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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양명. 그가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허공의 깊이>(도서출판 애지)를 펴냈다
▲ 시인 한양명 시인 한양명. 그가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허공의 깊이>(도서출판 애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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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음을 할 때 또는
내가 나란 걸 잊을 때
나는 살아 있다

길을 걸을 때 또는
내가 나를 두고 떠날 때
나는 살아 있다

그대가 울음을 터뜨릴 때 또는
내가 그대이고 싶을 때
나는 살아 있다

비가 내릴 때 또는
내가 물이 되어 흘러가버릴 때
나는 살아 있다

나는
내가 아닐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다
- <나는 살아 있다> 모두, 24쪽

그대들은 언제 '살아 있다'고 느끼는가. 그대들도 시인 한양명처럼 "과음을 할 때 또는/ 내가 나란 걸 잊을 때" '살아 있다'고 여기는가. 그래. 어쩌면 우리들은 우리들에게서 저만치 떠나 우리들을 다시 바라보아야 비로소 우리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나는 살아 있다"는 곧 내가 나를 떠남으로써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문득 글쓴이가 쓴 시 <김치>가 떠오른다. 나는 김치가 "아아, 밑도 끝도 없이 씹히는 나날"을 바라보며 "난 살아 있다"고 썼다. 왜? 김치가 김치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반찬으로 씹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도 그러하다. 웃고, 울고, 싸우고, 악수하면서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우리를 알 수 있지 아니한가. 그래야 '나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6년 역사를 되짚는 리얼리즘과 죽음이 지닌 독특한 세계를 선보였던 첫 시집 <한 시절>(모아드림)을 펴낸 시인 한양명. 그가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허공의 깊이>(도서출판 애지)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서는 자신과 삶, 자신과 자연, 물질자본주의에 물들 수밖에 없는 이 세상살이를 한 땀 한 땀 뜨개질하고 있다. 

제1부 '그냥 보고 싶다', 제2부 '개구리 성불하시다', 제3부 '개에 관한 명상', 제4부 '동백 지다'에 실려 있는 <쏘가리> <역마살> <물회> <애기똥풀꽃> <도리깨질 끝나면 점심은 없다> <아내는 시인이다> <황태> <막국수를 먹으며> <노래방에서> <검은등뻐꾸기> <낮술> <달맞이꽃에게 묻다> <오죽> <동백 지다> 등 63편이 그 시편들.

한양명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내가 나로 보였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 나로 보였다"는 곧 "나는 살아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세상에 진 빚이 너무 많은, 그러나 갚을 길은 막막한 인간이 걸어온, 아니 걸어와야만 했던 끝 모를 착시의 진도가 보였다 (줄임) 이젠 그 길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썼다.

이 말은 곧 시인이 이 세상살이(나)를 잠시 떠나 만해마을에 들어가 시를 쓰면서 지난 세월을 차분하게 더듬다가 비로소 참 '나'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참 '나'를 찾게 되자 비로소 "일흔넷의 처사님은 농사를 짓고/ 일흔셋의 보살님은 저녁밥을 짓고/ 쉰둘의 나는 시를 짓는 척"하는 게 환하게 보여 "밥 먹는 게 미안"(<밥-만해마을 식당에서>)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얼마나 내 맛을 알까?

이번 시집에서는 자신과 삶, 자신과 자연, 물질자본주의에 물들 수밖에 없는 이 세상살이를 한 땀 한 땀 뜨개질하고 있다
▲ 시인 한양명 두 번째 시집 <허공의 깊이> 이번 시집에서는 자신과 삶, 자신과 자연, 물질자본주의에 물들 수밖에 없는 이 세상살이를 한 땀 한 땀 뜨개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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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동풍이 불자
산이 가랑이를 벌렸다

지나가던 노루가 슬며시
오줌 몇 방울 보시하시니
노란 산수유꽃 금세 벙글었다

천상 오줌색이다
- <봄> 모두, 35쪽

시인 한양명이 바라보는 대자연은 억지가 없다. "문득 동풍이 불자/ 산이 가랑이를 벌"리는 것이나 "지나가던 노루가 슬며시/ 오줌 몇 방울 보시하시니/ 노란 산수유꽃 금세 벙"그는 것이나, 그 산수유꽃이 노루가 보시한 오줌색을 띠는 것 등이 모두 엇갈림 없이 자연스럽다. 시인이 살아온 삶은 어떠했으며, 그가 겪은 이 세상살이는 또 어떠했기에 이런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시인은 그동안 "어떡하면 남을 밟고/ 제 뱃속 채울지만 배워온 탓에/ 밟히는 게 죽기보다 싫은, 그러므로/ 성불은 꿈도 못 꿀 나"(<개구리, 성불하시다>)로 살아왔다. 그 때문에 "온전히 내준 자의 납작한 모습으로/ 가부좌를 튼 채 말라붙은 전신"만 남은 개구리가 와불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껏 부럽기도 하다.

"한 입을 덜기 위해 갓난쟁이를/ 엎어 뉘어 숨을 끊고 울음을 삼키던/ 그런 시절"(<도리깨질 끝나면 점심은 없다>)도 있었다. "청자도 백자도 아닌/ 흔해빠진 옹기라서 살아남"(<옹기>)은 그런 세월이었다. "갓난아이를 가슴에 묻은 어미가/ 곡기를 끊고 세상을 버리려"(<인간이란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는 그런 깊은 상처만 이어지곤 했다.  

시인이 억지가 없는 자연스러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시편들은 이 시집 곳곳에 '역마살'처럼 맴돌고 있다. "왜 나는 꽃을, 사람을/ 다른 무엇으로 보려 하는가"(<그냥 보고 싶다>)라거나 "지금 이 시간/ 쏘가리의 살점을 씹으면서 나는 천천히/ 한 마리의 순한 짐승이 되어가고 있다"(<쏘가리>), "나는 얼마나 내 맛을 알까"(<물회>), "나를 위해 산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고리버들을 닮은 나"(<고리버들>) 등이 그러하다.

나는 컴퓨터와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어떤 여성시인은
컴퓨터와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단지 욕망했을 뿐이지만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컴퓨터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것들을
입양기관에 팔고, 그 대가를 받아서
산 입에 거미줄을 걷어내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와 나는 사실혼 관계에 있고
법적인 마누라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에
컴퓨터를 마누라 중의 마누라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확언하건데
나는 컴퓨터와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 <컴퓨터> 모두, 67쪽

시인 한양명이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은 또 어떠한가. "어떤 여성시인은/ 컴퓨터와 사랑하고 싶다"는 시를 쓰고, 시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컴퓨터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고 있"는 그런 세상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어떤 여성시인은 시인 최영미다. 시인 최영미는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컴퓨터와 사랑하고 싶다"라고 쓴 게 아니라 "컴퓨터와 씹하고 싶다"고 썼다.

시인은 물질자본주의가 온통 사람을 마구 홀려 마침내 사람이 물질자본에 노예처럼 끌려 다니는 모습 또한 놓치지 않는다. "부처는 죽은 뒤에도 산 중생들의/ 밥벌이를 책임지고 있"(<화암사 다실에서>)고, "신음에조차 점수를 매기는 무정한 기계는/ 스스로 노고를 치하해 팡파르를 울리"(<노래방에서>)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역사를 공부한 먹물이지만/ 왜 곧잘 역사가 악한의 비망록이 되는지/ 저 역사책의 표지처럼 나는 모"(<나는 모른다>)르는 세상이다. 시인은 하 어이가 없어 바위를 오래 바라보다가 "얼마나 기다려야/ 저 돌멩이 하나만큼 작아질까"라고 탄식하며, 마침내 "이 땅에 왔다간 흔적을/ 영영"(<바위>) 지우고 싶다.  

시인이 신경초를 이 세상과 맞서는 나로 빗대며 "나를 내버려 두어라/ 내 심신을 건드리지 말라// 내가 몸을 떨며 움츠리는 건/ 그대 손길을 반겨서가 아니다/ 나를 감추고 싶어서이다/ 부디 잊혀지길 바라서이다/ 더는 희롱하지 말라, 아니면/ 차라리 내 신경을 자르고 말라"(<신경초>)는 것도 내 신경을 잘라내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참 세상을 열겠다는 다짐이라 할 수 있다.

나를 통해 대자연 비추고, 나를 통해 이 세상 빗댄다

내가 떠나자 그대가 핀다
기별만 하고 오지 않는 봄보다 먼저
잔설殘雪을 이고 그대 피어난다

내가 돌아오자 그대가 진다
가장 아름다운 날 봄볕에 목을 매어
툭 하고 미련 없이 붉은 마음 진다

그대 지고 한해의 봄도 가버린 자리
뜨겁던 그대 넋이 인장印章처럼 남아
흔들리는 걸음마다 붉게 새겨진다
- <동백 지다> 모두, 104쪽

시인 한양명 두 번째 시집 <허공의 깊이>는 나를 통해 대자연을 비추고, 나를 통해 이 세상을 빗대는 거울이다. 시인은 그 거울을 들고 다시 이 모질고 험한 세상을 뚜벅뚜벅 걸으며, 스스로 쓰고 있는 시를 비춘다. 스스로 삶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비추고, 마침내 가 닿아야 할 새로운 희망을 비춘다.   

문학평론가 고인환은 해설 <'시린 반성'의 언어를 위하여>에서 "한양명의 시는 성찰과 지난한 과정 그 자체를 집요하게 탐색한다"라며 "그에게 시는 꿈을 상실하고 초라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삶을 웅숭깊은 성찰의 언어로 길어 올리고 있다. 시인은 세속적인 삶 너머를 되비추는 '시린 반성'의 언어로 독특한 서정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평했다.

시인 권지숙은 "1년 전쯤 영광스럽게도 이 시집의 초고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적지 않은 분량의 시들을 밤새워, 단숨에 읽었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열이 39도를 오르내렸는데도 원고를 놓을 수가 없었다"라며 "그의 시의 무엇이 나를 빠져들게 했을까? 자연인 한양명을 잘 알지 못했을 때"였다고 되짚는다.

그는 "반딧불, 나방, 개구리, 애기똥풀꽃 등등 세상 모든 하잘것없는 것들이 그에게는 천둥 같은 깨우침을 주는 스승이었고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였다"라며 "시의 궁극적 지향점이 삶의 실존적 과제를 풀어내는 데 있다면 그의 시는 놀라운 생명력과 진정성으로 생의 진의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썼다.

"여름 한철을 내설악에서 보냈다. 저잣거리를 떠나서 산중에 드니 꽃이 꽃으로, 나무가 나무로 보였다"(시인의 말)고 말하는 시인 한양명. 시인은 1987년 <나아가는 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한 시절>이 있다. 지금 (사)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허공의 깊이

한양명 지음, 애지(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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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인 한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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