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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23일 오후 8시 27분, 광주시 동구에 있는 기자의 집. 카카오톡 메시지 수신음이 마구 울렸다. 술 약속 말곤 동력원이 없는 '20대 남자 10명의 단체 그룹채팅방'에 "안철수 대통령후보직 사퇴"라는 메시지가 찍혔다. "헐"로 대변되는 감탄사와 "진짜?" 등 부정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장면 2
24일 오전 8시 30분, 광주시 북구 천수공원 야구장. 사회인 야구 경기가 있어 운동장을 찾은 기자에게 한 팀원이 건넨 첫 마디는 "어제 안철수 기자회견 보니 찡하지 않디? 넌 어떻게 생각하냐?"였다. "또 지각이냐"는 호통 또는 이종범의 한화행과 기아 타이거즈의 김주찬 영입 같은 게 이 집단의 주요 관심사였는데 말이다. 야구 경기를 마친 후 점심식사 자리까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오늘은 대선 이야기를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 아래, 안철수 사퇴와 야권 단일화를 두고 각자 나름의 평론이 계속됐다.

안철수의 대통령 후보직 사퇴 후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특히 야권 단일화 열망이 높았던 광주에선 "난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던 이들까지 '정치 평론'의 장으로 나설만큼 파장이 크다. 추석 전 "요새 정치 이야기는 잘 안한당께"라던 광주 말바우시장 상인의 말(관련기사-"안철수, 단일화 소극적" - "문재인 사과? 못 믿어")과는 사뭇 다르다.

안 후보의 사퇴와 '문-안 단일화'가 광주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안 후보 사퇴 이틀 후인 25일, 광주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곳곳의 민심을 들어봤다. 주말 유동인구가 많은 양동시장-문화전당-학동증심사입구역을 차례로 들렀다.

문-안 단일화 이틀 후인 25일 광주 양동시장. 광주/전남 최대의 재래시장인 이곳은 지난 8일  당시 안철수 후보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찾아 지지를 호소한 곳이다.
 문-안 단일화 이틀 후인 25일 광주 양동시장. 광주/전남 최대의 재래시장인 이곳은 지난 8일 당시 안철수 후보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찾아 지지를 호소한 곳이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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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단일화? 고개 '절레'

"솔직히 이건 단일화가 아니제."

광주 최대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안철수 후보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지난 8일 찾은 곳이다). 이곳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는 김민수(34)씨는 안 후보의 사퇴와 단일화를 두고 냉소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안 후보가 사퇴 기자회견에서 '단일 후보는 문재인'이라고 말은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떠밀려 사퇴하는 인상을 받았다"며 "결코 좋은 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강한 표현은 아니더라도 이날 만난 거의 모든 광주 시민들은 소위 '아름다운 단일화'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존 지지 후보, 연령, 성별과 상관없이 공통된 반응이었다.

같은 시장에서 이불집을 운영하는 윤해수(60)씨와 손님 이순심(80, 광주시 서구)씨도 "아따, (단일화 모습이) 이뻐 보이진 않더라고"라며 입을 모았다. 무등산 증심사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조광훈(48)씨 역시 "결과적으로 잘 되긴 했지만, 좀 다른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한다"며 "합의를 잘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안 후보의 사퇴 직후 진행된 여론조사를 보면 지난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만큼의 컨벤션 효과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단일화 다음날인 24일, SBS의 여론조사(TNS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응답률 12.3%, 95% 신뢰 수준에 허용오차 ±3.1%p) 발표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는 단일화 전 43.9%(17일,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단일화 후 37.6%(24일)로 지지율이 하락하며 박근혜 후보(17일 47.5%→24일 43.4%)와의 격차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안 후보의 지지층 가운데 51.8%가 문 후보를 지지했고 24.2%는 박 후보 지지로 돌아섰다. 지지후보 답변을 유보한 비율은 22.5%였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2002년 단일화로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던 때와 비교하면, (올해) 단일화 직후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 효과는 대단히 미미한 것"이라며 "(문재인-안철수가) 함께 손잡으며 끝나지 못한 2012년 단일화의 한계다"라고 평가했다.

17일 오후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한 조합원의 아들인 초등학교 4학년 조용균군이 후보단일화 문제로 갈등 중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사이에 서서 양 후보의 손을 잡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 문-안 '냉전' 녹인 초등학생의 깜찍 행동 17일 오후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한 조합원의 아들인 초등학교 4학년 조용균군이 후보단일화 문제로 갈등 중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사이에 서서 양 후보의 손을 잡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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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안'에서 '문'으로... 젊은층은 '아직'

그렇다면 단일화가 된 현재, 호남의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의 표심 변화는 어떨까.

안철수 대선 후보 사퇴 직후인 24일 <광주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 뷰'에 의뢰해 광주·전남·전북지역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 다자 대결에서 문재인 후보가 78.2%의 지지율을 얻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p)

<광주일보>는 "지난 16~17일 여론조사에서는 문 후보 41.4%, 안 후보 39.6%의 지지율이 나왔었다"며 "안 후보 지지층 가운데 90% 이상이 문 후보 지지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여론조사 결과처럼 안철수를 지지했던 호남 유권자의 상당수는 '단일후보 문재인'을 지지하는 듯하다. 호남의 '반 새누리당'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 안에서 만난 이진도(60, 광주시 동구)씨는 "'정치사의 반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 후보에 마음이 갔었다"며 "물론 단일화 과정이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여당 후보보단 문재인 후보가 낫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양동시장에서 수산물을 파는 김아무개씨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안 후보 사퇴 관련) 뉴스가 나오면 TV 꺼부렀어"라면서도 "그래도 (안 후보가 사퇴하면서) 문재인이 야권 단일후보라 했응께 투표는 해야제"라고 말했다.

광주의 안 후보 지지모임은 민주당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광주전남시민정책포럼은 25일 "안 후보가 비록 완고하고 높은 민주당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그 희생과 헌신을 물거품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광주시민과 국민의 열망인 '정치혁신'은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이들은 민주당을 향해 "안철수를 지지했단 이유로 같은 당원들을 몰아세운 '겁박정치'에 대해서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약속할 것"과 "'정권교체'가 아니라 오직 문재인 후보의 승리만을 위해 '정략'과 '줄세우기'에 몰두한 과오를 공개적으로 반성할 것"을 요구 했다.

정진욱 광주전남시민정책포럼 대변인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인물은 안 후보라 생각했는데, 그가 사퇴해 아쉽다"면서도 "담담하다. 안 후보의 선택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재인 후보가 안 후보 지지자들을 잘 감싸 안을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안 후보의 생각에 따라 포럼의 행보가 정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4일 오후 광주광역시 충장로의 한 제과점에서 열린 번개모임에 참석하던 중 밖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리는 시민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4일 오후 광주광역시 충장로의 한 제과점에서 열린 번개모임에 참석하던 중 밖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리는 시민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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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젊은층의 표심 변화는 다른 연령대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가 지난 4일 찾았던 충장로의 한 빵집.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조희수(23)씨는 "안 후보를 지지했었는데 그의 사퇴를 보고 정치권에 매우 실망했다"며 "문 후보를 지지할 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박시연(26)씨는 "나는 문 후보 지지자이지만, 이번 야권 단일화 모습을 봤을 때 안 후보 지지자들이 문 후보에게 갈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만난 박진석(29)씨는 "내 또래의 안 후보 지지자들 중  절반 정도는 문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혔지만, 나머지는 투표 포기나 박근혜 후보 지지 견해를 밝혔다"고 전했다. 

위 <광주일보>의 여론조사에서 20대(19세 투표 가능자 포함)는 야권 후보단일화에 대해 78.4%만 긍정적으로 답해 평균 83.6%에 비해 역시 낮았다. 또 정당지지도에서 20대 응답자의 65.9%만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답해 평균 71.9%보다 낮았다.

하지만 다자대결을 가정했을 때 20대 응답자의 80.8%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답해 평균 78.2%보다 약간 높았다. 

정권 교체 열망... "문은 안 품고, 안은 문 적극 도와야"

광주 시민은 대체로 문재인-안철수의 향후 행보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권 교체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증심사 등산로에서 만난 한현석씨(47, 광주시 남구)는 "정치권의 각성제가 될 수 있는 안 후보의 역할이 있다"며 "정권 교체를 위해 문 후보는 안 후보를 잘 품어야 하며 안 후보 역시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대권 후보로 안철수를 거론하는 이도 많았다. 안철수를 지지했다는 김영대(55, 광주시 용봉동)씨는 "이번 사퇴가 너무 아쉽다"며 "안철수가 이번엔 문재인 킹메이커 역할을 한 뒤 다음 대권을 노릴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에게 부정적이었던 윤아무개(45)씨는 "안 후보는 정당 기반이 없고, 국정 경험이 부족해 문 후보를 지지했었다"며 "앞으로 이런 부분을 극복하면 안 후보가 차기 대권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광주 지하철 1호선 안. 광주의 민심은 어디로 옮겨갈까.
 광주 지하철 1호선 안. 광주의 민심은 어디로 옮겨갈까.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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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소중한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단일화, #광주,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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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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