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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 금강산 관광 중단, 대북단체 '삐라' 살포와 북한의 조준타격 논란 등. 이명박 정부 내내 남북 관계는 차가웠고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접경 지역은 곧바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지금, <오마이뉴스>는 접경지를 찾아가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편집자말]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프레스센터에서 '강원평화특별자치도'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프레스센터에서 '강원평화특별자치도'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강원도청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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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금강산관광 중단 4년, 강원도 고성은 어떤 모습일까.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러 의문을 안고 9일 강원도 고성으로 향했다. 강원도 양구를 찾을 때처럼 이번에도 강원도청 관계자가 동행했다. 기자가 사는 홍천에서 출발해 인제를 지나 진부령을 넘어 간성을 지났다. 그곳에서부터 고성 거진읍과 대진항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공사중이었다.

경북 포항에서부터 이어진 동해안 해안도로는 강원도 고성 간성까지 1997년 4차선으로 완공됐다. 하지만 간성에서 거진을 거쳐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은 2008년에 착공했지만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 길이 바로 금강산으로 향하는 4차선 해안도로다.

고성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는 진짜 이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약 5개월이 지난 뒤부터 금강산관광은 중단됐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도로 공사도 예산 집행 문제 탓에 자주 중단됐다.  

남한에 5개(수동면 제외) 읍·면이 있고, 북한에도 5개 읍·면이 있는 강원도 고성은 자연환경이 빼어난 곳이다. 파도가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명산과 호수도 있다. 여기에 들판도 넓게 펼쳐져 있다. 김일성 별장은 물론이고, 이승만과 이기붕 별장도 고성에 있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먼저 화진포해양박물관 주차장에서 이영일 고성군 번영회장을 만났다. 그는 기자가 도착하기 전에 나와 박물관 앞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는 흥겨운 노래를 틀어놓고 관광객을 기다렸다.

"기자들이 하두 많이 다녀가 이곳 사람들이 귀찮아 할 정도예요. 사람들 마음만 흔들어 놓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죠. 지금 고성 사람들 먹고 살기 힘들어요. 금강산관광보다 더 중요한 게 남북관계입니다. 명태가 잡히지 않는 것도 남북한 긴장관계 때문이에요.

명태가 잡히지 않는 것도 남북관계 때문이라고?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영일 번영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북한과 공동어로구역을 정해 합의하면 명태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하고 합의해 중국 어민들이 쌍끌이어선으로 명태는 물론이고 다른 고기들까지 씨를 말리고 있어요. 금강산관광 중단도 이산가족들과 관광객들에게 큰 문제지만, 바다에서 명태 등 물고기를 못 잡는 건 고성 사람들에게 생존의 문젭니다."

이영일 번영회장이 주인이 가게 문을 닫고 떠난 상가 앞에서 속상한 마음을 설명했다.
 이영일 번영회장이 주인이 가게 문을 닫고 떠난 상가 앞에서 속상한 마음을 설명했다.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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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나빠진 남북관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고성의 많은 상가들이 문을 닫고, 주민들이 아래 지역으로 이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기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유화적으로 바뀌어 대출받아 투자한 어민들도 많은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영일 번영회장과 찾아간 곳은 대진초등학교였다. 지난해부터 초등학교 입학생이 현저히 줄어 학교의 고민이 무척 컸다. 

이영일 고성군 번영회장과 깅형섭 대진초등학교 교장의 대화.
 이영일 고성군 번영회장과 깅형섭 대진초등학교 교장의 대화.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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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초등학교는 80년 된 학교입니다. 몇년 전만 해도 학급당 학생수가 20명이 넘었어요. 더구나 인근 초등학교가 폐교돼 학생들이 대진초등학교로 입학을 하는데도, 입학생이 크게 줄었습니다. 전학 가는 학생도 급증해 현재 전교생이 64명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조손 가정 아이들인데, 부모님들은 경제활동을 위해 대부분 멀리 떠나 있어요. 초등학생 부모라면 젊은 층이니까 경제활동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곳에는 일자리가 없으니 떠나는 거죠."

자꾸만 작아지는 학교... 부모들은 돈 벌러 외지로

김형섭 교장의 말이다. 김 교장은 "2009년 3월에 부임한 후 해마다 학생 10명 이상씩 전학을 갔다"며 "올해는 입학생이 5명에 불과했는데, 내년 입학 예정 학생 수도 예닐곱 정도"라고 덧붙였다. 입학 예정 학생들도 대부분 조손 가정으로 알려졌다.

대친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
 대친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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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5회 졸업식 사진 속에는 6학년 2반 학생이 29명이나 되었다.
 지난 65회 졸업식 사진 속에는 6학년 2반 학생이 29명이나 되었다.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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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영일 번영회장은 길가에 문 닫은 횟집과 건어물 가게 쪽으로 안내했다. 오후 시간인데도 거진 읍내와 대진항 상가 밀집지역에서 손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최근 준공했다는 대진항수산시장은 단 한 곳도 분양이 안 돼 텅 비어 있었다. 기자는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노부부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온 기자야?"

"대선을 앞두고 <오마이뉴스>에서 접경지역 취재를 왔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쓸데없는 짓이네. 말한들 뭐해. 다들 그놈이 그놈들이지. 안 믿어 이제."
"그래도 대통령은 뽑아야 하잖아요?"
"뽑으면 뭐하냐고. 싸움질이나 해 쌌는데. 할 말 없으니까 말 시키지 마."
"왜 할 말이 없어.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

앞에서 같이 그물을 손질하시던 부인이 남편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고기는 많이 잡혀요?

기자는 괜히 부부싸움 붙이는 것 같아서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잡히기는. 기름 값도 안 나와 요새는. 기름 한 말이 얼만지나 알어? 한 번 나갔다 오면 두 말이 들어가는데, 그게 면세로 끊어도 오만 원 넘게 들거든. 어떤 때는 빈 그물만 들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 되냐고."

"아버님, 금강산관광이 4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는데, 피해가 어느 정도예요?"
"우리와 금강산관광은 상관 없어. 고기가 안 잡히는 게 문제지. 고기만 잡혀도 먹고 살 수 있는데, 고기가 안 잡힌다고. 왠줄 알어?"

"예, 위쪽에서 중국어선이 싹쓸이를 한다면서요."
"그려, 그게 문제라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런 걸 해결해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같은 국민이 먹고 살 거 아녀. 그런 얘기나 잘 쓰라고, 기자면. 만날 귀찮게 찾아와 일 방해하지 말고."

대진항에 수산시장이 올 봄에 완공되었지만 분양이 되지 않고 있다.
 대진항에 수산시장이 올 봄에 완공되었지만 분양이 되지 않고 있다.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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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출입 허가를 받고 들어간 통일전망대로 향하는 4차선 길은 아직도 공사중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가니 현내면 명파리를 지나게 되었다. 금강산 출입국관리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금강산 27km'를 알리는 이정표도 왠지 궁색하게 보였다.

통일전망대에 들어서니 광광버스가 보였다. 인천도화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다. 학생들은 통일전망대를 놀이터처럼 돌아다녔다. 이런 학생들과 대비돼 북한 땅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성모상과 불상이 무척 크게 보였다. 북한 땅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하는 관광객들도 더러 보였다.

굳게 닫혀 있는 금강산 출입국 관리사무소와 우측에 '금강산 27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굳게 닫혀 있는 금강산 출입국 관리사무소와 우측에 '금강산 27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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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 앞에 통일염원카드가 큰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숲를 이루고 있었다.
 통일전망대 앞에 통일염원카드가 큰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숲를 이루고 있었다.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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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5년, 모든 게 달라졌다

돌아오는 길에 고성 명파리에서 평생 살며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여기도 연평도처럼 당할까봐 걱정이에요. 이제 전쟁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싸우지만 말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정말 같은 민족끼리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이번 취재에 도청 관계자와 함께 나선 건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접경지 문제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듣기 위해서다. 사실 강원도 접경지는 대선 때마다 출마자들이 꼭 들르는 단골 지역이다. 대선 후보들은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이런 저런 공약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약들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접경지 공약으로 '평화통일시' 건설을 내세웠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비무장지대 남북 공동 농업개발지역을 제시했다. 17대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은 DMZ 일대를 '통일특구'로 조성해 명품 관광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5년, 10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거의 없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에는 평화·화해 분위가 조성돼 고성도 비교적 활기찼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모든 게 달라졌다.

고성 주민들은 "5년 전이 아니라 10년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주민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한 통일특구와 명품 관광산업단지는 고사하고, 그나마 찾아오던 관광객마저 남북관계가 긴장 국면으로 이어지자 발길이 뚝 끊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고성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했던 건어물 가게와 횟집 등은 속속 문을 닫았다. 상인들은 고성을 떠나고 있다. 일부 주민은 "대출받은 빚을 감당하지 못해 떠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간성에서 대진으로 가는 길 옆으로 4차선 확장 공사가 4년째 이어지고 있다.
 간성에서 대진으로 가는 길 옆으로 4차선 확장 공사가 4년째 이어지고 있다.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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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가는 길 4차선 확장 공사중.
 금강산 가는 길 4차선 확장 공사중.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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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지사는 지난 8월 29일 여야 대선 후보들에게 강원도 5대 공약을 제안했다. 최 지사가 제시한 5대 공약 중 핵심은 '강원평화특별자치도' 설치다. 남북한 주민이 평화지역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같이 생활해 보자는 것이다. 이는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게 최 지사의 주장이다. 당장 실행은 어려워도 언젠가는 꼭 해야할 일이라는 것이다.

꽉 막힌 고성... 사람들은 남쪽으로 이동중

이와 함께 강원도는 남북경협 산업단지 조성 정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강원도청은 지난 8월 "강릉을 중심으로 동해안권에 비철금속 제련 단지를 만들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자"며 "올해 안에 부지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최 지사는 "도내 접경지에 평화산업단지를 만들어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며 "북한 근로자들의 출퇴근 문제 등 세부적인 운영 방안에 대한 용역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해안 모습.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해안 모습.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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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식당.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식당.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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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지사가 청사진을 제시했어도 아직 접경지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가야할 길은 멀고 건너야 할 산도 많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예산심의에서 강원도 철원, 고성, 양구 등 도내 비무장지대(DMZ) 연계 5개 시·군을 대상으로 한 한반도 평화생태벨트 조성사업 추진예산 40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삭감된 예산은 강원도와 경기도, 인천의 접경지역 15개 시·군을 대상으로 하는 '접경지역 종합발전계획'의 5대 사업추진 예산이었다.

고성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언제쯤 다시 열릴까. 고성 어민들은 다시 싱싱한 명태로 만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고성이 가야할 길은 여전히 막혀 있고, 사람들은 자꾸 '남하'하는 중이다.


태그:#대선 공약, #접경지공역,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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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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