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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말바우시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지난 9월 27일 이곳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광주 말바우시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지난 9월 27일 이곳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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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안은 한산했다. 4일, 장날이었지만 늦은 가을비에 시장을 찾는 발걸음이 뜸한 탓이었다. 비를 막기 위해 천막으로 쳐 놓은 가림막에서는 고여있던 물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대선을 앞둔 민심을 묻는 질문에 시장 상인들은 손사래를 쳤다.

"요새 정치 이야기 잘 안한당께. 장사가 잘 돼야 정치에도 관심 갖고 그러제. 먹고살기 바쁜디."

광주 말바우시장.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야권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이곳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문 후보가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27일 광주 방문 일정 중 이곳을 한 차례 찾은 적이 있지만 '선거용 이벤트 아니냐'는 시장 상인들의 반응이 돌아왔다.

당시 문 후보가 광주를 방문했을 때는 야권의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의 지지율이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게 두 자리 수 이상 벌어졌던 시점이었다. 문 후보는 당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 수용 등에 대해 사과했다. 문 후보 측은 이날 내놓은 사과가 광주 민심을 되돌리는 전환점이 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상승세지만... 뿌리 깊은 민주당에 대한 불신

실제로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의 상승세는 두드러진다. 지난 1일 <문화일보>가 호남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야권 단일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문 후보는 48.7%를 얻어 안철수 무소속 후보(40.7%)를 8.0%포인트 앞섰다. 지난 9월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는 문 후보 43.3%, 안 후보 48.1%였다.

지난달 28~29일 실시된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호남권의 야권 단일후보 지지율은 문 후보가 57.0%로 안 후보(36.5%)를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같은 조사에서 지난 10월 5일 이후 문 후보는 꾸준한 상승세를, 안 후보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호남에서 15%포인트 정도 벌어졌던 지지율 격차가 역전됐거나 오차범위 안으로 좁혀졌다"며 "호남이 문 후보의 정책과 본선 경쟁력을 인정한 것으로 이 흐름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밑바닥의 민심에서는 문 후보의 상승세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민주당의 전통적 핵심 지지기반 광주에서 민주당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었다. 그만큼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안철수 후보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었다는 직장인 김지훈(41)씨는 안철수 후보를 '메시아'라고 불렀다.

"호남을 독점해 온 민주당에 대한 염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죠. 민주당을 바꿔야 한디 선거 때 되면 대안이 없응께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찍을 수밖에 없고, 그러니 민주당이 정신 못차리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 아닙니까.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갈망은 항상 있어왔던 것이죠. 답답해만 하고 있었는디 안철수라는 메시아가 나타난 겁니다. 안철수가 이번에 단일후보가 돼야 민주당이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을까 싶네요."

말바우시장에서 채소가게를 하고 있는 양장윤(63)씨는 "지금까지 할 수 없이 민주당을 찍었지, 정말 찍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며 "주변에서 안철수 이야기를 많이 한다,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많다"고 말했다.

개인택시를 모는 고아무개(52)씨는 참여정부의 호남홀대론에 대한 문 후보의 사과에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선거 때 되니 하는 말 아니요? 지지율 올리려고 하는 소리제, 요새 정치인들 말 누가 믿기나 하간디. 당선 되면 약속을 지키런지 안 지킬런지, 진심이 느껴지들 않더라고."

"안철수는 메시아"... "민주당에 대한 분노가 안철수 지지로 간 것"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5일 오후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 참석하며 환호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5일 오후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 참석하며 환호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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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민심은 호남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의 압도적 우세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10월 30일~31일 이틀간 리서치뷰가 광주·전남북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야권 단일 후보 지지도(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자 제외)는 안 후보가 56.3%를 얻어 39.7%에 그친 문 후보를 16.6%포인트 차로 앞섰다. 27~28일 같은 조사에서는 안 후보 52.7% 대 42.0%로 10.7%포인트 차였다.

이 같은 여론조사에는 호남 유권자들의 정치 개혁에 대한 강력한 열망이 반영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인 '안철수 현상'은 전국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민주당 독점'에 대한 반작용이 큰 호남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집 광주2013포럼 대표는 "그동안 광주에서는 민주당을 견제하는 당이 없으니 시민사회가 대신 역할을 해왔는데 강력한 기득권을 깨는 게 쉽지 않았다"며 "이 지역 시민사회 리더들이 상당수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민주당 개혁, 정치개혁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호남지역의 안철수 후보 지지모임의 한 관계자는 "호남에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민주당에 대한 두터운 불신에서 출발했다, 민주당에 대한 분노가 안철수 지지로 간 것"이라며 "민주당이 호남에 제대로 한 게 뭐가 있나, 민주당은 철저히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무지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30대 이아무개씨도 "정치는 잘 몰라도 물이 고이면 썩는다, 광주만 해도 민주당이 너무 오래 잡고 있다"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학생 최영우(전남대 3학년)씨는 "요즘 대학생들은 예전 민주화운동 때처럼 화염병과 돌을 들고 거리로 나서지는 않지만 안철수 지지를 통해 강력한 사회·정치적인 변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 대한 불신, 변화에 대한 열망이 안철수 후보가 막강한 조직력을 가진 문재인 후보를 호남에서 앞서거나 최소한 접전을 펼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상승세, 안철수 지지율 정체 반사이익"

3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3 새로운 교육실현 국민연대' 행사에 참석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인사말을 마친후 참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3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3 새로운 교육실현 국민연대' 행사에 참석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인사말을 마친후 참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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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문재인 후보의 최근 상승세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이다. 참여정부 시절 과오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지역 발전 비전을 제시하는 등의 선거 캠페인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문 후보 측의 시민캠프 문태룡 상황실장은 "일부에서는 문 후보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그동안 참여정부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망설이던 분들이 문 후보를 적극 지지하기 시작했다"며 "문 후보는 믿어도 되겠다는 여론이 생겼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미지근한 태도 등이 초래한 지지율 정체에 따른 반사이익이다. 전문가들은 문 후보의 상승세에 두 번째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야권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후보 단일화에 대한 소극적 태도와 국회의원 100명 축소 등 정책 파격성이 안 후보에 대한 불안감을 부각시키면서 추가 지지층 충원이 막혔다"며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든 것은 안 후보가 지지율 상승의 모멘텀을 잡지 못한 반사효과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거리에서 만난 광주 시민들은 지지부진한 단일화 진도에 대해 피로감을 나타냈다. 정당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무소속 후보에 대한 불안감도 내비쳤다.

충장로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47)씨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지만 후보 등록일이 20일도 안 남았는데 안 후보가 단일화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고 피해다닌다는 느낌을 주고 있어 답답하다"며 "오늘 또 광주에 온다는데 제발 단일화 언제 어떻게 할지 속시원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황아무개(60)씨는 "이번에는 무조건 정권교체를 해야 하니 문재인이 단일후보 되면 문재인 찍고, 안철수가 되면 안철수를 찍을 것"이라며 "누구든 단일후보가 되면 밀어줄 테니 단일화나 빨리 했으면 좋겠다는 게 이쪽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북 익산 북부시장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박광만(72)씨는 "처음에는 때 묻지 않은 안철수 지지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조직과 뿌리가 있는 문재인 지지로 많이 돌아섰다"며 "안 후보가 유능하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뿌리가 있어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그는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양보해서 단일화 하고 문재인이 대통령, 안철수가 총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호남은 2002년 단일화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다자대결 여론조사에서는 20% 초반에서 접전을 벌였지만 호남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를 두배 이상 따돌리면서 단일화에서 승기를 잡았다.

2002년 단일화, 노무현 밀어준 호남... 이번에는?

광주 버스터미널. 호남의 민심은 누구를 선택할까.
 광주 버스터미널. 호남의 민심은 누구를 선택할까.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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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서도 야권의 전통적 지지기반이자 정치적 뿌리라는 상징성을 가진 호남에서 이기지 못하면 단일후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가 호남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문 후보는 지난 9월 27일, 10월 28일에 이어 오는 8일 1박2일 일정으로 다시 호남을 방문한다. 안 후보도 10월 3일부터 사흘동안 여수-순천-목포-광주-전주-완주를 도는 강행군을 벌였고 3일 1박2일 일정으로 다시 광주를 찾았다.

하지만 문 후보는 호남의 여당인 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그에 따른 심판론에, 안 후보는 단일화 피로감과 무소속 대통령에 대한 불안감에 발목이 잡혀 있는 모양새다. 앞으로 펼쳐질 후보단일화 경쟁의 승패는 두 후보가 각자의 걸림돌을 얼마나 걷어내느냐에 달린 셈이다.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호남은 다른 지역처럼 정서적 동질성에 기반한 지지가 아니라 전략적 판단에 따른 선택을 해왔기 때문에 유동성이 여전하다"며 "본선 경쟁력에 따른 전략적 판단을 호남 민심의 특징이라고 하면 문 후보가 독자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경쟁력을 보여주느냐가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는 유동층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집 대표는 "호남이 안 후보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앞으로는 이 지역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않으면 실망이 커질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치개혁을 할 것인지, 호남에 대해 어떤 비전과 정책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역으로 가는 택시 안, 마지막으로 광주 민심에 대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정채서씨에게 물었다.

"앞으로 광주를 잘 보씨요. 이번 대선에서는 정권교체가 중요항께 어찌될란가 모르지만 앞으로는 민주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는 일은 없을 것인께. 광주 사람들이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안된다고 해싸면서도 그 대변인 이정현씨는 일 잘했다고 (총선에서) 40% 넘게 찍어분 것도 다 그런 조짐이제. 민주당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인디…. 기자 양반 서울가서 (민주당) 윗분들한테 꼭 전해 주씨요."


태그:#문재인, #안철수, #단일화,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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