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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걷는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면서 쌓아온 욕심을 비움으로써 자신을 맑게 하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세상 욕심을 내려놓고 만나는 히말라야에서 신들이 살고 있는 장엄한 설산과 순수한 자연에 동화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접할 수 있습니다. 설산을 향해 자신의 발걸음을 내 딛을 때마다 신에게 한 발짝 다가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의 백미는 푼힐(Poonhill·3193m)입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든,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를 다녀 오든 혹은 짧은 일정 때문에 오랜 시간 트레킹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푼힐은 반드시 거쳐 갑니다. 푼힐은 안나푸르나 코스의 서남쪽에 자리잡은 언덕으로 접근성이 뛰어나며 안나푸르나 남봉, 마차푸차레, 다울라기리 등 8,000m급의 설산들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안나푸르나 해발 3120m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푼필전망대의 모습
▲ 푼힐 전망대 안나푸르나 해발 3120m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푼필전망대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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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힐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라파니(Ghorepani,2750m)를 거쳐야 합니다. 2004년, 동료교사 17명과 함께 포카라에서 버스를 타고 나야풀(Nayapul)로 가 비렌탄티(Birenthanti) 울레리(Ulleri)를 거쳐 고라파니를 처음 접했습니다.

6년 만에 다시 만난 '푼힐'

2010년,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며 고라파니에 다시 올라 봅니다. 따또파니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하루에 해발 1560m를 올렸기에 숨이 턱까지 차고 체력이 한계에 도달할 즈음 고라파니의 푸른 지붕이 보입니다. 가픈 호흡을 내쉬며 도착한 고라파니 모습은 생소하기만 합니다. 6년 전, 빨간 랄리구라스(네팔 국화)와 설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크고 화려한 롯지(숙소)들이 마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네팔 국화인 붉은 랄리구라스
▲ 랄리구라스 네팔 국화인 붉은 랄리구라스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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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이스트를 만나다

2004년 처음 푼힐을 찾을 당시는 네팔 정국이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왕정을 반대하는 마오이스트(공산주의자)들이 지방 대부분을 장악하였고 정부에 타격을 주기 위해 번다(파업)를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 교사 18명이 함께 푼힐 트레킹을 하였는데 고라파니에서 마오이스트를 만났습니다.

저녁을 끝내고 식당 난롯가에 옹기종기 모여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불청객이 식당문을 열고 들어 옵니다.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고 1인당 하루 100루피(1.5$)를 요구했습니다. 마오이스트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트레크들에게 준조세를 징수하는 것입니다. 좋은 세상이 되면 돌려 주겠다는 영수증까지 발급하면서 말입니다. 롯지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걸려 있었습니다.

 "NEPAL = Never Ending Peace And Love".

평화를 희망하는 대부분 네팔리들의 마음일 것 같습니다. 이념보다는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네팔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트레킹은 천천히 걷는 것

트레킹은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빠른 출세', '더 많은 재산'을 얻기 위한 정글입니다. 정글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존재하기에 남을 짓밟지 않으면 내가 희생됩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립니다. 천천히 걷거나 멈춘다는 것은 경쟁에서 낙오되었음을 의미하니까요.

그렇지만 히말라야 트레킹은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천천히 걷는 걸음을 통해 살아온 날에 대한 반성과 살아갈 날에 대한 계획을 세워봅니다.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세상에서 우리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이 소중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더 관대하고 더 양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반성도 되고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히말라야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은 히말라야가 주는 또 다른 축복입니다.

고라파니를 찾는 트레커들은 모두 푼힐에서 일출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롯지에는 일출 시간이 고지되어 있습니다. 내일 아침 일출 시간은 07시라고 합니다. 새벽 4시 잠에서 깨어 복장을 준비하고 헤드렌턴을 준비했습니다. 해발 3000m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털모자부터 장갑까지 복장을 제대로 갖추어야 합니다.
해발 2700m에 있는 고라파니 마을 모습, 푼힐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 마을에서 일박을 하여야 함.
▲ 고라파니 모습 해발 2700m에 있는 고라파니 마을 모습, 푼힐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 마을에서 일박을 하여야 함.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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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온 트레커들로 푼힐을 오르는 새벽길은 분주합니다. 새벽 달빛이 눈 위를 비춰서 허옇게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헤드렌턴 불빛에 의지하여 천천히 산을 오릅니다. 한 시간을 걷자 푼힐에 도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여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여명이

여명이 트기 시작합니다. 순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외심으로 사람도 바람도 말을 잊습니다. 6시 40분, 드디어 동쪽 하늘에서 조그만 불덩이 하나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불덩이가 빛을 발하자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등 수 많은 봉우리들이 깨어나며 빛은 계곡 아래로 향합니다.

네팔리들이 신성시하는 구름에 쌓인 마차푸차레 모습
▲ 마차푸차레 네팔리들이 신성시하는 구름에 쌓인 마차푸차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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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는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 본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모습
▲ 푼힐 전망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는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 본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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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에 풀잎들이 일어나고 설산들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포옹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합니다. 날이 밝은 후에도 여운은 가시지 않습니다. '아름답다', '행복하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의 허약한 어휘력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아침 8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하산할 때도 몇 번씩 되돌아 봅니다. 볼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연출되는 다양한 히말라야의 모습은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게 합니다. 나이와 국적을 떠나 같은 곳에서 감동을 맛보았기에 모두들 행복한 모습으로 내려갑니다. 모두들 올라갈 때의 고요와 적막과는 달리 활달한 사람들의 대화가 들립니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얼굴 표정은 히말라야를 닮아 있습니다.

푼힐에서 내려오면 본 룽다 휘날리는 고라파니 모습
▲ 고라파니 모습 푼힐에서 내려오면 본 룽다 휘날리는 고라파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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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는 곧 히말라야

고라파니 롯지에 내려 오자 감자와 짜파티(네팔 빵)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부지런한 포터들이 트레커가 푼힐을 오르는 동안 아침 준비를 한 것이지요. 포터는 트레커의 짐만 지는 것이 아닙니다. 숙소에 도착하면 음식을 주문받고 차를 나르며 주방에서 샤우니(주인 아줌마)를 도와 음식을 만듭니다. 

고라파니 북사면을 이용해 타다파니(Tadapani,2,721m)로 향합니다. 몇 일 전 내린 눈으로 무척 미끄럽습니다. 가파른 능선길을 포터들은 끈으로 운동화를 묶고 미끄러운 눈길을 내려갑니다. 내려가서 자신의 짐을 내려 놓고 다시 올라와 트레커의 손을 잡아 줍니다. 그들이 내민 손에서 히말라야를 만납니다. 힘든 짐을 지면서도 밝은 미소로 트레커를 배려하는 포터는 히말라야입니다.  
롯지에서 기타를 치며 휴식을 즐기는 포터들의 모습
▲ 포터들의 휴식 롯지에서 기타를 치며 휴식을 즐기는 포터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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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721m 타다파니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그날이 히말라야에서 자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포터들에게 넉넉히 술과 음식을 제공하라고 가이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동료 교사 18명은 롯지 식당에 모였습니다. 테이블 아래 숯을 피운 식당은 온기로 가득합니다. 저를 제외한 17명 선생님들은 히말라야 트레킹이 처음이었습니다.

한 사람씩 트레킹에 참여한 동기와 느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담담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며 어느 순간 식당은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자리를 함께한 가이드와 포터들도 하나가 되어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냅니다.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감동은 뜻하지 않게 찾아와 사람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경기도 의왕시 백운고등학교에서 일년간 3학년 담임을 함께한 선생님들과 행복한 푼힐 트레킹을 하였습니다.
▲ 2004년, 푼힐 트레킹을 함께한 동료들의 모습 경기도 의왕시 백운고등학교에서 일년간 3학년 담임을 함께한 선생님들과 행복한 푼힐 트레킹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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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푼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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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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