기까지 회오리바람처럼 휘돌아야 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가 흑백필름처럼 펼쳐지고 있다. '들풀', '하월선사', '개다리패', '이별단상', '낙화유수', '꼭두쇠 바우덕이', '암동모 수동모', '왕초 도둑', '인연', '한양', '불당골', '복사꽃', '바람이 되리 꽃잎이 되리'가 그 이야기들.

혹, 이 장편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남사당패 첫 여자꼭두쇠 바우덕이가 우리나라 첫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당선자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봐 미리 밝혀둔다. 작가가 말하는 바우덕이는 들풀처럼 거칠게 민초들을 끊임없이 짓밟는 물질자본과 절대 권력에 당당하게 맞설 줄 아는, 민들레꽃 같은 우리나라 모든 여성들이다.    

작가 유시연은 '머리말'에서 "그녀를 알게 된 건 아주 오래 전"이라고 입을 뗀다. 그렇다고 작가가 바우덕이를 직접 만난 것은 아니다. 작가는 "그녀 이름을 들었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회자되는 그녀의 삶이 나를 사로잡았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녀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것은 사랑, 혹은 열정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생의 이면에 도사린 존재의 꿈틀거림" 때문이었다.

이 "존재의 꿈틀거림"은 어쩌면 삶에 대해 고민하던 그 여학생, 어른이 되어 수녀원에 잠시 머물기도 했던 작가 유시연이 느꼈던 그 "꿈틀거림"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녀는 남김없이, 아낌없이 장르에 구분 없이 예술 영역을 넘나들며 노래하고 춤추며 먹고 살기 팍팍한 백성들을 위무한다"고 되짚는다. 마치 작가 자신도 "기록 한 줄 없이 그렇게 잊혀"진 바우덕이처럼 한바탕 신명난 춤판, 굿판을 벌이며 살고 싶다는 듯이.  

나도 여성 꼭두쇠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 장편소설은 모두 13꼭지에 우리나라 남사당패에서 바우덕이가 첫 여자 꼭두쇠가 되기까지 회오리바람처럼 휘돌아야 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가 흑백필름처럼 펼쳐지고 있다
▲ 작가 유시연 두 번째 장평소설 <바우덕이전> 이 장편소설은 모두 13꼭지에 우리나라 남사당패에서 바우덕이가 첫 여자 꼭두쇠가 되기까지 회오리바람처럼 휘돌아야 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가 흑백필름처럼 펼쳐지고 있다
ⓒ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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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이 주먹을 불끈 쥐고 화를 삭이는 동안에도 사당패들의 오색 깃발 수십 개가 하늘에 펄럭인다. 뜨거운 햇볕과 사당패가 두드리는 징과 꽹과리 소리에 병사들은 진땀을 흘린다. 사시를 지나는 태양이 더욱 이글거리며 장작불이 무쇠솥을 달구듯이 산야를 태운다. 지친 병사들은 남사당패들이 온갖 재주를 부리며 노는 모양을 바라보며 몽롱한 기분에 젖어든다.  " -11쪽, '들풀' 몇 토막

산등성이와 산골짜기, 들판을 자유롭게 스치는 바람처럼 한 세상을 살 수 있다면 그런 삶은 참 자유를 누린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여성을 헌 짚신짝처럼 깔보는 남성들이 이끌어가는 세상에서 한 여성이 차별도 대립도 없는 절대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사당패를 이끌고 모든 것들과 맞서는 일이 조선시대에 과연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이 장편소설은 주인공 바우덕이가 남사당패를 이끌고, 탐관오리들 수탈을 견디다 못해 일어선 농민군을 토벌하려는 관군에게 한바탕 놀이로 맞서는 것으로 이야기가 열린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이 세상을 훌쩍 떠나버린 바우덕이. 그가 겪는 삶은 안성에 있는 청룡사에 고아로 버려지면서 파란만장한 나날로 이어진다.

어려서 절에 버려진 이 고아 소녀는 일찌감치 스스로 존재와 태생에 따른 한계를 온몸으로 느낀다. 고아 소녀가 어릴 때부터 할 수 있었던 것은 부평초처럼 떠돌며 소리와 춤, 기예를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자보다 더 모질고 시린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바우덕이는 어린 나이에 조선시대 남사당패 첫 여자 꼭두쇠가 된다.

그때 여성으로서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그 길을 사내보다 더 당차게 걸어간 바우덕이. 글쓴이도 어릴 때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춤과 노래 등으로 지친 마을 사람들을 웃고 울리며 밥벌이를 하는 남사당패를 자주 보았지만 여성 꼭두쇠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남사당패에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남성 꼭두쇠 지시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춤과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때 만약 우리 마을에 찾아온 남사당패 꼭두쇠가 여성이었다면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가시나가 사당패를 이끄는 대장이라꼬? 에이~ 재수 없네. 퇘!"하고 침을 뱉으며 쫓아냈을지도 모른다. 글쓴이가 어릴 때 살았던 우리 마을과 이웃 마을에서는 여러 가지 제를 올리거나 어떤 새로운 일을 벌일 때 여자가 먼저 나서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마구 떨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랬으니, 조선시대 여성으로서 남사당패 꼭두쇠를 맡았던 바우덕이가 살아낸 삶은 얼마나 거칠고 험했겠는가.

늘 가슴 한켠에 그분을 불쏘시개처럼 품고 살았다    

"사당들이 놀이라도 벌이자면 마을을 들어가야 하고 마을을 들어가야만 양식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덕이가 사당들의 마음을 위로할 겸 잠시 가던 길을 돌아 마을에 들어간 후 사당들은 산 중턱에서 끼리끼리 모여 쉬고 있었다. 어디선가 거칠게 없는 웃음소리가 폭발적으로 들려왔다."-176쪽, '왕초 도둑' 몇 토막

바우덕이가 기십 명에 이르는 남사당패를 이끌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식의주를 책임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꼭두쇠이기 때문에 굶주리고 있는 사당패를 위해 스스로 부자나 양반과 거래를 트고 몸을 내주는 보살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여기에 타고난 소리꾼이자 빼어난 아름다운 얼굴에 포옥 빠진 남성들이 뻗치는 손길도 끝이 없다.

바우덕이. 그가 남사당패를 이끌며,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나눈 것은 어쩌면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탐관오리들이 지닌 끝없는 욕심 때문에 집과 터를 버리고 떠나 산 속에 숨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나 그들을 이끌며 왕이 되고 싶었던 왕초 도둑과의 짧은 만남, 평생 규방에 갇혀 사는 조선 여인들과의 만남 등도 그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 아닌가.

글쓴이는 이 장편소설을 읽으며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특히 개똥이 품에 안겨 모기가 나는 소리처럼 가냘프게 남기는 마지막 그 한 마디 "그분이 다시 오시면 기다렸다고 말해줘"는 지금도 가슴을 툭툭 친다. 젊은 날, 글쓴이가 겪었던 그 아픈 사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우덕이. 그는 사내보다 더 거칠고 험한 삶을 살아냈지만 그 속내에는 한 사내에 대한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었다.

바우덕이가 말하는 "그분"은 "갈래머리 땋아 내린 어린 계집애 가슴에 풋사랑을 싹트게 한 한양 도령 '석산'"이다. 그 석산은 "반상의 차별을 떠나 함께 글공부를 하고 쏘다니고 숨바꼭질하고 오누이처럼" 지냈던 세도가 집안 아들이다. 바우덕이는 그 석산을 '오라버니'로 기억하다가 죽는 그날 '그분'으로 불렀다.

그래. 바우덕이는 어쩌면 그 '오라버니'를 "늘 가슴 한켠에 불쏘시개처럼 품고 살았"기 때문에 그 험한 세상을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바우덕이가 여기저기 떠돌며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남사당패를 이끈 것도 가족 사랑이요, 힘없고 가난한 백성과 함께 한 것도 나눔 사랑 아니겠는가.  
       
한 세상을 바람 같이 구름 같이 살아보니
이 산 저 산 꽃은 피고 꽃은 지고
저 강 따라 내 영혼 어디든지 흘러가리
-288쪽, '복사꽃' 몇 토막

바우덕이 모습에서 '여자 임꺽정'이 보인다

"안개가 자욱한 날씨였다. 바우덕이가 묻힌 곳을 찾아가는 내 마음이 석연치가 않았다. 지난 밤 그녀의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그녀는 치렁거리는 비단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인물과의 만남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 무슨 원한이 있는 걸까.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중인가. 온갖 상념에 잠을 설쳤더니 눈꺼풀이 무거웠다." -307쪽, '에필로그' 몇 토막

작가 유시연 두 번째 장편소설 <바우덕이전>을 읽다 보면 힘없는 이들을 품으며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과 싸우는 바우덕이 모습에서 '여자 임꺽정'이 보인다. 바우덕이가 살아낸 이 '촛불시위' 같은 이야기는 이번 대선에서 1400만 표를 훌쩍 넘기고도 무릎을 꿇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 우리들을 몹시 부끄럽게 만든다.   

시인 공광규(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는 "소설가 유시연이 조선 후기에 실존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남사당패 여자 꼭두쇠 바우덕이의 이야기를 유장한 민중서사로 재창조하였다"며 "탐관오리들의 수탈과 인명 경시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반란군을 관군이 토벌하려고 공격하기 직전에 남사당패가 한바탕 놀이로 훼방을 놓는 장면" 등은 "'차별도 대립도 없는 절대평등의 세상' 구현이라는 주제를 재미와 함께 독자에게 안겨주고 있다"고 적었다.

영화감독 최종현은 "이 소설은 우리나라 최초의 남사당패 여자 꼭두쇠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처럼 펼쳐진다"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역사 속에서 시들지 않고 들꽃처럼 버텨온 인물을 통해 작가는 조선의 제도와 성별, 신분을 넘어 숭고한 예술혼을 만든 장인을 그려낸 것"이라고 썼다.

작가 유시연은 1959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2003년 계간 <동서문학>에 단편 '당신의 장미'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이 있으며,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을 펴냈다. 지금은 (사)한국작가회의 회보 편집위원과 문학in 편집총주간을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바우덕이전

유시연 지음, 푸른사상(2012)


태그:#작가 유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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