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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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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김장배추를 절여 둔 것을 이틀만에 건졌습니다. 건져내는 순간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진주는 눈에 거의 오지 않는 동네이기 때문에 눈길 운전은 젬병입니다. 다행히 집에 도착하니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진주에서 생활한 후 12월 초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처음입니다.

"여보 함박눈! 함박눈!"ㅇ
"정말 눈에 많이 오네. 한 10년만에 보는 '진짜' 눈이에요."
"아이들 좋아하겠어요."
"오면서 조심해야 할 것인데. 당신은 학원 가야 하잖아요."
"눈 맞으면서 걸어갈까요?"
"버스타고 가세요. 걷다가 넘어지면 어떻게해요."

걷는 이 아무도 없는 함박눈 내린 공원. 저 흰눈만큼 올 대선에서도 깨끗한 후보가 당선되어 우리나라를 깨끗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걷는 이 아무도 없는 함박눈 내린 공원. 저 흰눈만큼 올 대선에서도 깨끗한 후보가 당선되어 우리나라를 깨끗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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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학원에 간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아내를 보낸 후 혼자 집 옆에 있는 공원을 갔습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었습니다. 온누리가 흰누리가 되었습니다. 오래 묻었던 때가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흰눈이 소복히 내린 빈의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살짝 앉아 보고 싶었지만 엉덩이가 "주인님 이 추운 날씨에 저 동상 걸려요"라며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흰눈이 소복히 내린 의자. 아무도 없는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흰눈이 소복히 내린 의자. 아무도 없는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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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견디는 상징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진주는 사람만 아니라 소나무도 눈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나무는 함박눈을 반겼습니다. 하늘에서 펄펄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반겼습니다. 소나무는 흰눈을 맞이하면서 자신이 겨울나무 상징임을 자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나무는 흰눈 내린 겨울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소나무는 흰눈 내린 겨울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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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과 눈. 한 폭 그림입니다.
 솔잎과 눈. 한 폭 그림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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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메타세콰이어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너만 함박눈을 손님으로 맞이 할 줄 아니 나도 손님을 맞을 줄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메타세콰이어는 소나무와 달리 '쭉'뻗어 올라갑니다. 잎은 다 떨어졌지만 소나무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하는 것 같습니다.

메타세콰이어와 눈
 메타세콰이어와 눈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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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였습니다. 너희들만 있니 나도 있다는 아주 작은 열매가 있었습니다. 남천나무 열매입니다. 소나무와 메타세콰이어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작은 키고, 열매였지만 흰눈과 대비되는 붉은색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흰눈과 빨간열매. 작지만 강렬합니다.
 흰눈과 빨간열매. 작지만 강렬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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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데 옛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릴 적에 많이 먹었던 목화처럼 생긴 눈꽃이었습니다. 목화 새순은 단맛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상상을 할 수 없는 맛입니다. 먹을 것이 없던, 새참거리가 없던 때였습니다. 아마 시골에서 살았던 40대 후반 사람들은 목화어린순을 먹었을 것입니다.

목화처럼 생긴 눈꽃. 어릴 적 어린 목화를 먹던 기억이 났습니다.
 목화처럼 생긴 눈꽃. 어릴 적 어린 목화를 먹던 기억이 났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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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이 목화처럼 생겼습니다. 어릴 적 목화새순을 먹었습니다. 참 맛있었습니다.
 눈꽃이 목화처럼 생겼습니다. 어릴 적 목화새순을 먹었습니다. 참 맛있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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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어린순이 생각나 먹고 싶었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래만에 내린 눈은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려주었고, 찌든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었습니다.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린 날 진주는 흰누리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걸었습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걸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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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첫눈,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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