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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메이커>에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두 후보의 뒤에서 선거를 관리하는 참모들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후보는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킹메이커들이 써주는 글을 읽고, 옷을 입고, 단지 그것을 자신의 말투와 행동으로 말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선거는 킹메이커의 전략 대결이 된 지 오래다.

미국 대선을 마치고나면 반드시 당선된 후보를 뒷받침한 킹메이커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뒤따른다. 그들은 선거의 국면마다 다른 전략을 쓰고, 그 전략적 승패의 결과가 선거의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킹메이커가 누군지는 쉽게 드러났다. 무엇보다 말이 중요하기 때문에 박근혜 대변인으로 오랫동안 같이 호흡을 맞췄고, 이번 선거에서도 킹메이커의 핵심인 공보단장을 맡은 이정현 단장은 드러난 킹메이커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문재인 후보측의 킹메이커 기능이 약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건 선거 이전부터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고 있었다. 문재인 후보께서 새정치에 대한 의지가 있었고, 외부의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중요한 킹메이커 기능을 스스로 해체했다고 보인다.

킹메이커없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면 새정치로 가는 길에 중요한 장애물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 사회는 계파에서 자유로운 정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정도 되기에는 정말 2% 부족했다.

킹메이커 이정현 단장에 대해 내가 그 실체를 정확히 느낀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세가지 이야기만 반복했다. '신뢰, 민생, 준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몰랐을 건데 나는 이정현 단장이 국회의원이었을 때, 이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이정현 의원은 곡성 출신의 국회의원이었지만, 한나라당 의원이었기에 곡성에 있는 어떤 단체로 공개적인 초청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의 2011년 여름 농민인문학 강좌를 기획하면서 이정현 의원에게 강의를 부탁했다. 메일과 문자를 보냈는데... 정말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수락해 주셨다. 이 분에게 어떤 슬픔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고향을 정말 사랑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슬픔이 내가 한 초대로 인해 풀리는 느낌이셨을 것 같았다.

2011년 농민인문학 강좌에서 이정현의원과 함께 18대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킹메이커 중 한명인 이정현 단장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을 때 고향인 곡성에서 첫 공개강의를 했고 이때 이야기한 내용은 그대로 대통령 선거의 주요 개념이 되었다.
▲ 2011년 농민인문학 강좌에서 이정현의원과 함께 18대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킹메이커 중 한명인 이정현 단장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을 때 고향인 곡성에서 첫 공개강의를 했고 이때 이야기한 내용은 그대로 대통령 선거의 주요 개념이 되었다.
ⓒ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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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인문학 강의에서 이정현 의원이 한 이야기가 정확하게 이 세가지였다. '신뢰, 민생, 준비', 이정현 의원은 당시 '호남 예산지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호남의 민생 현장을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초등학교 때부터 연설 연습을 혼자서 하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하늘이 돕듯이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마지막 순번으로 국회의원이 되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호남을 위해 다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나는 그동안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되겠구나.' 왜냐면 대통령 선거는 후보의 대결이 아니라 킹메이커의 대결이 된 지 오래이고 이정현 의원이 불러 일으키는 에너지에 완전히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 선거를 정확히 이해하면 이정현이 박근혜의 입이 아니라 박근혜가 이정현의 입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 상황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지역에서 두가지 강좌를 기획하고 있다. 하나는 죽곡농민열린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농민인문학' 강좌이고, 또 하나는 인문학 공동체 '다중 지성의 정원'과 함께하는 곡성 다지원 강좌다. 두 강좌를 합치면 일 년에 16명의 선생님을 지역에 초대해서 공개 강의를 하고 있다.

농민인문학 강좌는 공공 기금과 후원 모금으로 하는데 주로 많이 알려진 분들을 초대하게 된다. 곡성다지원 강좌는 농민인문학과는 완전히 다른 기획인데 이건 참가하는 사람들이 자기 돈내고 오고 강사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과제를 연구하거나 실천하고 있는 분들을 모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두 강좌 주제가 마을이다. 농민인문학 강좌는 '농민과 마을'이라는 대중적 교양 강좌이고, 곡성다지원 강좌는 현실 정치에서 우리가 어떤 지점을 놓치고 있는 지를 깊은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찾는 심층 강좌이다.

2013년 겨울 농민인문학 강좌 웹자보 이번 겨울에는 마을이라는 주제로 민윤기죽곡면장, 정정섭전남도의원,윤구병보리출판사대표,강수돌교수,구자인팀장,임낙경 목사님께서 강의하신다.
▲ 2013년 겨울 농민인문학 강좌 웹자보 이번 겨울에는 마을이라는 주제로 민윤기죽곡면장, 정정섭전남도의원,윤구병보리출판사대표,강수돌교수,구자인팀장,임낙경 목사님께서 강의하신다.
ⓒ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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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치를 대표자를 선임해서 권리를 위임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이 자리잡은 지는 인류 역사 전체를 볼 때 그렇게 오래된 인식이 아니다.

오랫동안 인류는 권리의 위임이 아닌 권리의 행사를 정치라고 생각해 왔고, 그 생각이 맞부딪친 가장 큰 규모의 대결 중 하나가 '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났다.

캐나다에서 살다 온 한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인데, 캐나다의 한 인디언 거주 지역에 대한 개발 분쟁에서 인디언들은 끝까지 저항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캐나다 정부는 대표를 보내면 협상하겠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 나온 대표는 주민 전체였다. 누구도 자기의 권리를 위임하지 않고 권리를 스스로 행사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내게 전해준 지인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었다고 했다. 북미인디언 사회는 의도적으로 국가를 만들지 않았던 사회였다.

물론 이로쿼이 연합과 같은 보완된 사례가 있었지만, 부족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도 권력을 위임하지 않는 건 동일했다. 추장이라는 역할은 하나의 역할일 뿐이지 대표는 아니었던 것이다. 인디언 추장들은 대부분 말을 잘했는데, 그 기능으로 볼 때 교회의 목사같은 의미가 더 많았을 수도 있다.

인디언 사회는 사회의 규모가 커져서 부족과 분리된 지배집단이 생기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고 꾸준히 규모의 확대를 견제하는 사회였다. 여기에 비해 아메리카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불안한 상황과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규모를 키우고 권력을 위임해서 국가를 만들고 확대해 나갔다. 그 두 가치관의 충돌이 인디언 전쟁이었고 인디언 사회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곡성다지원 4분학기 내용 스피노자의 정치론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심층적인 공부를 같이 한다.
▲ 곡성다지원 4분학기 내용 스피노자의 정치론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심층적인 공부를 같이 한다.
ⓒ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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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실험이지만 그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국가가 아닌 마을에서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자율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모든 이상주의자들의 꿈이다. 한 사회가 아름답게 구성되기 위해서는 세가지 관점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 '국가의 진보' '마을의 자율' '개인의 행복'이다.

국가, 마을, 개인이 서로 조화롭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사회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를 바라볼 때 국가와 개인이라는 두가지 관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흐름이 있다. 국가의 변화를 바라고 원하는 노력의 반이라도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변화와 자율적 삶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선거는 끝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절반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절반의 국민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영역에서 마을의 자율이 자랄 수 있다.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새정치를 시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새정치의 영역이 내가 늘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자리인 마을의 자율성을 높이는 일일 지도 모른다.

절망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조건에서 절망하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다. 실력은 지금부터 알 수 있다. 변화는 꼭 정치 권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돕기도 하고, 강하게 뿌리박은 풀뿌리의 힘이 바위를 깨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기도하고 공부하고 이웃을 만나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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