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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이 영화를 본 남자라면 한 번 쯤 하늘을 날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하늘을 난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멋지고 환상적인가. 그 직업이 바로 빨간 마후라, '파일럿'이다. 그러나 옛말에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도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바로 대한민국 전투조종사를 빗댄 말인 것 같다. 겉보기에 얼마나 빛깔 좋고 멋있는 직업인가. 빨간마후라를 목에 걸고 전투기에 올라타는 조종사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남자로서 최상의 멋진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그들은 새벽 미명이나 늦은 저녁에도 전투복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아내들은 남편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으로 젊음을 보냈다. 쌩쌩거리며 온종일 전투기소리가 하늘을 향해 이착륙을 거듭하면, 그렇다면 오늘은 무사고 날이다. 가끔은 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에 전투기가 급하게 쌩쌩거리면 불안한 하루를 보낸다.

또한 청명한 날에 전투기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더욱 초조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행여 비행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1970년대 후반, 그 당시 잦은 사고들로 인해 조종사 가족들은 항상 불안한 생활을 했다.

필자는 35년 전 하늘을 나는 전투조종사를 만나 현재까지 알콩달콩 하늘을 날며 살고 있다. 직업병인지 몰라도 남편이 군에서 전역한 지가 20년이 지났지만 항상 비행기에 관심이 간다. 최근에 블랙이글스 추락사고를 접하며 가슴 한 편이 시리도록 아팠다. 남편도 해외에서 돌아와서 그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한때 공군 전투조종사 가족으로 생사를 함께한 아들 같은 후배 가족들이기에 말이다.

그 시대 전투조종사는 부대 밖에서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항상 비상대기 상태로 활주로 근처 15평 작은 아파트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위 아랫집, 선후배 조종사들이 분초를 가르며 조국의 하늘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투조종사는 엄격한 맹훈련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항상 비상대기 상태로 살았다. 젊은 시절 전투조종사의 아내로 불안하게 살았던 아픈 기억들이 잠시 떠오르며 유가족에 대한 슬픔이 남다르다.

오직 충성

과거 군홧발 시대 전투조종사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현재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그들의 삶은 좀 더 나아졌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1985년, 어느 여름 날 모처럼 휴가를 받아 문경새재로 온 가족이 모였다. 부모 형제가 모여 서로 반가움을 나누는 순간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온 산을 덮쳤다. 라디오에서는 긴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국민 여러분 북한 미그기가 서울 상공에 나났습니다. 지금은 실제상황입니다. 모든 군인은 즉시 귀대조치해주시고, 국민 여러분은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실제상황입니다!"

계속해서 사이렌이 울리며 긴급 상황을 알렸다. 남편은 방송을 듣자마자 서둘러서 군부대를 향해 떠나버렸다. 오직 한마디.

"먼저 간다!!"

착륙 후, 휴식
▲ 조종사의 하루 착륙 후, 휴식
ⓒ 국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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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달려가는 남편의 뒷모습만 쳐다보았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저 남자는 남편이 아니라 천상 군인이구만. 저렇게 훌쩍 가버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저 서운하기만 했다.

그만큼 군인들은 단순하고 오직 충성이며 조국에 대한 책임과 사명이 투철한 사람들이다. 내 남편뿐만이 아니라 전투조종사들은 조국을 지킨다는 사명과 충성으로 살았다. 공군사관학교 교가에 "하늘에 살면서 하늘에 목숨 바친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것을 실현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해 미그기가 수시로 남하해서 여러 번 놀랐지만, 이미 각오는 하고 살았었다.

그래도 충성

대부분의 전투조종사들은 사관학교를 나와 전투조종사의 길을 택한다. 가장 강한 훈련과 순발력이 우수한 자들로 소수만이 그 길을 갈 수 있다. 당연히 그들이 군의 중추부 역할을 감당하며 최고 지도자의 꿈을 키워가는 곳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전투조종사로서 자부심은 하늘에 이른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이상과 땅에서 사는 현실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어느 곳으로 가든지 열악한 환경과 싸워야했다. 낙후된 아파트 내부는 쥐와 바퀴벌레, 개미가 들끓었다. 또한 습한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추위와 더위에 적응하며 살아야 했다.

겨울 잠자리는 전기장판, 목욕은 순간온수기가 해결책이다. 겨울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욕실을 밀폐시킨 채 아이들을 씻겼다. 그 안에서 목욕을 하다가 쓰러져 생사를 오간 적도 있다. 내 몸이 점점 쇠약해져가며 심장에 이상이 생길 때까지 이산화탄소 중독인지를 몰랐다. 나는 이미 이산화탄소에 중독이 되어 몸이 망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 년이 지난 후, 남편이 전역하고부터 내 몸이 회복되고서야 병명을 알았다.  

어느 해 가을, 부내 내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목사님이 3일간 그곳에서 머물렀다. 몇몇 집이 식사초대를 했다. 그분도 내심 조종사들이 사는 환경이 궁금했나보다. 그래서 초대한 가정에 가보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조종사들이 사는 내부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분노까지 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날 밤 강대상에서 외쳤다.

"내가 서울 가면 다 알릴 것입니다. 세상에 전투기 조종사들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줄 몰랐습니다. 국민을 죽이고 짓밟고 사는 것들은 호화별장에서 별 짓을 다 하고 사는데, 목숨 걸고 하늘을 지키는 전투조종사들을 어떻게 이렇게 살게 할 수가 있습니까? 억울하고 분노가 납니다." 

우리가 살았던 환경은 참으로 고달팠다. 그렇게 열악했지만 그 상황을 견디는 것은 꿈을 펼칠 수 있었기에 견디었다. 그러나 그 꿈도 접어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갑자기 예정된 보직 자리가 바뀌어 버렸다. 하룻밤 사이에 뒤 바뀐 보직명령에 충격이 컸다. 그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갑자기 핸들을 꺾어버렸다. 이미 아이들을 서울로 전학을 시켜버린 상태였다. 발령지가 바뀌자 난감했다. 우리는 밤새워 고민하다 동창이 밝아올 때쯤 결단했다. 그냥 전역하자는 편으로. 한마디로 군이 우리를 배신했다는 판단으로 서운함을 안고 나왔다.

홧김에 막상 나와 보니 물질적으로는 더 힘들었다. 갑자기 민간인이 되어서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 자체가 괴리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있는 자가 힘 있고, 많이 가진 자가 살 만한 세상 아닌가. 어느 누구도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군 내부에서나 최고의 조종사로 인정을 받고 살았지, 나와 보니 군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절 군인을 비하해서 '군발이'라 불렀다. 말 그대로 '군발이'였다.

솔직한 심정에 전역해 나온 것을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참으로 어린 마음에 군이 우리를 배신했다 생각했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우리가 군을 배신한 것이다. 보직 자리가 전라도면 어떻고, 강원도면 어떻겠는가. 군인은 명령에 따라 가라는 곳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왜 그렇게 배신당한 기분만 들었는지. 아마도 사랑한 만큼 미움도 배가 되어 왔었나보다.

세월이지나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니 그저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모두에게 빚 진자다. 그때 군에서 맹훈련된 기술로 곧바로 민항공사로 스카우트되어 들어가 오늘에 와 있다. 남편은 여전히 하늘을 날며 군인정신으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충성하고 있다.

영원한 충성

T-50B 블랙이글 항공기
 T-50B 블랙이글 항공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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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순직하신 고 김완희 소령을 기리며 대한민국 전투조종사의 삶을 잠시 되돌아보았다. 현재 그들의 주위환경은 많이 개선되었다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비행기도 신형비행기로 바뀌면서 과거처럼 잦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블랙이글스'도 순수 우리기술로 만든 최신 전투비행기다. 2012년 6월 영국에서 에어쇼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비행기다. 또한 고 김 소령은 가장 완벽한 기술을 갖춘 세계 최고의 조종사였다.

그러나 고 김완희 소령도 위급상황에서 비상탈출을 뒤 늦게 시도했다. 보통 전투기 한 대가 1000억 원이 넘는 고가 장비라 한다. 대부분 공군 전투조종사들은 자신의 생명보다 앞서 국가의 막대한 재산인 비행기가 더 소중한 것이다. 그들은 항상 끝까지 애기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린다. 결국 이젝션(Ejection)시기를 놓쳐버리고 애기와 함께 순직한다.

외국 전투조종사들은 기체가 조금만 이상해도 공중사출을 시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국가 정책이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고가 장비인 전투기보다 사람이 더 소중하기에 항상 사람을 중심으로 훈련되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3월 강릉기지에서 이륙 중 순직한 고 오충헌 대령의 일기와 그의 삶도 생각난다.

"군인은 오직 충성만을 생각해야 한다. 비록 세상이 변하고 타락한다 해도 군인은 변치 말아야 한다. 영원한 연인 조국을 위해 오로지 희생만을 보여야 한다."

죽어서도 죽지 않은 그들의 군인정신이 대한민국을 살리고 있다. 또한 이러한 충직하고 정직한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는 이만큼 살고 있다. 정치를 잘해서, 대기업이 장사를 잘해서가 아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각기 자신들의 자리에서 최선의 삶을 향해 땀방울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 김완희 소령님의 순직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그들의 삶은 열악해도 '국가에 대한 충성'이 하늘에 이르고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꿈을 향해 전진 할 수 있는 나라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죽도록 충성하는 그들이 있기에 말이다!


태그:#오직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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