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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정록. 그가 일곱 번 째 시집 <어머니학교>(열림원)를 펴냈다.
▲ 시인 이정록 시인 이정록. 그가 일곱 번 째 시집 <어머니학교>(열림원)를 펴냈다.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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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업은 애기를 왜 삼 년이나 찾는
아냐? 세 살은 돼야 엄마를 똑바로 찾거든.
농사도 삼 년은 부쳐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며
이 빠진 옥수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르쇠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긴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며
웃을 때까지.
- <시 - 어머니학교 10> 모두, 시집 27쪽

시인 김용택이 엮은 <시가 내게로 왔다>처럼 "어머니의 말씀은 받아 적는 대로 시가 된다"고 주저 없이 말하는 시인 이정록. 그가 일곱 번 째 시집 <어머니학교>(열림원)를 펴냈다. 이번 시집은 시인 이정록 어머니가 겪은 자잘한 삶에서 묻어나오는 철학과 교훈, 사는 지혜와 우스꽝스러운 말이나 행동 등이 시로 태어난다. 그렇다고 그 시가 제 홀로 빛나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 띠지에 '우리는 모두 어머니학교의 동창생입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는 것처럼 시인 은 시인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품는다. 시인과 시인 어머니가 함께 썼다고 해야 할 이번 시편들은 '어머니학교'이자 '시인학교'다. 시집 곳곳에 실려 있는 20여 컷에 이르는 어머니 삶을 그대로 담은 흑백사진도 사진이 아니라 시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 2부 '진짜 전망은 둥지에서 내다보는 게 아니고 / 있는 힘 다해 날개 쳐 올라가서 보는 거여', 3부 '된장 고추장 빼고는 숫제 간도 보지 마라 / 가장 힘들어서 가장인 거여'에 실린 연작시 72편이 그 시편들.

어머니 앞에서 저마다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 연작시들은 이 세상을 깊이 바라보고 있는 우리나라 어머니를 쏘옥 빼닮았다. '사그랑주머니' '나이' '홀아비김치' '부지깽이' '그늘 선물' '버섯' '저승 문짝' '새알' '검은 눈물' '살과 뼈'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눈물 비누' '메주' '멸치죽' '학생부군신위' '가물치' '삐딱구두' '갈비뼈 장작' 등 제목만 들어도 어머니 곰삭은 세월이 슬슬 흘러가는 듯하다. 

시인 이정록은 '시인의 말'에서 "2010년 11월 9일 새벽, 어머니와 한 몸이 되어 잠에서 깨어났다"고 되짚는다. 시인은 "몸이 이상했다, 침대와 천장 사이를 날고 있었다"며 "내가 분명했으나, 분명 내가 아니었다"고 적는다. 시인은 이때 "채 어머니로 변하지 않은 오른손이 쏟아지는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시인은 "어머니로 부화하려던 어리둥절한 내 눈망울이 허둥지둥 읽어보고는 눈물을 흘렸다"라며 그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받아 적은 글이 "시의 품새와는 사뭇 다르니 시마도 아니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지도 않았으니 빙의도 아니었다"고 엄살을 떤다. 시인은 그렇게 "서른 편쯤 쓰고 나서야" 깨닫는다. "나를 낳으신 어머니가 수천수만"이라는 것을.

그렇다. 시인이 이정록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듯 이 세상에 어머니도 한 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을 낳아 길러준 어머니... 그 어머니들이 내뱉는 혼잣말 같기도 하고, 이 세상을 향한 넋두리 같기도 한 그 말씀들이 곧 시가 아니겠는가. 지난 해 전북 임실에서 만난 시인 김용택도 어머니 말씀에서 시를 많이 줍는다고 했던 것처럼.     

못난 벼 포기에 거름 더 주어야 고른 들판 된다

이 시집 띠지에 “우리는 모두 어머니학교의 동창생입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는 것처럼 시인 은 시인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품는다.
▲ 시인 이정록 연작시집 <어머니학교> 이 시집 띠지에 “우리는 모두 어머니학교의 동창생입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는 것처럼 시인 은 시인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품는다.
ⓒ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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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가 진짜 사랑이여.
논바닥에 비료 뿌릴 때에도
검지와 장지를 풀었다 조였다
못난 벼 포기에다 거름을 더 주지.
그래야 고른 들판이 되걸랑.

- <사랑 - 어머니학교 29> 몇 토막, 시집 57쪽

사람들은 흔히 '편애'라고 하면 '한 사람에게만 너무 치우친 어긋난 사랑'이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시인 어머니는 그러한 사람들 생각을 몇 마디로 바로 잡아준다. "못난 벼 포기" 즉, 잘 자란 벼 포기에 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한 벼 포기가 같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을 더 주는 것이 '편애'이기 때문이다.    

"병충해도 움푹 꺼진 자리로 회오리치고 / 비바람도 의젓잖은 곳에다가 둥지를" 트는 것이나 "가지치기나 솎아내기도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시인 어머니가 "풀 한 포기도 존심 하나로 벼랑을 버티"고 있는데, "젖은 눈으로 빤히 지릅떠보며 / 혀를 차는 게 그중 나쁜 짓"이라 말씀하시는 것도 사람들이 '편애'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을 읽고 있으면 20여 년 앞에 이 세상을 떠난 내(글쓴이) 어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니 서울 올라갈 때 / 동네 노인들 길가에 앉아 있으면 / 막걸리 사 드시라고 한 오천 원 드려라 / 동네 노인들 참 좋아 할끼다 / 우쨌거나 서울 가서라도 / 주변 사람들한테 인심을 잃지 말거라"(<유언.1> 몇 토막, 이소리 세 번째 시집 <어머니, 누가 저 흔들리는 강물을 잠재웁니까>에서)고 하신 그 말씀. 어디 그 말씀뿐이었겠는가.

나도 그때 내 어머니 말씀을 그대로 시로 옮겨 적곤 했다.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빼고 더 넣고 할 것도 없이 옮겨 적기만 하면 시가 됐다. '시인과 시인 어머니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시집도 어머니 말씀이 곧 시가 된다. 그래, 어쩌면 '어머니' 이 세 글자가 시란 꽃을 피우는 뿌리와 잎과 줄기인지도 모른다.     

하늘 좀 그만 쳐다보라고 허리가 꼬부라지는겨

허물없는 사람 어디 있겄냐?
내 잘못이라고 혼잣말 되뇌며 살아야 한다.
교회나 절간에 골백번 가는 것보다
동네 어르신께 문안 여쭙고 어미 한 번 더 보는 게 나은 거다.
저 혼자 웬 산 다 넘으려 나대지 말고 말이여.
어미가 이런저런 참견만 느는구나.
늙을수록 고양이 똥구멍처럼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한숨을 말끔하게 내몰질 못해서 그려.

- <가슴우물 - 어머니학교 48> 몇 토막, 시집 83쪽

시인 이정록 연작시집 <어머니학교>는 시이기도 하고, 산문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다. 읽는 이 마음에 따라 그렇게 장르를 마음껏 아우르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집에 실린 시에 이러저러한 자잘한 설명이나 해설을 다는 것은 부끄럽고 우스꽝스런 일이다. 누가 읽어도 그대로 다가와 피가 되고 살이 되기 때문이다.

"푹 삶아지는 게 / 삶의 전부일지라도, / 찬물에 똑바로 정신 가다듬고는 / 처음 국수틀에서 나올 때처럼 꼿꼿해야 한다"(<국수 - 어머니학교 2>), "그늘 한 점 데리고 가는 게 인생이지 싶더라"(<나비 수건 - 어머니학교 4>), "갈 때 되면 / 하늘을 자꾸 올려다보니께 / 하늘 좀 그만 쳐다보라고 허리가 꼬부라지는겨"(<갈대꽃 - 어머니학교 7>) 등을 읽어보라.

이 시에 무슨 사족을 달겠는가. 어머니 말씀이 그대로 시가 되듯이 이 시도 그대로 다가와 내 어머니 말씀으로 가슴 깊숙이 꽂히지 않는가. 물론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모두 어머니 말씀을 그대로 옮겼다고는 볼 수 없다. 시인이 어머니 말씀에 약간 손을 댔을 수도 있겠지만 손을 댄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정록 시인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시인이라는 그 말이다. 

"더 세게? / 좀 더 세게? / 배추는 꼭 껴안는 연습으로 평생을 나지"(<홀아비김치 - 어머니학교 9>), "공부도 농사도 때가 있어"(<머리경작 - 어머니학교 14),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냇물 흐린다지만, / 그 미꾸라지 억수로 키우면 돈다발이 되는 법이여"(<한숨의 크기 - 어머니학교 19>), "어미 아비가 되면 손발 시리고 / 가슴이 솥바닥처럼 끄슬리는 거여"(<주전자 꼭지처럼 - 어머니학교 43>).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군더더기 하나 없어도 저절로 술술 읽히면서 우리들에게 삶과 자연이 지닌 뿌리를 가르친다. 나도 시인 이정록과 함께 어머니학교를 졸업한 동창생이긴 하지만 지금도 어머니학교를 맴돌고 있는 시인이 참 부럽다. 내가 졸업한 그 어머니학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뒤 폐교가 된 뒤 지금은 마음 깊은 곳에 실루엣으로만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시인이다

"막내가 가르쳐 준 건데 / 하루살이는 애벌레 때부터 / 스무 번도 넘게 허물을 벗는다더라. / 그러니께 우리가 보는 하루살이는 / 마지막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거지. / 수의엔 주머니니가 없다는데 / 알주머니 하나를 온전하게 채우고 / 비우려고, 필사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거여. / 필사적이란 말이 이렇듯 장한 거다. / 어미 아비만이 할 수 있는 / 거룩한 춤사위여." - <하루살이 - 어머니학교 72> 모두, 시집 128쪽

시인 이정록 일곱 번째 시집 <어머니학교>에서는 어머니가 이 세상을 살면서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씀이 그대로 시가 된다. 이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시인 이정록 어머니, 나아가 이 세상 어머니들이 세상살이를 추스르며 쓴 시라 할 수 있다. 그래.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시인이니,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어찌 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랴.  

소설가 전성태는 "세상 글쟁이들이 어머니라는 훌륭한 모어의 세계를 두고 있지요, 이정록 시인은 그중 각별합니다"라며 "시인이 옮겨놓는 시편들의 팔 할은 어머니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의순 여사(72세), 그이는 아무래도 아들에게 발굴된 시인입니다"라며 "일전에 그 집 처마로 들었다가 이 유명한 어머니의 말씀을 한 토막 주워 나온 일이 있습니다"고 되짚었다.

시인 정진규는 "이정록의 어머니 받아쓰기는 시마도 빙의도 아닌 도저한 이정록의 시의식이 드러내고 보아내고 있는 큰 체험의 소식들이요 큰 깨우침들"이라고 말문을 연다. 그는 "우리 현대시에도 위당 정인보의 '자모사(慈母思)'를 비롯해 어머니 시가 산맥을 이루고 있지만 이토록 삶의 지혜와 해학이 넘치는, 그것도 어머니 연작의 대간은 없었다고 알고 있다"고 적었다.

이정록 시인은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대전일보>에 시 '농부일기'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穴居時代'(혈거시대)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1994), <풋사과의 주름살>(1996),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1999) <제비꽃 여인숙>(2001) <의자>(2006) <정말>(2010)이 있다. 시우화집으로는 <발바닥 가운데가 오목한 이유>(1998)가 있으며, 제20회 김수영 문학상(2001년), 제13회 김달진 문학상(2002년)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어머니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열림원(2012)


태그:#시인 이정록, #어머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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