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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 전 경감이 14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뷔페 식당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를 열어 "고문 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이근안 전 경감이 14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뷔페 식당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를 열어 "고문 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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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75) 전 경감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도서출판 강남, 이하 <고백>)을 내며 "고문 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14일 오전 서울 성동구의 한 연회장에서 출판기념회를 연 이 전 경감은 책 출간 배경과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5공화국 당시 국민들에게 고문 공포를 안겨준 그가 백발에 검은 정장을 입은 채 국민 앞에 선 것이다.

그는 "고문은 애국하려고 한 일인데 이제는 역적으로 둔갑돼 그 멍에를 고스란히 지고 있다"며 "일일이 다 기억 못하지만 고문을 당한 사람과 그 가족들한테 죄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85년,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사건으로 잡혀온 김근태 전 고문이 12일간 묵비권을 행사하자 당시 상관이던 박처원 대공본부 수사단장이 그를 불러 수사를 지시했다. 당시를 회상한 그는 "북한과의 연계 증거는 없지만 지하조직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추궁을 했다"며 "물 고문과 배터리 전기 고문을 해서 조직계보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이근안 "<남영동 1985> 본 후 '내가 악질이었나' 생각하며 울었다"

이 전 경감은 최근 김 전 의원의 자서전을 토대로 22일간 받았던 고문 과정을 영화화한 <남영동 1985>을 직접 관람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렇게 악질이었나 생각하며 울었다"며 "실제 내가 고문한 것과는 과장된 것이 많은데 젓가락으로 맞으나 몽둥이로 맞으나 맞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화에 물고문과 전기고문, 고춧가루 고문이 나오는데 고춧가루는 안해봐서 잘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에서 김 전 고문이 자동차 배터리로 전기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 대해 "처음 보는 것"이라며 "'당신같은 사람은 전기로 지져야해'라고 겁을 잔뜩 놓고 더블 A 건전지(1.5V)로 발가락에 붕대감고 소금물 타 건전지에 연결했다, 일종의 속임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건전지를 들어 사실 보다 과장됐다고 해명했다.

지난 1월 김 전 고문의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가면 소란이 생길 것 같아 가지 않는 게 유족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며 "차라리 기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그는 말했다.

"부풀려서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백> 냈다"... 인재근 의원 "경악스럽다"

<고백>에서 그는 김 전 고문에 대해 "한 시대는 사상범으로 옥살이를 하고 한 시대는 민주화 인사로 탈바꿈하며 민주화 보상금까지 받는 행운을 바라보며 '시대를 잘 만나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서전을 집필하게 된 계기에 대해 "김 전 고문이 돌아가신 후 기자들이 몰려와 피해다니다보니 조사한 기억도 없는데 고문당했다고 하는 사람, 크게 부풀려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내 알몸을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신앙고백을 겸한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지만 영화를 보고 자서전이 아니라 고백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김 전 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13일 <경향신문>을 통해 이 전 경감의 책 내용이 알려지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경악스럽다"며 "20여 년간 한마디 없다 제 남편이 떠난 뒤 거짓이라고 하다니 하늘이 두렵지도 않나"고 밝혔다. 이어 인 의원은 "진실은 감출 수 없다"며 "이제라도 진심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 전 경감은 퇴직 경찰들의 모임인 경우회와 강남의 한 교회 목사의 지원으로 회고록을 집필했다. 그는 지난 3월 경기 가평의 기도원 근처에 방을 마련해 자서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기념회에는 경우회 회원 20여 명이 나와 책 출간을 축하했다.

이근안 전 경감은 1938년 인천 출생으로 지난 1970년 순경으로 임관한 뒤 1988년까지 간첩 잡는 대공분야에서 '고문기술자'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1988년까지 대공분야에서 일하며 간첩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 전 경감은 '관절뽑기', '볼펜심 꽂기' 등 악랄한 고문에 능해 대공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재직시절 그는 국무총리 표창, 청룡봉사상, 근정훈장 등 총 16차례의 표창을 받았다. 

그에게 고문당했던 민주화 인사들이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석방되면서 그의 고문은 세상에 알려졌다. 1988년 경기경찰청 대공분실장을 그만둔 뒤 전국에 공개 수배돼 10년 넘게 도피생활을 했고, 결국 1998년 10월 자수했다.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2006년 만기 출소한 그는 2년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김근태 전 고문이 사망하자 여론의 비판이 일어 올해 1월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태그:#이근안 전 경감, #고문기술자,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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